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에서 행복을 만납니다 - 추억.시간.의미.철학이 담긴 21개의 특별한 삶과 공간
홍상만.주우미.박산하 지음 / 꿈결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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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이 있어다니?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운영이 가능할까? 모든 것이 이익을 중심에 두고 시작을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배운 평범한 나에게는 행복을 만나는 공간이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울컥 할 만큼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고 부러워 보이는 것은 지금 나의 수중에 무언가를 움켜쥐기 위해서 놓지 못하는 힘든 몸부림이 처절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비록 내가 방문한 것은 아니고 책이 일러준 곳을 사진화 함께 방문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소박함이라는 것과 나눈다는 것 그리고 어울린다는 것이다. 탐욕스럽게 욕심내지 않는 공간이고 사장들이었으며 작은 것에 감사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카페 혹은 장소가 대부분이었고 종업원과 사장의 벽이 없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있는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프롬나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분면 카페의 수익은 많지 않을 것이고 정 직원을 4명이나 채용하고 그들에게 시급제 적용이 아닌 월급제 적용을 해준 것을 보면 그들의 카페가 카페를 상대로 한 바리스타들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아마도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카페의 환경과 이야기가 더 깊이 남아 있었나보다. 그리고 공간을 나눈다는 것 아니 재화를 나눈다는 것 차를 나누어 쓰고 양복을 빌려주며 그들에게 단순하게 옷 한 벌을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첫 출근의 설렘을 전달하고 행운을 빌어주며 좋은 기억으로 다시 옷을 입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행동, 차를 나누어 쓰면서 뒷사람을 위해 행복한 웃음과 메시지 그리고 가득 찬 기름통을 선물하는 매너까지 서로 나누는 행복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곤 행복이 있는 그곳에서 나눔을 같이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도 있고 자신의 노래를 나누는 곳도 있으며 자신의 인생을 나누는 곳도 있다. 아니 제주 앞 바다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나누는 게스트 하우스도 있다. 그렇게 줄서서 기다리며 행복을 나누는 공간, 잉크 한 병으로 만년필을 고쳐 올수 있는 공간 만년필이 가진 가치가 아니라 그 것에 얽힌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고 산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다. 위를 바라보라고 교육을 받아온 나에게 나누고 산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최소투자에 최대의 이익을 효용이라고 외워온 것에도 위배되는 것이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삶과 가게 그리고 모임이다. 그렇기에 더 부럽고 해보고 싶은 것은 행복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게 접근한 사람들로 보인다. 항상 배워오던 것을 추구하는 나보다도 더 가까운 행복에 가있는 것 같다. 언젠가가 될지 모를 미래에 우리는 나누는 것에 즐거움을 행복을 만들어 가는 이 책의 공간보다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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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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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라는 것을 논하기 전에 인생의 걸작을 꼽아 보아야 할 것 같다. 걸작이 뭐지? 그리고 걸작이라는 것은 누가 만들어낸 이름이야? 그리고 걸작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은 무슨 내용과 구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있다면 걸작에 관하여 이 책이 딱 이다. 샤를 단치는 자신의 지식과 작품세계를 분석적으로 들여다보며 걸작이 가지고 있는 구성요소를 분해해 본다. 생소한 작품들이 많아서 그리고 글 자체가 저자의 단상에서부터 시작한 글들의 조합이라 조금 어수선하고 정의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샤를 단치의 글을 보는 시각은 걸작을 골라내는 것 그리고 분석적으로 작품의 장점을 찾아내는 점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상의 조합 같은 분위기여서 단편적인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중 하나가 만족하더라도 걸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샤를 단치의 걸작 론에 들어가기 전에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걸작은 무엇일까? 그냥 깔끔하게 재미있었던 것 아니면 내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것 또 다른 의미로 지금도 가끔 펼쳐보며 세상 살기 힘들 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어떤 것이 나에게는 걸작일까? 아니면 너무 새로운 느낌이어서 시쳇말로 뿅 갔던 내용이 수록된 것?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냥 재미로 치면 해리포터 정도 그리고 삼국지? 읽어 도 읽어도 새롭고 전혀 다른 책 같은 사마천의 사기, 왠 만 해서는 두 번 안 읽는 데 두 번 읽은 책들? 이정도의 책들이 생각이 났다.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래도 나에게 걸작은 아직도 내 옆에서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는 책이 걸작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책을 좀더 읽어 보았다.

 

샤를 단치 이 분 좀 재미있다. 말투가 그런 것인지 번역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직설적인 문장들로 조금 덜컥 거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책에 한 줄이 눈에 들어온다. 걸작은 바보들에게는 언제나 불쾌한 것이다. -page 38’ 그럼 자신의 문장도 걸작이라는 이야기? 흠 조금 가라앉히고 더 읽어야지 흥분하지 말고 더 읽자 그가 말하는 걸작은 무엇인지...

 

고전주의 걸작은 없다. 39

걸작은 시간을 두고 이성이 서서히 꽃을 피우는 그런 것이 아니다. 42

걸작은 개성표현의 결정체다 50

걸작은 발전이 아니다. 57

걸작의 방법론은 없다. 필연성만 있을 뿐이다. 59

걸작은 뜻밖의 것이다. 65

걸작의 원칙 중 하나는 일단 나오면 더없이 확실한데 그전에는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65

걸작은 도약이다. 69

 

걸작에 대한 정의를 이런 방식으로 정의 내려간다. 동의 할 수도 있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동의를 못한다고 해서 걸작을 보는 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만의 걸작을 찾는 일은 결국 내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니 참고용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면 되겠다. 세상에 나온다고 모두에게 걸작이 되는 것은 아니고 대중이 만들어 낸 걸작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모두 미디어셀러가 장식했다고 한다. 영화화 되거나 혹은 드라마 화 된 원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작품들을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걸작이라고 정의하는 샤를 단치의 정의 속에서 우리는 거기에 딱 맞는 작품을 몇 개나 찾아낼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작품을 찾아 읽어 보기 전에는 거기에 맞는 작품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회의가 들 때 쯤 내 시선과 생각과 일치하는 한 문장이 들어온다. 걸작은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스스로에게 걸작의 기준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을 때 들어온 몇 줄이 있다.

 

반박할 수 없는 유일한 걸작의 기준은 우리를 걸작으로 변신시키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걸작이 우리 곁을 지나가면 우리는 더 같은 사람일 수 없다. 보통의 작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걸작은 우리를 지배하고 변신시킨다. - Page 201

 

독서를 하는 의미도 분석적으로 구성이 어떤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니고 형식의 화려함이나 신선함을 알기 위함도 아니고 작가의 문체를 분석하기 위함도 아닐 것이다. 모방의 형식이든 창작의 형식이든 스스로에게 아니 독자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변화시키는 것이 걸작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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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 - 소설이 끝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이재은 지음 / 강단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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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글을 읽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기위한 취재와 경험을 바탕으로 글이 쓰여 진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글들이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경험적인 것이 모두 글이 되는 것은 아니고 글에는 작가 자신의 의지와 철학 그리고 삶의 방식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삶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탈고하고 작가가 글을 세상에 내 놓을 때 읽는 사람마다 다른 감정으로 또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명작이라고 하는 책들을 읽어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안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라는 것을 들어 보게 되고 비평가의 글을 읽어 보면서 읽는 방법도 연습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 문학이 걸어온 길을 작가를 만나서 작품의 의도를 듣고 있으니 책을 읽을 때 이렇게 편한 가이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질문하는 저자의 글과 작가의 답변이 들어가 있으니 말입니다. 많은 작가들의 글을 쓰는 생각이나 가치관 그리고 글을 대하는 자세 등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작품들 중에 제가 읽어 본 작품이 몇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책을 읽을 때 선입관이라는 것이 생길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먼저 작품을 읽어 보고 이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모두 각양각색의 인생을 살고 있고 글을 대하는 방법도 다 다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공통점은 글을 쓰는 것을 사랑하고 천직이라 여기며 당신의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을 정말 감사해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아쉽게도 한 분이 떠오르는 군요. 제가 정말 좋아 했던 분이었는데 여러 가지 일로 많이 배척을 당하기도 하고 험한 말들이 오고가면서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지신 분인데요. 그래서인지 더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내 책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함께 나의 칼럼에 대한 실망을 내비치면서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돌려보내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직 인터넷의 속성을 잘 모르던 나는 그럼 책값에 은행이자를 붙여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후략- Page 144

 

뒷이야기는 악의적인 네티즌이 개인을 지목해서 보냈는데 오만하게 독자들에게 책값을 물어줄 테니 얼마든지 책을 반환하라고 했다고 선동했고 그로 인해 책 장례식이 이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도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예의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고 감동하고 평생의 위안으로 삼아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돈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글을 표현하셨다는 것은 저로서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보통 자신의 작품은 자기 자식과 같다고 하기에 그 것을 돈으로 표현한 대목에서 오해가 많이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일상은 시대의 흐름과 많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고 때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관계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작가와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은 이런데 읽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극한의 상황까지 가는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많은 분들이 글을 쓰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외국소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국내에서 자신의 글을 일생의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시는 많은 작가님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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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
노은주.임형남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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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단독 주택에 살았다. 동네에 우리 집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집은 없었다. 아버지는 외형도 그렇고 내부의 구조도 그렇고 내가 커가면서 조금씩 변형을 주셨다. 처음 이사 간 집에서 내가 결혼하고 다른 집으로 이사 갈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본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내부적으로 살기 편하게 그리고 우리가 성장하는 속도에 따라서 그리고 출가하는 자식들이 생기면서 조금씩 그 용도와 구조가 바뀌었다. 지금은 단독이 아닌 아파트에 살다보니 가구의 배치 이외에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베란다 확장? 혹은 실내 인테리어 정도 그렇다고 뼈대가 바뀌거나 구조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 일이다.

 

책을 읽다 그런 생각을 했다. 궁궐 사찰 오래된 고택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속에서 역사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작은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의 우리가 선호하는 아파트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보다는 부동산에서 표시하는 그래프로 시세 변동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그런데 더 간사한 것은 지금이라도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또 싫으니 편리함의 덫에 걸린 내 습관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저자가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그들의 집은 조선의 왕들을 모신 종묘였다. 두 번째 들고 나온 곳은 우리나라 초기서원인 소수서원이다. 고택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보아야 하니 왕을 모신 곳 그리고 성리학을 가르치는 곳 두 곳을 먼저 들고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두곳은 최근에 내가 다 방문해 보았던 곳이다. 그냥 엄숙하고 웅장하게만 느껴졌던 종묘 그리고 작은 방과 툇마루로 구성된 소수서원의 제자가 붙은 건물들 작은방하나와 마루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곳을 저자는 좀 다른 의미와 해석을 해 준다. 도산서원을 방문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소수서원은 회의나 토론장 같은 건물배열이었고 도산 서원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일종의 수도를 하는 느낌의 건물 배열이었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두에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집은 그 집을 만든 사람 살아온 사람의 이력을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같은 모양이 없으며 조금씩 다른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사람의 일생과 역사 속에서 담아내고 싶은 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집의 구조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세의 건축학자가 보는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해본다.

 

조선의 마지막을 걱정하던 왕의 아버지가 살던 곳이 있다. 그 건물은 지금 복원사업으로 만들어 지고 있지만 그 역사 속에서 대원군 아니 일반적인 왕의 아버지가 대원군이니 흥선 대원군이 맞는 표현이라고 했으니 흥선대원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살았던 운현궁은 어떤 마음을 표현하는 곳이었을까? 임금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에 폭탄이 터지는 일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흥선대원군은 무슨 꿈을 꾸고 있었을까? 지금은 서울 한 복판에 잠겨 있다는 운현궁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애잔하지만 모든 사람이 한 집의 주인공이라면 그 애잔함의 정도는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건축이라는, 집이라는 것은 그냥 지붕 있고, 벽 있고, 바람 막고, 비 피하는 그런 껍질이라는 의미 외에도 자기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 짓는 이의 사고와 철학을 담는 하나의 조형물이며 영조의 산물이 바로 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후략- Page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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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스물이 두 번째 스물에게 - 마흔을 위한 응원가 최카피의 혼자병법
최병광 지음 / 끌리는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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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언저리 때로는 자신감에 넘쳐서 흐린 판단으로 힘들게 살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처절하게 현실을 떠나지 못하는 시기가 아닐까? 예전의 불혹과 지금의 마흔은 다른 의미의 개념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사오정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하였을 때 불혹이 아니라 무소득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 정도로 이해되던 시기에 많은 상실감과 그리곤 자신의 다른 인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 나이가 되면 어떤 삶을 살까 고민을 해보았던 시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마흔을 건드리는 책 제목은 언제나 손이 가게 만든다. 기대했던 것만큼 시원함을 주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마흔을 흔드는 글을 다시 읽어 본다.

 

세 번째 스물이라고 하였나? 저자의 나이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곤 마흔 언저리에 독립하여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 혼자 프리렌서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저자는 광고 쪽 일을 하면서 그렇게 자신을 만들어 갔고 자신이 간 길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책을 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이 좀 있지 않으면 글쓰기가 어렵다. 성공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니 누구에게 해줄 말이 생기는 것이고 그 이야기는 자신의 성공담처럼 들려지고 자신의 생활 방식과 행동양식이 글에 베어 나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음을 저자도 전제하였으니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니까? 결국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계발서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는 식의 논조는 피해야 할 것이다. 인생의 정답은 없는 것이니까.

 

보편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이야기 중에 그래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말 중에 오만과 편견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말 자신의 능력으로 쌓아놓은 명성과 성과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이름을 빌어서 만들어 놓은 성과인지 보아야 할 나이가 불혹이라는 나이인 것 같다. 회사가 대기업이지 내가 큰 인물이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건강은 언제나 필요하다. 일평생을 살면서 필요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시간도 꼭 필요하다. 저자가 말하는 책읽기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상에 빠져 있다 보면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독서 요리 혹은 패션과 사진 저자가 추천하는 것 이외에도 자신만의 여가를 가지도록 해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마흔 언저리에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 쪽에 치우치기에도 쉽지 않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힘들게 살아간다. 그렇게 산다고 미래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 우리는 이와 같은 책을 찾는다. 문제는 실천이다. 실천을 할 용기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현재의 불안감 때문에 뒤로 미루고 일에 치중하느냐 하는 것의 삶은 선택의 문제이다. 이전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선택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으니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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