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섬 미도리의 책장 2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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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상은 모든 맺어진 연인들과 모든 맺어지지 못한 연인들의 그림자다.

                                                   - 라셰프스카야

찻집을 운영하는 아야메는 찻집 단골손님과 그들의 친구나 부인들과 함께 외딴 섬의 별장으로 7일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아야메는 사랑하는 그(도리코)와의 여행을 꿈꾸었으나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나나코)가 있습니다. 불륜관계. 아야메는 사랑하는 남자와 그의 아내와 함께 외딴 섬으로의 불안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경치, 평온한 일상, 행복한 나날도 잠시 도착한 다음 날 아침 , 칼에 찔린 채 죽어 있는 나나코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도리코(남편) 또는 아야메(남편과의 불륜관계에 있는 여자)이지만, 아야메의 알리바이는 확실합니다. 그리고 밀실살인(사실 이 트릭은 어떤 소설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조금 유명한 트릭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 이 소설에서 트릭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아요).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일행 중의 한명인 무쿠 군은 유일한 탈출로인 보트 키를 바다에 던지고 연쇄살인범(일 것이라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도전을 선포합니다. 클로즈드 서클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당연히 범인은 섬에 있는 일행 중의 한 명이겠죠? 보트 키를 과감하게 바다에 버린 무쿠라는 인물이 다음 희생자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그러게 그냥 보트 타고 도망가지). 외딴 섬, 외부로부터의 고립, 밀실살인, 그리고 연쇄살인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이상하게 꼬여버린 연인관계까지 본격 미스터리소설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흥미로운 요소들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밀실트릭과 연쇄살인사건 이면에 감춰진 사건의 본질(동기)도 그리 나쁘지 않고요. 그러니까 범인을 맞추기는 조금 쉬울지 모르지만, 그 동기까지 알아내기에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의 문체가 자극적이지 않고 아름다워서 그렇지, 꽤나 엽기적인 사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자극적이지가 않고 묘하게 슬프면서 가슴이 아프더군요.


피를 토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나 자신을 찔렀다.(p.152)


이 소설의 화자는 나(아야메)입니다. 그녀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시점 등이 아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그 남자와 또 그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되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녀의 시선이 자꾸만 부담스러우면서 질투가 나기도 한다. 이런 여성의 심리 묘사가 무척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추리소설 치고는 (절대 추리소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장이 무척 아름답더군요. 문장력이 뛰어난 추리소설을 제가 많이 읽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근래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는 문장이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었습니다. 사실 추리소설이라는 외피만 벗겨내면 엄청나게 잔인하고 가슴 아픈 연애소설이기도 합니다. 사랑, 그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진실. 한 여름의 얼어붙은 섬에서 그 진실을 한 번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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