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
러셀 로버츠 지음, 이지연 옮김 / 세계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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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전작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로 30만 한국 독자들에게 '애덤 스미스의 삶의 지혜'를 전했던 러셀 로버츠가 이번엔 '불확실한 세상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이란 주제로 8년 만에 다시 돌아온 신작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감당해야 할 문제들, 하지만 데이터나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딜레마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 결심이 필요한 순간에 우리를 이끌고 지탱해 주는 것들은 무엇인가? 인간의 무모한 도전에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두려움과 상실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인생의 정답을 찾기 위해 골몰했던 천재 과학자, 경제학자, 사상가, 시인, 미식축구 감독, 청소부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추적한다. 또한 선택과 관련된 현대의 여러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일상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재미난 비유를 통해 인생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들려준다.

이 책은 '1장 답이 없는 문제들, 2장 다윈의 딜레마, 3장 돌이킬 수 없는 선택, 4장 천재들의 생각법, 5장 돼지냐, 소크라테스냐, 6장 인간의 성장, 7장 페넬로페와 108명의 구혼자, 8장 세상과 나, 9장 성자와 청소부, 10장 슈퍼볼 감독의 불패 전략, 11장 잘 산다는 것, 12장 최고의 질문들'이라는 12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자녀를 가질 것이냐, 말 것이냐 같은 문제를 '답이 없는 문제'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인생의 갈림길 같은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도 분명하지 않고, 이 길이 아닌 저 길을 택했을 때의 기쁨과 고통이 무엇일지 끝까지 알 수 없으며. 여기서의 자신의 선택이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고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저자는 답이 없는 문제들은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대한 결정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부모가 됨으로 인한 헌신과 제약으로 인해서 부모가 되는 것이 왜 좋은지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녀를 갖게 되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유대감이 생기고,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부모와 가까워지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그 어떤 경험과도 다른 하나의 대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모가 되는 것은 당신과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바꿔놓는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부모가 되는 것의 좋은 점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면 자녀가 있는 부부들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바보들이다. 대체 좋은 점이 뭐란 말인가? 못생긴 그림을 마치 대단한 잠재력의 신호인 것처럼 냉장고에 붙여 놔야 하는 것?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곳에서 점수도 나지 않는 축구 경기를 몇 시간씩 지켜보는 것? 경기 내내 다른 부모들이 뭉쳐 있지 말라고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는 것? 키가 작고 글을 못 읽는 2세에게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 미니밴을 살 핑계가 생기는 것? 자녀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희생에 비하면 그에 대한 보상은 보잘 것 없어 보인다."

저자는 경제학자의 시선, 공리주의자의 시선에서 삶은 느낌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관심사는 일상적으로 느끼는 그날그날의 쾌락과 고통을 넘어서서, 우리는 목적을 원하고, 의미를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나 자신보다 큰 무언가에 속하기를 원한다. 저자는 우리는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열망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전반적 느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고 나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결정하며, '잘 산 인생'의 중심에는 이런 동경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은 그저 미래의 비용과 혜택만 줄줄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며, 결과가 좋을 때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저자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힘들게 내 선택을 직시하는 것도 삶의 일부이며, 답이 없는 문제의 경우에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은 삶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진실성, 미덕, 목적, 의미, 존엄성, 자율성을 가지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삶에서 계량화하기 어려운 측면들이지만 어쩌면 당신은 비용이 얼마가 되었던 이것들을 최우선에 놓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갖는 것은 그게 재미있거나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자녀를 갖는 이유는 단순히 당신 삶에 자녀로 인해 생길 쾌락과 고통의 총합 때문이 아니다. 자녀를 갖는 이유는 자녀로 인해 통장 잔고가 줄어든다고 해도 삶 전체가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쾌락보다 고통을 더 많이 불러오는 일을 선택하고,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괴로움이나 가슴앓이가 더 클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어려움을 무릅쓰기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시를 쓰고, 전쟁이 났는데 군에 입대하고,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산이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르고, 마라톤을 뛰고, 보수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은, 특히나 어떤 이상적인 것을 성취하기 위한 고통은 의미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만하도 말한다.

저자는 '내가 지금 타협하는 게 아닌라?'라는 두려움은 우리를 꼼짝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을 핑계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어찌 되었든 타협이라는 단어는 꼭 맞는 단어는 아니며, 타협한다는 것은 조금 못한 선택지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인데, 결혼이나 기타 온갖 종류의 답이 없는 문제에서 고려 사항 중에 '조금 못한' 것들이 끼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들은 일부 측면은 다른 것들보다 좋아 보이지만, 다른 측면이 그보다 못한 경우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부 사람들이 타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이제는 결정을 내릴 때가 됐고 더 나은 선택지는 도저히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는 '타협'이 아니라 '결정'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래에 우리가 뭘 좋아하게 될 지는 예측할 수 없으며, 그날그날의 경험이라는 협소한 일상을 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할 더 심오한 즐거움들은 절대로 일일이 다 미리 상상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무지를 직시하는 데부터 시작하라고 이야기한다. 답이 없는 문제들은 정답이 있는게 아니고 그래도 괜찮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실은 정답이 없다는 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일상적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지에 대해 우리는 선택권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선택은 자신을 개별적이고 영웅적이며 외로운 존재로 보는 것이다. 두 번재 선택은 다른 무언가에 속하고 연결된 존재로 보면서, 그 소속감을 경험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저자는 사전에, 도중에, 이후에 각각 내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점은 일상적 경험이 나의 일부가 되는 방식을 바궈놓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당신의 결정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당신의 본질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트레이드오프는 하지 말고, 진실하게 살며, 옳은 일을 하고, 당신 자신을 존중하는 것으로 출발점을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규칙이 있으면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건건이 따져서 철저하게 비용과 혜택을 계산하고 저울질하려고 노력하는 게 겉으로는 합리적으로도 보일 수도 있지만 규칙은 우리가 나 자신을 속이지 못하게 막아준다.

저자는 답이 없는 문제에 직면하는 법을 생각할 때는 예술가처럼 사는 것도 나쁜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예술가처럼 산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마음을 연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뭘 만들어 내게 될지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으며, 그들은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게 뭔지 알아내려고 창작물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예술가처럼 산다는 것을 실제로 들여다보면 선택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늘 혹은 너무 자주 거절한다면, 알게 되면 좋을 사람과 연이 닿을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특별한 어떤 것, 어쩌면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할 기회를 잃을 것이다. 저자는 선택권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말은 당장 뚜렷한 가치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당신의 인연과 경험, 지평을 확장해 줄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수락한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되면 기회에 관해서, 그리고 당신 자신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당신이 뭘 좋아하고 뭘 의미 있게 생각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예술가처럼 산다는 것은 당신의 경험과 당신이라는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고, 둘의 교류 방식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갖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라고 말한다.

"인생은 당신이 쓰면서 동시에 읽고 있는 한 권의 책과 같다. 결말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당신만의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대한 책이 되려면 음미하고, 곱씹고, 소화하는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 읽고 나면 인생이 바뀌는 책처럼 말이다. 우리는 하나, 어쩌면 두세 개의 플롯이 꼬일 것도 예상해야 한다.

당신은 책이나 시 혹은 당신의 삶을 계획한 대로 나오게끔 집필할 수 있다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실제로 그런 글을 쓰고, 그런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보았던 여러 교훈을 생각한다면, 당신이 10대 때 혹은 20대 때 살아가고 싶었던 그 책은 나이가 든 당신에게는 최선의 책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책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에서 우리가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은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어떤 것이 아닌 경우가 많고, 최고의 질문은 답이 없는 질문들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상이 그처럼 마법 같을 수 있는 것은 탐험이 있기 때문이리도 하다. 지난 세월, 인생을 경험하면서 나는 경제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캘빈주의자처럼 되었다. 당신이 아직 '과정'에 있는 작품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탐험은 중요하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곳에 도착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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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의 자기 신뢰 메이트북스 클래식 13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황선영 옮김 / 메이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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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믿는 힘에 대한 에머슨의 글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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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의 자기 신뢰 메이트북스 클래식 13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황선영 옮김 / 메이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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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의 자기 신뢰>는 인간이 자기 신뢰를 기초로 행동함으로써 더 나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이 담긴 에세이다.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문화나 사상적으로는 여전히 유럽에 종속되어 있던 19세기 미국의 정서에서 위대한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40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통해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500회가 넘는 강연의 내용을 정리해서 에세이로 출간했는데, <자기 신뢰Self-Reliance>는 1841년에 발표한 <제1 수필집>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 글은 미국의 정신적인 독립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머슨은 '자신을 믿는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우는 것이 성공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자기 신뢰는 내면의 힘을 이끌어낸다. 자기 신뢰를 실천하면 내 안에 놀라운 힘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머슨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함을 강조하며 '현재' '진실한 마음' '선과 정의'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19세기 역작인 이 책을 현대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 원서에는 없던 장제목과 소제목을 임의로 달았다. 고전미와 추상적인 표현의 함축성을 최대한 살이면서도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에머슨이 이 책에서 설파하듯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는 모든 성취의 출발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짐으로써 더 큰 성공과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자기계발서인 이 고전을 통해 가장 기본적이고도 궁극적으로 중요한 나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1장 내 생각을 믿고 용감하게 나아가자, 2장 결코 순응하지 말고 내 참모습을 찾자, 3장 나를 신뢰해야 삶의 혁명이 일어난다, 4장 동정받거나 구걸하지 말고 홀로 서라'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에머슨은 천재적인 작품에서는 항상 우리가 거부한 생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은 가까이하기 어려움 위엄을 안고 우리에게 돌아온다. 에머슨은 바로 이것이 위대한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감동적인 교훈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술 작품은다른 사람들이 반대 의견을 외칠 때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우리의 느낌을 기분 좋게, 그리고 확고하게 고수하도록 가르친다는 에머슨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에머슨은 이런 교훈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내일 어떤 낮천 사람이 우리가 계속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자기 것인 양 능수능란하게 말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우리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에머슨은 모든 맹세에서 자유롭고,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편견도 없고, 매수당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대상을 관찰하고, 이와 똑같은 태도로 대상을 또 관찰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람은 언제나 강력하다고 말한다. 에머슨은 이런 사람은 자기 옆으로 지나가는 모든 일에 의견을 내놓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의견은 가적이라기보다는 꼭 필요한 의견이며, 듣는 사람의 귀에 화살처럼 꽂혀서 그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에머슨의 글이 눈길을 끈다.

에머슨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에머슨은 그 목소리는 우리가 세상에 들어서면 희미해지다가 더는 들리지 않고, 어느 사회든 각각의 구서원이 용감한 성인으로 자라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민하고 이야기한다.

"사회는 주식회사나 마찬가지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주주에게 줄 빵을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빵을 먹는 사람의 자유와 교양을 희생하기로 합의한다. 여기에서 가장 요구되는 미덕은 '순응'이며, 자리 신뢰는 천대받는다. 사회는 현실이나 창조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명목과 관습을 좋아한다."

에머슨은 인간은 소심하며 남에게 잘 미안해하며, 더는 꼿꼿하게 서지도 못하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지도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그저 성인이나 현자의 말을 인용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에머슨은 그는 풀잎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장미 앞에서도 부끄러워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창문 아래에 피어 있는 장미들은 더 먼저 핀 장미나 더 예쁘게 핀 장미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에머슨의 글이 인상적이다. 에머슨은 장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오늘' 신과 함께 있다고 말한다.

"장미에게 시간이란 없다. 단지 장미가 있을 뿐이다. 장미는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완벽하다. 장미는 잎눈이 트기 전부터 생명력이 넘친다.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해서 생명력이 더 왕성해지는 것도 아니고, 잎이 다 떨어지고 뿌리만 남았다고 해서 생명력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장미의 본성은 충족되며, 장미는 모은 순간에 자연도 충족시킨다.

하지만 인간은 현재를 미래로 연기하거나 과거를 기억한다. 그는 현재에 살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풍요로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며 통탄하거나, 미래를 내다보려고 발끝으로 선다. 그도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해서 자연과 더불어 현재에 살지 않는다면, 행복해지거나 강인해지지 못할 것이다."

에머슨은 미술, 공부, 자선 행위를 위해서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은 무작정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에머슨은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거대한 것을 찾으리라는 희망은 품지 않고 외국에 가길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에머슨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또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여행하면서 오히려 자신과 멀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에머슨은 그런 사람은 젊더라도 오래된 것을 사이에서 늙어버린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의지와 정신은 고대 도시 테베와 팔미라에서 그 도시들만큼이나 낡고 황폐해지고, 여행자가 폐허가 된 곳으로 폐허를 들고 가는 셈이라는 에머슨의 글이 인상적이다.

에머슨은 우리의 종교, 교육, 미술은 밖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의 사회정신도 그렇다. 에머슨은 사람들은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고 우쭐대지만, 인간은 아무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에머슨은 사회는 절대로 발잔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에머슨은 설령 한쪽으로 진보하더라도 다른 쪽에서는 그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퇴보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으며, 미개한 사회가 문명화되고, 기독교화되고, 풍요로워지고, 과학적으로 변했지만 이런 변화가 개선은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인가를 얻으면 무엇인가를 잃게 되고, 사회는 새로운 기술을 얻는 대신 오래된 본능을 잃어버린다는 에머슨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미국인과 뉴질랜드 원주민의 대비는 얼마나 극명한가! 미국인은 옷을 잘 차려입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한다. 주머니에 시계, 연필, 환어음을 넣고 다니기도 한다. 반면에 벌거벗은 뉴질랜드 원주민은 재산이라고는 몽둥이, 창, 거적, 그리고 스무 명씩 함께 자는 오두막에서 자기 몸 하나 누울 자리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건강 상태를 비교해보면 백인이 원시적인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머슨은 힘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자기가 선을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서 약해진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몸을 던지다고 말한다. 에머슨은 그러고는 즉시 자신을 바로잡고, 꼿꼿하게 서고, 사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두 발로 서는 사람이 물구나무서는 사람보다 강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한다.

"운이라고 불리는 것을 전부 사용해라. 사람들은 대체로 행운의 여신을 상대로 도박을 한다. 그렇게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모든 것을 얻거나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만 운으로 얻은 것은 내버려두고, 신의 대리인인 원인과 결과를 다뤄야 한다. 굳은 의지로 일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라. 그런 행동은 운명의 바퀴를 사슬로 묶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바퀴가 돌아갈까봐 두려워할 필요 없이 편히 지낼 수 있다."

<에머슨의 자기 신뢰>는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의 역작으로, 자기를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힘을 깨닫고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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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 일상, 영감의 트리거
정진 지음 / 디페랑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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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의 일상과 예술에 대한 고뇌를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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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 일상, 영감의 트리거
정진 지음 / 디페랑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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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은 작가 정진의 일상의 고민의 흔적들, 예술가로서 미술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에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목차를 구성하는 '마음 풍경', '영역 인간', '남겨진 감정들'은 작가 정진의 미술작품 제목과 동일하며, 작업하며 적은 노트들을 바탕으로 하였다.



정진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지만, 자신의 일이 운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운명론자가 아니라 그것을 결정이었다는 정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정진은 어려서부터 미술작가, 글작가가 되겠다 희망한 적은 없으며, 점점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고, 순간순간 결정했다고 이야기한다. 미술과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그것들을 현실에 옮겼고, 결국 우리는 운명보다 매일의 힘을 믿는다는 정진의 글에 공감한다.

정진은 '와장창' 하고 깨어져야만 화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진은 '파사삭' 하는 순간, 주변이 균열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것을 꽤 오랫동안, 누군가를 누군가를 참아 왔다는 것이며, 무너짐은, 짜증 섞인 찌푸림, 거슬리는 한마디, 별것 아닌 거북함에서 시작한다는 정진의 글이 인상적이다.

정진은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미술가, 그 촉발제, 작가에게 생각의 트리거는 영감이라 불리지만, 그리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정진은 영감은 하나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생각이 어느 순간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순간적으로 대입되는 것에서, 다른 하나는, 순간 튀어나오는 생각의 파편, 그것들이 빛이 날 때까지 다음어야만 무엇이 되는 두 가지 길로 찾아온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결국 영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앞뒤의 지속적인 시간들, 준비왼 사람에게만 보이며, 그것을 가꾸는 사람만이,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시간들보다 영감의 순간에 더욱 관심 있어 보이지만, 천부적 재능이나 행운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영감을 실제로 만드는 것은 성실력이라는 정진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정진은 자신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우리는, 타인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정진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들을 정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얼굴과 이름만 그 사람인, 그와는 다른 누군가를 만든다. 정진은 자신 안에서 상대는, 마치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살아가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말한다. 정진은 가족조차 만들어진 타인일 수 있고, 나의 생각이, 그가 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철들다는 것은 포기의 영역으로 본인의 의지로 조절 가능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은 조금 혹은 많이 강요와 강제를 가진다는 정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정진은 내 것을 양보하면 철들었다 하고, 눈치 보기 시작하면 철들었다 하고, 기댈 곳 없으면 철들었다 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포기의 영역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의지를 꺾어 너를, 상황을, 자신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의지.

그래서 어떤 경우 포기는 배려이지만,

어떤 경우 그것은 죽임이다.

내 안의 꿈틀대는 어떤 것을 죽이고 나면, 철들었다 한다.

한동안 착한 어른이고 싶었던 나는, 곧잘 학살자였다."

정진은 예술가가 감정만을 전달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한다. 정진은 물론, 그런 예술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런 미술가가 아닐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자신의 작품이 방아쇠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정진의 글에서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미술가나 그들의 작업을 보며, 무언가를 느껴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의 작품이 방아쇠가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의 어떤 생각을 죽이는,

당신의 어떤 생각을 깨우는."

정진은 예술이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항상 주변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지만,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거대한 존재. 정진은 그녀를 매일 보는 것은 생활의 일부이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에게 세상을 있게 한, 그 처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가 함께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어머니란 존재가 그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는 것도 아니라는 것조차, 예술과 닮았다고 말한다.

"인간이 만든 것들이 모두 그렇듯,

그녀는 위대한 동시에 나약하다.

그러니 신의 프레임을 씌워 그 어깨를 무겁게 하지 말자.

그녀를 도우라.

어머니도, 예술도."

정진은 SNS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 주는 장터 같다고 말한다. 정진은 SNS에는 온갖 종류의 욕망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마치 기원전 4세기 그리스, 프락시텔레스의 조각상들을 닮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SNS 안에는 더 멋진 내가 있고, 좋고 나쁨을 떠나 인간 본능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진실된 픽션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최첨단의 즐거움은 항상 본능에 충실하다는 정진의 글이 인상적이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선망하게 하는 그 모습 이면에, 대상의 단점을 모조리 빼버리고, 그 안을 완벽으로 채워 넣은 인간의 모습이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바랐다는, '예술에서의 영혼의 활동'은 기대할 수 없다.

어차피 예술의 영역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곳은 개인의 개성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성향이, 아름다움 안에 갇힌다.

이곳의 개성과 아름다움은 현실세계와 다른 정의를 가진다.

정확히는, 보여지고 싶은 곳만을 선별적으로 발췌한 아름다움.

마치 샤랄라하게 각색된 자전적 소설처럼, 드러낼 단점까지도 섬세하게 각색된다."

정진은 스스로의 좌표를 찍는다는 것은, 넓은 세상 속에 나를 작은 점으로 표현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겠다는 의지라고 말한다. 정진은 나의 정서적 물리적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도, 즐거운 일도 아니겠지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면,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시작할 수 있고, 시작은 한번이 아니라 수시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전에 영역 동물이라고 말한다. 정진은 인간 삶의 형태는 야생동물처럼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산에는 호랑이가 다니는 길, 토끼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물리적 영역 뿐만 아니라 정서적 영역에서조차 정해진 길만을 다니는 듯 하다고 말한다. 정진은 내 것이 소중할수록 다른 것들을 배척하고 조롱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우리 대부분은 일반적인 사람들, 이렇게 우리는 영역 동물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지키려 평생을 바친다. 새로운 생명체가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위태롭고 날카롭다.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온 생명체에 민감하다. 필요하다면 잔인할 수 있다. 그것에는 예외가 없다. 그 안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역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그것을 침범당하면 날선 불편함을 느끼니까.

동물들은 그 불편함을 눈에 보이게 표출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아마도 문명인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수 없나 보다. 그러니, 인간의 민감함은 동물들의 것과는 다르게 발현된다. 자라며 각자의 사회적 영역을 확보하지만, 다시금 그들만의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뱀처럼 똬리를 튼다."

정진은 잃어버렸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상태의 없음이고, 버렸다는 것은 의지를 가진 상태의 없음이라고 말한다. 둘의 공통점은 현재 내게는 없다는 것이다. 정진은 우리는 꿈, 삶, 물건, 사람, 감정 등의 일부를 시간과 함께 하얗게 잊곤 한다고 말한다. 정진은 그것은 마치 마법 같아서 갑자기 없는 것이 되고, 그렇게 없는 것, 잊혀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고뇌한다.

"인형은 49개로 하얗게 복제되었다.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흼은, 그 대상의 경중과 상관없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을 뜼한다. 숫자 49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 째 되는 날 지내는 재를 뜻한다. 사십구재는 윤회를 믿는 이들이, 죽은 이가 후생에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복을 비는 행위이다.

이 작품은, 종교 없는 작가가 지금 곁에 없는 것들의 명복을 비는 일종의 의식이겠다."

정진은 누군가의 질문이 내 안의 생각이나 감각을 일깨우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의 질문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그것이, 처음 듣는 것도 아닌 그것이, 어느 날의 나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진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거나,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꺼내어 본 적 없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 질문에 가르치거나 일깨우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소심하고 예민한 반항아인 나는 단번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리도 생각도 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질문도 어떤 날에는 다르게 온다. 그러면 그날 저녁 그리고 그 후로 몇 날 동안, 그것은 내 글과 미술의 시작이 된다."

정진은 미술가가 직업인 자산에게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권한다고 말한다. 정진은 작가의 노트를 꼼꼼히 읽고, 작품을 천천히 보는 것, 이 두 행위가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정진은 미술이 어려운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보고, 미순을 쉬워야 한다고도 말하지만, 미술은 열린 예술이라고 말한다. 공부하지 않은 것을, 보는 순간 모두 이해하고 싶은 것은 욕심이며, 그것은 좀 염치없다고 이야기하는 정진의 글이 인상적이다. 미술을 감상하는데 공부까지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어디까지 감상하고 싶으신데요?"라고 답하는 정진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정진은 예술과 문학 좋아하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이 없다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것과 좋은 사람인 것은 비례하지 않는다. 인간성은 예술과 문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진은 예술과 문학은 항상 변화의 기회를 주고, 기회 속에 살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기회 없는 사람들의 불변보다 더 큰 슬픔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자연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사랑스러우며, 본질적으로 무섭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것에는 감정이 없다고 말한다. 정진은 자연은 의지 없이 이치를 따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산과 바다, 숲 만의 일이 아니고, 우주도 입자도 자연스러우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를 위해 서로를 돕고, 그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움이라는 정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정진은 공존은 다양한 모습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각자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진은 작은 것과 큰 것, 연결된 것과 단절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새 것과 헌 것 등 언뜻 반대되어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이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공존의 모습이며, 자연스러운 만물의 생존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미술의 존재 이유 한 가지는 화두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진은 그것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게 느끼게 하고 가치관이나 행동이 변화할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좋은 미술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주는,

더 나은 사회가 될 기회를 주는, 그런 일.

그래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런 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졌다는 믿음이 굳다.

미술의 힘을 믿으니까."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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