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력 - 경계로부터의 자유
김익철 지음, 강성남 그림 / 세림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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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편안하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뜻이고 그 안에서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조금은 서글픈 현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 존재하면서 가질 수 있는 불만은 편안함과 안락함이라는 부분에 많이 상쇄가 되는 것 같다. 생활을 하다 보면 이 울타리를 벗어나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며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결과론 적으로 본다면 울타리 안에서의 삶보다 더 자유롭고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그 들의 삶은 자유롭고 안정적이며 스스로 얼굴에 웃음이 담겨 있는 그런 삶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삶을 살지만 표본이나 선망의 대상이 아니기에 알려지지 않는다. 다른 그들의 삶은 어떨까? 다시 울타리를 찾아가지만 그 안은 이전의 울타리 보다 더 작고 먹이를 얻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하며 스스로 아귀다툼을 하듯이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울타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먹이를 찾아 헤매다 지치고 쓰러져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같은 울타리에 속해 있었는데 이들은 왜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


부모의 울타리에 있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준비하라는 부모의 말씀을 그렇게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평생에 아무 이해관계 없이 만들어 준 울타리 이었음에도 우리 불만을 터뜨리는 삶을 살았지만 정작 그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환경에 자신이 버틸 힘을 만들지 못하였다. 큰 그림자 같은 멘토가 있었지만 정작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으며 자신의 편안함을 찾아 그렇게 시산을 보내며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갔다. 그리곤 어딘지 모를 그 곳으로 끌려가는 동료들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울타리가 없어지면 스스로 버틸 능력도 의지도 없으며 그렇게 추위와 굶주림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우화를 통한 이 이야기는 그렇게 야생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힘을 알려 준다. 길들여진 그런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그리고 원래의 내 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마음가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것 만으로는 조금 부족한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역량 남이 만들어 준 음식이 아닌 내가 스스로 찾아가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리고 그 것을 조리 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하고 있다.


울타리! 지금도 어떤 울타리에 있으며 그 울타리를 뛰어 넘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짧지만 강렬하였다. 나를 믿지 못하기에 어떤 일을 하려 하는 것을 먼저 포기하고 도망가는 삶에서 그 삶의 종말을 알리는 처참함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길들인 것도 나이기에 후회는 없다. 지금이라도 그런 힘을 그리고 생각의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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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달력 - 마야 문명 최대의 수수께끼에 얽힌 진실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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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질문이 없이 그냥 사용하던 날짜와 시간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사람이 시간의 단위를 구분하고 그 단위법을 기준으로 모든 사람들이 시간을 정하고 약속을 한다. 그 시간적 관념은 달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 머물고 있으며 이 달력의 기원에 대하여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이라는 것이 농경의 문화에 맞게 절기를 만들듯이 이 문화가 가져온 것은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그 시간에 어떤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 즉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기 위한 시기를 미리 준비하기 위한 행위 였을지 모른다. 이제 와서 마야의 달력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2012년이라는 한계가 정하여져 있는 달력의 의미를 찾는 또 다른 시각일지 모른다. 아니 불안한 세상에 대한 불안한 심리의 발로가 가져온 하나의 허구 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사실에 근거하여 역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고대 문명이 가진 궁금증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한 접근을 달력이라는 관점에서 마야의 문명을 조명해 볼 시간이다.


베른트 잉그마르 쿠트베를레트의 생각은 지금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달력, 즉 그레고리우스력에 대한 고찰을 시작으로 한다. 그 달력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마야의 달력을 생각해 본다. 신에 대한 제사와 축제 그리로 농경에 대한 시기를 정하는 달력이 가졌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야 문명이 만들었던 이 달력의 역사와 또 세간을 미혹시키는 말들의 허구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멸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아니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그런 추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1000년 전에 사라진 문명이 그토록 정교한 달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배경과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당연하게 수긍이 가는 부분이니 말이다. 다만 왜 부제를 그렇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책의 내용은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고증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사실과 사건을 이야기하는 인문학적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책이 세상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도 의심이 없이 받아들이는 것 들이 많다. 그렇게 오류도 범하고 오류 속에서 진실이 숨겨지기도 한다. 마야의 문명에 숨겨진 비밀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인류에게 어쩌면 스스로 묻어 버린 문자지옥 과도 같은 종교적 편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들에게 달력이 가졌던 의미와 최고의 결과물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에 대한 과학적 바탕을 모른 채 달력 만으로 유추해야 하는 현실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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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킹 애드립 - 유머의 달인을 위한
신상훈 지음 / 차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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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립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은 임현식이라는 배우의 대본을 보여주는 어떤 방송연예 프로에서였다. 애드립은 즉흥적으로 재치있는 유머를 전해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임현식이라는 배우의 대본에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애드립은 애드립이 아니고 사전에 그가 연구하고 고민한 한 단어였음을 알 수 있었다. 매번 드라마에서 혹은 시트콤에서 가벼운 연기와 감초 연기로 기억이 되었던 그에게 철저하고 준비된 사람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의 연기 인생을 다르게 바라보게 된 기억이 있었다.

 


회의석상에서 뚱딴지같은 말을 던지지만 결국은 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하나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의 그의 재능에 감탄하면서 나는 그런 머리가 안 되는 구나하는 자책을 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의 단어를 다른 곳에서 써먹기 위해서 메모를 하던 적도 있었다. 물론 잘 먹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나의 고민에 답을 준 것은 전혀 다른 임현식이라는 배우의 대본과 같은 이미지 즉 그는 미리 준비하고 왔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여준 것이 바로 토킹 애드립이라는 신상훈 작가의 책이다. 전혀 다를 것 같았던 두 가지 상황이 결국 같은 이야기 였다는 것이다.

 


신상훈 작가는 유머가 이긴다를 발간하고 우연히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어서 그의 유쾌하고 즐거운 입담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인지를 실감 나게 해준 강연이었다. 사실 유머가 이긴다를 읽어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강연의 내용과 비슷하였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유머를 섞어 가라고 한다면, 이것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 였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저 성격상 혹은 자라온 환경이 그래서 라고 치부하기 쉬웠을 것이다. 책은 아니고 그와 두 번째 토킹 애드립이라는 책을 만나본 결과 그의 유머 역시 그리고 그의 강연중의 위트 역시 준비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적절한 상황에 써 먹을 수 있는 즐거운 애드립 그 것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 것이 없다면 어떻게 좋은 결과를 만들고 좋은 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본다.

 


애드립이 필요한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아마도 이런 상황에 애드립으로 분위기를 전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시간에 즐거운 기억을 혹은 자신을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람을 몇 명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심각한 회의석상에 즐거운 유머를 통해 분위기를 전환하고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 명함을 주고받을 때 혹은 명함 속에 인상적인 애드립 한 마디가 어쩌면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문자 속에서 인상적인 애드립 한 마디가 어쩌면 바로 삭제를 눌러 버리는 상대의 마음을 조금 움직여 주지 않을까? 실수를 한 자리에서 당황하고 어눌한 표정보다 즐거운 애드립 한 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그렇게 어렵고 힘든 자리 일수록 즐거운 단어와 말 한마디가 자신을 편하게 그리고 상대를 편하게 하여줄 것이다.

 


다만 이런 애드립은 서두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철저한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듯이 이 또한 연습을 통하여 그리고 고민을 통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다. 조금은 우습게 자신을 망가뜨리더라도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도 상대도 즐거워 진다면 조금 망가지는 것 역시 부담 할 만한 리스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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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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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뻔뻔함 과 당당함 사이에서 많이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뻔뻔함은 무엇이고 당당함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두 단어의 정의를 내리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자신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정의를 내릴 것인가도 쉽지 않을 뿐 더러, 결과론 적으로 보았을 때 뻔뻔하다 여겼던 타인의 행동이 결과가 좋으면 당당함으로 바뀔 수도 있으며 그 뻔뻔함이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정의 속에서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중을 간파당하고 자신의 화를 억제하지 못하여 스스로 일을 그르치는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의 뜻과 다르기에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게 낯 두꺼움을 무기로 그리고 저 밑바닥에 자신의 의중을 숨기고 접근하여 그 뜻을 이루는 사람들을 우리는 때로는 영웅으로 때로는 비열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의 고사를 떠올려 보자, 자신의 의중을 숨기고 오왕 부차에게 그렇게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위해서 그렇게 비굴하고 약자의 삶을 살았다. 구천이 행한 행동을 보면서 선비답지 못한 행동이며 의롭지 못하다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볼 것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고민을 할 시기인 듯하다. 이런 학문을 만든 이종오란 사람의 후흑학이라는 것을 이제는 고민하여 볼 시기인 듯하다. 비굴하고 억울하지만 참고 견뎌내면서 자신의 뜻을 숨기고 세상에 자신이 드러낼 시기를 저울질 하면서 상대에 따라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천의 얼굴을 가진 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짚어 보고 배울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개인적인 삶의 관점으로 보았다면 아망도 비굴한 삶을 살았다 할 것이나 왕의 입장에서 국가의 입장에서 그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역사서의 관점처럼 후흑은 그런 관점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 학문인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부분은 개인과 국가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후흑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인 처세술과 많이 닮았으며 국가적 관점에서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국가의 흥망의 원리를 배우고 더 낳은 국가의 지향할 바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후흑이 무엇인지 알아야 배우던가 말던가 할 터인데 후흑이 무엇일까?

 


후흑은 청조 말기 이종오가 저술한 후흑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말의 뜻만 살펴보면 면후 즉 두꺼운 얼굴과 심흑 즉 검은 속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말 뜻 그대로 만 보면 그렇게 좋은 말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종오가 추구한 것은 역사적 순환고리 속에서 후흑을 통해 나라를 구하는 후흑구국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후흑이 최근들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중국의 도광양회의 책략과 맞물려 세계 최빈국에서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발돗음 하고 있으며 일본의 또 다른 후흑인 야스오카학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다. 철저하게 힘이 없을 때는 상대의 비유를 맞추고 실리를 추구하면서 힘을 기르고 힘을 기른 이후에는 철저하게 상대의 입장을 파악하고 그 들과 적절한 협상을 하는 힘을 기르자는 의미이다. 좀 치사한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 치사한 것일까?

 


중국 속담에 ‘동사불하려’라는 말이 있다. 얼어 죽을지언정 타고 있는 나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외골수를 비유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상대방의 거절과 냉소를 자아내게 된다. 심지어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 수 있다. (175쪽)

 


얼어 죽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의 답은 간단하다. 비판하고 싶은가? 그렇게 해서 나라가 망한다면 그래도 따라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더욱 간단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후흑을 공부하고 연마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후흑에 대한 사례는 더 많은 이야기와 흥미를 주지만 일반적으로 읽었던 사례와 저자의 관점은 철저하게 후흑에 담겨 있으니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읽어 볼만하다.

 


조금은 다른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은 것 같다. 처세술이라 할 수 없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모두가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처세술, 기업 경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경영의 기법, 정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 전략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역사적 사실을 그렇게 우리에게 교훈을 주지만 다만 그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달라 다르게 보듯이 후흑이라는 학문이 이제는 우리 국가 정책의 또 다른 일면으로 장식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명분 보다는 실리가 중요한 세상이라 생각 되니 말이다.

 


우리도 거시사의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문화에 기초한 리더십 이론을 마들 필요가 있다. 조선조의 군신이 ‘왕도’를 맹종하다가 ‘패도’로 무장한 일제에게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채 나라를 통째로 넘기고 백성들을 어육으로 만든 게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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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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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들의 삶은 정신적인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의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왕의 여자라는 직함은 그렇게 즐거운 이름이 될 수 없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와 시기 그리고 권력이라는 한 구조 속에서 사람마다 자신의 위치를 잡기위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모습이 있다. 궁녀라 불리는 사람들의 삶은 어쩌면 수녀와도 같은 삶 성은과 승은의 모호한 단어의 정의와 같이 이들의 삶은 한 남자 즉 왕이라는 사람의 마음에서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과 혹은 경쟁 속에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지만 궁녀라 불리는 사람들의 실제 삶은 어떠했을까? 이 책은 그들의 삶을 말하고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궁녀들의 삶 속에서 어떤 모습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동이, 장희빈 등을 통해서 익숙하게 궁궐의 삶을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들에게 그 들의 모습은 그렇게 신데렐라 혹은 화려한 삶 속에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혹은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들의 모습처럼 그려지지만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궁녀란 궁에서 벌어지는 아니 임금이 살아가기 위해서 궁의 일을 해 주는 사람들을 뽑아 그 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하여 선택한 것이지 결코 왕의 여인으로 뽑은 것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물론 궁녀가 되기 위해서는 임금과 혼인을 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가 궁녀를 왕의 여자라 부르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만 세속의 그런 관례는 아니고 이 들에게는 관념적인 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 보면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을 혼자 지내야 하는 그런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여야 할까? 물론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들의 신분과 하는 일 그리고 이들의 신분과 계급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먼저 이들의 역할을 잠시 책의 일구를 빌어 정의를 하면,

 


궁궐에서 궁녀를 뽑는 목적은 왕을 유혹할 여진들을 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백성들과 관료들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악착같이 궁녀를 모집한 까닭은 일을 시킬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가하게 왕을 유혹할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궁녀들에게 주어질 리 없었다. (99쪽)

 


짤막한 이 글에서 나는 궁녀의 삶과 역할 그리고 그 들의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왕과 관례를 올리지만 왕을 유혹할 수 없는 궁녀의 모습, 좀 처량하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를 뽑는 과정도 관료와 백성의 반발을 가졌다는 뜻은 왕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뽑아야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저런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들이 맡은 일을 시키기 위해 뽑았다는 일은 그들에게 옷 만들고, 음식을 만들고 궁궐을 관리하고 그리고 은밀한 시중까지를 시키기 위한 일이었으며, 마지막 한 줄은 그들이 평생을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을 뿐 여인으로서의 기쁨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끼기에는 신분적으로 억압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외롭고 힘든 그런 일이었기에 이들의 신분은 대부분 노비의 신분이었거나, 천민 계층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유추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 나름의 신분은 궁녀와 후궁 그리고 왕후로 구분되어지며 왕을 모실 수 있는 왕과 같이 밤을 지낼 수 있는 신분은(물론 모든 궁녀에게 이런 자격은 주어지지만) 후궁과 왕후이며 이들에게는 궁녀와 다른 또 다른 권력과 역할이 부여 되었다. 작가는 이 신분의 역할과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면서 대표적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화려하게 그려지는 드라마 속 궁녀들의 모습은 역경과 고난들 딛고 일어서는 의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역사적 사실이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많은 궁녀들 중에 한 두명이 그렇게 우리의 모습에 아름답게 그려질 뿐, 대부분의 궁의 생활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을 듯하다. 그렇게 궁녀들의 삶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알려지지도 이름도 모르게 우리의 역사 한 편을 지켜가고 있으며 때로는 우리 역사 전면에서 그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 주면서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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