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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어미 자서전
백금남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실험소설은 이제 지쳤다. 이국땅을 노래하는 것도, 헝클어진 내면의 주인공이 내뱉는 독백도, 각종 브랜드와 자본주의의 냄새를 맡는 것도 지쳤다. 그래봐야 상처받은 영혼은 고쳐줄 곳이 없으니, 그냥 생긴대로 살라는 소리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러던 와중 이 소설을 만났다.
본격 국악소설이라는 칭호는 솔직히 좀 구닥다리같은 형용사다. 국악이라는 소재가 크게 자리잡고, 국악의 미묘한 흐름처럼 등장인물들이 가락을 타고 뛰놀긴 하지만, '본격'이라는 말 그리고 '국악소설'이라는 말이 다소 이 책을 일반 독자들로부터 격리시키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볼 만하다.
이 책은 국악 집안에 태어난 한 여자 찬희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너무나 대단한 것, 운명처럼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던 국악이 세대를 거쳐 현대의 주인공에게 차례가 넘어오자, 찬희는 갈등한다. 그리고 방황한다. 결국 조상인 조막손 할배의 무덤을 파헤쳐 거기 숨은 가야금을 꺼내 팔아먹을 생각까지 한다. 조막손 할배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전설의 가야금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와 소리꾼들의 괴상한 삶의 방식 등이 등장하는데 놀랄 만큼 흥미롭다.
국악의 기역 자도 모르는 나지만, 미우나고우나 한국땅에 끌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이해되고, 그다지 거부감이나 어려움도 없는 편이다. 잘 모르는 저자였는데 소설을 굉장히 잘 쓰는 것 같다. 다음 작품도 크게 기대가 되고, 오랜만에 정말 한 번에 읽어내려가 끝을 본 소설이다.
강력 추천한다. 그런데 표지와 제목이 너무 심각하게 이상하다. 특히 표지는 들고다니기 창피할 정도다. 인터넷 소설과 같은 가벼움이 젊은 독자층을 수용하게 해주리라 생각했는가 보다. 그래도 저 일러스트, 저 색감, 저 글자체는 모두 에러다. 아무 느낌도 없으며, 소설 전체적인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주지도 않으며, 재미난 은유를 품은 것도 아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문학의문학' 출판사는 디자인 면에서 언제나 꽝이다. 몇 천 만 원짜리 문학상금 주는 것도 좋지만, 제발 디자인에 돈 좀 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