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1
최혁곤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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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이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이어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출간했습니다. 국내 공포소설과 추리소설이 독자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우선 장르소설 마니아들의 눈높이가 높고, 그리고 장르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가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도 이런 국내 작가들의 장르소설이 나오면 무엇보다 너무 기쁘고, 너무 설렙니다. 물론 때로는 실망도 하지만 말이죠. 이번에 출간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읽고, '이 작품 하나는 정말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물론 괜찮은 작품은 많았지만, 정말 끝내주는 작품이라고 할까요?(우수상이 아닌 최우수상의 작품) 그런 작품은 사실 없었습니다. "눈높이가 너무 높은 거 아니냐?", "아니면 작품을 읽을 줄 모르는 거 아니냐?"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저 역시 일본 추리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독특하고 신선하고 끝내주는 작품이 없다는 것은 저 역시나 무척 아쉬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국내 추리소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소설을 읽으면서 흥미 있는 요소들을 놓친 부분도 분명히 있을 테고요. 우선 10인의 작가들의 10편의 단편소설들은 기존의 국내 추리소설에 비해서는 소재가 무척 다양합니다(물론 킬러의 등장은 다소 식상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 추리소설은 이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영원한 제국>,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등 무척 재미있는 소설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읽어서인지 가슴에 확 와 닿는 부분은 조금 적었고요). 밀실 트릭, 추리 스릴러, 제주 4.3 항쟁, 트랜스젠더, 연예인과 팬, 음독 살해 등 암튼 우선 소재 자체는 무척 다채로워서 좋았습니다. 불륜, 치정, 강간, 섹스 암튼 자극적인 요소를 다룬 단편소설은 한 편도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은 완성도라고 할까요?(완결성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장편소설을 한 권이라도 발표하신 분들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스토리(구성) 자체가 무척 튼튼하더군요. 최혁곤, 정명섭, 김유철 씨 등의 작품이 그러했습니다. 이대환 씨의 소설은 밀실 트릭을 다룬 소설인데, 트릭 자체나 형식(잡지)은 좋았는데, 문장이 잘 읽히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글을 써 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글을 조금 다듬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최혁곤 씨의 <푸코의 일생>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구성 자체가 무척 안정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여름'과 '겨울' 2부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스릴러라고 해야 하나요? 암튼 그런 긴장감 위주(청부살인업자의 그의 주변 인물들 간의 긴장)의 추리소설이었습니다. 물론 겨울 편에서 반전도 준비되어 있지만, 반전 자체보다는 긴장감 위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대환 씨의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는 밀실 트릭을 다룬 추리소설입니다. 밀실의 방에 죽어 있는 시체, 그리고 그 방에서 들려오는 범인의 목소리, 그리고 문을 열자 사라진 범인.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읽으면서 조금 불안하다고 할까요? 암튼 트릭 자체는 좋았습니다.

김유철 씨의 <암살>은 제주 4.3 항쟁을 외국인(앙리라는 프랑스계 미국 수사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무척 안정감이 느껴졌고요. 프로필을 보니 여러 작품을 발표하신 것 같더군요. (역시 글이란 많이 써야 하나 봅니다. 물론 많이 쓰는 것이 반드시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요.) 미국이나 일본인보다 친미파, 친일파가 그 당시에 더 끔찍했었죠. 나쁜 짓도 더 많이 저지르고요. 그런 인간의 대표적인 인물 박 대령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앙리라는 수사관이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범인을 잡는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범인이 너무 쉽게 자백을 해서 조금 아쉽더군요.

류삼 씨의 <싱크홀>은 우선 재미있더군요. 소설이 무척 빨리 읽힙니다.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공포소설 같기도 하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살인범에게 쫒기는 여성(+아이)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이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싱크홀>은 기존의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살인범의 어머니(?), 살인범이 부르는 노래, 살인범이 하고자 하는 일, 청각장애아와 살인범 등등.

나혁진 씨의 <안녕, 나의 별>은 티렉스라는 인기 힙합가수를 좋아하는 불량소녀 미미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도 문장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우선 큰 무리 없이 글이 잘 읽히더군요. 연예인의 사생활, 연예인과 팬의 관계, 그리고 살인사건. 개인적으로 (물론 팬과 연예인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많기는 하지만) 좀 더 깊게 파고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외국에는 많지만 국내에는 이런 소재를 다룬 소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과일 트릭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반전 강박증이 있는 것은 아닌데, 결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미미와 지혜의 관계에 조금 의심을 했었거든요. 이건 뭐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합니다.

강지영 씨의 <거짓말>과 박지혁 씨의 <일곱 번째 정류장>은 <싱크홀>과 함께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거짓말>은 사실 추리적인 요소보다 공포적인 요소가 많더군요. 마지막의 미옥이라는 여자의 독백 부분이 좋더군요. 작품 스타일도 조금 어둡고, 제 취향과 조금 잘 맞는 소설 같아요. <일곱 번째 정류장>의 인간 이면에 숨어 있는 악의를 유쾌하게 표현한 작품 같아요. 초반에는 재미있는 트릭도 있습니다. 물론 일본 추리소설 중에 이런 방면으로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 있기는 하지만,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습니다.

정명섭 씨의 <불의 살인>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입니다. 이 소설도 최혁곤 씨나 김유철 씨의 소설처럼 무척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성이 튼튼하다고 할까요? 관리 문달이 방화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밝혀지는 인간들의 어두운 욕망을 그린 소설인데, 여러 가지 우연들(선의일수도 있고, 악의일수도 있는)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 재밌더군요.

한이 씨의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는 판타지 추리소설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뭔가 시작하려는 순간에 이야기가 끝나더군요. 아브라힘, 부리엘, 마아가 등 등장인물들이 너무 빨리 등장했다 퇴장하는 것 같아서 이야기에 빠지기도 전에 끝나더군요. 이 소설은 단편보다는 장편의 호흡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재희 씨의 <오리엔트 히트: 스푼 메이커스 다이아몬드>는 첩보 스릴러입니다. '한'이라는 국제 첩보 조직원이 터키에서 사라진 스푼 메이커스 다이아몬드를 찾는 내용입니다. 무척 잘 읽히고, 재미도 있는데, 특별함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더군요. 사실 첩보원 나오는 영화를 어린 시절부터 많이 봐서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평범했습니다.

암튼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났으면 좋겠네요. 사실 추리소설에 대해 그다지 알지도 못하고, 국내 작가의 소설이라 뭐라 말하기도 조금 힘들어서 안 쓰려고 했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씁니다. 흥미 있는 요소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각 작품들의 색깔이 모두 달라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 많이 발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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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손톱
아사노 아쓰코 지음, 김난주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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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배터리>의 아사노 아츠코의 신작으로 10대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조금 뻔한 표현이기는 하지만)을 다룬 청춘 성장소설입니다. 돈을 받고 남자에게 몸을 판다고 소문이 난 '루리'와 남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슈코'라는 두 소녀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또한 타인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아주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여고생들은 이렇다. 그 무리는 저렇다. 그 녀석은 어떻다. 그렇게 단정 짓고 나면 거기에서 한 발도 헤어날 수 없다. 상대에게 다가갈 수도 없고 상대의 다른 면도 볼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알려하지 않게 된다. 타인을 이러저러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오만이고, 중대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소문이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집니다. 루리와 슈코라는 소녀가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이유는 정확하지 않은 소문 때문이죠. 물론 소문은 사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 소문의 진실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죠. 그냥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을 뿐. 남자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소녀와 자신의 특이한 능력을 이용해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복수를 하는 소녀, 그리고 그녀들의 뒤에서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소녀들. 두 소녀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죠. 어찌 보면 그래서 10대는 잔혹한 시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처 받기 쉬운 예민한 시기에 사소한 소문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무게의 고통으로 다가올 테니까요.

루리와 슈코라는 두 소녀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동성애? 물론 그렇습니다. 조금 뻔한 소재일 수도 있고(동성애라는 코드가 이제는 너무 식상하죠), 조금 거부감이 드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아직까지는 동성애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물론 자신의 의식을 깨어 있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연 행동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루리가 만나게 되는 남자 소년은 연상의 이혼여와 사귑니다(물론 섹스도 합니다. 아니 고등학생이 섹스를? 참고로 루리라는 소녀는 중학생 때 첫 섹스를 합니다. 요즘 시대에는 이것도 느린 건가요?). 그리고 루리의 가족 문제(바람피우는 아버지, 그리고 마구 먹어대는 어머니, 아버지를 소유하려고 임신을 억지로 해서 자신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언니) 등 10대 청춘소설치고는 소재가 조금 강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고요. 자연스럽게 막혀 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리고 소재는 어두운데 반해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 밝습니다. 10대 소녀들의 천성적인 발랄함일까요?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에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맞서서 해결하려는 10대 소녀들의 모습도 무척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어 10대 청소년들에게 무척 유익한 소설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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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림 러브 -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가’ 나가시마 유 첫 장편소설
나가시마 유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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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면 정말 기분이 좋죠? 여행을 떠나서의 생활 뿐만 아니라 계획을 하는 것도 무척 즐겁고요. 그러나 여행을 갔다 오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좋으면서도 조금 아쉽고, 그러면서 허망함도 조금 느껴지고요. 암튼 이상야릇한 느낌이에요. 슈크림 빵이 여행과 같지 않을까 싶어요. 먹을 때는 참 맛있는데, 먹고 나면 왠지 모를 아쉬움. <슈크림 러브>는 그런 달콤함과 허망함이라는 이상야릇한 느낌의 충돌을 다루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한 남자 '시치로'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여자들과 무감정의 섹스를 즐기는 사업가 '츠다'. 무감정의 섹스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암튼 여러 여자들과 만나서 섹스를 하고 헤어지고, 그러면서 결혼식장에서는 "결혼은 다름 아닌 문화입니다."라는 축사를 건넵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결혼(가정)이라는 문화에 대한 남자들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혼인 제게는 나름대로 유용한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두 남자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창한 사건, 당연히 없습니다. 담담한 일상을 정말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되고, 그 시기의 '시치로'와 '츠다'가 만나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현재, 91년, 92년, 2년 전 크리스마스, 작년, 2년 전 등 '시치로'와 '츠다'라는 두 남자의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시치로'는 왜 이혼을 했는가?, '츠다'는 왜 결혼을 하지 않고, 욕구 해소용 여자들을 만나 섹스를 하고 헤어지는가?, 그들이 처음 만난 계기는?, 이혼한 아내와의 현재 생활은? 암튼 이런 궁금증들이 해소되고, 그들의 사랑이나 연애, 결혼 등에 대한 어떤 가치관을 살짝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정말 무덤덤해요. 제목은 <슈크림 러브>인데 저는 조금 잔인함을 느꼈습니다. 결혼에 대한 무서움도 살짝 있지만, 무엇보다 살아간다는 것의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 저는 무척 어렵거든요. 그러한 제 안에 숨겨져 있던 묘한 감정들이 불쑥 튀어날 올 때마다 무서웠습니다. 밝은 느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저는 두 남자의 일상의 모습이 어둡게 보이더군요. 사랑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요. 사랑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데,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싶지만 결혼을 하지는 못하는 사람들, 무척 현실적인 고민의 내용이고, 또한 그만큼 어려운 문제 같기도 해요. 사족으로 물기를 싹 뺀 무척 건조한 듯한 나가시마 유의 문체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더군요. 책은 읽지 않고 드라마만 봤는데, <연애시대>의 느낌과 무척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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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는 언제까지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
가와카미 겐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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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명곡 'Please Please Me'보다 조금은 어설프고 촌스러운 '부디 부디 나'나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소설. 소설을 읽으면 비틀즈의 'Please Please Me'가 듣고 싶은 소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소설. 화가 나고, 슬프다가 설레고, 가슴 따뜻해지는 청춘 성장소설, <날개는 언제까지나> 바로 그렇습니다. 아저씨는 이 소설을 읽고, 슬프다가, 설렜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날개는 언제까지나>는 가와카미 겐이치의 역작(力作)입니다. 자율신경실조증과 간 이상이라는 병으로 창작 활동을 접어야 했던, 그래서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작품입니다. 암튼 작가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네요. 1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가 않잖아요. 암튼 이 작품은 굉장히 멋진 작품입니다.

첫 장을 넘깁니다. 중학교 2학년 소년들의 유치찬란한 대화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아?" 들려오는 대답들 "결혼을 하면 그냥 태어나잖아" 아니 요즘 중딩들이 얼마나 이른 시기에 성교육을 하는데 얘네들 정말 중학생 맞아? 알고 보니 요즘 시기가 배경이 아닌 존 F.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비틀즈의 1집 <Please Please Me>가 히트를 한 1963-1964년입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일본의 교육위원회에서 비틀즈 노래를 부르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금지곡이라는 소리죠. 암튼 재미있습니다. 작가의 현재 나이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가미야마)의 나이, 야구부에서 활동했던 경험 등 얼핏 보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척 세밀합니다.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은 있죠. 그리고 누구에게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선생도 있고요. 그리고 그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죠. 그러면서 어른들의 명령과 복종은 싫어하죠. 가미야마는 그런 어른들(특히 선생님)의 복종과 명령을 무척 싫어합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을 하려고 합니다. 야구부 감독은 자기의 기준에 맞춰 명령과 복종을 강요하고, 교감과 교장은 학교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을 이용합니다. 그에게는 오직 비틀즈의 '부디 부디 나'만 있을 뿐. 트랜지스터라디오의 미군 방송에서 들려오는 이 노래를 듣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피부가 오그라들어 땅기는 느낌, 그리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뒷부분은 본문 참고). 촌구석 프레슬리는 학급의 영웅 비틀즈로 거듭니다. 도대체 어떤 노래이기에, 중학교 2학년 학생의 팔에 소름이 돋았을까요? 가미야마가 자체 해석한 노래를 들어 보죠.

"어른들을 흉내 낼 필요는 따위 없어! 우리의 방식으로 하자! 나는 어느 누구도 아니야, 나 자신이야. 자기를 믿어! 가식을 버리자. 있는 그대로의 나라서 뭐가 안 되는 거지? 조금만 용기를 내어 봐. 생각대로 해 보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실제 노래 가사와는 의미가 많이 다르죠. 그래도 더 멋있지 않나요? 가사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자신들의 맞는 노래 가사를 붙여 신나게 부르면 되는 거죠. 이 소설은 시종일관 비틀즈의 노래가 나옵니다. 야구부 시합을 앞두고 엄청난 사건이 벌어집니다. 교사의 학생 폭행? 그리고 야구부의 분열. 가미야마는 말하죠. "나는 그냥 야구가 하고 싶다고요" 선생과 교감(교장)의 욕심으로 학생들의 꿈과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그럴 때 비틀즈의 노래를 들어 보세요. 트위스트 춤이 아닌 그냥 마구 몸을 흔드세요.

어른이 되기는 쉽지가 않죠. 나이를 쳐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죠? 어른이 되기 싫다면? 그렇다고 아이처럼 행동한다고 어른이 안 되는 것도 또한 아니죠. 반대로 아이들도 그렇죠. 이 소설은 청춘 성장소설입니다. 비틀즈의 음악이 있고,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이 있고, 마지막으로 화해가 있습니다. 어른을 언제까지나 증오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배신한 친구를 언제까지나 증오할 수도 없죠. 먼저 다가가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 오히려 이 소설은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른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도 많더군요. 선생님을 용서하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친구를 용서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화해. 그런데 요즘에도 이런 화해가 가능할까 싶은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요. 점점 순수함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요. 어른들도, 아이들도요. 그래서 이 소설은 정말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그런 어른들을 위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너무 부정적인가요? 암튼 이 소설 울고, 웃기고, 화나게도 했다가, 설레게도 했다가 사람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더군요. 책장을 덮는 순간 흐뭇한 미소가 살포시 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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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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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네스토 체 게바라. 헐리우드 유명 배우, 그리고 어느 나라 대통령보다 유명한 인물이 바로 체 게바라가 아닐까 싶어요. 전 세계적인 유행을 선도한 인물이기도 하니까요.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체 게바라 관련 도서가 소개되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으니까요.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조사한 20세기를 움직이는 100인에도 뽑힐 정도이니 두 말하면 잔소리죠. 그런데 부끄럽게도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했습니다. 잘생긴 혁명가, 반항적인 이미지, 젊은 나이의 안타까운 죽음,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인가? 마치 영화배우 제임스 딘처럼. 음악, 책, 스타벅스, 맥주 등 (특히 스타벅스) 체 게바라가 일생을 바쳐 거부했던 제국주의의 산물들이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무척 아이러니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체 게바라를 외쳤던 사람들이 과연 체 게바라를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을까? 본질은 놓친 채 허영만 쫒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체 게바라 사후 40년. 과연 세계는 그가 바라던 대로 (희망하던) 변했을까요? 21세기에 들어서 제국주의의 침략과 탄압은 더욱 심해졌죠. 우리나라도 소고기와 의료보험 민영화로 어수선한데, 다른 의미(폭력이 아닌)에서의 제국주의의 침략은 끊이지 않고 있죠. 혁명이 사라진 나라, 우리나라.

 

 

그 유명한 빨간책 <체 게바라 평전>을 아직까지 읽어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그가 아르헨티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다 남미 여행을 통해 눈을 뜨고 정치에 입문하다 안타깝게 죽은 정말 두 줄로 요약되는 간략한 그의 삶을 대충 알고만 있을 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면 될 것 아니냐? 물론 그렇죠. 그런데 사실 평전이 어렵잖아요(사회주의, 마르크스, 혁명, 게릴라, 정치 등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는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체 게바라의 두 번째 아내 알레이다 마치가 쓴 이번 회고록에는 좀 더 쉽게 체 게바라는 인물에 대해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로 무척 유용한 책이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반제국주의의 투쟁에 몸을 던진 혁명가 체 게바라의 모습도 다루고 있어서 다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혁명가로서의 체 게바라의 모습보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인간으로서 체 게바라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어 좀 더 체 게바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도 나와 다름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구나!(물론 그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정치, 경제, 군사, 의학, 사회주의, 예술 모든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죠. 게다가 젊은 나이에 중앙은행 총재, 산업장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한 것으로 보아 전선에서 전략, 전술이 뛰어난 사령관의 모습뿐만 아니라 정치가, 경제인으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소화해 냅니다. 그리고 모자, 시가, 수염, 외모 등 완벽하죠. 좀 더 자랑하자면 아내에게도 무척 자상합니다. 그런 자상한 남편 요즘에도 보기 힘든데. 물론 알레이다 마치의 회고록이라 다소 주관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겠죠? 고로 객관적이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에게 열광하는 것을 보면 무조건 거짓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회고록에는 그 동안 사람들이 체 게바라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진실도 다소 해명하고 있습니다. 카스트로와의 불화 등) 무엇보다 사진과 편지, 시, 엽서 등 직접 체 게바라(와 알레이다 마치)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요소들이 회고록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어 좀 더 가깝게 그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솔직히 글만 있는 회고록은 조금 지루하잖아요? 그리고 정말일까? 의심도 생기고요. 회고록의 보충 설명으로 이런 자료들의 활용은 객관성도 다소 높여줄 뿐 아니라 흥미 부분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알레이다 마치가 회고하는 체 게바라와 그의 가족, 동료들에 대한 개인적인 잡담을 늘여 놓자면, 우선 그는 멋있는 인간입니다. 쿠바 혁명 성공 이후, 안정적인 자리(중앙은행 총재와 산업장관)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의 혁명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나죠.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리고 로맨티스트입니다.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니 조금은 낯간지러운 표현도 보이더군요. 늙은 라몬으로 변장한 체 게바라의 모습은 정말 무슨 첩보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체 게바라의 아내로 소개되는 알레이다 마치라는 인간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 암튼 그녀의 삶도 무척 파란만장하고, 흥미진진하더군요. 여성으로서, 혁명가로서, 남편이자 아내로서 정말 체 게바라의 뒤지지 않는 삶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체 게바라 평전>이 조금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체 게바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추천을 해 봅니다. 흥미 위주의 오락소설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대해 쉽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로는 훌륭한 안내서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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