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싫다. 비판적 사고가 너무 잘 학습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모두가 뭔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상당히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냥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를 믿지 않는다. 이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선물을 받아서 읽어봤다.;; 

정갈한 문장, 알다시피 제한된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왕과 신하들, 바뀌는 계절의 아름다움, 유교 문화가 주는 절제된 분위기, 남자들만의 이야기 같지만 중간중간 섬세함이 돋보이는 장면들, 낯선 어휘들이 주는 즐거움 등 장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아주 새로운 기법이었다. 서사가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것도 같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운용하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아주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밖에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감정 표현을 만연체를 사용하지 않도고 간단한 몇 개의 문장만으로 잘 표현해냈다. 한마디로 완성도가 있는 소설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 끙. 흡입력도 떨어진다. 한 번에 읽어내려가기가 어렵다. 잔잔한 물 흘러가는 것처럼 모든 게 일관된 것 같아 보이는,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런 듯싶다. 그리고 이 글의 제목에도 썼듯이 한 장면에 집중된 것 같은 소설의 콘셉트 때문에, 같은 대목을 내가 혹시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그래서 뭐..?' 이런 마음도 있고. 어쨋든 별로 나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하제일 잡놈 조영남의 수다
조영남 지음 / 자음과모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 그 일을 꼭 해결해주지 않아도, 그 일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상당히 진정이 된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주업무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 역시 '말'이 주는 힘을 강력히 믿고 있다. 그래서 수다가 콘셉트인 이 책을 선택하게 됐다. 

조영남을 나는 잘 모른다. 나와 세대가 너무 다르기도 하고, 인상 좋은 아저씨 가수라는 게 전부다. 그러나 방송을 보면 이 아저씨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박경림이 연예계 마당발이라고들 하는데, 조영남은 그보다 더 폭넓게 다양한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것 같다. 아, 물론 여기서 누가 얼마나 많은 인맥을 형성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단지, 조영남이라는 특유의 캐릭터와 수다가 만났을 때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 읽었으니 말이다.  

정말 의외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조수미, 황신혜, 장한나 등이 그렇다. 조영남 씨의 친화력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같은 음악인으로서 이야기한 송창식, 한대수 등도 인상 깊었고, 김점선, 마종기 등 미술, 문학계 인물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반면 이들에 비해서 다소 지명도가 떨어지는 종교인들 이야기도 나오는데, 교화하는 형식의 수다가 아니라 그야말로 껍질을 탁 까놓고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너무 재밌었다.  

조영남 씨가 라디오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마치 즐거운 오후 라디오를 듣는 느낌도 나고, 에너지 넘치는 그들의 수다에 나까지도 힘을 얻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다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다. 이야기를 밝은 방향으로 끌어나가는 조영남의 힘도 작용했겠지만, 현재 주목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마음이 모두 빛으로 넘치는 것 같았다.  

유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날, 내가 오디오에 미쳤습니다
황준 지음 / 돋을새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음악을 좋아한다. 요란한 댄스 가요가 흘러나오는 데다가 스피커가 지지직거리기까지 하는 가게라면 잠시도 있을 수 없다. 주변에 오디오를 하는 친구가 조금 있다. 꽤 괜찮은 오디오를 가진 가게 몇 군데를 알고 있다. 나름대로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제 막 미치기 시작한 것 같은 (나는 입문자용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의 제목과 표지와는 달리, 오디오를 이미 충분히 즐기며 살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였다. 각 에세이마다 오디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뭐랄까 궁여지책으로 콘셉트의 통일을 위해 오디오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특별히 개인의 감정 위주로 흘러가는 에세이라면 '공감',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 등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초보자라 그런가 아니면 저자와 나의 코드가 맞지 않아서인가, 솔직히 이 책을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다. 

오디오를 익히 아는 사람이 읽기에는 되게 싱거울 것 같고, 잘 모르는 내가 읽기에도 너무 저자 위주의 일기장 같은 느낌이다. 그 중간쯤 되는 사람이 편안하게 쉬면서 한두 장 읽거나, 오디오키드를 추억하며 읽거나, 식어가는 오디오심(心)에 새로이 불을 지피고자 하는 이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국내에서는 흔하게 나오지 않는 오디오 취미 책인데 좋은 서평을 쓰지 못하는 게 아쉽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탈한 자가 문득 2010-03-0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준 씨의 <오디오 마니아 바이블>을 읽었다죠. 물론 이 책과는 성격이 다른 책이지만, 거기에도 몇 편의 에세이 비슷한-적어도 저자나 출판 기획자는 그렇게 생각한 느낌을 주는-글이 실려 있었는데, '잡글' 이상의 느낌을 갖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보긴 했지만, 사게 되진 않더군요. 최윤욱 씨의 책이 훨씬 더 낫더군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듯하여 댓글로 공감을 표합니다. 위에 프롤로그 격으로 붙인 글이 더 좋네요.

astromilk 2010-05-2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답글이 너무 늦었네요. 게으른 주인장을 용서해주세요. 다시 리뷰 쓰기를 활성해 보려고 합니다.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최근에 보니 또 오디오 관련 책이 나왔던데, 어떤지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좋은 오디오 저자이기를..ㅎㅎ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먼저 멋진 표지에 감탄했다. 차가워 보이는 겉표지와 아직은 따스함을 붙잡고 싶은 해질 무렵의 안표지. 이런 느낌에 약간의 습기까지 있는 밤이라면 정말 제대로 우울해 하며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마침 이 책을 잡은 저녁에 한두 방울의 비가 떨어지다 말다를 반복했고,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어내려갔다. 

소설은 200쪽 분량이지만, 그 안에 상당히 밀도 있는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사형제도, 차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괴물들의 탄생, 고아의 삶, 예술의 공평함, 세상의 아름다움, 사춘기 시절의 방황 등 짧게 줄여서 나열할 수 없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인간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이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재미있다. 좀처럼 지루하지 않았다. 장르소설이 주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었고, 순수문학이 주는 글의 맛 또한 지니고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뭔가 추리해볼 수 있었고, 소설을 덮고 난 후 이 소설이 주는 의미와 그로부터 흘러나온 생각을 확장해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아무튼 책이 너무 괜찮아서 인터넷에 작가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한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문학이 큰 의미가 아니다. 삶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차갑고 가라앉은 제목과 표지 속에 작가는 실은, 희망이라는 작지만 따뜻한 손을 담아내고 있었던 거다. 모처럼 정말 좋은 작품을 접하게 되어 기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멜리 노통브의 첫 책은(그러니까 내게 있어서의 첫 책) 나를 실망시켰다. 그래서 아마도 돈을 주고 구입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한 권 얻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여전했지만, 내가 모르는 매력이 생각보다 많았다.  

여주인공(그러니까 작가 자신으로 그려지는)이 잠시 일본에 거주하던 시절, 불어를 배우고 싶어 하던 일본인 청년과 만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여주인공은 시종 장난스러운 분위기와 언행으로 책 내용 전체를 리본이 달린 풍선처럼, 그야말로 연애에 이제 막 빠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붕뜸'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렇다면 일본 청년은 또 어떤가. 불필요할 정도의 무뚝뚝함과 형식적인 예의를 갖춰, 사람을 다소 불안하게 하지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애인을 향한 배려와 희생 앞에서는 이 책을 일는 여성 독자들의 마음도 모두 흔들렸으리라 생각한다. 언뜻 이런 식으로 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최고의 소설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아멜리 노통브의 위는 조금 성급한 듯하다. 특히 둘이 헤어지게 되는 부분에서 공감이 되지 않았고, 사건 전개가 매끄럽지 못했다.  

게다가 지나친 자아도취와 도저히 믿기 힘든 능력(후지산을 뛰어서 내려갔다고 나옴;)의 여주인공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만화 캐릭터에 가깝다. 웃고 넘기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정도므로 가볍게 읽기에 그만인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추가로 표지와 제목이 너무 심오한 것 같아서 그게 더 웃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