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앤드 커맨더 1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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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의 첫 번째 <마스터 앤드 커맨더 1>가 돛을 올렸습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해양모험소설이겠지만, 해양에서의 모험도 다루고는 있지만 (물론 아직 1권 시작이라 단정 짓기에는 조금 이르지만요) 좀더 19세기 초 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하나의 역사소설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로 그 당시의 유럽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해박한 분들이 읽는다면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물론 저는 19세기 초의 유럽 역사에 대해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단편적인 지식 밖에는 모릅니다. 따라서 흥미가 조금은 반감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해군 대위 출신의 잭 오브리는 어느 날 제국 전함 '소피 호'의 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총독 관저의 연주회장에서 의사이자 자연학자인 그의 영원한 벗(?) 스티븐 머투린을 만나게 됩니다. 오브리가 조금 활달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진취적인 성격의 호탕한 인간이라면 머투린은 조금은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사려 깊은 (그러나 마음속에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입니다. 아직까지는 이 둘의 대립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브리-머투린 외에도 배 위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갑판장, 부관, 사무장, 장포장, 수습사원, 서기, 조함장 등의 선원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휘 체제, 배의 구조, 항해술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보니 읽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더군요. 특히나 적군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 무척 긴박감 있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배위 구조와 각 선원들의 역할을 잘 모르다보니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고, 어디를 공격하는 것인지 그림이 떠오르지가 않더군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어느 정도 배의 구조에 대한 기초 지식과 항해술이나 해상 전투에 있어서의 기초적인 전략 등의 사전 정보 습득은 필수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저처럼 모르고 읽어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남자들이라면 바다 위에서의 모험에 대한 어느 정도의 로망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떠나는 여행. 태풍과 싸우고, 적을 물리치며 보물을 찾고, 예쁜 아내(또는 여자 친구)가 기다리는 대륙으로 돌아오는 그런 조금은 낭만적인 꿈. 어린 시절 <나디아>, <보물섬>, <태양소년 에스테반> 등의 만화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봤습니다. 따라서 바다 위에서의 모험을 다룬 소설은 꼭 읽어보자 했는데, 조금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를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네요. 물론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만화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호흡이 무척 길고 느립니다. 따라서 초반부터 충격적인 그 무엇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마치 오브리-머투린와 19세기 초 유럽의 바다 위를 함께 여행하듯이(모험을 떠나듯이) 읽으면 좋을 듯싶네요. 이제서야 해양소설의 첫 발을 떼었습니다. 다음 시리즈를 읽기 전에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제대로 복습해야겠습니다. 암튼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양적으로가 아닌 질적으로 무척 스펙터클하네요.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아서 미지의 곳을 탐험하는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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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라이프 2
김태양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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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사이트에는 <SL 여동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되었다고 하네요. 여동생은 여자 동생의 약자로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야동(야한 동영상)을 좀 본다는 남자들에게는 꽤나 친근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이죠. 변태라고 부를 사람도 있겠지만 (감정에 솔직한 것이 변태는 아니죠. 그런 상상은 남자라면 누구나 다 마음속에 품고 있으니까요. 여동생과 더불어 여교사 시리즈는 시대를 초월한 남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고요), 미소녀 여동생이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사실 (19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약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나아갔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책으로 출간이 되면서 조금 순화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어느 정도 선은 넘지를 않은 것이지 모르겠지만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19금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 아닐 뿐더러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19금 소설을 쓰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이기도 하니까요. 타협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정한 수준에서 성적 표현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애교 수준) 남자라면 누구나 예쁜 미모의 여동생을 갖고 싶다는 그런 로망이 있죠.

<스쿨라이프>는 작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쓴 소설입니다. 야동, 야게임, 무협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건장한 10대 소년입니다. 그리고 은근 여동생 시리즈를 좋아하는 듯. 그런 작가의 판타지가 작품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윤성, 미모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입니다. 여동생도 퀸카, 여자 친구도 퀸가, 그리고 또 다른 여동생도 알아주는 미모입니다. 그리고 특히나 여동생은 집에서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일례로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소변을 보죠. 그리고 들려오는 오줌 싸는 소리. 변태냐? 오줌 싸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게? 그리고 남도 아니고 여동생 오줌 싸는 소리를 좋아하다니, 정말 변태 아니야? 이 소설에서는 3황 4제라 불리는 고수급의 변태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주인공도 약간 변태 끼가 있고요. 화장실 오줌 에피소드는 야동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죠. 작가 당신을 야동 매니아로 임명합니다^^

변태(變態)는 '정상이 아닌 성욕이나 그로 인한 행위. 또는 그 성욕을 가졌거나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정상이 아닌 이상 성욕을 가진 사람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러한 행위가 나쁘지도 않습니다. 인식 자체가 그렇게 몰고 갈 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스쿨 라이프>는 요즘 남학생(여학생은 잘 모르겠습니다)의 성과 연애에 대한 풍속도를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사실 이 소설을 여자 분들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미소녀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거든요. 롤리타 신드롬은 언제나 있어 왔던 것이고요. 요즘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에 대한 아저씨들의 광적인 반응도 일례가 아닐까 싶어요. 서른 넘은 아저씨들이 음반을 사고, 싸인회를 가고, 사진을 수집하고, 음악방송을 챙겨 보고 등등. 암튼 이 소설은 소년들의 성적 판타지입니다. 영화 <몽정기>가 여교사에 대한 남학생들의 성적 판타지를 다루었다면, 소설 <스쿨 라이프>는 여동생(동급생)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즘은 연상에 대한 판타지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여교사에 판타지는 더더욱. 암튼 그런 면에서는 요즘 청소녀의 성에 대한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세는 미소녀.

암튼 쓸데없이 미소녀 얘기만 많이 했네요. 이 소설은 작품성이 없습니다. 또한 뭔가 심오한 뜻을 품고 있는 소설도 아니고요. 화장실 유머까지는 아니고, 그냥 '키득키득' 거리면서 웃고 즐길 정도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0대 청소년(특히 남학생)의 학창 시절을 유머스럽게 성적으로 풀어낸 이야기 정도. 공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개인적으로 10대 시절을 오래 전에 졸업했음에도 남자들의 성에 대한 판타지는 변하지를 않는 것 같네요.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미소녀나 동급생에 대한 성적 판타지는 정말 공감이 가더군요. 특히 근친 부분은요. 여동생이 없어서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 뭔가 아름다운 일이 생길 것 같은 환상을 품고 살았던 것 같아요.). 참고로 작가는 여동생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여동생에게 어떤 비밀(반전)을 숨겨 놓습니다.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대상에게 어떤 교묘한 장치를 설치하죠. 그러고 대 놓고 사랑을 하죠. 여동생을 사랑하고 싶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이러면 안 되잖아. 그래도 사랑하고 싶다. 조금은 위험하기도 한데, 교묘하게 잘 피해가네요. 암튼 남자들의 여동생에 대한 로망,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변태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다음에는 동급생이나 여교사 시리즈도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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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라이프 1
김태양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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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사이트에는 <SL 여동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되었다고 하네요. 여동생은 여자 동생의 약자로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야동(야한 동영상)을 좀 본다는 남자들에게는 꽤나 친근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이죠. 변태라고 부를 사람도 있겠지만 (감정에 솔직한 것이 변태는 아니죠. 그런 상상은 남자라면 누구나 다 마음속에 품고 있으니까요. 여동생과 더불어 여교사 시리즈는 시대를 초월한 남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고요), 미소녀 여동생이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사실 (19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약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나아갔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책으로 출간이 되면서 조금 순화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어느 정도 선은 넘지를 않은 것이지 모르겠지만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19금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 아닐 뿐더러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19금 소설을 쓰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이기도 하니까요. 타협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정한 수준에서 성적 표현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애교 수준) 남자라면 누구나 예쁜 미모의 여동생을 갖고 싶다는 그런 로망이 있죠.

<스쿨라이프>는 작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쓴 소설입니다. 야동, 야게임, 무협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건장한 10대 소년입니다. 그리고 은근 여동생 시리즈를 좋아하는 듯. 그런 작가의 판타지가 작품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윤성, 미모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입니다. 여동생도 퀸카, 여자 친구도 퀸가, 그리고 또 다른 여동생도 알아주는 미모입니다. 그리고 특히나 여동생은 집에서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일례로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소변을 보죠. 그리고 들려오는 오줌 싸는 소리. 변태냐? 오줌 싸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게? 그리고 남도 아니고 여동생 오줌 싸는 소리를 좋아하다니, 정말 변태 아니야? 이 소설에서는 3황 4제라 불리는 고수급의 변태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주인공도 약간 변태 끼가 있고요. 화장실 오줌 에피소드는 야동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죠. 작가 당신을 야동 매니아로 임명합니다^^

변태(變態)는 '정상이 아닌 성욕이나 그로 인한 행위. 또는 그 성욕을 가졌거나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정상이 아닌 이상 성욕을 가진 사람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러한 행위가 나쁘지도 않습니다. 인식 자체가 그렇게 몰고 갈 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스쿨 라이프>는 요즘 남학생(여학생은 잘 모르겠습니다)의 성과 연애에 대한 풍속도를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사실 이 소설을 여자 분들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미소녀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거든요. 롤리타 신드롬은 언제나 있어 왔던 것이고요. 요즘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에 대한 아저씨들의 광적인 반응도 일례가 아닐까 싶어요. 서른 넘은 아저씨들이 음반을 사고, 싸인회를 가고, 사진을 수집하고, 음악방송을 챙겨 보고 등등. 암튼 이 소설은 소년들의 성적 판타지입니다. 영화 <몽정기>가 여교사에 대한 남학생들의 성적 판타지를 다루었다면, 소설 <스쿨 라이프>는 여동생(동급생)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즘은 연상에 대한 판타지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여교사에 판타지는 더더욱. 암튼 그런 면에서는 요즘 청소녀의 성에 대한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세는 미소녀.

암튼 쓸데없이 미소녀 얘기만 많이 했네요. 이 소설은 작품성이 없습니다. 또한 뭔가 심오한 뜻을 품고 있는 소설도 아니고요. 화장실 유머까지는 아니고, 그냥 '키득키득' 거리면서 웃고 즐길 정도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0대 청소년(특히 남학생)의 학창 시절을 유머스럽게 성적으로 풀어낸 이야기 정도. 공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개인적으로 10대 시절을 오래 전에 졸업했음에도 남자들의 성에 대한 판타지는 변하지를 않는 것 같네요.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미소녀나 동급생에 대한 성적 판타지는 정말 공감이 가더군요. 특히 근친 부분은요. 여동생이 없어서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 뭔가 아름다운 일이 생길 것 같은 환상을 품고 살았던 것 같아요.). 참고로 작가는 여동생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여동생에게 어떤 비밀(반전)을 숨겨 놓습니다.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대상에게 어떤 교묘한 장치를 설치하죠. 그러고 대 놓고 사랑을 하죠. 여동생을 사랑하고 싶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이러면 안 되잖아. 그래도 사랑하고 싶다. 조금은 위험하기도 한데, 교묘하게 잘 피해가네요. 암튼 남자들의 여동생에 대한 로망,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변태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다음에는 동급생이나 여교사 시리즈도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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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환상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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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주오. 용서해줘. 난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 살려둘 수 없을 만치 사랑하는 거야."

(<벌레> 중에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보통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보통 기괴(奇怪)나 음울(陰鬱)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기이하고, 괴상하고, 음침하며, 우울하죠. 물론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이 본격 추리소설과 변격소설(환상, 괴이)로 나뉘기는 하지만(굳이 나누자면), 사실 본격 추리소설도 대부분 기괴하고 음울했던 것 같아요. 물론 위의 표현은 조금 고급스럽다면 고급스러워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사이코나 변태의 기운이 느껴지는 소설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사실 누구나 다 변태이고, 사이코이지 않을까요. 겉으로 표현만 하지 않을 뿐, 누구나 다 마음속에는 음침하고 기이하며 미친 생각을 품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속으로 몇 십 년을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을 무시합니다. 친구 녀석은 그런 그녀와 자랑스럽게 희희덕거리며 즐깁니다. 그녀의 유혹에 순간 넘어가고 무시를 당합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일부러 그런 "척"을 했던 거죠. 놀리기 위해서 말이죠. 수치심과 굴욕감. 그래서 "허허"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그녀를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생체가 아닌 사체로라도 말이죠. 결코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기면 문제가 있겠지만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에도가와 란포는 인간의 마음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변태적인 감성을 교묘하게 건드리고, 끄집어내는 것 같아요. 외면할수록 더욱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는 듯한 느낌. '나는 아니야', '절대 아니야'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미친놈처럼 낄낄 거리고 있습니다. 아니 즐기고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이미 동서문화사에서 <음울한 짐승>과 <외딴섬 악마>가 출간되었죠(저작권 계약 없이 말이죠). 이번에 출간된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환상>은 <음울한 짐승>에 포함된 '인간의자', '빨강 방(붉은 방)', '거울지옥', '배추벌레(두드림에서는 '고구마벌레'라는 제목으로 표기)' 4편의 단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편 모두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이죠. 그만큼 재미있는 작품이고요.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 실린 나머지 작품들은?(참고로 22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확실히 (앞서 언급한) 대표작을 뛰어넘는 작품은 조금 부족합니다. 그러나 의외의 발견인 작품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의 대표작 말고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작품들도 있거든요. 반면 아쉬운 작품들도 있고요. 몇 작품만 간략하게 소개할게요. 정말 기발하고 독특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공기사나이>와 <악령>이라는 작품은 미완성작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습니다. <붉은 방>이나 <악령>과도 조금 통하는 면이 있는데, 바로 사는 게 지겨운 인간들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돈 많은 인간들은 사는 게 심심하죠. <공기사나이>는 그런 돈 많은 두 인간이 지겹지 않은 일들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내용인데, 추리소설 평론가나 독자들에 대한 비판도 살짝 엿보입니다. 이름을 서로 바꾸어서 작품을 발표하고, 아이디어도 서로 공유를 하거든요(그러니 독자나 평론가는 괜한 삽질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 돈 많은 두 젊은이의 일탈을 그린 소설인 줄 알았는데, 글쎄 친구 한 명이 건망증인 것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건망증에 걸린 또 다른 친구의 집에 유령이 나타납니다. 죽은 아내의 유령(아내 죽음의 원인은 남편의 외도입니다. 그러니 유령이라는 존재가 그에게는 끔찍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진짜 유령일까요?). 암튼 이야기가 재밌어지려는 찰나에 끝나버리더군요. 개인적으로 에도가와 란포도 이 이야기의 끝을 맺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악령>에도 조금 할 일 없어 보이는 심령학회 인간들이 나옵니다. 밀실살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범인이 떨어뜨린 암호 메시지(휠체어를 연상시키는 그림), 살인예고(영매가 다음 살인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고전적인 미스터리까지 암튼 흥미 있는 요소가 무척 많은데 역시나 미완성입니다. 편지 형식인데, 세 번째 편지가 없더군요. 에도가와 란포의 악취미. 이런 편지나 거짓말(<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형식의 소설이 많다는 점. 빠져나갈 구멍을 교묘하게 마련해 놓는 것 같아요. 능글맞다고 할까요? 오히려 이런 성격이 에도가와 란포에게는 무척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요. 암튼 재미있는 작가에요.

<독풀>, <손가락>, <화성의 운하>, <백일몽>은 초단편입니다. <화성의 운하>와 <백일몽>은 묘사 중심의 소설이고(그다지 가슴에 확 와 닿지는 않더군요), <독풀>과 <손가락>은 마지막 반전(?)이 의미심장한 소설입니다. 사실 <독풀>과 <손가락>은 지금 시점에서는 조금 촌스러운 작품이지 않나 생각해요. 낙태에 좋은 독풀 뜯어먹는 임신한 여자들이나 잘려나간 손가락이 움직인다는 설정은 이제는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나와서 확실히 식상한 면이 있죠. 그 당시에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초단편 소설들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번 작품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알아보면, 우선 기발한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보통은 반전이라고 하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방공호>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를 읽었을 때 바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떠오르더군요. 물론 내용이 비슷하다는 얘기는 아니고, 악취미라고 할까요? 두 거장의 작품 분위기도 몹시 비슷하고, 암튼 김기영 감독과 에도가와 란포 정말 비슷합니다(잡설을 잠깐 지껄였습니다). <방공호>는 결말이 끔찍하더군요. 역시나 이 소설도 에도가와 란포의 악취미가 살짝 엿보이더군요. B29의 공습 현장에서 벌어지는 섹스의 향연. 폭탄 불꽃놀이. 낭만적인 것일까요?

"천지는 광란하고 있었네. 나라가 멸망하려는 중이었지. 아마 우리 두 사람도 미치고 있었던 걸세. 우리는 몸에 거린 모든 것을 남김없이 벗어버리고 이 세상에 오로지 둘만 남은 인간처럼 몸부림치고, 광란하고, 울고, 신음했네. 애욕의 극치의 취해 몸을 떨었어."

(<방공호> 중에서)

<붉은 방>, <인간의자>, <고구마벌레>, <거울지옥>에 대한 느낌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들이죠.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사실 이번 작품의 부제는 '기괴환상'입니다. 따라서 추리소설적인 재미는 없습니다. 환상, 공포, 기괴, 음울, 변태(?) 암튼 요런 감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입니다. (이거 또 개인적인 취향이 나오는데) 변태적인 취향의 작품 중에서 재미있는 작품으로는 <오세이의 등장>, <메라 박사>, <사람이 아닌 슬픔>, <벌레>라는 작품이 괜찮습니다. <누름 꽃과 여행하는 남자> 이 작품도 괜찮기는 한데(완성도 면에서는) 변태적인 느낌이 별로 없어서 개인적 취향은 살짝 아니더군요.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할까요? 뭐 암튼 그렇습니다.

<오세이의 등장>은 악녀가 등장하는 폐쇄공포를 다룬 소설입니다. 장난이 현실이 되고, 끔찍한 악몽이 되는 상황 변화에 대한 묘사가 정말 실감나게 그려졌더군요. 장난으로라도 궤짝에는 들어가면 안 되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의 두려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이런 기회를 결코 놓쳐버리지 않는 아내.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자.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니까. 완전범죄죠. 스스로 원해서 궤짝에 들어갔으니까요. 일석사조죠. 남편은 죽고, 내연의 남자와의 관계도 계속 가질 수 있고, 유산도 물려받고, 게다가 완전범죄. 굉장히 아이러니하더군요. 재미있으면서 곰곰이 되씹으면 무척 소름 돋는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아이러니함 무척 좋아합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메라 박사>는 연쇄자살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 본격 추리소설과 기괴소설 중간쯤에 위치하는 소설입니다. 우선 빌딩의 5층 방에서 연쇄적으로 자살하는 이유를 밝혀야 하고, 그 밝혀지는 이유는 역시나 기괴합니다. 에도가와 란포 하면 떠오르는 딱 그런 이미지의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메라 박사의 사악한 웃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네요. <사람이 아닌 슬픔>은 소재 자체가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은 사랑하는 자기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새신랑의 기이하면서도 슬픈 로맨스입니다. 그러나, 변태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런 로맨스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벌레>.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단편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고구마벌레>라는 작품에서의 벌레가 인간벌레인 반면 <벌레>라는 작품에서는 미생물 벌레입니다. 죽은 시체를 빨리 썩게 하는 미생물이죠.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사랑하는 여자를 납치해서 죽이고, 영원히 사랑을 나누기 위한 시체의 부식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미친 짓을 서슴없이 하는 인간혐오증에 걸린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마사키 아이조오는 그렇게 벌어진 후요우의 배 안에 얼굴을 박고 엎드린 상태로 죽어 있었는데, 처참하게도 그의 추악하게 일그러진 단말마의 손끝이 썩어버린 연인의 뱃속을 깊고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벌레> 중에서)

죽으면서까지 손가락을 죽은 (연인의) 뱃속에 깊고 집요하게 집어넣는 세심한 배려, 악취미 이러한 디테일한 묘사가 에도가와 란포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한 여자에게 미쳐버린 한 인간의 집요한 광기가 확 느껴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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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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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그)의 생각: 가능할까? 오늘 밤 안으로 그녀가 자기 입으로 그 남자를 죽였다는 자백을 하게 하는 일이.

아키(그녀)의 생각: 나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맞이했다.


다음 날이면 헤어질 빈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남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지 이들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됩니다만 사실은 속 마음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들의 취미는 여행입니다. 1년 전 여행에서 산악 가이드 남자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는 그녀가 산악 가이드 남자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녀는 그가 산악 가이드 남자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실수로 자살을 했다고도 생각을 하고요. 왜 남녀는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1년 전 죽은 그 산악 가이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결정적으로 왜 이들은 헤어져야 했을까요? 온다 리쿠 여사의 떡밥 신공은 여전합니다. 사실 진실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가려진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그 허무감. 알고 보니 별거 아니었구나. 현실에서의 인생살이 자체가 뭐 그렇잖아요. 갑자기 헤어지자는 남자 친구의 전화.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을까? 내가 갑자기 싫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왜 그럴까? 전혀 그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이유는 단순할 수가 있겠죠. 그냥 갑자기 싫어진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일 수도 있고, 그 여자의 어떤 모습을 보고 갑자기 싫어질 수도 있고, 암튼 진실은 사실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않죠.


기억과 진실, 그 사이로의 하루 밤의 여행

온다 리쿠의 소설은 대부분 (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 기억과 진실을 탐구하는 여행소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여기서의 여행은 물리적인 여행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억(과거) 속으로의 여행이 많죠. 히로(그)와 아키(그녀)의 어린 시절 공유했던 기억은 일치하는 듯하면서 어긋납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불연속적이며 단편적입니다. 기억이나 진실이나 불확실한 면은 있죠. 과연 그 기억이 맞는 기억일까?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정말 진실일까? 좀 더 깊게 파고들면 진실 자체란 무엇인가? 무엇을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히로와 아키는 (내일이면 떠날) 빈 집에서 그 유년 시절(또는 1년 전 사고) 기억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 여행을 떠납니다.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말이죠. 온다 리쿠의 소설은 반전이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물론 반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사실 반전 자체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후에 밝혀지는 진실(반전)은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후에 밝혀지는 진실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에서는 히로와 아키가 서로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의심하면서 과거 속의 기억을 불러내는 그 긴장감 넘치는 탐색 과정, 바로 그 과정이 온다 리쿠 소설의 매력이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매력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까 기억 속에 뭔가 감춰진 비밀이자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시시한 사람에게는 이 소설 역시 지루하고 아무 것도 없는 시덥잖은 내용으로 페이지만 채운 것에 불과하겠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온다 리쿠 소설에 불만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인 '아무 것도 없는' 소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전의 반전이 계속 이어지고는 있습니다. 진실이 드러났다 싶으면 아니고, 또 다른 진실이 목을 쓰윽 내밉니다. 그런데 그 반전의 강도가 여타의 충격적인 미스터리소설에 비해서는 약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은 반전을 위한 소설은 아닙니다. 반전은 기억과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일 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에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아름답다. 마치 깊은 바다 속에서 올려다보는 기분이다. 물고기가 물 위를 올려다보면 이런 느낌이겠지?"


이 소설의 느낌은 바로 위의 물고기가 물 위를 올려다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장소는 빈 집, 등장인물은 두 명, 300페이지의 분량. 사실 소설의 재료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남녀의 생각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뭔가 숨겼다가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기는 상당히 힘들텐데, 온다 리쿠 답게 잘 이끌어 나가네요. 물론 결말의 진실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없습니다. 물론 그 진실에서 자신의 옛 기억을 끄집어낼 수도 있고요. 이 소설도 역시 온다리쿠 표 소설입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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