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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 철학 - 간결하고 매혹적인 철학에의 탐구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2년 4월
평점 :
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사물과 자신 즉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역사를 만들고 그 속에서 합리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 왔다. 그 속에서 인간의 생각을 그리고 사고를 철학이라는 학문에 담았고 그 학문의 키워드를 담아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하였다. 이를 아포리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우리는 삶을 영위하면서 사고의 틀 속에서 세상의 흐름에 영향을 받고 그 금언 속에서 우리의 사고를 발전시켜 나간다. 아마도 철학자들의 사고 역시 시대적 요구와 고민을 같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저자는 이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아포리즘을 끌어내어 철학사의 흐름을 정리하듯이 그리고 사회적 흐름을 잡아내듯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처음 우리가 문자를 가지고 생각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고민하고 정의를 내린 것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아포리즘을 통해 이해해 보자는 것이 아마도 저자의 집필 목적이 아닐까 한다.
초기 철학자들의 고민은 모르는 것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세상의 사물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마도 철학의 출발이 아니었을까한다.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 중에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즉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에서 철학을 출발하였던 것은 아닐까? 조금은 모순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소크라테스의 말 속에서 사람이 발전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 즉 모르는 것에 대한 끊임 없는 탐구가 아마도 지금의 인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시작한 무지의 출발은 호기심으로 이어지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면서 또 한 번의 변환기를 가져온다.
플라톤에게는 철학에의 추구가 윤리적 명령이다. 그것은 교양에의 추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해 의무로써 부과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에 호기심과 즐거움 외에 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40쪽)
자유분방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을 것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플라톤과 같은 목적 즉 무지에 대한 갈증을 풀어나가는 것으로 하였으나, 플라톤은 의무감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의미를 달리한다. 어찌 보면 플라톤은 힘들게 철학적 호기심을 충족하여 나갔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과 질문들에 대한 정의를 내렸을 것 같은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즐겁게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을 동경하는 마음은 플라톤 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호감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한다. 이런 본질적인 호기심 충족으로 연결된 철학의 배경은 중세에 들어서 신과 인간의 문제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자신으로 중심을 옮겨 나올 때까지 사람들의 질문과 사고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 사유가 명석판명한 사유라고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에 기초 할 때 나의 존재는 사유의 주체자임에 의해 보증된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인본주의 선언이다. (96쪽)
신이 지배하던 시기 즉 중세시대의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던 한 마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의 뜻에는 어쩌면 인본주의에 대한 사고의 태동을 알리는 말이 아닐까 한다. 데카르트의 말을 가끔 인용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시대적 사고의 틀을 알지 못한다. 저자는 이 철학사의 흐름을 정리하면서 그 말의 시대적 배경을 담아내고 있다. 데카르트의 말 속에 신의 개념에 대한 다른 사고는 또 다시 합리적인 아포리즘의 탄생으로 벗어나려 하는 데 그 중심에 스피노자가 들어선다.
모든 것이 자연법칙에 준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신의 뜻에 준한다는 것과 같다. (102쪽)
자연계의 어떤 것도 자연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전능한 신이다. 신은 자연계에 편재해 있다. 그것은 합리주의에 의한 신이다. (104쪽)
다시 인본주의로 들어간 사고의 틀에서 스피노자는 신을 사고의 범주에 끌어들이면서 신에 대한 합리성과 자연법칙에 대한 합리성을 부과한다. 어쩌면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는 절대 강자의 이익” 이라는 말이 다시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다. 당시의 신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은 당시가 가지고 있는 강자의 이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이러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철학적 사고의 흐름은 니체에 이르러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고 절망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니체의 말은 우리가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종교의 부패와 혐오 속에서 그는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니 말이다. 이에 저자는 이 말을 이렇게 풀이한다.
기존의 신학이 말하는 대로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니체는 당신들의 신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 신 일반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182쪽)
아마도 사회의 흐름에 대한 사고의 출발에서 니체가 본 세상은 그렇게 비쳐졌을지 모르겠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책의 흐름에 따른 내 생각의 요약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책이 생각 보다 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같다. 아포리즘 즉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구 임에도 불구하고 잘 못 쓰이고 시대상의 배경을 잘 모르고 사용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읽어도 다시 읽어 보게 만드는 철학적 용어의 한계는 아마도 내가 쉽게 접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만 책에 담은 내용은 철학사의 흐름을 짚어 보면서 아포리즘을 통한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아주 용이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좀 더 기본 지식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조금 아쉬움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