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나이프 가지고 있지? 그걸로 배든 어디든 좀 찔러줄 수 없을까?"

40대 후반의 작은 영세 철공소의 사장, 신지로. 맞은 편 주택가에서는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항의를 한다. 외국계 대기업에 다니는 주민 오타는 재수 없는 엘리트답게 논리정연하게 영세 철공소 사장의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몸부림을 거부합니다. 규칙을 정합시다. 법으로 합시다. 한 달 야근 시간을 정해 놓읍시다. 하청에 하청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말에도 일하지 말고, 야근도 하지 말라니, 죽으라는 얘기입니까? 그렇다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죠. 맞는 얘기입니다. 맞는 얘기죠. 그러니까 돈 없으면 죽으라는 얘기죠. 자기 회사에 하청을 주는 A급 회사는 일개 회사원의 비리를 위해 비싼 기계를 들여 놓으라며 은행 대출을 받으라고 해서 기껏 가족들에게 빚지고 거래 은행에 돈을 찾아서 힘들게 준비를 했건만, 부동산이 없다고 꺼지라고 한다. 돈 줄때는 공장 앞까지 찾아오더니 돈 찾는다고 하니, 와서 찾아가라고 하네. 정말 인생 더럽게 꼬이네요. 학교도 제대로 안 가는 딸년은 대학을 간다고 하고, 소심한 남자 직원은 너무나 소심한 성격에 회사를 결근하고, 시청직원은 계속 들락날락 거리고, 동네 주민들은 시끄럽다고 또 난리를 치고, 정말 최악이다!! 죽고 싶다. 누가 나를 칼로 좀 찔러 주시지. 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반대로 여자 쪽에서 남자한테 안기기도 하고 때로는 살살 눈웃음을 치고 그렇잖아? 술이 들어가면 여자나 남자나 다 마찬가진데, 그런 걸 어떻게 자네는 성추행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지?"

"자네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라는 말에 아 예, 그러세요, 하고 즉각 움직일 만큼 회사라는 데가 만만한 곳이 아냐."

 

20대 초반의 은행 여직원, 미도리. 신입행원 환영캠프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오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뒤에 슬그머니 다가오는 지점장. "괜찮아?"라며 가슴을 만지고, 옷을 벗기고, 사타구니를 더듬고, 귀에 징그러운 숨소리. 그 때 다가오는 회사의 왕따 남직원.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 아니,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런데 왜 나는 자꾸 지점장을 피하게 되고, 지점장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피해자인데, 왜 내가 숨어야 하는 걸까? 어렵게 과장 대리에게 고민을 상담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협박. 회사 조직이 그리 만만한가? 결국 아무런 힘도 없다. 증거(증인)가 없으니까. 물론 증인은 있지만(왕따 남직원), 조직 사회가 그리 만만한가? 결국 봐도 못 본 것이 된다. 성추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팀의 분위기를 위해서는 당신이 그냥 참아. 원래 사회라는 곳이 그렇잖아. 자신을 도와주려는 또 다른 남자직원, 역시나 조직사회 파벌싸움에 이용하려고만 할뿐. 성추행을 당하건 말건 상관없다. 17세의 여동생은 가출을 하고, 회사를 때려치우지도 못하고, 이상한 노인네는 매일 찾아와서 귀찮게 굴고, 그래도 멋진 남자의 유혹에는 쉽게 몸을 주고, 이거 나 정말 미친 걸까?


"하지만 돌아갈 자리라도 있지? 뭐니 뭐니 해도 아저씨는 가족이 있어.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어머니는 지금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요. 진짜 나는 도망치려야 어디 갈 데도 없어. 흥, 세상 사람들 모두 이 중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할 걸?"

20대 초반의 백수 청년, 가즈야. 그렇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 동전 앞뒤로 나를 때리기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집을 나갔다. 일은 하기 싫다. 파친코에서 용돈 버는 것이 나의 일과. 야쿠자 똘마니에 꼬임에 빠져 물건을 훔치고, 들켜서 죽도로 맞고, 빚까지 지게 된다. 크게 한탕하자 마음먹고 야쿠자 똘마니와 컴퓨터중고가게를 털어 돈을 마련하지만 그 녀석은 그 돈을 갖고 날라버린다. 야쿠자에게 붙잡혀 또 죽도록 맞는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고생까지 인질로 잡힌 채 또 돈을 훔쳐야 한다. 그러다 야쿠자 중간보스를 칼로 지르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17세의 여고생과 은행을 털기로 한다. 인생 막장이다. 그런데 인생 꼬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는 인생. 누굴 믿어야 할까?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은 꽤나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최악으로 치닫는 세 인물의 이야기가 정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 됩니다. 개인적으로 신지로라는 영세철공소의 사장이 정말 불쌍하더군요. 일이 꼬일 대로 꼬여서 풀 엄두가 안 나는 상황. 딱 벼랑 끝에 몰린 상황입니다. 정말 분노 폭발 직전입니다. 그러니까 다 포기하고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겠죠. 신지로, 미도리, 가즈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은행 강도사건을 계기로 이 인물들이 한 자리에 만나게 됩니다. 이들이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진진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패배자들의 삶이란 안 봐도 비디오죠.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그러나 개인적으로 20대 초반의 청년 가즈야의 삶은 그리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20대 초반의 치기어린 일탈 정도. 따라서 삶에 대한 고민이나 고통은 피부로 와 닿지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는 40대 후반의 영세철공소 사장 신지로의 삶이 가장 공감이 많이 되더군요. 은행의 횡포, 영세공장의 어려움, 자식과의 불화, 직원들과의 마찰, 동네 주민과의 마찰 등등), 삶의 낙이 없습니다.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는 인간도 있고, 파렴치한 인간도 있으며, 배웠다고 무시하는 인간도 있으며, 정말 세상에 도움 되는 인간은 없습니다. <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를 알고 있던 제게 이 소설은 조금 희한했습니다. 코믹한 요소가 거의 없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이 시종일관 보였거든요. 그러니까 다양한 사회 문제를 건드린 매우 진지한 작품이었습니다. 썰렁한 유머도 없고 말이죠. 물론 이들이 은행 강도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요. 웃고 싶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와요. 물론 이 웃음은 정말 웃겨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에요. 허탈하고 조금은 씁쓸한 자조적인 웃음이라고 할까요? 웃고 있어도 왠지 모르게 슬픈 그런 웃음 말이죠. 결국 그들은 은행 강도사건에 성공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최악의 인생도 이제는 조금 나아졌을까요? 아무리 난리부르스를 춰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죠. 결국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조금 씁쓸한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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