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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걸작이라는 것을 논하기 전에 인생의 걸작을 꼽아 보아야 할 것 같다. 걸작이 뭐지? 그리고 걸작이라는 것은 누가 만들어낸 이름이야? 그리고 걸작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은 무슨 내용과 구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있다면 걸작에 관하여 이 책이 딱 이다. 샤를 단치는 자신의 지식과 작품세계를 분석적으로 들여다보며 걸작이 가지고 있는 구성요소를 분해해 본다. 생소한 작품들이 많아서 그리고 글 자체가 저자의 단상에서부터 시작한 글들의 조합이라 조금 어수선하고 정의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샤를 단치의 글을 보는 시각은 걸작을 골라내는 것 그리고 분석적으로 작품의 장점을 찾아내는 점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상의 조합 같은 분위기여서 단편적인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중 하나가 만족하더라도 걸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샤를 단치의 걸작 론에 들어가기 전에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걸작은 무엇일까? 그냥 깔끔하게 재미있었던 것 아니면 내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것 또 다른 의미로 지금도 가끔 펼쳐보며 세상 살기 힘들 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어떤 것이 나에게는 걸작일까? 아니면 너무 새로운 느낌이어서 시쳇말로 뿅 갔던 내용이 수록된 것?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냥 재미로 치면 해리포터 정도 그리고 삼국지? 읽어 도 읽어도 새롭고 전혀 다른 책 같은 사마천의 사기, 왠 만 해서는 두 번 안 읽는 데 두 번 읽은 책들? 이정도의 책들이 생각이 났다.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래도 나에게 걸작은 아직도 내 옆에서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는 책이 걸작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책을 좀더 읽어 보았다.
샤를 단치 이 분 좀 재미있다. 말투가 그런 것인지 번역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직설적인 문장들로 조금 덜컥 거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책에 한 줄이 눈에 들어온다. ‘걸작은 바보들에게는 언제나 불쾌한 것이다. -page 38’ 그럼 자신의 문장도 걸작이라는 이야기? 흠 조금 가라앉히고 더 읽어야지 흥분하지 말고 더 읽자 그가 말하는 걸작은 무엇인지...
고전주의 걸작은 없다. 39쪽
걸작은 시간을 두고 이성이 서서히 꽃을 피우는 그런 것이 아니다. 42쪽
걸작은 개성표현의 결정체다 50 쪽
걸작은 발전이 아니다. 57 쪽
걸작의 방법론은 없다. 필연성만 있을 뿐이다. 59 쪽
걸작은 뜻밖의 것이다. 65 쪽
걸작의 원칙 중 하나는 일단 나오면 더없이 확실한데 그전에는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65 쪽
걸작은 도약이다. 69 쪽
걸작에 대한 정의를 이런 방식으로 정의 내려간다. 동의 할 수도 있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동의를 못한다고 해서 걸작을 보는 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만의 걸작을 찾는 일은 결국 내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니 참고용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면 되겠다. 세상에 나온다고 모두에게 걸작이 되는 것은 아니고 대중이 만들어 낸 걸작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모두 미디어셀러가 장식했다고 한다. 영화화 되거나 혹은 드라마 화 된 원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작품들을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걸작이라고 정의하는 샤를 단치의 정의 속에서 우리는 거기에 딱 맞는 작품을 몇 개나 찾아낼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작품을 찾아 읽어 보기 전에는 거기에 맞는 작품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회의가 들 때 쯤 내 시선과 생각과 일치하는 한 문장이 들어온다. 걸작은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스스로에게 걸작의 기준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을 때 들어온 몇 줄이 있다.
반박할 수 없는 유일한 걸작의 기준은 우리를 걸작으로 변신시키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걸작이 우리 곁을 지나가면 우리는 더 같은 사람일 수 없다. 보통의 작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걸작은 우리를 지배하고 변신시킨다. - Page 201
독서를 하는 의미도 분석적으로 구성이 어떤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니고 형식의 화려함이나 신선함을 알기 위함도 아니고 작가의 문체를 분석하기 위함도 아닐 것이다. 모방의 형식이든 창작의 형식이든 스스로에게 아니 독자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변화시키는 것이 걸작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