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왈츠>

하나 둘 셋
12월 3일 과 1월 23일
음과 양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사색의 골이 참 깊다.

내 속에서도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사될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를 반추하면 할수록 내게 가장 놀라웠던 건 그 시절의 내가 도무지 내가 아닌 듯 무섭고 가엾고 낯설게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손볼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 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않다면 무엇이 놀라올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 P204

내일을 생각하지 않듯 어제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 손에 쥔 확실한 패는 오늘밖에 없고 그 하루를 땔감 삼아 시간을 활활 태워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 P211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 P230

내 속에 오랫동안 고여있던 가래 같은 말을 내뱉은 것이다. 학대의 사슬 속에는 죽여버릴까와 죽어버릴까밖에 없다. 학대당한 자가 더 약한 존재에게 학대를 갚는 그 사슬을 끊으려면 단지 모음 하나만 바꾸면 된다. 비록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모음이라 해도. -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포장을 걷은 포장마차가 동남아의 작은 수상가옥처럼 미끄러지듯 도로를 지나갔다. - P171

어떤 말은, 특정 음식이 인체에 계속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듯, 정신에 그렇게 반복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오익은 생각했다.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음식은 기피할 의지만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때문이다. 아니, 기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점점 더 그말에 사로잡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다.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빛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 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 높이 아름답게>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다!


자기 존재를 감추고 무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숨어서 공부했고 숨어서 성당에 나갔고 숨어서 일을 꾸몄다. 그 은신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마리아가 파독 간호사를 지원해 독일로 떠난 후 사흘이 지나도록 집안에서 그녀의 부재를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숨어서 약을 먹고 주사를 놓았으므로 마리아가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P88

마리아가 지난주에 신부님 드시라고 가져다준 밑반찬이 아직 냉장고에 남아 있는데 그걸 만든 당사자가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반찬통에 든 반찬처럼 마리아도 곧 관에 들려니 생각하다 



찜찜해졌다.
- P95

죽을 때까지 마리아에게 은밀한 기쁨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태극기를 팔러 가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떼다 팔던 시절,



열아홉 살의 마리아가 미지의 나라인 독일로 출발하는 순간에 보았던, 태극기가 무수히 펄럭이던 장면의 뒤늦은 효과인지도 몰랐다. 현란한 태극 무늬와 검은 괘의 점선들은 그 당시 마리아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희열과 공포를 그대로 찍어 인화해놓은 듯했다.  - P105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P1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슴벌레식 문답>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 P40


Q. 주눅들게 만드는 질문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은?

A.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법

자신의 삶을 살아낼 실용적 방법
☆☆☆☆☆


인간의 자기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 P36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은의젓한 방어의 멘트도 아니고,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고 윽박지르는 강요도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어디로든 들어 왔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빠져나갈 길도 없다는 막막한 절망의 표현인지도.



어떻게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다는 말은 미안할 방법이 없다는, 돌이킬 도리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나온 행로 속에 존재했던 불가해한 구멍, 그 뼈아픈 결락에 대한 무지와 무력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 P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람스 오~ 브람스

기억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듯
연유도 없이 머리와 가슴과 입에서 자꾸 맴맴돌며 착 붙어 안 떨어지는 것도 있다.

브람스 오~ 브람스


때때로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우리 마음속으로 곧장 날아든다. 그리하여 신체의 조성組成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 P161

첫머리에 호른의 잔잔한 인트로가 흐르고 나서 피아노 선율이 흘러 나왔다. 그 연주를 듣고 있으려니 웬일인지 몸속의 피로가 쑥 빠져나가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포의 구석구석에 찌들어 붙어 있던 피폐함이 하나씩 씻겨지듯 사라져갔다. 나는 거의 꿈꾸는 듯한 기분으로 음악을 들었다. 브람스의 협주곡 2번은 옛날부터 좋아해서 여러 사람의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감동을 받은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곡이 끝난 후,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얼마나 근사한 체험인가 하고 나는 감탄했다.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