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그때가 더 행복했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이호준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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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텔레비전 세대지만, 옛날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또 '옛날'이긴 하지만 전후 문화에 애정이 간다. 자세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애잔한 끌림이 있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닐런지.

이 책은 목차에서부터 나의 그런 편애를 충분히 충족시켜준다. 원두막, 섶다리, 대장간 등. 익숙하면서도 매력있는 각 소재들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느낌-수필에 가까운-과 함께 사진, 짧은 팁이 제공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저자의 글은 아무래도 책의 제목처럼 감상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라져가는 것들이 이제는 문화 유산 외에 실용성이라고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리라. 

저자의 글은 2% 아쉬웠다. 그가 뭘 안타까워하고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명확하나, 문장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인문학적 지식과 함께 각 소재들에 읽는 재미를 더하는 작업을 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아름다웠는데 사라져서 아쉽다'는 느낌만 피력하니, 매 소재가 달라져도 계속해서 읽다보면 조금 식상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랑논'에 대해 수필이 아닌 콩트 형식의 글을 쓴 건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하지만 반복될 수밖에 없는 감상 속에서 왜 더 많은 시도를 하지 않았는가는 의문이다.

'장독대'에 대해 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엽서 속의 작은 그림처럼 장독대를 소재로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니 분량에 맞는 감동이 찾아왔다.

'달동네'에는 관심이 많아 일부러 당고개역 근처까지 가서 사진을 찍어오곤 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지만 다 아는 이야기, 뻔한 감상이 나오는 바람에 사진을 더 오래 들여다봐야 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소통이 있는 모양새를 가진 달동네를 단순히 '철거 뒤로 사라진 꿈'같은 뉘앙스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풀어주었으면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 책은 읽는 재미 외에도 사진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좋다. 사진의 퀄리티가 일정하진 않지만, 그래도 잘 찍은 사진임에는 틀림이 없다. 넓은 판형은 사진 감상에도 좋고, 전체적으로 여유를 지향하는 글의 내용과도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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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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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본 건 대학 시절 책방에서다. 당시 남자친구와 책방을 기웃기웃하다, 뭔가 그 애에게 주고싶어 선물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난감한 주파수를 흘려대는 표지와 알 수 없는 제목이었는데도 무엇 때문인지 난 이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2008년 이 책을 읽게 된다. 때문에 굉장히 멀리 돌아서 온 편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더 친근감도 들었고.

내용은 초반에 산뜻하다. 진보적인 성격의 '가족'을 가진 주인공은 20대 초반 특유의 발랄함과 호기심, 그리고 매력적인 나태함을 동시에 가졌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머리를 다치게 되고, 그 이후로 주변에서 혹은 본인에게 일어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스포일러형 서평은 쓰고 싶지 않아 자세한 이야기는 감추겠다.

중요한 사건만큼이나 이 책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주변과 주인공의 감정 묘사다. 일본 문학 특유의 성격이라고 여겨 한때 싫어하던 특징인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그런 묘사들의 나열이 구질구질한 듯 생각되면서도, 한 장의 스냅사진을 보는 것 같은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마도 그건 작가가 죽을 것같은 우울함과 맑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낙천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인상깊은 문단을 소개한다.

 

- 요코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같은 남자애를 좋아하여, 잠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된 일도 있고(끝내는 내가 이겼지만), 내가 그녀 집에 놀러 가서 밤새도록 수다를 떤 적도 있었다. 이름이 좀 이상한 덩치 큰 개를 집 안에서 기르면서, 곧잘 배를 쓰다듬어주곤 하기도 했었다. 돌아오는 길은, 종종 남동생이 차로 데려다주었다. 요코의 어머니가 만든 명란젓 스파게티는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놀러 가면 언제나 요코는 책상 너머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손재주가 좋아서, 그녀가 아무리 고민에 빠져 있고 아무리 심심한 표정을 지어도, 그 손은 청아하고 유연하게 일정한 질서에 따라 마술처럼 움직였다. 성당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마리아 상의 손처럼 매끄러운 손이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그녀는 노골적으로 무뚝뚝한 표정을 짓는다. 더구나 집에 있을 때면 콘택트 렌즈를 끼지 않고 낡은 은테안경을 썼다. 그 당돌하기까지 한 못생긴 얼굴이 오히려 귀여웠다. 그 풍경 속에는 영원으로 통하는 억센 힘이 있었다. 멍하니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본인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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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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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주는 특징은, 뭐랄까 소설인데도 굉장히 산문같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데뷔를 본인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쓴 작품으로 하셔서 더욱 그런 걸까? 그분의 대표작은 다들 경험을 각색한 것들이 많기에 시대적인 이야기도 구체적이고 등장인물도 입체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오랜만에 나온 그분의 신간 역시 마찬가지다. 단편소설로 이루어졌지만 산문처럼 읽히는 건 나의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요즘 소설이 추구하는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을 내기 보다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작가의 노련한 글솜씨가, 참 그다지 대수롭지도 않은 이야기를 맛깔나게 한다. 이게 바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거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겁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 차린 반찬은 많지 않지만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비우게 하고야 마는 시골 밥상 같은 그 힘으로, 독자들은 그분의 책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쉽고 재미있게 읽혀서 나도 보고 엄마도 보는 유일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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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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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특이한 느낌의 소설이다. '삽화'와 '애완동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크리스마스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환상적인 세계를 구경시켜주지도 않는다. 주인공 할머니의 고독한 현실에 등장한 한 마리 새, 그 새를 통해 할머니는 기쁨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내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할머니의 심리 묘사였다. 어느 정도의 세월을 살아낸 이 특유의 회한과 허무함, 그리고 현실에 대한 무기력함과 남은 삶을 어떻게 엮어야 할지 모르겠는 당혹감 등, 혼자사는 노인에 대해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때 날아온 친구로 알록달록한 앵무새를 채택한 건 좋은 아이디어인 듯싶다. 무채색 노인의 삶에 들어온 다양한 빛깔의 앵무새라니, 극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조금 약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을 붙였는가 싶기도 하고. 작가가 '우연'과 '기적' 중에서 하나만 썼더라면 조금 더 깊이있는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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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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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라는 산문집으로 그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고민하다 읽어 내려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짧은 산문이 주는 담백함에 푹 빠져버렸다. 장문의 묘사도, 덕지덕지 발라진 대화체도, 과장된 행동도 없는 이 산문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아래는 인상깊었던 문단.

01_문학 분야에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버린다.

02_우리 집 정원에서 넓적부리 암놈 한 마리가 제 아늘놈 중 하나와 살림을 차렸다. 자연이 앙갚음을 하는지 이 암놈이 모두 새끼를 깔 수 없는 알을 낳았다. 그런데도 암놈은 한사코 알을 품는다. 두 번이나 나는 암놈이 그 알을 깨어서 속에 든 것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괴상하게도 이놈은 그 알의 껍질들을 연못에 가지고 가서 씻는 것이다. 이 새는 마치 내게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희화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구상하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만 작품들의 원고를 버리지 못한 채 끊없이 품고 있는 작가의 희화를 말이다.

03_C.H가 온통 아름다움 그 자체인 듯한 열한 살의 딸 안젤라와 같이 나를 보러 오다. 아주 건강하게 활짝 피어난 그 아이는 어디로 보나 더없이 행복한 인상이어서 구태여 누군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저 자신의 껍질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내 눈에 계집아이들은 흔히 그렇게 이기적이고 흔들림 없는 행복의 인상을 준다. 사내아이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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