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외롭지 않아 - 때론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 아우름 8
마스다 에이지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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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외롭지 않아>는 때론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스다 에이지는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수차례 절망의 절벽 끝에 내몰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도 저자는 끊임없이 노력했고 때로는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 한 가지입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어떤 역경에 직면해 있든, 우리는 기필코 이겨 낼 수 있다.'

비록 결과를 얻지 못해도, 노력해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해도 올바른 노력을 하면 운명을, 그리고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역경에 처한 사람, 벽에 부딪힌 사람, 불합리에 역겨움을 느끼는 사람, 기적을 원하는 사람, 좌절을 딛고 재기하고 싶은 사람, 운명을 바꾸고 싶은 사람,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노력의 의미, 노력과 운명, 동적인 노력 정적인 노력, 노력의 휴식, 올바른 노력의 법칙, 노력 후에라는 6장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의 첫아이는 심각한 중증 장애아로 태어났으며, 결국 아이는 태어난지 3년 10개월 후에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은채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저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되는 시련이나 역경을 맞닥뜨렸을 때조차 정면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 가려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어떤 의미가 감춰져 있고, 노력을 통해 그것을 깨우칠 때 비로소 인생이 비약적인 성장과 성숙으로 이어집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노력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면 '인생의 진가'에 눈뜨고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보다 '성장시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첫아이는 심각한 중증 장애아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3년 10개월 동안, 우리 부부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비록 평범하고 건강한 아이는 될 수 없을지라도 때때로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가족과 같이 지내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요. 그 어떤 소망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의학적으로 아이가 우리 부부를 엄마, 아빠로 의식할 리 없다고 설명해 주었고, 그것은 나 자신이 책을 읽고 알아낸 정보로도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계속하여 노력했습니다. 과연 이런 노력에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매진하여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지금 전 세계 엘리트들이 몸소 실천하는 ‘시간 관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저 ‘시간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겠지요. 의식도 없이 거의 혼수상태에 가까운 아이를 매일 만나러 가는 것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사람은 무엇을 위해 노력할까?' 중에서/ pp.17~18)"


노력은 언제나 보상을 받을까? 저자는 진심으로 원하여 숭고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 간다 해도 반드시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뛰어넘어야 하는 큰 장벽은 바로 운이다. 승부나 성공에는 운이 따르게 마련이다. 저자는 결과를 맡기는 마음과 숭고한 노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을 때에 믿기지 않는 엄청난 힘이 솟아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시련이나 역경과 맞닥뜨렸을 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 ‘의탁한다’는 것은 정열의 반대로, 모든 것을 수용하고 맡기는 온화한 마음가짐이지요. 숭고한 노력을 실천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추었을 때 노력이 결실로 맺어질 확률은 높아집니다. 즉 올바른 노력은 진심 어린 정열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되어, 온 힘을 기울인 뒤엔 정열을 내려놓고 맡기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그저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고 백 퍼센트 결과가 나올 만큼 이 세상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동안에는 노력에 대해 고작 반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과를 맡기는 마음과 숭고한 노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을 때에 믿기지 않는 엄청난 힘이 솟아납니다. (…) 노력과 결과는 결코 일직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비선형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노력이 가지는 재미이기도 하고 심오함인 동시에 어려움이기도 하지요."
('노력은 언제나 보상 받을까?' 중에서/ pp.29~30)


저자는 스포츠 경기의 예를 들며 메달보다 값진 긍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능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메달을 획득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노력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자는 재능과 노력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메달을 따는 게 당연히 좋지요. 그것이 금색이라면 분명 더 좋지요. 시험은 합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요. 회사에서도 출세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지요. 그러나 우리는 제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자신의 운명, 숙명을 짊어지는 가운데 살아갑니다. 숭고한 노력을 하고 그 결과 가령 목표인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해도 스스로 긍지를 가질 만큼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은 ‘훈장’이 됩니다. 바로 거기에 노력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보상 받지 못해도, 재능이 없어도' 중에서/ pp.61~62)"


저자는 산산이 부서진 곳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애가 결실을 맺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나 난관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노력의 결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성취감 만점'의 인생을 보낸다면 그러한 경험들이 인생의 다음의 무대에서 혹은 미래에 당신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걸음 내딛기, 도망치지 않기,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노력하기, 그리고 그 후에 나온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이기. 그때 비로소 새로운 인생이 열릴 것이다.


"도전하지 않고 우리는 성장이나 진화를 이뤄 낼 수 없습니다. 자신을 편한 곳에 두고 변명과 핑계만 늘어놓으며 살다 보면 나이가 들수록 한심한 어른이 되어 버리지요. 그리고 실패만 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요."

"그러나 ‘자부심’은 자칫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자만심’, ‘교만’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노력과 결과는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련은 느닷없이 닥쳐오지요.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갑자기 영광이 멀어져 가지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하루하루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투성이입니다. (…)
그때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져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바로 이 시점입니다. 마음이 꺾인 이때가 바로 ‘진정한 출발점’인 것이지요. 그곳에서 분연히 일어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긍지, 자부심은 조금씩 회복돼 갑니다. 이른바 자부심을 상위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엔 결과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최고의 ‘자긍심’이 싹틉니다.
('정면도전이 선사하는 자긍심' 중에서/ pp.65)"


저자는 숭고한 노력을 하는 데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기쁨, 슬픔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기쁨은 주관적으로, 슬픔은 객관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노력할 때 이 점을 똑똑히 기억하면 독단에서 나온 잘못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숭고한 노력을 하는 데 잊어서는 안 되는 다른 한 가지는 기쁨, 슬픔과 잘 지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슬픔을 자기본위로 생각하기 십상이지요. ‘당신은 고생을 해보지 않았으니 내 슬픔을 알지 못한다.’ ‘이토록 노력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보상 받지 못했다. 이 고통을 누가 알까.’ (…)
슬픔이나 불행을 겨루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요. 그 결과 인생은 온통 변명으로 가득하게 되고 도전정신도, 운명이나 숙명에 도전하는 용기도 그리고 노력이라는 행동도 잃게 되지요. 슬픔이나 불행, 고통을 볼 때는 차라리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괴로운 상황일지라도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슬픔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지 않는 게 중요하지요.
한편 기쁨은 주관적이어도 좋습니다.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에 빠져 있기만 해도 좋지요.
('기쁨은 주관적으로 슬픔은 객관적으로' 중에서/ pp.114~115)"


저자는 노력을 통해 키워진 신념과 긍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노력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 노력을 지탱하는 큰 무기는 그 사람을 응원하는 주위 사람들의 따스하고 애정으로 가득한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신념이 노력을 낳고, 그 노력이 신념을 강하게 하고 긍지를 낳습니다. 신념은 때로 흔들리기도 합니다. 많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섰다 해도 주눅이 들기도 하지요. 그런 때 마음을 지탱해 주는 것은 누군가 건네는 주옥같은 말과 격려입니다.

말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는지 꼭 기억해 주세요. 당신의 따스한 한마디는 틀림없이 한 사람의 큰 성장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노력의 마지막 친구는 미래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노력은 외롭지 않아>는 노력의 위대한 힘을 믿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는 소중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노력의 마지막 친구는 결국 '미래'이지요. 빛나는 미래를 창조하는 것은 남이 아닙니다. 물론 운명이나 숙명도 아니지요.

맞습니다. 바로 당신의 노력이지요.

신념, 동적인 노력, 역경이나 시련, 정적인 노력, 때로는 휴식을 거쳐 다시 부활의 날이 찾아옵니다. 비록 결과를 얻지 못해도, 성과가 없어도, 노력하는 동안 긍지를 얻고 운명이나 숙명의 나름의 승부를 낼 수 있다면, 노력은 빛나는 미래로 우리를 이끕니다. 따라서 지금 노력의 한계에 이른 사람, 역경이나 시련 속에서 괴로운 사람, 살아갈 희망을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장은 나아갈 수 없어도, 웅크리고 넘어진 그곳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리고 노력의 위대한 힘을 믿고 아무쪼록 미래를 향해 날개짓하게요. 인생은 어쩌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의미와 자신의 역할을 찾아 즐거운 일에 마음껏 즐거워하며 숭고한 노력을 계속 이어 간다면 기적이라는 선물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미래만을 응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당신 자신만이 당신과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날이 당신에게 기필코 찾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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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
존 그레이.바바라 애니스 지음, 나선숙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직장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지니고 있는 사각지대를 확실하게 노출시켜 제거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남녀 간 사각지대'란 남자와 여자가 이성을 바라보는 면에서 서로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을 뜻한다. 이 책의 저자는 존 그레이와 바바라 애니스이며,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획기적인 책으로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실생활에서 추출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반응하는지 설명했다. 바바라 애니스는 성별이해 지능과 통합적 리더십에 관함 저서를 통해,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서도 남녀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문화적 태도 변화를 주장했다. 또한 성공을 꿈꾸는 남녀들이 직업적으로 성장하고 개인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대화와 협력 수준을 찾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별이해 지능은 남자와 여자가 신체적, 문화적 차원을 넘어 서로의 고유한 성질을 자각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성별이해 지능을 키우면 서로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차원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자신 있고 기분 좋게 서로를 포함시키며 어우러져서 일할 수 있다. 서로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남녀의 다름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전혀 다른 렌즈로 그것을 본다. 그래서 자주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을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첫 부분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는 여덟 가지 사각지대를 알아며 두번째 부분에서는 '성별이해 지능의 성장'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직장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오해받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서로의 다름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우리를 진짜 평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지 않고, 꼭 똑같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을 제시할 수 있고, 그래서 의사결정 과정에 더 풍부한 시각과 가치관을 덧붙일 수 있다.


직장에서 남자들의 규칙

 "-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 남자에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를 무능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남자는 혼자 일하게 내버려둬야 더 강해진다. 도움이 필요하면 스스로 이야기할 것이다.

- 회의시간에 남자가 조용히 앉아 있을 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지 마라. 그것은 그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할 말이 있으면 본인이 알아서 말할 것이다.

-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건 약하다는 뜻이다. 늘 차분하고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 공적인 일을 개인적인 일로 만들거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직장에서 여성들의 규칙

"-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여정도 중요하다. 업무능력을 향상시켜나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누군가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여자들은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고 거기에 보답하고 싶어진다.

- 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봐주길 바란다. 그로 인해 자신의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하다는 표시가 아니다. 힘과 열정이 있기에 그런 감정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 '내가 뭘 더 잘했어야 했을까?'와 같은 식으로 여자들은 문제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자기 문제로 삼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일터에서 남자들이 보이는 행동에는 두 가지 근본적이면서도 서로 관련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때문에 남자들은 자신의 행동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업무현장을 다른 식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지금 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일터가 남성 위주의 작업 모델과 행동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남자와 여자의 생각과 행동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고 무엇이 그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한다면, 그 차이가 본능에 의한 것인지 문화에 의한 것인지 알아차린다면,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자는 자신의 욕구를 더 확실히 표현하고, 남자는 여자가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여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여자들은 남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화를 끌어나가야 한다. 남자들이 중요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차례대로 처리하는 성향이 있으며, 노력보다 결과에 집중하고 실적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남자들도 얼마든지 마음을 열고 배우려 할 것이다.

- 남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여자들에게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 보다 예리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여자도 남자들만큼 목표 지향적이지만, 목표를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 또한 가치 있게 여기고, 서로 협력해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며,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저자는 남자들은 결과에 대해 인정해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비해, 여자들은 그 결과를 얻기까지 거쳐 왔던 도전들을 알아줄 때 가장 인정받는다고 느끼고 뿌듯해한다고 말한다.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들어간 노력이나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이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사실 자체다. 많은 남자들은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자신이 한 일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목적을 당성하는 과정 내내 누군가에게 세세히 관리, 감독받기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 실수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유도 갖고 싶어 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이와 같은 남자의 독립심에 상처가 생긴다. 남자들은 그것을 '내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군', '날 믿지 않는군' 하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기본적으로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고 있기 대문에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도 혼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둔다.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바로잡는 쪽을 선소하기 때문에 남자든여자든 다른 사람들도 혼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길 바랄 거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큼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도 중요시한다.

또한 여자들은 관계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봄으로써 자신의 관심과 배려를 보여준다. 질문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여자들에게는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표현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그런 식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이런 성향 때문에 여자들은 대체로 서로 협력하며 협조적으로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반면, 남자들은 독립적이고 경쟁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저자는 남자들끼리 하는 농담은 서로의 우정을 시험하고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 남자들은 종종 실수를 저질렀을 때 농담으로 그걸 무마하려 한다. "내가 잘못한 거 아니야!"와 같은 식으로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 다른 외적인 문제로 주의를 돌리려 한다. 이에 비해서 여자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처럼 실수를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려 할 때 자주 농담을 활용한다.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니까!" 일너 식으로 상대를 놀려대곤 한다. 그에 비해서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그 순간의 긴장을 풀어보려 할 때 "난 매번 이렇게 늦는다니까"와 같은 식으로 자신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

- 남자들은 위협적이지 않게 비판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고 우정을 시험하는 방식으로도 농담을 자주 활용한다. 받는 쪽에서 그 농담을 기분 나빠한다면, 아마 그리 가까운 친구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닐 것이다. 그럴 경우 남자들은 "그냥 농담이야"라는 말로 그 말을 취소하고 무마하려 한다."


저자는 여자들의 남자보다 질문이 많은 이유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질문하고, 관련된 프로젝트나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기 위해 질문하고,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 그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질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남자들은 대체로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는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모두의 의견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할 때조차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혼자 생각하고 처리하려 한다. 합의를 이루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편이고, 요구사항을 말하거나 피드백을 제공할 때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을 택한다. 문제에 압도되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한, 도움을 요정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독립적으로 혼자 일하는 것을 편안해하는 남자들은 협력에 그리 집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남자들이 여자들과 신뢰를 형성하려면 상대방의 노력과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가치 있게 여길 줄 알아야 하며, 그런 식으로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남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집단의 노력보다 자신의 동기부여다. 남자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잘 기능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여자들은 관계를 다지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려는 성향이 강하지 때문에, 남자 리더가 무신경하게 행동할 때 그것을 함게 노력해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하려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에서 직장생활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생활에서의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도 소개하여 공감된다.


"여자들이 알아야 할 점은, 남자를 변화시키려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전달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도움이 되고 싶어 하며,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여자에게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자신이 여자에게 문제가 아닌 해결책이 되기를 바란다.

여자는 자신의 행동과 반응을 활용하여 남자로부터 최선을 끌어낼 방법이 무언지 찾아야 한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해야 한다. 그럼 남자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자율권이 생기고 더 잘해내야겠다는 의욕이 생길 것이다. 자신을 끝어고치려는 여자의 행동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깨닫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남자들은 안으로 파고들어 조용히 집중하는 반면에, 여자들은 당황하며 감정적으로 복합해지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 역시 여자들의 방법과는 다르다. 남자는 문제를 마음에서 몰아내고 잊어버리려 하는데 비해, 여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털어놓으려 한다."


"남자가 여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고픈 그녀의 욕구를 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매우 똑똑한 행동이다.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여자는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스스로 문제 해결책을 찾아낼 수도 있다.

남자들이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만큼, 여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남자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여자가 이야기할 때 남자에게 훈계하고, 그의 행동을 고치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난다. 남자는 여자에게 조정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녀의 말을 더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여자들은 자신을 배려해주는 남자, 자신의 기여를 중요시하고, 같은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며,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한 관심과 공감으로 들어주는 남자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남자의 신뢰를 얻으려면, 먼저 그의 좋은 점과 노력의 가치를 알아주어야 한다. 남자의 노력에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보다 그 노력을 지지해줄 수 잇어야 한다. 여자들이 극복해야 할 도전과제는 질문을 더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과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남자의 신뢰를 결정짓는 것은 그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겨냥하는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자신을 믿어주며, 자신의 성공을 도와주는 사람을 신뢰한다."


저자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세상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듯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로인해 일터에서 엄청난 강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 둘이 합쳐질 때 그 힘은 더 강력해진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갖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더 풍성한 관점과 가치관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직장생활에서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함으로써 남녀 차이로 인한 오해를 풀 수 있으며 남녀간의 보완이 더 큰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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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6.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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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6년 1월호에서 '과학에게 묻다' 코너의 '원대한 신년 목표는 스트레스다?'라는 <착각하는 CEO> <문제해결사> <시나리오 플래닝>의 저자이자 전략과 인사 분야의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인퓨처컨설팅' 대표 유정식님의 글이 인상적이다. 신년 목표가 과하거나 많으면 시간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증가한다.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유정식님은 목표를 수립하는 '현재의 나'가 목표를 달성해갈 '미래의 나'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곤란하며 원대한 목표를 세우자마자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 찍는다는 것에 주의하라고 말한다.


"목표를 음식에 비유해보자. 맛있는 스테이크를 한 접시 먹는 것 혹은 치킨, 생선구이, 햄버거, 피자에 이르기까지 산더미 같은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것,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누구나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목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원대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아무리 좋은 목표라도 거기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고, 또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방법은 다이어리를 장식한 당신의 신년 목표에 빨간 줄을 긋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하고 싶은 일을 1~2개만 써넣어라. 그러면 매일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이 차곡차곡 쌓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매일 힘을 얻을수 있고 결국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샘터 1월호에서 '이 남자가 사는 법' 코너에 '젊은 시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황인찬 시인에 관한 글이 눈길을 끌었다. 황인찬 시인은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막 시인의 길로 들어선 힘겨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목표는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고, 그 시대에 대체되지 못할, 중요한 개성을 가진 의미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전한다. '나를 미워할 것,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 쓸 것.' 황인찬 시인이 평생 가져가야 할 세가지로 손꼽은 것이다.


"힘들죠.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했으면 먹고 살기는 더 편했을 거예요. 근데 그렇다고 빌딩 부자가 됐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럴 바에야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샘터 1월호에서 음악평론가 황덕호님은 '재즈 콘서트' 코너에서 '20세기 재즈의 탄생, 그리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20세기 재즈의 탄생과 재즈를 듣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여 흥미롭다.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음악은 다시 표제음악을 통해 다른 예술들과 섞였다. 바그너의 '종합예술', 사티의 '가구음악', 힌데미트의 '실용음악' 모두가 입장은 달라도 고전시대의 음악 감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20세기 대중음악은 음악을 위한 음악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순수음악이란 음악에 대한 인간 본성에 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재즈가 등장했다. 오로지 즉흥연주의 희열, 모험적인 화성과 리듬에 탐닉하는 순수음악적 태도의 음악이 뒤늦게, 20세기에 등장한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도, 그리움도, 극적인 이야기도 없이 오로지 찰나의 음악적 희열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환기시키면서 위안 받으려는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암호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재즈를 듣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 적었던 것이다. 모두들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재즈를 듣는 것 같지만 실제로 재즈를 듣는 사람들이 그토록 적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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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이어령.정형모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은 21세기 지식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어령 교수의 핵심 분석과 통찰을 'S매거진'의 정형모 기자가 글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인터페이스 혁명의 시대를 읽는 새로운 지문화학을 말하는 이어령 교수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거의 10년 전 [디지로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그랬다. 지금처럼 디지로그 개념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아이팟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열광시켰을 때, 그게 바로 이 교수가 예언한 디지로그 시대의 서막인 것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에서 파일을 받아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튠즈를 매개로 아날로그 시대의 음향기기와 사이버 시대의 인터넷을 하나로 이어지게 했다. 아이팟이라는 디지로그 환경 속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이패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닌텐도의 위(WII), 애플의 아이패드, 그게 다 아이팟과 같은 개념의 디지로그 제품들이다.
이 교수가 말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휴먼 인터페이스 혁명이 기적처럼 우리 눈앞에서 실현되었다. 아이디어와 이론은 우리가 앞서 있었는데 그것을 실현시킨 것은 미국이요 일본이었다. 왜? 우리는 지의 최전선이 아니라 그 후방에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책상 위엔 촉각 곤두세운 일곱 마리 ‘고양이’가 있다' 중에서)


“블로그를 통해 누구나 언론사 사장이


2016년, 아니 2020년 시대가 흘러도 사실 우리에게는 이 길밖에는 없다. 만리장성만이 아니다.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는 벽, 이 교수가 88올림픽 때 제시했던 그 벽, ‘빈부의 벽, 남녀의 벽, 동서의 벽, 언어의 벽, 이념의 벽……’, 이 모든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제는 동양적 문화, 아낌없이 버렸던 그 문화로 함께 풀어가자는 거다. 서양 문명이 아시아의 축으로 옮아온다는 말 자체가 패권주의적 발상이다. 서구 중심주의가 이 지구에 막다른 위기의 골목을 초래했다면 아시아 중심주의인들 뚫린 골목이 되겠는가.
지의 최전선은 의외로 내 편, 네 편의 싸움이 아니라 우주인과 싸우는 것처럼 지구인 전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전선에서 신무기, 생명화라고 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
('만리장성과 로마 고도' 중에서)


이 책에서 '아날로그 결핍증'이라는 목차의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다. 일정한 규격에서 벗어난 농산물들은 폐기처분 하는 행태는 심각한 상황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떤 규격에 맞지 않아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쓸모가 있다. 규격에 맞춰 잘라 비닐에 포장된 식품들은 본래의 속성을 상실한다. 이어령 교수는 우리가 식품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일회용품 쓰는 듯해 감각적으로 느낄 수가 없게 된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결핍증은 오늘의 인간들이 경험하는 질병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후 2천 년 넘게 쌓아온 형이상학은 피가 흐르는 정육점 살덩어리의 아날로그 감각을 빼앗아갔다.


"북극에만 사는 백곰과 남극에만 사는 펭귄이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 그게 동물원이야. 진짜 생태계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지. 백화점도 마찬가지야. 식품 매장에 가면 과일과 야채가 같은 코너에 있잖아. 생산이와는 상관없이 바나나와 복숭아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 그런데 전혀 다른 것 같은 동물원과 백화점을 이런 시점에서 보면 똑같다는 거지. 생겨난 시기도 똑같아.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도시화 산업화가 한창이던 때야. 자연현상에서 벗어난 서구 근대 지적 시스템의 산물이지."
 

“백화점에서는 원산지가 꼭 동물원처럼 구별이 안 돼.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들, 의상이고 아동복이고 다 추상적으로 분류해서 한군데 모아놓은 거지. 그게 바로 공산품의 특징이야. 그런데 농산물도 마찬가지로 각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그 지역성과 관계없이 도시에 와서 함께 섞여 있는 거야. 슈퍼에 가봐, 거기 자연이 있는가. 오이는 비뚤어진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런데 요즘엔 반듯한 오이가 아니면 상품 가치를 잃어. 특히 미국이나 일본이 심해. 규격이 똑같아야 값도 똑같이 매길 수 있기 때문이야. 그게 어디 농산물이야? 공산품이지. 생물은 원래 불규칙한 것인데 그래서 자연은 직선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슈퍼에서는 그 반대야.”


" 전쟁터에서 칼로 적을 죽인 사람과 활로 쏘아 죽인 사람은 느낌이 다를 게 아냐? 그런게 그게 활이 아니라 더 멀리 떨어져서 사람을 죽이는 미사일이라고 생각해봐요. 사람을 죽였다는 실감이 나겠어?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캐나다에서 대학 강의실에 들어와 여학생들을 모아놓고 쏘아 죽였던 그 유명한 사건을 놓고 생각해보자고. 총으로 수많은 학생을 죽여놓고도 태연하기만 했던 그 범인이 막상 저항하는 한 여학생을 칼로 찔렀을 때는 당황한 나머지 결국 자살하고 말아. 총을 쏠 때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느낌과 별 다를 게 없었던 그 범인도 타인의 몸을 칼로 직접 찌르는 순간, '이것이 살인이구나.'라는 아날로그 감각이 되살아난 거지."

('아날로그 결핍증' 중에서)


원인도 증상도 잘 모르는데 잘못된 이름이 붙으면 사람들은 공연한 공포와 또 그 병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고 역질의 전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광우병은 병명처럼 미치는 게 아니다. 소의 뇌에 해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는 일련의 징후를 알아냈을 뿐이다. 우리가 광우병을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공식명칭대로 BSE라고 불렀다면 혼란과 공포심을 최소화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부담, 정치적 갈등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에볼라라는 역질의 이름도 중요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올 봉사자 구급대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백인에 대한 불신이 각종 음모설로 변해 난무했기 때문이다. 격리된 환자들은 도망가고, 환자가 덮었던 담요들을 서로 빼앗고 시체를 묻으라 해도, 그들은 전통 장례 방식을 고집했다. 결국 치사율 90퍼센트라는 에볼라는 이렇게 방역망을 뚫고 백인 사회로 황인들 사이로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퍼지면서 옛날의 그 무서웠던 페스트의 비극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에볼라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문명의 문제인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바이러스와 문명의 관계, 지금 우리의 목전에 닥친 심각한 지의 투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지의 최전선이라는 말은 단순한 메타포가 아닌 바로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의 살고 죽는 문제이다.


"그거 아프리카의 그 유명한 강 있잖아. 콩고 강 지류에 있는 샛강 이름이야. 그 강촌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였던 거지. 내가 그랬잖아, 바이러스는 인문학자의 몫이라고. 이름 하나 붙이는 거, 나처럼 문학을 하고 기호학을 하는 사람들 역할이야. 병균도 우리 분야에 오면 언어가 되거든. 바이러스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 왜 그런 이름을 달았느냐, 이게 진짜 중요한 문제야. 병명에 따라 역학보다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


"왜 그 무서운 역질을 하필이면 아프리카의 강이름을 따서 불렀겠어. 에볼라 하면 독재자나 마귀의 이름을 듣는 것처럼 온 세상 사람이 떨어. 망원경으로 새로운 별을 발견하면 자랑스럽게 그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잖아. 그런데 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발견하면 말이야, 그걸 발견한 사람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발상지의 그 후진 이름을 붙인다고. 병명은 나도 모르게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해. 편견도 낳고 고정관념도 낳고... 이미 말한 그대로야. 그러니까 전미 신대륙에서 성병이 들어왔을 때 유럽 사람들은 그 병명을 상대방 나라 이름을 따서 붙였지.(...) 그러니까 문제는 전 세계가 글로벌화로 월드 시스템이 됐기 때문에 우리와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아프리카에서 생긴 병이 세계적인 재앙으로 떠오르게 된다는 거야. 에볼라 그 강 이름이 평생 가도 어디 한 번 우리의 입에 오르내렸겠어? 그 무서운 바이러스 이름을 한강이라고 지었대봐. 한강 소리만 들어도 전 세계 사람들이 떨 거 아니겠어. 그리고 생각하기도 싫지만 아프리카처럼 백인들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를 했고 곳곳에 불행을 뿌려 우리가 그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쳐봐. 지금 에볼라가 아프리카에서 생겨 옛날에 그들을 지배했던 백인들이 이제는 MSF(국경 없는 의사회)니 유니세프니 그 질병을  돕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지. 우리가 그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몇 천만 년 인간과 무관하게 공생해오던 세균과 바이러스들 역시 그냥 당하고 있겠어? 이제까지 초원과 사막 그리고 수풀에서 평화롭게 살아오던 원주민들이 백인들의 공격으로 갑자기 혁명 전사로 그 모습을 바꾼 것처럼 그들도 똑같이 인간을 물어뜯는 변종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그걸 이머징 바이러스(emerging virus)라 그래. 짐승만 걸렸던 질병이 인간에게로 옮아오고, 어제까지 괜찮던 대장균이 이질균과 합쳐 무서운 O157 신종 병균이 나타나고……. 중세의 페스트와는 질이 다른 세균과의 싸움이 벌어지게 된 거야. 그래서 이건 문명전이고 문화 전쟁이고 미래 전쟁이야.”
('에볼라의 이면' 중에서)


이어령 교수는 관심, 관찰 그리고 관계. 모든 지적 프로세스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종교든 정치든, 바로 그 세가지라고 말한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스포츠에서 에볼라로, 3D 프린터로 거미줄처럼 모든 언어들이 뒤얽혀 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것들과의 접촉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한다. 전부 밖에 있는 것들을 자기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게 남이라고 해서 전부 폐쇄하고 성벽을 쳐버리면, 인간은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밖의 것을 다 받아들이면, 나 아닌 것이 내 체계 안으로 들어와 나의 생명 시스템이 파괴되고 만다. 결국 감염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아토피 같은 면역 체계 이상으로 말이다.


"관심은 가슴이지만 관찰은 머리와 눈이야. 쿨해야지. 그 데이터를 가로세로 옷감 짜듯이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책으로는 아직 안 나온 것들이야. 살아 있는 정보들이지. 책이나 도서관에 있는 것은 이미 누군가 생각한 것들, 즉 소프(thought)야. 과거 분사지. 하지만 나는 지금 검색을 통해 싱킹(thinking)하고 있어. 싱킹은 think의 현재분사야. 질이 달라. 국경 없이 창궐하는 에볼라와 싸우는 것은 '국경 없는 의사회'만이 아니란 말이지. '국경 없는 지식인단'도 필요한 때가 온 거야. 소트가 아니라 싱킹하는 '국경 없는 지식인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정체불명의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겪지 못한 바이러스가 침입하잖아. 우리 몸에 면역 기관으로만 막을 수 있어? 병균만이야? 세계 도처에서 우리 DNA 정보에 한 번도 찍힌 적이 없는 놀라운 사건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잖아. 싱킹, 그게 인문학자들이 해야 할 면역체라고."


"아무런 혈청제도 없이 그렇게 100년, 200년 동안 에볼라 같은 문명 바이러스에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우리 형님이 쓰려졌지. 미구에는 내 아들이, 내 손자가 그렇게 쓰러질 거야. 이건 국수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편협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고. 적어도 나와 타자를 구별하고 그것이 침입할 때 그와 싸워 박명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타자를 나의 관용이라고 하는 특별한 세포로 포섭하여 그와 공생하는 면역체를 만들어내던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사활의 문화 문명의 문제인 거야."


"결국 바이러스와 인간의 관계지. 심각하잖아. 옛날에는 균이나 바이러스가 사람 몸으로 들어오면 인간의 면역 체계로 막아냈어. 공격과 방어야. 그런데 이게 말이야, 변하게 된 거야. 바깥의 침입자와 싸운다는 것은 나와 남(타자)이 다르기 때문이잖아. 그런데 나 혼자 살 수 있어? 타자를 밀어내면서도 타자와 함께 살아가려면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새로운 사상과 행동이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지."

('검색과 사색' 중에서)


이어령 교수는 '시프트(shift)'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어령 교수는 유선을 뛰어넘어 무선으로, 휘발유차를 뛰어넘어 전기차로 가는 것. 3D 프린터로 집과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것. 그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대한민국이 진정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테슬라는 벤츠나 토요타를 쫓아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섰다(shift)는 데 포인트가 있다. 테슬라는 인문학자와 같은 창조적 상상력이 있었던 것이다. 과학과 시술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상상이다. 그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마인드다. 그것도 과거를 소트(thought)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현재를 싱킹(thingking)하는 살아 있는 인문학. 이어령 교수는 에디슨이 왜 테슬라에게 이기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테슬라의 위대한 점은 전깃줄이 막 깔리고 있을 무렵에 이미 무선 시대를 생각했다는 거지. 무선 통신은 마르코니가 발명했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 테슬라가 2년 먼저 한 거야. 오늘날 리모컨 블루투스의 기초가 다 그 사람에게서 나왔어. 이 사람 생각이 너무 앞서가서, 일설에는 이 사람이 죽었을 때 연구 자료를 CIA가 모두 가져갔다는 얘기도 있어. 전파나 레이저로 무기를 만든다고 생각해봐. 하여튼 실리콘밸리 애들이 전기 자동차를 만들면서 이 에디슨의 라이벌 이름을 썼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지.”
이 교수는 ‘시프트(shift)’라는 말을 강조했다. “중국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훌쩍 뛰어넘어(shift) 앞서는 것은 정말 무섭다.”고 했다. 유선을 뛰어넘어 무선으로, 휘발유차를 뛰어넘어 전기차로 바로 가는 것. 3D 프린터로 집과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것. 그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대한민국이 진정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했다. 테슬라는 벤츠나 토요타를 쫓아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섰다(shift)는 데 포인트가 있다는 것이다.
('에디슨과 테슬라' 중에서)


이어령 교수는 산업이나 금융이 번영을 이끌어가는 자본이 아니라 생명을 새로운 자본으로 하는 시대를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한강의 기적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도 물거품이 되는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공감의 힘, 생명을 지키고 키우는 건강과 매력, 이를테면 지금까지 투자가들이 외면해왔던 병원(의료), 학교(교육), 문화 예술이 생산과 소비의 원동력이 되는 생명 자본주의 시대가 열린다는 거다. 지의 최전선, 우리가 점령해야 할 고지는 생명 자본주의이다. 빵은 자기가 먹기 위해서 사지만 생일 케이크는 남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생명이 태어난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산다. 생일 케이크는 생명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파티장의 박수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사랑과 그 공감을 함께 누리기 위해 그것이 존재한다. 생명 자본주의의 상품들은 빵이 아니라 생일 케이크가 기본이 되고 자본이 되는 그런 시장이다.


스페인과 제노바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노마크 찬스로 금 덩어리, 은 덩어리 다 실어다 금융으로 재미를 본다. 돈만 있으면 물건을 왜 만드나? 남이 만든 거 사오면 되지. 황금만 있으면, 그걸 맡겼다는 보증서인 지폐만 있으면, 가벼운 종잇장 하나로 세계를 살 수 있다. 바다를 자기 안방으로 만든 스페인의 무적함대, 그 해상 권력이 신대륙의 금은보화 실어다가 재미를 본 것이 바로 스페인이 망하게 된 원인이라는 거다. 물건을 만들지 않고 노동하지 않고서도 돈만 있으면 편하게 산다. 그게 소위 금융자본주의라는 거다. 헌데 금리 먹고 살아가는 금융 왕국 스페인-제노바가 16세기 중반에 오면 6퍼센트 대의 금리가 2퍼센트로 하락한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더 이상 돈이 자본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더 투자할 데가 없다. 그렇게 되면 종이 돈, 금 덩어리 있어도 쓸데가 없다. 지금 미국이나 일본이 그렇다. 금리가 2퍼센트 이하로, 심지어 제로로까지 하락했다. 미국은 스페인이고 일본은 제노바 역할을 한 거다. 그나마 국채를 사줄 데가 있으니 미국이 버틴 거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이제 토스트기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고 한탄한 [아메리칸 나우(American Now)]읽어보면 안다. 스페인이, 영국이, 미국이 그리고 일본이 그렇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거다.
('인터페이스 혁명' 중에서)


"미국의 한 대학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매일 자지가 먹은 음식 이름과 그 정보를 기록했다고 했다. 4년 동안 기록하니 그 자료들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통계 자료가 됐다. 젊은이가 먹은 음식들을 분석해 여러 유의미한 사실을 추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니 민주주의니 정치, 선거, 경제 문제 같은 '큰 이야기'를 다룬 어떤 학생들의 자료보다 비싸게 팔렸단다. 큰 이야기만 적은 역사책에서는 기록되지 않는 자잘한 이야기들... 그걸 적은 소설 속 데이터를 통해 오히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식인들이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주장하기 위해 쓴 논문이나 저술 같은 '대설'에는 없는, 새로운 진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큰 이야기'를 상실한 시대고, 자기 사상만이 모든 것의 해법이라는 큰 이념의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두어 두는 '대설'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발 장수는 모자 장수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어령 교수의 혜안을 통해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살아 펄떡이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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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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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의 저자 김정운은 2012년 만 오십이 되던 새해 첫날,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며 저작 활동에 몰두했다. 4년간 <에디톨로지> <보다의 심리학>(번역) 등을 출간했고, <이어령 프로젝트> <바우하우스>(가제) 등의 출간을 준비했다.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의 저자 김정운은 '이 책은 일본 생활의 시작과 끝은 담은, 지난 4년의 결산이자 격한 외로움의 결실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하기 싫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다보니 '하고 싶지 않은 강의는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며 놀랐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교수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학 있다는 느닷없는 가책에 어느 순간부터 괴로웠다고 말한다. 저자는 학교에 사표를 제출하고 일본에 와서 혼자 생활하며 교토사가예술대학의 단기학부를 졸업했다. 태어나서 처음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는 일본화를 전공했고 이 책에는 저자 김정운이 직접 그린 그림도 함께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저자는 외로움을 담보로 가장 생산적을 시간을 보냈으며 이토록 재미있게 공부한 적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좀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듭니다. 착각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격하게 외로워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들 아주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광고처럼 '외계인의 침공이 없다면, 혹은 빙하기가 다시 도래하지 않는다면'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세까지 살게 됩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이 책은 '1장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2장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3장 금지를 금지하라, 4장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라고 말한다. 권력 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무대 위의 삶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자에게 화장은 연기자의 분장과 마찬가지다. 주어진 사회적 맥락에 맞춰 화장의 톤을 결정하고, 입을 옷에 따라 색조를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화장대 앞의 여자는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다'라고 강조한다.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자아'를 무대 위의 연기자에 비유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일관되고 통일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상호작용 의례'에 관한 미시적 연구를 통해 고프먼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인간에게는 '여러 자아'가 제각기 다르게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무대 위의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화할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수적이다. 즉, 분장을 하고 분장을 지우는 '배후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대 위나 무대 뒤의 어느 한쪽만 진짜 삶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서는 안 된다. 무대 위가 다양한 역할이 실재하는 삶이듯 무대 뒤의 삶도 진짜라는 거다.


수용소와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대 뒤, 즉 배후 공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숨을 공간이 없다. 실제로 나치하에서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아동심리학자 베텔하임은 수용소 생활의 가장 큰 고통으로 '배후 공간의 부재'를 든다.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용소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대부분 죽어나갔다. 살아남은 장기 수감자들의 심리적 상황은 더 처참했다. 어떤 것도 숨기지 못하고 부모에게 모든 것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처럼 수용소의 나치 친위대를 부모처럼 믿고 의지하는 퇴행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스스로 게슈탈트 전환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의 게슈탈트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 장소, 관심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은 맥락을 구체적인 심리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은 사물을 지각할 때 사물의 각 부분을 따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형태, 즉 '게슈탈트'로 파악한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전경이 되고, 그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인물만 뚜렷하게 나오게 하고, 나머지 부분을 흐리게 처리하는 아웃포커싱 같은 원리다. 문제는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적 원리를 심리 치료에 응용한 게슈탈트 치료법에 따르면, 삶이란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삶의 어떤 부분이 관심이 초점이 되어 전경이 되면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맥락이 바뀌면 지금까지의 전경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배경이었던 부분이 전경으로 올라온다. 이러한 게슈탈트의 끊임없는 형성과 해소의 과정이 내 삶의 '내러티브'가 되는 것이다. (...)


삶의 게슈탈트를 바꾸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바꾸는 거다.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동창회, 산악회 같은 것은 아주 '쥐약'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어야 삶의 게슈탈트가 건강해진다.


둘째 '장소'를 바꿔야 한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태도도 바뀐다. 내가 일본에서 몇 년 지내보니 진짜 그렇다. 요즘 난 내 아들보다 더 게으르고 드~럽게 산다. 제대한 그 녀석은 내 아들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된다. 새로운 사실을 깨치고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긍정적인 게슈탈트 전환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관심을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관심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고 삶의 장소도 바뀌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내러티브'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는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이야기 속에서 편집되면서 의미를 획득한다.


" '내러티브'는 '이야기' '서사' 등으로 번역된다.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인간의 사고를 둘로 나눈다. '패러다임 사고'와 '내러티브 사고'다. 패러다임 사고는 자연 과학적 사고다.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추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논리에 기초한 사고다. 반면 내러티브 사고는 행위의 의도, 해석, 의미 부여의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삶의 기쁨, 슬픔은 대부분 이 내러티브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 근대 이후,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적 모델을 차용해 인간 행위의 객관적 설명에 집중해왔다. 인간 또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합리적 존재로 파악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대두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하나의 세계'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세계관, 표상 형식이 포함되는 '이야기'의 해석이 중요한 연구 영역으로 대두된다. 이를 브루너는 '서사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내가 책을 쓰는 방식도 일관되게 내러티브적 속성을 포함한다. 전혀 관계없는 내 개인적 서사와 한국 사회의 집단 서사, 혹은 유럽이나 일본의 서사가 내 글을 통해 서로 얽혀 들어간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해 보이는 학문적 서사 또한 내 기인사에 얽혀 들어온다. 내 구체적 삶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학문적, 집단적 서사가 내 개인 서사와 맞닿으면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재미'란 바로 이 같은 '이야기의 재미'인 것이다."

 

저자는 '구체화 할 수 없다면 가짜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내 삶에서 구체화될 수 없다면 그건 순 가짜라는 것이다. 행복하려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야 한다. 행복은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다.


"공부라는 구체적 경험을 다시 배우는 요즘이다. 스스로의 간절한 필요가 있어야 공부의 방향이 명확해지고, 그래야만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30여 년 죽어라 공부하고, 또 10여 년 교수 생활을 하고도 제대로 못 느껴봤던 진짜 공부를 나이 오십 넘어 뒤늦게 하고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은 아주 막연한 거다.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저자는 젊은 날의 성공이 자랑스러울수록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남 흉내를 열심히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소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나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삶이 지속적으로 창조적이 된다. 삶은 나이 들수록 재미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의 기초로 여기는 '공감 능력'이란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개념에서 유래한다. 1873년 독일의 심리학자 로베르트 피셔는 그의 박사 논문에서 감각적 경험ㅇ르 통해 일어나는 미학적 체험을 '감정이입'이란 개념을 사용해 설명했다. 감정이입이란 그전에는 없던 개념이다.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느낀다'는 뜻의 이 독일어는 영어권에서는 'empathy'로 번역되었고, 오늘날에는 일상어처럼 사용된다. 그러니까 인류가 타인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 심리적 과정을 학문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불과 150년 전이라는 이야기다.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에 인류가 관심을 가진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다는 뜻이다. 그렇게 미개했다. 아무튼, 미메시스로부터 공감에 이르기까지의 개념적 진화를 통해 인간은 서로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에 소통하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 그렇다. 타인의 감정은 그 사람의 정소 표현을 그대로 흉내 낼 때 제대로 이해된다. 공감 능력이란 바로 이 정서의 모방 능력을 뜻한다. 오래 함께 산 부부의 모습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생김새가 닮아서가 아니다. 서로의 정소 표현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흉내 내는 사람이 사랑받는다. 인간은 자신의 정서를 흉내 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바로 이 흉내 내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왜 어린아이가 인형이나 자동차 장남감을 가지고 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하는 것일까? 장난감이 대상 세계를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스포츠 같은 어른들의 놀이도 내용이나 규칙이 더 복잡해졌을 뿐, 그 본질은 모방에 있다.


흉내 내면 즐거워진다. 나이 들면서 삶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도무지 흉내 낼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삶이 지루해지는 이유도 도대체 더는 모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사람일수록 고독한 거다. 가장 처절한 상황은 누굴 흉내 낼 생각도 없고, 그 누구도 나를 흉내 내주지 않을 때다. 아, 세상이 이보다 더 쓸쓸할 수는 없는 거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재미'의 복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는게 재미있어야만 이분법적 시선을 상대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 저자는개인의 삶도 사는게 재미있어야만 다른 이야기에 관대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재미있게 살며, 메타적 시선을 유지하는 능력을 노인학에서는 '지혜'라고 한다.


"거울 앞에 서 자신을 비춰 보는 메타적 시선은 여유롭고 외로운 시간에 제대로 작동한다. 바쁘고 정신없으면 메타적 시선의 획득, 즉 성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고, 잘 쉬어야 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멈추고, 천천히 행복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진정한 '외로움'의 시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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