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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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라는 산문집으로 그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고민하다 읽어 내려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짧은 산문이 주는 담백함에 푹 빠져버렸다. 장문의 묘사도, 덕지덕지 발라진 대화체도, 과장된 행동도 없는 이 산문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아래는 인상깊었던 문단.

01_문학 분야에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버린다.

02_우리 집 정원에서 넓적부리 암놈 한 마리가 제 아늘놈 중 하나와 살림을 차렸다. 자연이 앙갚음을 하는지 이 암놈이 모두 새끼를 깔 수 없는 알을 낳았다. 그런데도 암놈은 한사코 알을 품는다. 두 번이나 나는 암놈이 그 알을 깨어서 속에 든 것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괴상하게도 이놈은 그 알의 껍질들을 연못에 가지고 가서 씻는 것이다. 이 새는 마치 내게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희화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구상하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만 작품들의 원고를 버리지 못한 채 끊없이 품고 있는 작가의 희화를 말이다.

03_C.H가 온통 아름다움 그 자체인 듯한 열한 살의 딸 안젤라와 같이 나를 보러 오다. 아주 건강하게 활짝 피어난 그 아이는 어디로 보나 더없이 행복한 인상이어서 구태여 누군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저 자신의 껍질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내 눈에 계집아이들은 흔히 그렇게 이기적이고 흔들림 없는 행복의 인상을 준다. 사내아이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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