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살아가면서 뻔뻔함 과 당당함 사이에서 많이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뻔뻔함은 무엇이고 당당함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두 단어의 정의를 내리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자신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정의를 내릴 것인가도 쉽지 않을 뿐 더러, 결과론 적으로 보았을 때 뻔뻔하다 여겼던 타인의 행동이 결과가 좋으면 당당함으로 바뀔 수도 있으며 그 뻔뻔함이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정의 속에서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중을 간파당하고 자신의 화를 억제하지 못하여 스스로 일을 그르치는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의 뜻과 다르기에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게 낯 두꺼움을 무기로 그리고 저 밑바닥에 자신의 의중을 숨기고 접근하여 그 뜻을 이루는 사람들을 우리는 때로는 영웅으로 때로는 비열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의 고사를 떠올려 보자, 자신의 의중을 숨기고 오왕 부차에게 그렇게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위해서 그렇게 비굴하고 약자의 삶을 살았다. 구천이 행한 행동을 보면서 선비답지 못한 행동이며 의롭지 못하다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볼 것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고민을 할 시기인 듯하다. 이런 학문을 만든 이종오란 사람의 후흑학이라는 것을 이제는 고민하여 볼 시기인 듯하다. 비굴하고 억울하지만 참고 견뎌내면서 자신의 뜻을 숨기고 세상에 자신이 드러낼 시기를 저울질 하면서 상대에 따라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천의 얼굴을 가진 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짚어 보고 배울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개인적인 삶의 관점으로 보았다면 아망도 비굴한 삶을 살았다 할 것이나 왕의 입장에서 국가의 입장에서 그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역사서의 관점처럼 후흑은 그런 관점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 학문인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부분은 개인과 국가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후흑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인 처세술과 많이 닮았으며 국가적 관점에서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국가의 흥망의 원리를 배우고 더 낳은 국가의 지향할 바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후흑이 무엇인지 알아야 배우던가 말던가 할 터인데 후흑이 무엇일까?

 


후흑은 청조 말기 이종오가 저술한 후흑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말의 뜻만 살펴보면 면후 즉 두꺼운 얼굴과 심흑 즉 검은 속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말 뜻 그대로 만 보면 그렇게 좋은 말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종오가 추구한 것은 역사적 순환고리 속에서 후흑을 통해 나라를 구하는 후흑구국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후흑이 최근들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중국의 도광양회의 책략과 맞물려 세계 최빈국에서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발돗음 하고 있으며 일본의 또 다른 후흑인 야스오카학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다. 철저하게 힘이 없을 때는 상대의 비유를 맞추고 실리를 추구하면서 힘을 기르고 힘을 기른 이후에는 철저하게 상대의 입장을 파악하고 그 들과 적절한 협상을 하는 힘을 기르자는 의미이다. 좀 치사한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 치사한 것일까?

 


중국 속담에 ‘동사불하려’라는 말이 있다. 얼어 죽을지언정 타고 있는 나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외골수를 비유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상대방의 거절과 냉소를 자아내게 된다. 심지어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 수 있다. (175쪽)

 


얼어 죽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의 답은 간단하다. 비판하고 싶은가? 그렇게 해서 나라가 망한다면 그래도 따라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더욱 간단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후흑을 공부하고 연마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후흑에 대한 사례는 더 많은 이야기와 흥미를 주지만 일반적으로 읽었던 사례와 저자의 관점은 철저하게 후흑에 담겨 있으니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읽어 볼만하다.

 


조금은 다른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은 것 같다. 처세술이라 할 수 없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모두가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처세술, 기업 경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경영의 기법, 정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 전략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역사적 사실을 그렇게 우리에게 교훈을 주지만 다만 그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달라 다르게 보듯이 후흑이라는 학문이 이제는 우리 국가 정책의 또 다른 일면으로 장식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명분 보다는 실리가 중요한 세상이라 생각 되니 말이다.

 


우리도 거시사의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문화에 기초한 리더십 이론을 마들 필요가 있다. 조선조의 군신이 ‘왕도’를 맹종하다가 ‘패도’로 무장한 일제에게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채 나라를 통째로 넘기고 백성들을 어육으로 만든 게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30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