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히로(그)의 생각: 가능할까? 오늘 밤 안으로 그녀가 자기 입으로 그 남자를 죽였다는 자백을 하게 하는 일이.

아키(그녀)의 생각: 나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맞이했다.


다음 날이면 헤어질 빈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남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지 이들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됩니다만 사실은 속 마음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들의 취미는 여행입니다. 1년 전 여행에서 산악 가이드 남자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는 그녀가 산악 가이드 남자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녀는 그가 산악 가이드 남자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실수로 자살을 했다고도 생각을 하고요. 왜 남녀는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1년 전 죽은 그 산악 가이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결정적으로 왜 이들은 헤어져야 했을까요? 온다 리쿠 여사의 떡밥 신공은 여전합니다. 사실 진실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가려진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그 허무감. 알고 보니 별거 아니었구나. 현실에서의 인생살이 자체가 뭐 그렇잖아요. 갑자기 헤어지자는 남자 친구의 전화.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을까? 내가 갑자기 싫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왜 그럴까? 전혀 그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이유는 단순할 수가 있겠죠. 그냥 갑자기 싫어진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일 수도 있고, 그 여자의 어떤 모습을 보고 갑자기 싫어질 수도 있고, 암튼 진실은 사실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않죠.


기억과 진실, 그 사이로의 하루 밤의 여행

온다 리쿠의 소설은 대부분 (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 기억과 진실을 탐구하는 여행소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여기서의 여행은 물리적인 여행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억(과거) 속으로의 여행이 많죠. 히로(그)와 아키(그녀)의 어린 시절 공유했던 기억은 일치하는 듯하면서 어긋납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불연속적이며 단편적입니다. 기억이나 진실이나 불확실한 면은 있죠. 과연 그 기억이 맞는 기억일까?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정말 진실일까? 좀 더 깊게 파고들면 진실 자체란 무엇인가? 무엇을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히로와 아키는 (내일이면 떠날) 빈 집에서 그 유년 시절(또는 1년 전 사고) 기억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 여행을 떠납니다.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말이죠. 온다 리쿠의 소설은 반전이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물론 반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사실 반전 자체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후에 밝혀지는 진실(반전)은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후에 밝혀지는 진실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에서는 히로와 아키가 서로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의심하면서 과거 속의 기억을 불러내는 그 긴장감 넘치는 탐색 과정, 바로 그 과정이 온다 리쿠 소설의 매력이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매력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까 기억 속에 뭔가 감춰진 비밀이자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시시한 사람에게는 이 소설 역시 지루하고 아무 것도 없는 시덥잖은 내용으로 페이지만 채운 것에 불과하겠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온다 리쿠 소설에 불만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인 '아무 것도 없는' 소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전의 반전이 계속 이어지고는 있습니다. 진실이 드러났다 싶으면 아니고, 또 다른 진실이 목을 쓰윽 내밉니다. 그런데 그 반전의 강도가 여타의 충격적인 미스터리소설에 비해서는 약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은 반전을 위한 소설은 아닙니다. 반전은 기억과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일 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에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아름답다. 마치 깊은 바다 속에서 올려다보는 기분이다. 물고기가 물 위를 올려다보면 이런 느낌이겠지?"


이 소설의 느낌은 바로 위의 물고기가 물 위를 올려다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장소는 빈 집, 등장인물은 두 명, 300페이지의 분량. 사실 소설의 재료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남녀의 생각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뭔가 숨겼다가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기는 상당히 힘들텐데, 온다 리쿠 답게 잘 이끌어 나가네요. 물론 결말의 진실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없습니다. 물론 그 진실에서 자신의 옛 기억을 끄집어낼 수도 있고요. 이 소설도 역시 온다리쿠 표 소설입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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