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한비자 법法 술術로 세상을 논하다 만화로 재미있게 읽는 고전 지혜 시리즈 1
조득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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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 좀 가볍게 보았나, 아니면 이해가 힘든 부분이 있었나, 곰곰이 고민을 해본다.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선택 중에 선현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한비자의 이야기는 자신의 일생이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지극히 넓고 깊다는 생각이다. 만화라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는 생각은 꼭 필요하다.

 

임금의 칠술과 육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한비자는 정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편안히 하기 위한 고민을 하였으며 임금의 입장에서 자신의 정책과 생각을 펼치기 위한 일종의 사람들을 자신의 편에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엑기스를 이렇게 정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리더의 입장에서 혹은 관리자의 입장에서 혹은 경영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받아들일 것 같다. 먼저 칠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면 신하의 말을 사실과 맞추는 일 사람을 너무 믿고 권력을 넘기는 일을 조심할 것이며 신상필벌의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등등이 있는데 무서운 것은 모른 체하며 상대를 시험하는 일과 헛말과 거짓으로 상대방을 시험해 보는 일이다. 관리자나 경영자는 아니어서 그런 일을 할 기회는 적으나 사람관계에 있어서 이것을 시험하는 사람도 잇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다. 사람을 믿고 아님을 판가름함에 있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에 좀 무섭다. 다만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시험을 당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더욱 기분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람을 쉽게 믿는 일에 무언가의 안전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 한다.

 

국가를 경영하는 일 하고는 좀 멀지만 회사 내에서 우리는 상사를 대함에 있어 임금이 경계해야 하는 육미를 곰곰이 살펴보아야 한다. 부하직원이 이해가 대립되는 일에 끼어든다거나, 자신의 권력을 부하에게 빌려주는 일 등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임금도 그렇게 하다가 자신의 위치가 흔들거리는 일이 왕왕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육미까지 고민해 보면 임금은 한마디로 사람을 믿으면 아니 되는 직업이다. 결국 지금의 경영자들도 같은 위치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하물며 자식들에게도 왕권 때문에 신뢰를 받지 못하는 자리, 충신과 간신이 공존하는 자리, 아마도 한비자는 이런 자리의 속성을 잘 알았기에 냉혹하고 비장하게 임금에게 이런 것을 간 했을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모든 것이 교과서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버린 지는 오래다. 하지만 생각만큼 따뜻하고 행복한 곳이라는 생각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사람을 너무 믿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니 믿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마다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무조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고민하고 다른 사람을 내 생각처럼 움직이려하고 그러다 보니 마찰이 생기고 그 속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런 상황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임금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자식이 자신이 살아있는 한 임금에 오를 수 없는 위치이기에 권력의 속성상 주변인물 혹은 당사자 들 끼리 분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듯이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면 그렇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인 것 같다. 수레 장수가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어 자신의 수레를 사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관을 짜는 목공이 많은 사람이 빨리 죽어서 자신의 관이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을 위하는 마음과 해하는 마음이 아님을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이익에만 더 관심을 많이 가지기 때문이다.

 

쉽게 생가하면서 읽다가 축약적 내용과 함축적 내용이 많아서 시간이 꽤 걸렸다. 걸린 만큼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인생은 정도는 없다고 하지만 정도에 가까운 길은 선현들의 생각과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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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 여행에서 만나다
양병호 외 지음 / 경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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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만드는 마을이 있는 건 아닐 진데 풍광이 좋고 아름다운 곳을 고향으로 둔 시인이 많다. 강을 보며 바다를 보면 세상의 의미를 함축적인 단어에 담아내는 일을 하던 시인들의 고향은 시선을 접하는 또 다른 글을 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삶이 보이는 듯하다.

 

시험을 보기 위해 달달 외웠던 시들이 여기에 등장을 한다. 그렇게 외웠던 시인의 이름도 등장한다. 시험에는 이 시인들의 고향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것을 외우는 것으로 시를 배운다. 시가 참 아프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시는 그렇게 우리에게 감성적 언어도 아니며, 함축적 의미를 담은 시인의 고뇌도 아니며 다만 점수 몇 점을 더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아픈 이야기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대입 시험을 이후로 시를 읽는 일은 많지 않았을 듯하다.

 

진동면에 가까워지자 도착 5Km 전부터 주기별로 갈색 표지판에 ‘↘→←천상병 시인 생가’ 가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유턴, 언더패스, 좌회전 우회전 등 마산 시가지로부터 꽤나 숨어 들어간 촌마을이다. 우습게도 마을 입구에는 표지판이 없다. 더 우습게도 생가는 없고 생가터로 추정되는 공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109쪽)

 

천상병시인의 생가를 찾아간 작가의 글처럼 우리는 시를 그렇게 접한 것 같다. ‘나 그 시 알아 외워볼까?’ 술술 잘 외운다. 이정표처럼 그렇게 잘 외운다. 하지만 꼬불꼬불 찾아야 하는 그 생가터처럼 시인이 담아놓은 그 골목골목의 정취를 놓치고 사연을 놓치고 그리고 정작 없어진 생가처럼 그 시의 알맹이는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시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인의 인생을 알아야하고 그 시인의 사상을 알아야하고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친구도 알아야하며 그 시인의 어린 시절 정서를 만들어 낸 고향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시인의 마음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고 한다.

 

박재삼, 김춘수, 유치환, 천상병, 이형기, 이육사, 구상, 박목월, 이호우, 이상화, 조지훈 이 시인들의 고향은 모두 경상도에 있다. 이 시인들의 생가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며 시를 생각하고 감상하며 경치와 주변의 여건과 같이 생각하는 글들이다. 더욱 공감이 갈 수 있게 그 사람의 인생도 곁들인다. 아쉽게도 나는 이곳을 몇 군데 방문하였지만 시인들이 고향임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문학관이 있었는지 그리고 시비가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다며 일제 강점기 이육사의 시를 외우면서도 우리는 입으로만 외웠던 것은 아닐까? 지나는 길에 있었음을 알고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시인들은 많이 배가 고픈 것 같다. 나도 시를 읽은 지 오래되었고 많은 책 중에 시집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그 것도 많이 팔린 책을 골라 사놓고 많이 읽지도 못한다.

 

답사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지만 이 답사여행은 좀 아늑하고 짠한 느낌이다. 치열하게 글과 전쟁을 치룬 이들의 고향의 아늑함 그리고 시인들의 암울한 시대에 그 숨은 뜻을 읽어야 했던 우리 선조들 그리고 몇 점 더 맞기 위해 외웠던 시 속에 담긴 치열함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짠하다. 이제라도 조금 느꼈으니 좀 용서가 되려나,

 

오늘 과연 무엇을 보고 왔는지, 이 모든 사고의 편린들이 글이라는 감옥 안으로 온전히 보존될 것인지 의문이다.(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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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이동 - 살림하는 아빠, 돈 버는 엄마, 변화하는 가족
제러미 스미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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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정에서 역할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아빠라는 역할의 변화와 엄마라는 역할의 변화가 가져온 가정환경의 변화는 자신의 성장기에 바라본 아빠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아빠의 역할이라기보다는 엄마의 역할이라 전통적으로 여겨왔던 분야의 역할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의 변화요구는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우리의 역할이 구분이 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저자는 그 배경과 앞으로의 가정에서 아빠라는 역할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여전히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영역을 관할하고 여성은 주로 보이지 않는 가슴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128쪽)

 

전통적인 가정의 구조에 있어서 아빠는 보이지 않는 손 즉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스스로 경제 분양에 대한 영역을 침범 당하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으며 여성은 즉 감성적인 부분에서 아이의 양육과 집안 일등의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의 증가는 이러한 역할 구분에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저자의 말처럼 아버지의 변화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아빠의 무관심을 요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최근의 아빠의 역할은 돈을 벌어다 주는 일에 집중된 구조에서 조금 다른 역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가정에서 돈을 벌어 오는 역할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아빠 역시 엄마의 영역을 가정에서 기대하게 된다. 즉 여태 우리사회가 전통적으로 역할의 분담영역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아빠에 대한 시선 그리고 스스로의 자괴감 등으로 많은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으나 이러한 사회적 구조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며 이것을 숨기고 감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나의 이슈로 만들어서 우리 사회 전면에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변화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279쪽)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는 않지만 일단 가정 구조의 변화 역할의 변화는 분명 필요해 보이는 부분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사회 구조의 변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있어 인용해 보면

 

현재 생물학적 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 아이는 백인 자녀의 경우 28퍼센트, 히스패닉계 39퍼센트, 흑인 자녀는 거의 70퍼센트에 달한다. (185쪽)

 

미국의 자료만 보더라도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 미국과는 다르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머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가정도 늘어날 것이고 재혼이 늘어나면서 아마도 아이의 양육과 부모의 역할 분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혼자 장을 보는 아빠에 대한 시선과 아이를 챙겨주고 학교를 보내는 아버지의 시선 등이 전통적 가족 환경을 벗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역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는 이런 변화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불황을 겪을수록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가 늘어난다고 한다. 1930년대 그리고 세계 2차 세계대전시에도 말이다. 이는 불황과 사회가 불안할수록 더욱 아버지의 역할의 변화 즉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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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1시간 - 매일 만나는 행복한 기적
신인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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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아이가 공부 잘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빠의 무관심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무관심해야 하는 구나 그런데 이 세 가지 조건 중에 하나는 어떻게 해 보겠는데 나머지는 안 되네. 요즘 아빠의 자리는 어디 일까?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참 힘든 가족을 꾸려나가는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일요일 회사에 출근하는 상사를 비웃던 내가 이제는 점점 그 처지가 되가는 것으로 아마도 이 사회의 흐름에 나도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 그 것을 어떻게 해볼까?

 

성공한 가족이 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과 할 이야기가 없어서 대화를 단절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이가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지금도 그 해결방법을 모르는 많은 가장들에게 가족과 1시간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이 시대 남자들의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말고 아이들이 커가는 것에 맞춰서 우리는 그 눈높이 혹은 생각의 높이를 맞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먼저 내가 가장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가족과 공동 관심사를 나눌 한 시간 그 한 시간을 만들기 위하여 저자는 많은 성공한(?)가정의 예를 들고 있다. 많은 사례가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마도 같이 식사하는 시간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각자 밥을 먹고 출근하고 등교하는 가족의 모습보다는 아무래도 좀 힘들고 어렵지만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가족의 모습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의 하루를 설계하고 공유하는 시간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저자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로는 가족의 의사결정에 대한 부분이다. 가부장적 가정의 교육을 받았던 지금의 가장들에게 어쩌면 가장 힘든 일이기는 하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사업 그리고 가족회의에 어린이의 발언권과 참석권을 주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생각의 수준은 분명한 차이를 보일 것이기에 이 두 가지는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다른 많은 것도 있었지만 실천해 보고 싶은 그런 항목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왜 한 시간인지 그 한 시간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오랜 시간 이 시간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법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가이드 정도는 될 것 같다. 가족끼리 무언가를 이룬 가족과 그렇지 못한 가족은 그 힘이 다를 것이기에 어쩌면 개인적 역랑도 다를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접하는 사회 가정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공유하고 어떤 것을 배우며 어떤 것을 남겨줄 것인가? 그리고 그 것을 어떤 방법으로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역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이다. 저자의 가이드는 그런 면에서 필요할 것 같다. 지금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는 아이들과의 시간 그 시간은 내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돈 버는 시간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흘려버린 시간이다. 우리 가슴 속에 가장 깊이 남아있는 부모와의 추억 그 것이 어떤 시기였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 아이와의 시간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한다. 그 추억을 만드는 일 아마도 부모의 역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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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은정 장편소설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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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사람에게 달린 뿔을 생각해 본다. 어울리지 않는 물건, 그렇지만 사람의 눈에는 잘 띠겠지? 아마도 누군가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아닌가 한다. 제목 그 제목이 뿔이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면서 사실과 픽션의 사이를 오간다. 주인공이 살아있는 것이기에 작가는 작가의 상상을 마음대로 펼치지는 못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 살아있는 주인공과의 대화가 이 소설을 끌어가는 힘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카피는 억울한 옥살이 그리고 그 것을 바로잡은 한 사람의 이야기로 주목을 받는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사회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기에 당사자의 아픈 기억을 생각하더라도 공감을 얻어내는 데 주력하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사건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아마도 이 이야기의 감정이입은 만들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린 여인과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남자가 가지기에는 자신을 그 주인공으로 생각하기에는 좀 과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한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주장을 하는 글이 아니라 공감을 끌어내는 글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주인공의 생존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이 되나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 대로 표현하는 것은 자서전의 형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그리고 시대상에 대한 주제가 부각이 되었거나 아니면 한 여인과의 애절한 사랑이 주제가 되어 그 사실이 더 깊이 다가 왔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대적 흐름에서 생긴 모순된 개인의 역사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 속에서 공감을 얻으려면 어떤 재료들이 있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다. 다른 여타의 소설에서 받은 공감과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얼까를 자꾸 생각하면서 글을 읽다 보니 정작 소설을 읽으면서 분석을 하고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우스웠다. 심혈을 기울여 쓴 작가의 역작에 공감을 못한 부분이 못내 아쉽지만 한 개인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그리고 그런 판결과 번복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도덕성과 규율에 관한 질문을 던질 만한 소재가 될 것 같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이 아마도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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