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자신을, 자신에게 얽히고 섥힌 그 하나하나의 실체와 현상을 발가벗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웬만해선 전라全裸의 발가벗긴 자신을 대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글을 써 보겠다고 펜을 들 때마다 나를 발가벗기지 않고는 원고지의 단 한줄도 메울수 없다. 자기만의 방에서 적나라한 자신을 거울로 보는 것도 멋적고 쑥스러운데 그것을 누군가가 읽게 될지도 모를 활자로 새겨 남긴다는 건 제정신인 상태에서는 어림도 없다. 아무리 메타포 메타포 에둘러 가리고 숨겨도 낯뜨겁고 화끈거려 끝내 펜을 내려놓고 ‘아직은...‘이라고 유보하고 다시 책을 읽는다.
용기가 없는 것이다.
유진 오닐은 《밤의로의 긴 여로》를 집필하고 탈고한 뒤 자신의 사후 이십오 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그만큼 아프고 싫어서였을 것이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진 사망3년 뒤 스톡홀롬에서 초연되었고 그에게 네번째 퓰리처상을 안겨준 걸작이 되었다.
딸 (Oona O‘Neil 18세때)우나가 아버지 유진과 동갑인 54살 찰리 채플린과 결혼하자 딸과 의절했다는 일화는 유진에게 우나의 배우자 선택, 결혼은 미친짓이었으나 찰리에겐 [불행끝 행복시작]이었다. 반복된 결혼과 이혼에 마침표를 찍은 우나와의 결혼생활은 진정한 사랑, 성숙한 사랑이었다고 찰리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기록하고 있다.
유진 오닐의 이 지독한 가족사에 설상가상으로 찰리 채플린의 장인이라니 진정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
아프다
슬프다
그러나
유진 오닐의 작품을 통해
불편하지만
부끄럽지만
한겹 벗겨낸 나를 직시할 용기를 얻었다면 감사할 일이다.
[손가락이 길고 끝으로 갈수록 가는 것이 한때는 아름다운 손이었지만, 관절염으로 마디가 울퉁불퉁해지고 손가락이 뒤틀려서 이제는 흉하고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
가엾은 내 손!
넌 못 믿겠지만 예전엔 이 손이 내 매력 가운데 하나였지
...
음악가의 손이었지]
예전에 길고 아름다웠던 손가락!
메리의 그 손처럼 나도 길고 예뻤었는데 지금은 ...病身이 되어 버린 나의 손.
밤으로의 긴 여로...
끝날 것 같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는 끝난다.

[안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가려주고 세상을 우리로부터 가려주지. 그래서 안개가 끼면 모든 게 변한 것 같고 예전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거나 손을 대지 못하지. ... 안개가 얼마나 자욱한지 길이 안보이는 군. 세상 사람들이 전부 지나가도 모르겠어. 항상 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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