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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식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한 번쯤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힘들지 않게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은 모든 부모의 바램 일지도 모르겠다. 힘들지 않게 넘는지도 모르게 수월하게 넘었으면 하는 소망이 절절하게 묻어 나오는 글이 놓여져 있다. 이야기는 전원을 중심으로 잘 짜여진 풍경처럼 그 고요함 속에서 숨어 나오는 갈등과 아이들이 넘어야 할 산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서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축약된 갈등과 의미의 남다름이 깊은 여운으로 남겨 준다. 어른들의 이기심에 상처받는 순수한 영혼들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하고, 아이들 간의 갈등을 담아내면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상황을 바꾸어 고민하게 만드는 글도 있고, 사호가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세상에 상처 받은 일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때론 적막하게 때로는 수려하게 넘어가는 글의 고요함이 더 깊은 앙금을 만들어 주었다고나 할까.
[성인식] 표제 제목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무게가 남다른 내용이다. 평생에 단 한 번 어쩌면 남들에게는 겪어 보지 못할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 간다. 그 사건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물어 보는 그런 일을 여기에서는 기르던 개를 잡아야 하는 아픔과 어린 나이에 임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잡았다. 어떤 사람은 동네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로 다가가지만 어떤 사람은 가족의 응원 보다는 질책을 받으며 그 길로 들어선다. 응원을 받든 질책을 받든 그 길은 내가 넘어야 한다. 누구도 넘어 주지 않는다. 스스로 넘어가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 밖에는 말이다.
[암닭]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전원생활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과 포악함 그리고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따돌림. 사냥개를 풀어 놓은 주인의 포악함이 어쩌면 아이들이 살아야 할 세상을 그려 놓은 것 일지도 모른다. 지키고 싶었지만 지키지 못하는 그 아픔을 만들어 주는 그 것 아마도 전원이라는 포장 속에 숨겨 놓은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평온함 여유로움 넉넉함을 가장한 이기적인 포악함과 표리부동한 어른들의 모습을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문자메시지 발신인] 가해자가 피해자 입장에서 돌아보는 그 들만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무 이해 관계가 없는 사이인 친구라는 사이에도 어쩌면 어른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 무작정한 감정의 표현. 무엇을 잘 못 하였는지도 모르게 친구를 만들고 홀로 서는 방법을 배우고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런 모습. 내가 할 때는 아무렇지 않지만 내가 당할 때는 너무 아픈 그런 행동들을 아이들에게 의미 있게 생각하게 하는 글이 었다.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 [먼 나라 이야기] 각기 다른 이야기 이지만 비슷한 관점으로 성장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아무도 나보고 죽으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렵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가해자는 일부 특정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재해가 될 수도 있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 누가 가해자라고 할 수 없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고 고민스러워 하기도 한다. 이를 넘어가는 산은 힘들다 말할 수 있는 동료도 없기에 더욱 힘들다. 같이 가야할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아마도 평생의 친구를 찾아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책의 분량은 만만하게 느껴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를 무겁게 하는 작가의 뒷맛은 어른인 내가 아이들에게 넘어가라고 말하는 그 산을 나는 어떻게 넘었는지를 알려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일 저런 일 혹은 기억하기 싫은 일까지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세상은 어쩌면 역사의 흐름처럼 가족을 벗어나 세상으로 가는 길 사이에 많은 고민을 주고 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나라는 자아가 형성이 되는 것 같다. 개르 fwkq는 아이에게 눈을 감아 보라고 이야기한 한 할아버지의 말처럼 천천히 가슴에 그려지는 것을 보는 눈을 만들어 자신과 대화하며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