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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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의 저자 김정운은 2012년 만 오십이 되던 새해 첫날,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며 저작 활동에 몰두했다. 4년간 <에디톨로지> <보다의 심리학>(번역) 등을 출간했고, <이어령 프로젝트> <바우하우스>(가제) 등의 출간을 준비했다.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의 저자 김정운은 '이 책은 일본 생활의 시작과 끝은 담은, 지난 4년의 결산이자 격한 외로움의 결실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하기 싫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다보니 '하고 싶지 않은 강의는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며 놀랐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교수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학 있다는 느닷없는 가책에 어느 순간부터 괴로웠다고 말한다. 저자는 학교에 사표를 제출하고 일본에 와서 혼자 생활하며 교토사가예술대학의 단기학부를 졸업했다. 태어나서 처음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는 일본화를 전공했고 이 책에는 저자 김정운이 직접 그린 그림도 함께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저자는 외로움을 담보로 가장 생산적을 시간을 보냈으며 이토록 재미있게 공부한 적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좀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듭니다. 착각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격하게 외로워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들 아주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광고처럼 '외계인의 침공이 없다면, 혹은 빙하기가 다시 도래하지 않는다면'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세까지 살게 됩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이 책은 '1장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2장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3장 금지를 금지하라, 4장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라고 말한다. 권력 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무대 위의 삶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자에게 화장은 연기자의 분장과 마찬가지다. 주어진 사회적 맥락에 맞춰 화장의 톤을 결정하고, 입을 옷에 따라 색조를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화장대 앞의 여자는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다'라고 강조한다.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자아'를 무대 위의 연기자에 비유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일관되고 통일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상호작용 의례'에 관한 미시적 연구를 통해 고프먼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인간에게는 '여러 자아'가 제각기 다르게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무대 위의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화할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수적이다. 즉, 분장을 하고 분장을 지우는 '배후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대 위나 무대 뒤의 어느 한쪽만 진짜 삶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서는 안 된다. 무대 위가 다양한 역할이 실재하는 삶이듯 무대 뒤의 삶도 진짜라는 거다.


수용소와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대 뒤, 즉 배후 공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숨을 공간이 없다. 실제로 나치하에서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아동심리학자 베텔하임은 수용소 생활의 가장 큰 고통으로 '배후 공간의 부재'를 든다.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용소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대부분 죽어나갔다. 살아남은 장기 수감자들의 심리적 상황은 더 처참했다. 어떤 것도 숨기지 못하고 부모에게 모든 것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처럼 수용소의 나치 친위대를 부모처럼 믿고 의지하는 퇴행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스스로 게슈탈트 전환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의 게슈탈트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 장소, 관심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은 맥락을 구체적인 심리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은 사물을 지각할 때 사물의 각 부분을 따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형태, 즉 '게슈탈트'로 파악한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전경이 되고, 그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인물만 뚜렷하게 나오게 하고, 나머지 부분을 흐리게 처리하는 아웃포커싱 같은 원리다. 문제는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적 원리를 심리 치료에 응용한 게슈탈트 치료법에 따르면, 삶이란 이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삶의 어떤 부분이 관심이 초점이 되어 전경이 되면 나머지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맥락이 바뀌면 지금까지의 전경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배경이었던 부분이 전경으로 올라온다. 이러한 게슈탈트의 끊임없는 형성과 해소의 과정이 내 삶의 '내러티브'가 되는 것이다. (...)


삶의 게슈탈트를 바꾸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바꾸는 거다.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동창회, 산악회 같은 것은 아주 '쥐약'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어야 삶의 게슈탈트가 건강해진다.


둘째 '장소'를 바꿔야 한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태도도 바뀐다. 내가 일본에서 몇 년 지내보니 진짜 그렇다. 요즘 난 내 아들보다 더 게으르고 드~럽게 산다. 제대한 그 녀석은 내 아들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된다. 새로운 사실을 깨치고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긍정적인 게슈탈트 전환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관심을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관심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고 삶의 장소도 바뀌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내러티브'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는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이야기 속에서 편집되면서 의미를 획득한다.


" '내러티브'는 '이야기' '서사' 등으로 번역된다.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인간의 사고를 둘로 나눈다. '패러다임 사고'와 '내러티브 사고'다. 패러다임 사고는 자연 과학적 사고다.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추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논리에 기초한 사고다. 반면 내러티브 사고는 행위의 의도, 해석, 의미 부여의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삶의 기쁨, 슬픔은 대부분 이 내러티브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 근대 이후,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적 모델을 차용해 인간 행위의 객관적 설명에 집중해왔다. 인간 또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합리적 존재로 파악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대두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하나의 세계'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세계관, 표상 형식이 포함되는 '이야기'의 해석이 중요한 연구 영역으로 대두된다. 이를 브루너는 '서사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내가 책을 쓰는 방식도 일관되게 내러티브적 속성을 포함한다. 전혀 관계없는 내 개인적 서사와 한국 사회의 집단 서사, 혹은 유럽이나 일본의 서사가 내 글을 통해 서로 얽혀 들어간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해 보이는 학문적 서사 또한 내 기인사에 얽혀 들어온다. 내 구체적 삶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학문적, 집단적 서사가 내 개인 서사와 맞닿으면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재미'란 바로 이 같은 '이야기의 재미'인 것이다."

 

저자는 '구체화 할 수 없다면 가짜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내 삶에서 구체화될 수 없다면 그건 순 가짜라는 것이다. 행복하려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야 한다. 행복은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다.


"공부라는 구체적 경험을 다시 배우는 요즘이다. 스스로의 간절한 필요가 있어야 공부의 방향이 명확해지고, 그래야만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30여 년 죽어라 공부하고, 또 10여 년 교수 생활을 하고도 제대로 못 느껴봤던 진짜 공부를 나이 오십 넘어 뒤늦게 하고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은 아주 막연한 거다.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저자는 젊은 날의 성공이 자랑스러울수록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남 흉내를 열심히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소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나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삶이 지속적으로 창조적이 된다. 삶은 나이 들수록 재미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의 기초로 여기는 '공감 능력'이란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개념에서 유래한다. 1873년 독일의 심리학자 로베르트 피셔는 그의 박사 논문에서 감각적 경험ㅇ르 통해 일어나는 미학적 체험을 '감정이입'이란 개념을 사용해 설명했다. 감정이입이란 그전에는 없던 개념이다.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느낀다'는 뜻의 이 독일어는 영어권에서는 'empathy'로 번역되었고, 오늘날에는 일상어처럼 사용된다. 그러니까 인류가 타인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 심리적 과정을 학문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불과 150년 전이라는 이야기다.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에 인류가 관심을 가진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다는 뜻이다. 그렇게 미개했다. 아무튼, 미메시스로부터 공감에 이르기까지의 개념적 진화를 통해 인간은 서로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에 소통하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 그렇다. 타인의 감정은 그 사람의 정소 표현을 그대로 흉내 낼 때 제대로 이해된다. 공감 능력이란 바로 이 정서의 모방 능력을 뜻한다. 오래 함께 산 부부의 모습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생김새가 닮아서가 아니다. 서로의 정소 표현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흉내 내는 사람이 사랑받는다. 인간은 자신의 정서를 흉내 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바로 이 흉내 내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왜 어린아이가 인형이나 자동차 장남감을 가지고 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하는 것일까? 장난감이 대상 세계를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스포츠 같은 어른들의 놀이도 내용이나 규칙이 더 복잡해졌을 뿐, 그 본질은 모방에 있다.


흉내 내면 즐거워진다. 나이 들면서 삶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도무지 흉내 낼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삶이 지루해지는 이유도 도대체 더는 모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사람일수록 고독한 거다. 가장 처절한 상황은 누굴 흉내 낼 생각도 없고, 그 누구도 나를 흉내 내주지 않을 때다. 아, 세상이 이보다 더 쓸쓸할 수는 없는 거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재미'의 복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는게 재미있어야만 이분법적 시선을 상대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 저자는개인의 삶도 사는게 재미있어야만 다른 이야기에 관대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재미있게 살며, 메타적 시선을 유지하는 능력을 노인학에서는 '지혜'라고 한다.


"거울 앞에 서 자신을 비춰 보는 메타적 시선은 여유롭고 외로운 시간에 제대로 작동한다. 바쁘고 정신없으면 메타적 시선의 획득, 즉 성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고, 잘 쉬어야 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멈추고, 천천히 행복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진정한 '외로움'의 시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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