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 - 나도 몰랐던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언어의 심리학
가바사와 시온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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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막연했던 고통도 일단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고 왜 힘든지 그 이유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언어화'의 놀라운 힘이다. 30년이 넘는 임상 경험의 정신과 의사, 가바사와 시온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의 저자 가바사와 시온은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만 터득해도 상처의 90%가 치유된다고 말한다. 모든 심리 상담의 1차 목표가 바로 '언어화'라는 것이다. 만약 언어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과 글과 행동으로 표출하는 능력은 심리적 안정감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잘 보여준다.

저자 스스로가 자신의 임상 경험 30여 년, 그리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약 9년 동안 고민 상담에 답한 4000개의 영상 내용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밝힌 이 책은 2022년 11월 출간 이후 아마존 종합 10위에 등륵했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또한 그 인기를 입증하듯 일본 글로비스에서 주관하는 '독자가 뽑은 비즈니스서 그랑프리 2023 자기계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고민이란 건 뭘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걱정되는 일, 마음의 고통'이라고 나오는데, 저의 해석을 조금 덧붙이자면 '곤란하고 괴로운 문제에 부딪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정체, 제자리걸음' 상태가 바로 고민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내담자를 많이 만나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있다면 상황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고민은 서서히 가벼워집니다. 바로 이 점이 키포인트입니다."

이 책은 '1장 어차피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2장 고민을 분석하는 3가지 축, 3장 고민을 해소하는 3가지 방법, 4장 관점을 살짝 바꾸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관점 전환 #1), 5장 혼자 고민하지 않기(관점 전환 #2), 6장 말로 표현하는 순간 고민이 사라진다(언어화 #1), 7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라(언어화 #2), 8장 행동하면 고민은 사라진다(행동화), 9장 고민이 사라지는 궁극의 방법'이라는 9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고민의 3가지 특징으로 첫째,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다, 둘째,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셋째, 생각이나 행동이 정지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서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이것을 인정하기만 해도 마음은 훨씬 편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근본적인 원인은 일단 생각하지 말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고민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 전환, 언어화, 행동화라는 3가지의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마음속의 스트레스, 답답함, 불안을 제거하여 '해소'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고민을 통해서 어제 하지 못했던 일을 오늘 할 수 있게 되거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성장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고민이 있다는 것, 자신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꼭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고민에 잠식당하지 말로 고민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고민은 통제, 시간, 자기 축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중에서 첫째, 통제감을 되찾는 3가지 말로 '1) 어떻게든 되겠지, 2) 할 수 있다!, 3)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두 번째 시간 축에서 공황 상태에 빠진 뇌를 리셋해주는 단어로 '그건 그렇고'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 번째 자기 축에서는 고민의 '자기 비율'을 생각하고 인간 관계는 소통, 즉 캐치볼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든 되겠지'는 매우 낙관적인 말입니다. 불안감을 감소시키고 안도감을 줍니다. 앞서 몇 번 언급했던 최복 탄력성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마음의 힘입니다. 낙관적인 사람일수록 회복 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즉 낙관적인 말을 하면 비관을 낙관으로 바꾸고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건 그렇고'는 전국 최대의 불교 연구가라 불리는 '스즈키 다이세쓰'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고향인 가나자와에는 스즈키 다이세쓰관이라는 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을 방문하니 '그건 그렇고'라는 친필 족자가 잇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중히 들은 후 "그건 그렇고"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조언을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흔들리는 차원의 문제는 신경 쓰지 말로, 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그 이상의 뭔가가 본질 아닐까. 사물의 본질은 원래 분멸하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그건 그렇고'라는 말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고'라는 말은 문제의 차원을 전환시킵니다. 이때 한 가지 중요한 건 그 이전까지 나누던 이야기,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자는 빠른 시간 내에 스루력을 키우는 마법의 말은 첫째, "그렇군요", 둘째, "그런 사람도 있구나", 셋째,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특히 저자는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하거나 이상한 말을 할 때는 "그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말하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도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민을 재설정하는 3가지 질문으로 '첫째, 내가 정말 걱정하는 것을 뭘까?, 둘째, 지금 나의 고민이 해소되면 만족할 수 있을까?, 셋째, 지금 나의 고민이 해소되면 행복할까?'가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이 질문을 제대로 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본질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관점을 바꾸는 3가지 기술로 '첫째, 중립 상태에서 보기, 둘째, 멀리서 보기, 셋째, 극단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만사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선택지는 극단적인 두 가지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통제할 수 없는 느낌이 강해지고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독서가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 속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지금은 불가능해도 1년 후에는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 있다는 미래의 나를 믿고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심리상담의 첫 번째 목표는 '언어화'인 이유는 말로 하기만 해도 '무의식'이 '의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언어화란 이렇게 무의식 깊은 곳, 예를 들어 바닷속 깊은 곳에 잠겨 있는 침몰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다. 그저 막연했던 일도 언어화를 하게 되면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막연했던 고민을 언어화할 수 있게 되면 스스로 분석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스스로 해결법을 찾아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고민이 많은 사람의 뇌에서는 불안, 긴장으로 뇌 피로도가 심해서 작업 기억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매일 '힘들다, 괴롭다'는 고민이 쌓이면 뇌가 피로해져서 뇌 안의 그릇이 2개 또는 1개로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애를 써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면서 작업 기억이 꽉 차면 더 이상 생각을 진전시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계속 맴도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언어화'라고 말한다.

"고민이 있을 때는 그것을 노트에 써보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단 노트에 하나하나 기록하다 보면 나의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고, 대처법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뇌에는 3개의 그릇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고민거리가 3가지라면 뇌가 꽉 차서 더 이상 여유를 갖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미 작업 기억 용량이 꽉 찼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빈틈이 없는 거죠. 이렇듯 고민이 많을 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뇌 구조' 때문입니다. 쓰기와 말하기라는 언어화 작업은 꽉 차 있는 뇌의 메모리를 덜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쓰고 말할 수 있게 되면 뇌가 가벼워지고, 훨씬 더 차분하고 냉정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저자는 언어화라는 표현은 '말로 표현한다'는 부분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즉, '말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냥 막연한 말하기, 쓰기가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고민과 괴로움, 답답함을 말로 표현하고 내뱉는 것, 생각이 말이 되는 것, 생각을 말로 하는 것이 언어화이다. 저자는 이로 인해 고민이 해소되고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말로 하는 것(언어화)'을 의식하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어떤 문제나 고민을 방치하면 점차 스트레스가 되고, '힘들다, 괴롭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쌓인다고 말한다.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들어가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결국 폭발 직전 상태가 된다. 그래서 풍선이 부풀어 오르기 전에 안에 있는 에어지를 밖으로 빼줘야 한다. 저자는 이것을 '가스 빼기'라고 부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가스 빼기'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푸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힘들고 괴로운 마음을 말로 잘 표현만 해도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이 빠져나간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가스 빼기'의 특징은 '첫째,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말하기만 해도 90%가 사라진다'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일으키는 '가스 빼지'는 첫째, 험담, 둘째, 부정적인 경험의 반복, 셋째, 자기 비하'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부정적인 경험은 딱 한 번만 이야기하고 잊어버릴 것. 이것이 바로 가스 빼기의 '한 번만' 규칙입니다. 험담이나 괴로운 경험을 반복해서 말하거나 장시간 이야기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편도체를 쉽게 흥분시켜 불안 체질로 만듭니다. 쉽게 불안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스스로에게 좋지 않습니다. 실패하거나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금방 기운을 회복하는 사람과 계속 부정적인 기운에 질질 끌려다니는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는 부모나 소중한 사람의 죽음, 혹은 10년 넘게 같이 살았던 반려동물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는 감사 편지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무덤이나 유골함 앞에 헌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상대방이 나에게 해준 일에 대해 진심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면 일단락을 맺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긍정적인 감정, 생각, 감사하는 마음을 언어화하면 소중한 사람이나 반려동물의 죽음도 서서히 받아들이면서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따뜻한 위안을 선사한다.

저자는 '쓰기 언어화'에 대한 사례로 1980년대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가 PTSD 치료를 위해 고안한 '표현적 글쓰기'라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생각한 것을 글로 써서 언어화하는 치료법이다. 이 치료법은 긍정심리학 분야에서 여러 실험을 하고 있는데 자기 통찰력 향상, 건강 증진 효과, 수면의 질 개선 효과, 우울증 개선, 행복감 향상 등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저자는 표현적 글쓰기 방법으로 '1) 글을 쓰는 시간은 언제든 좋다, 2) 그날 있었던, 스트레스를 받은 사건이나 그때의 감정에 대해 쓴다, 3) 종이에 손으로 쓴다, 4) 쓴 날짜와 시간을 기록한다, 5) 자신의 감정을 가능한 한 자세하게 쓴다, 6) 글씨는 서툴러도 괜찮다, 7) 긍정적인 사건이든 부정적인 사건이든 상관없다, 8) 시간은 15~20분 정도(5분 이하도 좋다)가 좋다, 9) 가능하다면 습관으로 만든다(계속할수록 효과가 크다)'을 소개하여 눈길을 끈다.

저자는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내 몸을 돌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뇌 피로는 자각하기 어렵다. 일이 너무 바쁘거나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날이 며칠만 지속되어도 뇌는 피곤 모드가 되어 본래의 기능, 능력을 100%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내 몸을 잘 돌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민이 사라지는 궁극의 방법 첫 번째로 포기하기에 대해 말한다. 사건이나 사물을 분명히 본다는 것은 선입견과 집착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는 '중립적으로 보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포기'라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포기는 '중단'이나 '내던지기'와는 다르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고민이 사라지는 궁극의 방법 두 번째로 그만두기, 버리기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물러나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며, 지금은 져도 다음에 이기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고민이 사라지는 궁극의 방법 세 번째로, 친절, 감사, 공헌에 대해 말한다. 고민이 많은 사람은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되어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먼저 '기브(give)'하면 '기브'가 돌아온다. 저자는 실제로 자신이 대가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타인에게 공헌할 수 있게 되자 점점 더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포기란 계속 고민하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는 것입니다. 감정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행동이 아니라 매우 긍정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민이 사라지는 궁극적인 방법입니다."

<말로 표현하는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는 말만 해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문장들을 통해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여 고민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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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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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랐던 우리말의 어원을 이해하고 풍성한 어휘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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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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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과 글에는 근원이 있다. 어원을 공부하는 일은 말의 근원은 물론 연관된 문화 지식과 역사까지 알게 되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어원의 발견>은 우리가 평소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책이다. 1부에서는 의외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2부에서는 자주 쓰는 한자어 중 어원을 알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어를 선별하여 실었다.

낱말이나 관용어의 어원을 파악하면 글을 쓰거나 대화를 나눌 때 상황에 적확한 말을 골라 쓸 수 있다. 누군가의 성장 과정이나 속마음을 알면 그 사람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매일 조금씩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휘의 폭과 깊이가 늘어 언어 사용에 대한 자신감도 높아진다.



저자는 '괴롭다'의 '괴'는 '쓰다', '쓴맛'을 뜻하는 한자 '苦(쓸 고)'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상태'를 뜻하는 '고롭다'가 '괴롭다'로 음이 변했다. 쓴 것을 먹으며 얼굴을 찌푸리는 것처럼 '몸이나 마음이 불편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저자는 이 말은 조선 세조 때 문신 황수신 등이 왕명에 따라 <묘법연화경>을 변역한 <묘법연화경인해>(1463)에 처음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낙인(烙印)은 쇠붙이로 만들어 불에 달구어 찍는 도장을 이르는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다양한 용도로 쓰였으며 가장 주요한 쓰임새는 나무 호패에 관인을 찍는 것이었다. 저자는 조선 시대에는 16세 이상의 남자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호패를 지니고 다녀야 했는데, 호패를 만들 때 직사각형으로 앞면에는 성명, 나이, 태어난 해의 간지를 새기고 뒷면에는 해당 관아의 낙인을 찍었다고 말한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도 낙인을 찍었으니 예컨대 장롱 뒷면에 낙인을 찍어 만든 이를 밝혔고, 가축을 가진 사람은 황소 엉덩이에 낙인을 찍어 누구 소유인지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낙인을 찍는 일도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죄인에 대한 낙인은 사람들에게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했고, 한 번 찍힌 낙인은 지울 수 없는 까닭에, '낙인찍히다'라는 관용어는 '벗어나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가 내려지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나중에는 '찍히다'로 줄여서 사용했으며, 항상 주시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음을 강조할 때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뒤풀이'는 뒷전풀이의 와전이라고 말한다. 뒷전풀이는 원래 무속 용어였다. 굿을 다 끝낸 무당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여러 신을 배웅하는 절차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마무리'를 의미하는 속어로 변했다. 저자는 농악이나 탈춤 따위 놀이 뒤에 구경꾼들과 함께 춤을 추거나 즐기는 일도 뒤풀이라고 말했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행사 끝난 후 참여한 사람들이 친목을 다지기 위해 갖는 모임을 가리키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 때 '오지랖 넓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웃옷이나 웃도리에 입는 겉옷 앞자락을 가리키는 오지랖과 관련되어 생겼다고 말한다. 특히 활기차게 걸을 때 오지랖이 더욱 크게 펼쳐지며 그 넓이가 한껏 드러난다. 옷의 앞자락, 즉 오지랖이 넓으면 다른 옷도 덮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모양을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의 성격에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상대의 오지랖은 당사자에게 번거로운 일이기에, '오지랖 넓다'라는 말은 '주제넙게 아무 일에나 쓸데 없이 참견하다'라는 뜻으로 통하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메인 데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는 홀몸을 흔히 '외톨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비늘줄기나 송이 안에 마늘, 밤알 따위가 한 톨만 들어 있는 모양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여러 알이 들어 있어야 할 곳에 달랑 한 알만 든 모습이 외롭고 처량해 보이기에 다른 짝이 없이 홀로만 있는 사람에게도 빗대어 쓰게 됐다. '외돌토리' 또는 '외톨박이'라고도 한다. 저자는 2002년 무렵, 우리나가에도 은둔형 외톨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조사 결과가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은둔형 외톨이'는 일체의 사회 활동을 거부한 채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해 나눠지는 한계를 '경계(境界)'라고 한다고 말한다. 경계는 감각기관 및 의식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을 이르는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인과응보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도 경계라고 한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처지는 다른 세계와 구별되므로, '경계'는 사물이 나뉘거나 분간되는 한계를 뜻하는 말로 쓰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물질적, 공간적 현실 뿐만 아니라 추상적 관념에서도 경계라는 말을 쓴다.

저자는 '기특(奇特)하다'는 본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일을 가리키는 말로 '매우 드물로 특이한 일'을 뜻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주로 어린이를 칭찬할 때 쓰인다. 저자는 어린아이 생각으로 쉽지 않은 일을 했을 때 보기 드문 일이기에 '기특'이라는 말로 놀랍고도 대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말이나 행동이 특별하여 귀엽게 보일 때 '기특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심심풀이로 아무 데나 함부로 쓴 글씨나 그림을 가리키는 '낙서(落書)'라는 단어는 일본 에도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무사의 지배에 신음하던 힘없는 백성이 불만을 배출하는 수단으로 쪽지를 이용한 일이 시초였다. 즉 무사 계급의 억압, 지배계급의 수탈과 부조리함을 적은 쪽지를 길거리에 슬쩍 떨어뜨린 '오토시 부미'가 낙서의 원조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오토시 부미는 뒷날 특정인의 집에 던져 넣은 협박 쪽지나 투서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였다. 하지만 떨어뜨린 쪽지와 투서의 구분이 필요해짐에 따라, 사람들이 집어 가기 쉽도록 눈에 잘 띄는 길에 떨어뜨린 쪽지는 '낙서', 라쿠쇼'라고 구분하여 말했다. 이후 아무 곳에나 즉흥적으로 쓴 글이나 짧게 쓴 단상도 낙서라고 말하게 됐다.

낙서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전해지면서, '아무 데나 멋대로 쓴 글'이라는 의미로 통용됐다. 학생이 칠판에 적은 장난스러운 글이나 그림도, 연습장에 아무렇게나 끄적거린 글도, 화장실 벽에 적어 놓은 의미 없는 농담도 모두 낙서라고 한다."

저자는 '찰나(刹那)'는 산스크리트어 '크샤나'를 음역한 불교 용어로, 한 생각을 일으키는 짧은 순간을 뜻하는 말이라고 전한다. 불교에서 손가락 한 번 튕기는 동안의 아주 짧은 시간 단위를 탄지경이라고 하는데, 탄지경보다 65분의 1이나 짧은 시간이 '찰나'다. 이는 인체가 느낄 수 없을 만큼 짧게 지나가는 순간인 셈이며, 한 사람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시간은 광대한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한갓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어원의 발견>은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말의 어원을 들여다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단어나 관용구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흥미롭다. 이 책은 단어 하나 하나를 사용할 때 어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정확하고 풍성한 어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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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들 - 돌봄에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
권범철 외 지음,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기획 / 모시는사람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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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적 시선을 통해 돌봄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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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들 - 돌봄에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
권범철 외 지음,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기획 / 모시는사람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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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들>은 누구나 돌봐야 하는 사람, 동물, 사물이 있거나, 머지않은 장래에 나에게도 돌봄이 필요핟고 예감하며 살아가는 돌봄의 시대에, 돌봄의 다양한 얼굴을 가시화하며, 편중이나 불평등을 해소하고, 생명력을 활성화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담고 있다. 정동의 관점으로 이해함으로써, 누구나 돌봄의 주체가 되고 또 동시에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돌봄에 대한 편향적, 편파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번아웃이나 감정 파산을 야기하는 독박 돌봄을 방지하며, 국가나 사회적 돌봄이 미치지 못하는 돌봄 소외지대 해소를 기획한다. 절대돌봄(유년기)-자기돌봄(청년기)-서로돌봄(커플기)-배치돌봄(장년기)-절대돌봄(노년기)의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사랑과 돌봄과 연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방안, 나아가 인류문명이 야기한 기후위기나 생명위기까지를 돌볼 근거와 방법을 모색한다. 돌봄의 현장성, 구체성, 다양성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미학화, 사회화하고 지속가능성과 확장가능성을 열어낸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돌봄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돌봄력'이 충만한 사회-세계를 기약하고 전망한다.



이 책은 많은 초로기 치매 당사자들이 사회적 관계가 위축되고 고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이때 일은 곧 고립을 해소하고 사회적 관계에 해복되며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무엇이다.

"치매가 시작된 당사자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주변 사람들은 낯설어진 당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서서히 거리를 둔다. 갈 곳도 마땅치 않다. 돌봄 기관들은 대부분 신체가 노쇠한 노년의 치매 당사자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인지 기능이 저하됐을 뿐, 아직 팔다리에 힘이 넘치고 활동적으로 무언가 하고 싶은 초로기 치매 당사자에겐 맞지 않는다. 어떨 땐 어르신들이 '젊은데 왜 이런 곳에 오냐'며 타박하는 경우도 있으니, 초로기 치매 당사자는 몸도, 마음도 오갈 곳이 없다."

이 책은 픔을 부정하는 사회는 반대로 건강한 몸을 표준으로 삼는 사회이며, 이런 사회에서 아픈 것은 자기 관리의 실패이자 개인적인 일탈로 낙인찍힌다고 말한다. 건강은 선이고 질병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강화되며, 아프다는 것이 곧 실패한 삶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아픈 몸 노동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간과 노동의 속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말한다. 기존의 경쟁구도와 성과 중심의 구조가 변화해야 하고, 각자 몸의 속도에 맞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은 치료와 돌봄, 노동을 병행하는 하루 일과를 상정하고 면접, 업부 매치, 협상 전반에 적용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픈 몸을 표준으로 노동을 다시 사유하 때, 모두에게 필요하고 적용할 수 있는 노동과 노동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하게 이분화된 노동의 위계와도 연동될 수 있다.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뿐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여성과 남성, 노인과 젊은이 등 후자의 노동에 비해 전자의 노동이 평가절하되거나 차별받는 상황 자체와 연동될 수도 있다. 표준과 정상을 규정하는 권력을 뒤흔든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다."

이 책은 인간은 돌봄 없이는 어떠한 존재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생명, 사물, 자연, 기계를 일으켜 세우는 기본적인 행위 양식이자 존재력을 북돋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 책은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기본적인 행위임에도 돌봄의 사회적 가치가 저평가되는 이유는 돌봄의 작동원리가 재귀적인 반복, 제자리고 돌아오는 원점회귀성, 비가시성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돌봄은 자본주의가 보기에는 성과로서의 실물이 전혀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는 희생이나 젠더불평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한다.

"먼저 재귀적인 반복은 아침식사 다음에는 점심, 저녁이 행렬을 이루어 반복되는 양상이거나, 빨래를 걷고 개고 나서 다시 새 빨래는 내거는 등의 행위가 반복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재귀적인 반복의 양상은 순환적이지만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 나는 반복이기 때문에, 살림이나 돌봄에는 얼마간의 화음과 리듬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원점회귀성은 돌봄에서 가장 기본적인 양상으로, 어제 놓여 있던 곳에 다시 놓아야 하기 때문에 전혀 변한 것이 없거나 성과 자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외부에 나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살림이 전혀 변한 것 없는 그대로이고 아무런 노력도 가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마지막으로 비가시성에 있어서 돌봄은 그림자노동으로 불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동이기 때문에 가치가 저평가되거나 아예 가치가 누락된다."

영 케어러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콜, 약물의존을 가진 가족 등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 또는 '젊은 사람'(영 어덜트 케어러)를 가리킨다. 좁게는 가족 중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가사, 간병, 감정 노동 등을 수행하는 '18세 미만의 아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은 영 케어러 자체가 한국사회에서 돌봄을 가족 내에서 해결한다는 방증인 동시에 영 케어러들의 형제자매 의존은 또 다른 영 케어러를 여러 명이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돌봄을 사적 영역에 내맡기고 개인의 의지에 따라 돌봄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고유한 삶의 영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청년 담론에 휩쓸려 영 케어러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봄 관점에서 청년 돌봄과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있도록 정보와 참여 경로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 책의 글귀에 공감한다. 정부 주도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주체가 되어 영 케어러의 기본권과 시민권을 확보해야 한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아동, 청소년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이는 단순히 시점의 문제가 아니다. 아동, 청소년이 청년이 될 때까지도 돌봄을 수행한다는 것은 돌봄이 장기화된다는 뜻이며, 유년기에 돌봄 역할을 수행하는 경험은 이후 청년기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첫째는 영 케어러의 세대적 특성이다. 90년대생 영 케어러의 형제자매는 더 이상 전통사회와 같은 대가족 내에서 돌봄을 수행하지 않는다. 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베이비부모 세대만큼 형제자매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부모 돌봄을 수행하는 데 오롯이 혼자서 감당할 몫이 상당히 증가한 것이다. 둘째, 가족 내에서 돌봄을 수행하면 여전히 가족의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잘 드러난다. 아픈 가족이 발생하는 가족 위기가 닥치면 제도 등 외부에 의존하기보다 우선적으로 다른 가족의 노동력에 의존하게 된다."

이 책은 지난 20여 년 동안 노인돌봄에 대한 인식과 가족 내 주돌봄자의 역할이 상당히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돌봄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혀졌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의 노인돌봄만 하더라도 여성, 주로 그 집안의 장남이나 아들의 배우자인 며느리가 맡아서 수행했으나, 친자녀 돌봄 규범이 확산되었다. 또 노인들이 돌봄을 가족에게만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사회 서비스와 제도를 이용하고 있으며, 비혈연 관계자에게서도 돌봄을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이는 새로운 돌봄 형태의 등장, 돌봄 유형의 다양화를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돌봄의 정책이나 제도는 진행형 위주라고 말한다. 현재 돌봄 중인 이들이 돌봄을 '잘'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돌봄이 종료된 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사회적 관심은 진행형보다 적다고 이야기한다. 돌봄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정책의 근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나다. 이 책은 이들이 돌봄을 '잘'하기 위한 지원보다 돌봄제공자가 어떤 경우든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고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최근 돌봄 관련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가부장,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자본, 국가 등 그동안 이 세계 시스템의 기초가 되어 온 축들을 복잡하게 환기시켰다고 말한다. 여전히 가족 내 돌봄은 여성이 전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더구나 가족 내 돌봄이 외주화된 양상, 즉 돌봄 서비스 사용자와 제공자 사이의 갈등도 현저하다. 이 책은 이제까지 서사화되지 않아 왔던 영역, 즉 돌봄 시장 안에서 돌봄노동을 둘러싼 여성들끼리의 갈등과 신경전도 생생하게 전개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산후조리원, 요양병원 같은 기관과 그 안에서의 계층, 계급 배치도 및 개인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어떻게 자본주의적 가치가 가로지르는지 신랄하게 폭로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에 따라, 소설들에거 일별할 수 있는 돌봄 현장은 다음과 같은 식이었고 말한다.

"우선 돌봄의 책임은 여전히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그와 관련하여 돌봄 수행의 여성 젠더 편향성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셋째, 돌봄의 외주화는 자연스러워졌다. 각종 도움 서비스는 이미 커다란 시장, 산업의 영역 속에 놓이게 되어 버렸다. 이때 돌봄은 저렴한 노동력 상품으로 통용되며 그 행위 자체가 폄하되는 악순한 속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돌봄을 수행하는 일은 여전히 기피되거나 폄하되는 일을 벗어나지 못한다. 넷째,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돌봄이 그것을 수행하는 측의 입장 위주로 사유되다 보니, 돌봄의 또다른 주체인 돌봄 받는 측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돌봄이 관계적이며 정동적인 활동이라는 점도 망각된다."

이 책은 여성의 일이자 사적인 활동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돌봄을 이제는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돌봄의 사회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상호역하로 작동되는 제대로 된 돌봄의 시작이라는 이 책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돌봄에 대한 첫 번재 오해는 돌봄이 여성적인 일이며 나약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라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이다. 오래된 가부장제 관습에서 돌봄은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집안일이 되어 여성의 성역할로 강요되었다. 여성의 역할이 된 돌봄은 사회활동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일이면서 공동체도 정부도 관여하지 말아야 할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지금까지도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도맡아 온 생명살림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여성들은 중요한 살림을 외면할 수도 혼자서 감당할 수도 없는, 이중으로 구속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능력 있고 건강한 인간은 돌봄이 필요없으며, 돌봄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상의 도움이 필요하고 독립 능력이 없는 나약한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를 비판한다. 이 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상과 비정상, 우성과 열성으로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배경으로 하는 돌봄의 오해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돌봄 받는 것을 나약하게 보고 독립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생명활동의 순환성, 다양성, 영성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전체화, 획일화, 개체화된 사고에 묶여 상호취약성과 상호 연결성으로 살아가는 생명활동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은 자립은 거짓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는 이 책의 글귀가 인상적이다.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일이면서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됨을 뜻한다는 인식이다. 이렇게 돌봄은 사회에서 외면당한다. 이 생각이 아직까지 돌봄을 노인이나 아이와 같은 특정 세대, 그리고 소득과 부의 편차에 따른 계층을 분리하여 시혜적 돌봄을 받는 대상과 비 대상을 나누는 선별적 복지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자기돌봄에서 상대돌봄으로 이어지는 돌봄을 외부적인 상대돌봄으로만 제한하는 관습적 인식과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는 건강하게 상대를 돌볼 수는 없다. 이 책은 때에 따라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적절한 휴식과 운동으로 몸을 살피는 내부적 자기돌봄이 있어야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돌봄 없이 사회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상대를 돌보는 일은 자신을 소진하고 어느 순간 스스로를 돌봄 생활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일방적인 희생은 결코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외부로 연결되어 상대를 돌보는 일이 횡적이라면 자기돌봄은 종적인 돌봄이다. 이 둘의 관계는 격자무늬처럼 짜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종적인 자가돌봄 없이 횡적인 상대돌봄이 계속될 수 없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아'와 '취향'이란 이름으로 자신에게 감사하면서 자기를 돌보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일이 표준이 된 삶, 아무도 일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느끼는, 심지어는 근명을 칭송하는 기이한 사회라고 말한다. 일에 소진된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할 여력이 없다. 이 책은 그럴 때 우리는 자신만을, 가족만을 돌본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 공동의 역량은 우리가 아니아 시스템에 봉사하는 비인격적인 구조를 재생한다.

"겉으로 보이는 일에 대한 집착은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강박에 불과하다. 불안한 사회에서 안정에 대한 욕망이 (정기적으로 임금을 주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건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 안정적인 삶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토록 일에 매달리는 것은 일 자체가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많은 경우 그 반대다. 다른 삶의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이 본분으로 주어지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 명령으로도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일-임금을 받는 일-을 해야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에 따라 결국 우리는-어떻게든-일을 하고 삶을 포기한다. 하루 종일 일에 매인 삶을 우리는 얼마나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삶의 노동으로의 종속이 낳는 효과는 결국 문제의 "비인격적인 구조"의 재생산이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노동을 거부하거나 문제화하지 않는 한 그 구조를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이 책은 위기를 맞이한 사회는 돌봄 노동자를 극한으로 몰고 가며, 사회의 특정 부문을 희생시켜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것은 그 자체로 부정의할 뿐 아니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이리고 이야기한다.

""미덕은 그 자체가 보상"이라는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돌봄 노동은 보람 있는 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한다. 그들은 '좋은 일'을 하는 '의로운' 사람들이므로 돈 따위에 연연해서는 안 되며, 열악한 노동 조건은 꿋꿋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이겨내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들이 바라고 강요하는 상이며 또한 오늘날 의지하고 있는 상이다."

이 책은 돌봄은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보살피기 위해 형성하는 관계이자 활동이며 그 영역은 인간 자연뿐 아니라 비인간 자연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돌봄은 '우리'를 만드는 일이며, 따라서 커먼즈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의 사회는 우리에게 돌봄이 아니라 일을 강제하는 사회이며, 이 사회는 서로를 돌보기보다 밀어내기를 요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돌봄은 자신의 장애물인 그 질서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저 타인을 받들고 섬기는 봉사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돌봄을 삶의 중심에 두려면 우리는 더 적게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더 많은 일을 부과하는 것을, 노동 강제를 근간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이렇게 오래 일하는 것의 효과는 일에 매몰된 인간, 따라서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데 지쳐 타자에 무관심한 인간의 생산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노동 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가 생산에 시간을 덜 쓸수록 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은 202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영국이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2025년까지 연간 1억 2700만 톤의 온실 가츠 배출의 21.3%에 해당하고, 스위스의 한해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 양이다. 이렇든 기후 비상사태 상황에서 노동 시간 단축은 필수적이다."

이처럼 <돌봄의 시간들>은 돌봄의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을 통해 돌봄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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