목 조르는 로맨티스트 - 인간실격.제로자키 히토시키, Faust Novel 헛소리꾼 시리즈 2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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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교토의 연쇄토막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쇄 토막살인은 거들뿐(?) 사실은 이짱의 시시껄렁한 헛소리와 비정상적이 뇌구조를 가진 그의 친구들의 농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잘린머리 사이클>의 일류 최강의 청부업자 '아이카와 준', 푸른 머리의 컴퓨터 천재소녀 '쿠나기사 토모' 등 반가운 얼굴들도 보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이 선보이는 캐릭터는 이짱(나, 이야기꾼)의 거울 같은 존재인 인간실격 '제로자키 히토시키'입니다. 스포일러일 것도 없이 제로자키 히토히시가 그 무시무시한 교토의 연쇄살인귀입니다(스포일러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초반부터 이짱은 그가 만나거든요. 과연 어떤 일이?). 그러나 이 사건은 사실 양념입니다. 초반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그리고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범행 사실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얼굴에 문신이 있는 그는 왜 경찰에게 잡히지 않을까? 여러 명의 사람을 죽였는데 말이죠. 뭐 그건 그의 재능. 그냥 이짱의 분신 같은 존재의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을 엿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죠.

<목조르는 로맨티스트>는 무시무시한 교토의 연쇄토막 살인사건보다 이짱이 우연히 참석하게 된 '에모토 토모에'의 생일파티 그 이후에 벌어지는 연쇄교살살인사건에 더 중점을 둡니다. 토모에의 생일파티에 참가한 친구들이 하나씩 목이 졸린 채 시체로 발견됩니다. 다잉 메시지(과연?)도 있고, 친구들이 알리바이도 조금 허술하기는 하지만 있고, 트릭과 반전도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연쇄교살살인사건의 범인의 거들뿐(?) 또 다른 반점이 숨어져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는 속임수가 참 많네요. 거짓말도 많고요. 뭐 이짱은 거짓말을 잘 하니까요. 사실 이런 유의 소설은 조금 거시기 하기는 하지만(중간 까지는 범인과 트릭을 알아 맞혔는데), 뭐 이짱의 헛소리만으로도 꽤나 유쾌하게 읽었습니다. 시시껄렁한 개똥철학 같은 말장난이 자주 나오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범행 동기는 그야말로 아스트랄하더군요. 물론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뭐랄까,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난다고 할까요? 황당하기도 하고 말이죠. 물론 요즘 몰상식한 인간들이 많아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오히려 상식적인 행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은 범행 동기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이 소설에서는요). 암튼 주절주절 떠들어 봅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뭐 그냥 헛소리죠'라고 대답할 뿐.

덧글1. 아름다운 미소녀/미소년의 그림이 이번 작품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타케 씨에게 저 역시 감사. 살인귀도 살인범도 인간실격 결함제품도 모두 엄청난 미인입니다.

덧글2: 다잉 메시지(?) 'x/y'는 소설을 다 읽고서도 그 의미를 몰랐네요.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니시오 이신의 센스는 정말 'goo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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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섬 미도리의 책장 2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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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은 모든 맺어진 연인들과 모든 맺어지지 못한 연인들의 그림자다.

                                                   - 라셰프스카야

찻집을 운영하는 아야메는 찻집 단골손님과 그들의 친구나 부인들과 함께 외딴 섬의 별장으로 7일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아야메는 사랑하는 그(도리코)와의 여행을 꿈꾸었으나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나나코)가 있습니다. 불륜관계. 아야메는 사랑하는 남자와 그의 아내와 함께 외딴 섬으로의 불안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경치, 평온한 일상, 행복한 나날도 잠시 도착한 다음 날 아침 , 칼에 찔린 채 죽어 있는 나나코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도리코(남편) 또는 아야메(남편과의 불륜관계에 있는 여자)이지만, 아야메의 알리바이는 확실합니다. 그리고 밀실살인(사실 이 트릭은 어떤 소설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조금 유명한 트릭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 이 소설에서 트릭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아요).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일행 중의 한명인 무쿠 군은 유일한 탈출로인 보트 키를 바다에 던지고 연쇄살인범(일 것이라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도전을 선포합니다. 클로즈드 서클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당연히 범인은 섬에 있는 일행 중의 한 명이겠죠? 보트 키를 과감하게 바다에 버린 무쿠라는 인물이 다음 희생자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그러게 그냥 보트 타고 도망가지). 외딴 섬, 외부로부터의 고립, 밀실살인, 그리고 연쇄살인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이상하게 꼬여버린 연인관계까지 본격 미스터리소설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흥미로운 요소들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밀실트릭과 연쇄살인사건 이면에 감춰진 사건의 본질(동기)도 그리 나쁘지 않고요. 그러니까 범인을 맞추기는 조금 쉬울지 모르지만, 그 동기까지 알아내기에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의 문체가 자극적이지 않고 아름다워서 그렇지, 꽤나 엽기적인 사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자극적이지가 않고 묘하게 슬프면서 가슴이 아프더군요.


피를 토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나 자신을 찔렀다.(p.152)


이 소설의 화자는 나(아야메)입니다. 그녀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시점 등이 아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그 남자와 또 그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되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녀의 시선이 자꾸만 부담스러우면서 질투가 나기도 한다. 이런 여성의 심리 묘사가 무척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추리소설 치고는 (절대 추리소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장이 무척 아름답더군요. 문장력이 뛰어난 추리소설을 제가 많이 읽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근래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는 문장이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었습니다. 사실 추리소설이라는 외피만 벗겨내면 엄청나게 잔인하고 가슴 아픈 연애소설이기도 합니다. 사랑, 그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진실. 한 여름의 얼어붙은 섬에서 그 진실을 한 번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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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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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 가지고 있지? 그걸로 배든 어디든 좀 찔러줄 수 없을까?"

40대 후반의 작은 영세 철공소의 사장, 신지로. 맞은 편 주택가에서는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항의를 한다. 외국계 대기업에 다니는 주민 오타는 재수 없는 엘리트답게 논리정연하게 영세 철공소 사장의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몸부림을 거부합니다. 규칙을 정합시다. 법으로 합시다. 한 달 야근 시간을 정해 놓읍시다. 하청에 하청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말에도 일하지 말고, 야근도 하지 말라니, 죽으라는 얘기입니까? 그렇다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죠. 맞는 얘기입니다. 맞는 얘기죠. 그러니까 돈 없으면 죽으라는 얘기죠. 자기 회사에 하청을 주는 A급 회사는 일개 회사원의 비리를 위해 비싼 기계를 들여 놓으라며 은행 대출을 받으라고 해서 기껏 가족들에게 빚지고 거래 은행에 돈을 찾아서 힘들게 준비를 했건만, 부동산이 없다고 꺼지라고 한다. 돈 줄때는 공장 앞까지 찾아오더니 돈 찾는다고 하니, 와서 찾아가라고 하네. 정말 인생 더럽게 꼬이네요. 학교도 제대로 안 가는 딸년은 대학을 간다고 하고, 소심한 남자 직원은 너무나 소심한 성격에 회사를 결근하고, 시청직원은 계속 들락날락 거리고, 동네 주민들은 시끄럽다고 또 난리를 치고, 정말 최악이다!! 죽고 싶다. 누가 나를 칼로 좀 찔러 주시지. 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반대로 여자 쪽에서 남자한테 안기기도 하고 때로는 살살 눈웃음을 치고 그렇잖아? 술이 들어가면 여자나 남자나 다 마찬가진데, 그런 걸 어떻게 자네는 성추행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지?"

"자네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라는 말에 아 예, 그러세요, 하고 즉각 움직일 만큼 회사라는 데가 만만한 곳이 아냐."

 

20대 초반의 은행 여직원, 미도리. 신입행원 환영캠프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오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뒤에 슬그머니 다가오는 지점장. "괜찮아?"라며 가슴을 만지고, 옷을 벗기고, 사타구니를 더듬고, 귀에 징그러운 숨소리. 그 때 다가오는 회사의 왕따 남직원.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 아니,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런데 왜 나는 자꾸 지점장을 피하게 되고, 지점장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내가 숨어야 하는 걸까? 어렵게 과장 대리에게 고민을 상담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협박. 회사 조직이 그리 만만한가? 결국 아무런 힘도 없다. 증거(증인)가 없으니까. 물론 증인은 있지만(왕따 남직원), 조직 사회가 그리 만만한가? 결국 봐도 못 본 것이 된다. 성추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팀의 분위기를 위해서는 당신이 그냥 참아. 원래 사회라는 곳이 그렇잖아. 자신을 도와주려는 또 다른 남자직원, 역시나 조직사회 파벌싸움에 이용하려고만 할뿐. 성추행을 당하건 말건 상관없다. 17세의 여동생은 가출을 하고, 회사를 때려치우지도 못하고, 이상한 노인네는 매일 찾아와서 귀찮게 굴고, 그래도 멋진 남자의 유혹에는 쉽게 몸을 주고, 이거 나 정말 미친 걸까?


"하지만 돌아갈 자리라도 있지? 뭐니 뭐니 해도 아저씨는 가족이 있어.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어머니는 지금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요. 진짜 나는 도망치려야 어디 갈 데도 없어. 흥, 세상 사람들 모두 이 중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할 걸?"

20대 초반의 백수 청년, 가즈야. 그렇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 동전 앞뒤로 나를 때리기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집을 나갔다. 일은 하기 싫다. 파친코에서 용돈 버는 것이 나의 일과. 야쿠자 똘마니에 꼬임에 빠져 물건을 훔치고, 들켜서 죽도로 맞고, 빚까지 지게 된다. 크게 한탕하자 마음먹고 야쿠자 똘마니와 컴퓨터중고가게를 털어 돈을 마련하지만 그 녀석은 그 돈을 갖고 날라버린다. 야쿠자에게 붙잡혀 또 죽도록 맞는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고생까지 인질로 잡힌 채 또 돈을 훔쳐야 한다. 그러다 야쿠자 중간보스를 칼로 지르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17세의 여고생과 은행을 털기로 한다. 인생 막장이다. 그런데 인생 꼬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는 인생. 누굴 믿어야 할까?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은 꽤나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최악으로 치닫는 세 인물의 이야기가 정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 됩니다. 개인적으로 신지로라는 영세철공소의 사장이 정말 불쌍하더군요. 일이 꼬일 대로 꼬여서 풀 엄두가 안 나는 상황. 딱 벼랑 끝에 몰린 상황입니다. 정말 분노 폭발 직전입니다. 그러니까 다 포기하고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겠죠. 신지로, 미도리, 가즈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은행 강도사건을 계기로 이 인물들이 한 자리에 만나게 됩니다. 이들이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진진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패배자들의 삶이란 안 봐도 비디오죠.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그러나 개인적으로 20대 초반의 청년 가즈야의 삶은 그리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20대 초반의 치기어린 일탈 정도. 따라서 삶에 대한 고민이나 고통은 피부로 와 닿지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는 40대 후반의 영세철공소 사장 신지로의 삶이 가장 공감이 많이 되더군요. 은행의 횡포, 영세공장의 어려움, 자식과의 불화, 직원들과의 마찰, 동네 주민과의 마찰 등등), 삶의 낙이 없습니다.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는 인간도 있고, 파렴치한 인간도 있으며, 배웠다고 무시하는 인간도 있으며, 정말 세상에 도움 되는 인간은 없습니다. <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를 알고 있던 제게 이 소설은 조금 희한했습니다. 코믹한 요소가 거의 없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이 시종일관 보였거든요. 그러니까 다양한 사회 문제를 건드린 매우 진지한 작품이었습니다. 썰렁한 유머도 없고 말이죠. 물론 이들이 은행 강도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요. 웃고 싶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와요. 물론 이 웃음은 정말 웃겨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에요. 허탈하고 조금은 씁쓸한 자조적인 웃음이라고 할까요? 웃고 있어도 왠지 모르게 슬픈 그런 웃음 말이죠. 결국 그들은 은행 강도사건에 성공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최악의 인생도 이제는 조금 나아졌을까요? 아무리 난리부르스를 춰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죠. 결국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조금 씁쓸한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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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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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간들 중에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도깨비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 같은 멀쩡한 얼굴 밑에, 귀신의 본성을 숨기고 있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속이거나 죽인다.

(<가을비 도깨비> 중에서)

<혼조 후쿠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이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귀신의 기이하고 환상적이며 애절한 이야기를 다룬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혼조 후쿠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비해서 미스터리한 느낌은 조금 덜한 것 같네요. 그러니까 미스터리한 어떤 사건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식으로 결말을 맺어서 조금 밋밋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이 살짝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누구와 누구는 결국 어떻게 되었고, 그들은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확실한 결말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비중을 두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괴이>는 '꿈속의 자살', '그림자 감독', '이불방', '여자의 머리' 등 아홉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귀신이나 도깨비, 흡혈귀(영원히 죽지 않으니 흡혈귀라고 볼 수 있겠죠)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네요. 귀신보다 인간의 사악함이 섬뜩하게 느껴졌던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그림자 감옥'에서 며느리의 시어머니에 대한 행동은 인간의 사악함의 절정을 보여주더군요. 물론 좋은 귀신도 있고, 나쁜 귀신도 있습니다. 나쁜 귀신은 인간을 해하려 하고('여자의 머리'), 좋은 귀신은 인간을 도와주죠. 그리고 인간의 더러움을 먹고 사는 좋은 귀신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온갖 사악함과 더러움을 먹고 귀신은 심성이 착합니다('아다치 가의 도깨비'). 암튼 다양한 귀신들을 구경하실 수 있을거에요. 일본의 괴담이 미야베 미유키와 만나면 어떤 식으로 변주되는지 관찰하는 재미도 나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귀신은 무섭지 않았지만,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악의는 조금 무섭더군요. 암튼 드라마로서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호러나 미스터리 쪽으로는 조금 약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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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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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피의 책이다.

어디를 펼치든 모두 붉다.

정말? 정말 어디를 펼치든 모두 붉을까? 허풍이나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은 온통 붉다. 진한 피의 냄새가 풍겨온다. 달콤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기묘하다. 공포소설의 조건은 무엇일까? 잠깐 1분 정도 생각해 본다. 기존 공포에 너무 익숙한 내게는 너무나 뻔 한 몇 가지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굴에 갇히거나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사이코가 등장하고, 뿔 달린 괴물이 등장해서 난도질을 하고, 아니면 <링>의 사다코처럼 관절을 꺾어 볼까? 암튼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은 기대 이상이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의 흥분을 해서 살짝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 오버인가? 암튼 재미있다. 물론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기존의 공포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니까.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섬뜩하면서 때로는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기괴하면서 환상적이고, 무엇보다 신비스럽다. 러브 크래크프의 소설처럼 거대한 환상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세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의 뉴욕시 지하에 창조되어 있는 인육을 먹는 인간들의 조상, <언덕에, 두 도시>에서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거대 인간 도시, <스케이프고트>에서의 죽은 자들의 섬 등등. 그리고 그다지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력적인 괴물들. <피그 블러드 블루스>에서의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 돼지, <로레드 렉스>에서의 2미터가 넘는 야들야들한 아기 고기를 좋아하는 괴물("이게 바로 짐승이지", "먹고 먹히고"),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 인간의 가죽을 벗기는 연쇄살인마, 무엇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의 유령들, <스케이프고트>에서의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좀비들, <야터링과 잭>에서의 저급 악마 등등 암튼 귀엽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찌 이런 소설이 재미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관음증에서 오는 쾌락, 그리고 섹스와 공포, 유혈이 낭자한 묘사들. 모든 단편 하나하나가 정말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합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잔인한 장면에서의 실감 나는 묘사가 좋더군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장면을 상상력 하나로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무척 어려움에도 정말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묘사가 되어 있더군요. <언덕에, 두 도시>의 수천 명(수만 명이었나?)으로 이루어진 거대 인간이 걸어 다니는 장면 묘사는 정말 황홀하더군요. 근육 부분을 담당하는(?) 인간의 일그러진 표정, 구부러진 몸뚱아리 등등. 인간으로 이루어진 두 도시의 원초적인 싸움(전쟁)은 혹시라도 인간이 걸어온 피로 이루어진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학적인 주제들도 넌지시 던져주고 있습니다. 암튼 재미있습니다. 기존 공포소설에 식상한 사람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국내에 출간된 <피의 책>은 1984년에 출간된 <피의 책 1-3권>에서의 작품을 추려서 수록했다고 하네요. <피의 책 4-6권>도 곧 선보인다고 합니다. 반응이 좋으면 외전 형태로 완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번역자 분께서) 가능성은 조금 희박해 보이지만 완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피의 책>에 수록된 단편들도 곧 영화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피그 블러드 블루스>, <드레드>과 과연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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