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0 소설 보다
서장원.신종원.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각성자 우다영! 고감도 감정이입 능력자! ˝안다는 기억이고, 기억이 우리를 구성한다˝ 놀라운 기억력의 작동, 아즈와 깔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읽을 수록 빠져듭니다. 조금 더 깊게. 이러다 나도 각성자 될 수 있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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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품에서는 익숙한 냄새, 정갈하게 마른 행주의 냄새 뒤주 가득한 생활의 냄새, 늦가을 사과 껍질의 냄새가 났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술래가 잊어버린 숨바꼭질 멤버처럼 거기 꼭 숨겨지기를 바라면서. - P376

아무래도 좋다는 듯 툭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마음 그 마음결에 지그재그로 팼을 상처 자국 때문에 밍의 가슴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 P380

뒤죽박죽으로 흩어진 파편적인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흔들리며 뒤섞였다. 우연의 일치는 이런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 P385

일요일, 오후가 구멍 난 자루 속의 설탕가루들처럼 솔솔 새나갔다. - P398

동생은 마치, 옆집 고양이가 죽었다는 전보를 전하는 우체부처럼 그 말을 했다. 일말의 감동이나 후회 없이, 조그맣고 몸이 건조하게.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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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념 종종 기만의 얼굴로 구현된다. 누구보다 잘, 그 여자에 대하여 안다는 믿음 역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 P310

시간이 이별을 앞둔 연인들의 말줄임표처럼 흘렀다. - P314

문영광은 한숨을 안으로 삼켰다. 이런 부류의 여자를 가끔 보았다. 다른 모든 것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만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들. 독기 어린 혀를 날름거리며 종일 제 몸을 쓰다듬는 것들. 새삼 구역질이 났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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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면....



가을하늘이 파란 사탕 껍질처럼 펼쳐진 날...


영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 하나. 여자 두 명이 함께 길을 걸어간다. 남자 주인공은 천진하게 걸어오는 그녀들을 발견한다. 두 여자 중 더 알려진 배우가 맡게 되는 여성 캐릭터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고, 다른 한 여자는 어딘가에 홀로 남는다. 연수와 다닐 때면 ‘다른 한 여자‘의 역할은 항상 내 차지였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혼자 남는 여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 P47

그런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언젠가 자신이 신을 찾게 될 거라는 믿음이나 언젠가 예술을 하게 될 거라는 예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하게 되는. 영혼에 새겨진 주름 같은 것이라고.
(...)
믿음이란 상대가 자신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안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 P98

나는 당신이 자라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에 책임 있게 나서준 적이 없었고, 아버지의 경우는 굳이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쥐어짜려야 쥐어짜낼 기억조차 없다. 따라서, 당신이 아이를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어쩌면 아이를 위하는 그 이상으로 당신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 타인에게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당신을 위한 것. 당신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의식하며 아이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믿는 것이다. - P206

로그라인. 영화의 주제와 줄거리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말로 할 수 있었다면 말로 했지. 구태여 영화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겠죠. 한마디로 될 일이었으면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하고싶었으나, 늘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요약되기를 거부하는 말이었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째서 이야기를 그렇게 써야 하냐고 반문하는 이야기였는데.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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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좁은 야채 칸에 꼭 붙어서 뭉그러져 가는 애기 감자 두 알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가끔 발작적으로 그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하고 졸렬한 방법으로.
(...)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말없이. 고향 마을 지도처럼 익숙한 그 손을 꼭 잡고 잠들었다. 그때는 그런 것이 복수라고 생각했다. - P231

그녀가 아는 한 그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까발려 햇빛 아래 드러내느니, 진회색 방수천으로 덮어 응달을 창고에 넣어두는 것이 낫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창고의 문을 밖에서 잠그곤 열쇠를 꿀꺽 삼켜 버리는 것이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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