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이어령.정형모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은 21세기 지식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어령 교수의 핵심 분석과 통찰을 'S매거진'의 정형모 기자가 글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인터페이스 혁명의 시대를 읽는 새로운 지문화학을 말하는 이어령 교수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거의 10년 전 [디지로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그랬다. 지금처럼 디지로그 개념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아이팟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열광시켰을 때, 그게 바로 이 교수가 예언한 디지로그 시대의 서막인 것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에서 파일을 받아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튠즈를 매개로 아날로그 시대의 음향기기와 사이버 시대의 인터넷을 하나로 이어지게 했다. 아이팟이라는 디지로그 환경 속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이패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닌텐도의 위(WII), 애플의 아이패드, 그게 다 아이팟과 같은 개념의 디지로그 제품들이다.
이 교수가 말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휴먼 인터페이스 혁명이 기적처럼 우리 눈앞에서 실현되었다. 아이디어와 이론은 우리가 앞서 있었는데 그것을 실현시킨 것은 미국이요 일본이었다. 왜? 우리는 지의 최전선이 아니라 그 후방에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책상 위엔 촉각 곤두세운 일곱 마리 ‘고양이’가 있다' 중에서)


“블로그를 통해 누구나 언론사 사장이


2016년, 아니 2020년 시대가 흘러도 사실 우리에게는 이 길밖에는 없다. 만리장성만이 아니다.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는 벽, 이 교수가 88올림픽 때 제시했던 그 벽, ‘빈부의 벽, 남녀의 벽, 동서의 벽, 언어의 벽, 이념의 벽……’, 이 모든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제는 동양적 문화, 아낌없이 버렸던 그 문화로 함께 풀어가자는 거다. 서양 문명이 아시아의 축으로 옮아온다는 말 자체가 패권주의적 발상이다. 서구 중심주의가 이 지구에 막다른 위기의 골목을 초래했다면 아시아 중심주의인들 뚫린 골목이 되겠는가.
지의 최전선은 의외로 내 편, 네 편의 싸움이 아니라 우주인과 싸우는 것처럼 지구인 전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전선에서 신무기, 생명화라고 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
('만리장성과 로마 고도' 중에서)


이 책에서 '아날로그 결핍증'이라는 목차의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다. 일정한 규격에서 벗어난 농산물들은 폐기처분 하는 행태는 심각한 상황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떤 규격에 맞지 않아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쓸모가 있다. 규격에 맞춰 잘라 비닐에 포장된 식품들은 본래의 속성을 상실한다. 이어령 교수는 우리가 식품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일회용품 쓰는 듯해 감각적으로 느낄 수가 없게 된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결핍증은 오늘의 인간들이 경험하는 질병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후 2천 년 넘게 쌓아온 형이상학은 피가 흐르는 정육점 살덩어리의 아날로그 감각을 빼앗아갔다.


"북극에만 사는 백곰과 남극에만 사는 펭귄이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 그게 동물원이야. 진짜 생태계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지. 백화점도 마찬가지야. 식품 매장에 가면 과일과 야채가 같은 코너에 있잖아. 생산이와는 상관없이 바나나와 복숭아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 그런데 전혀 다른 것 같은 동물원과 백화점을 이런 시점에서 보면 똑같다는 거지. 생겨난 시기도 똑같아.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도시화 산업화가 한창이던 때야. 자연현상에서 벗어난 서구 근대 지적 시스템의 산물이지."
 

“백화점에서는 원산지가 꼭 동물원처럼 구별이 안 돼.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들, 의상이고 아동복이고 다 추상적으로 분류해서 한군데 모아놓은 거지. 그게 바로 공산품의 특징이야. 그런데 농산물도 마찬가지로 각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그 지역성과 관계없이 도시에 와서 함께 섞여 있는 거야. 슈퍼에 가봐, 거기 자연이 있는가. 오이는 비뚤어진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런데 요즘엔 반듯한 오이가 아니면 상품 가치를 잃어. 특히 미국이나 일본이 심해. 규격이 똑같아야 값도 똑같이 매길 수 있기 때문이야. 그게 어디 농산물이야? 공산품이지. 생물은 원래 불규칙한 것인데 그래서 자연은 직선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슈퍼에서는 그 반대야.”


" 전쟁터에서 칼로 적을 죽인 사람과 활로 쏘아 죽인 사람은 느낌이 다를 게 아냐? 그런게 그게 활이 아니라 더 멀리 떨어져서 사람을 죽이는 미사일이라고 생각해봐요. 사람을 죽였다는 실감이 나겠어?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캐나다에서 대학 강의실에 들어와 여학생들을 모아놓고 쏘아 죽였던 그 유명한 사건을 놓고 생각해보자고. 총으로 수많은 학생을 죽여놓고도 태연하기만 했던 그 범인이 막상 저항하는 한 여학생을 칼로 찔렀을 때는 당황한 나머지 결국 자살하고 말아. 총을 쏠 때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느낌과 별 다를 게 없었던 그 범인도 타인의 몸을 칼로 직접 찌르는 순간, '이것이 살인이구나.'라는 아날로그 감각이 되살아난 거지."

('아날로그 결핍증' 중에서)


원인도 증상도 잘 모르는데 잘못된 이름이 붙으면 사람들은 공연한 공포와 또 그 병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고 역질의 전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광우병은 병명처럼 미치는 게 아니다. 소의 뇌에 해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는 일련의 징후를 알아냈을 뿐이다. 우리가 광우병을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공식명칭대로 BSE라고 불렀다면 혼란과 공포심을 최소화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부담, 정치적 갈등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에볼라라는 역질의 이름도 중요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올 봉사자 구급대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백인에 대한 불신이 각종 음모설로 변해 난무했기 때문이다. 격리된 환자들은 도망가고, 환자가 덮었던 담요들을 서로 빼앗고 시체를 묻으라 해도, 그들은 전통 장례 방식을 고집했다. 결국 치사율 90퍼센트라는 에볼라는 이렇게 방역망을 뚫고 백인 사회로 황인들 사이로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퍼지면서 옛날의 그 무서웠던 페스트의 비극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에볼라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문명의 문제인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바이러스와 문명의 관계, 지금 우리의 목전에 닥친 심각한 지의 투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지의 최전선이라는 말은 단순한 메타포가 아닌 바로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의 살고 죽는 문제이다.


"그거 아프리카의 그 유명한 강 있잖아. 콩고 강 지류에 있는 샛강 이름이야. 그 강촌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였던 거지. 내가 그랬잖아, 바이러스는 인문학자의 몫이라고. 이름 하나 붙이는 거, 나처럼 문학을 하고 기호학을 하는 사람들 역할이야. 병균도 우리 분야에 오면 언어가 되거든. 바이러스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 왜 그런 이름을 달았느냐, 이게 진짜 중요한 문제야. 병명에 따라 역학보다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


"왜 그 무서운 역질을 하필이면 아프리카의 강이름을 따서 불렀겠어. 에볼라 하면 독재자나 마귀의 이름을 듣는 것처럼 온 세상 사람이 떨어. 망원경으로 새로운 별을 발견하면 자랑스럽게 그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잖아. 그런데 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발견하면 말이야, 그걸 발견한 사람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발상지의 그 후진 이름을 붙인다고. 병명은 나도 모르게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해. 편견도 낳고 고정관념도 낳고... 이미 말한 그대로야. 그러니까 전미 신대륙에서 성병이 들어왔을 때 유럽 사람들은 그 병명을 상대방 나라 이름을 따서 붙였지.(...) 그러니까 문제는 전 세계가 글로벌화로 월드 시스템이 됐기 때문에 우리와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아프리카에서 생긴 병이 세계적인 재앙으로 떠오르게 된다는 거야. 에볼라 그 강 이름이 평생 가도 어디 한 번 우리의 입에 오르내렸겠어? 그 무서운 바이러스 이름을 한강이라고 지었대봐. 한강 소리만 들어도 전 세계 사람들이 떨 거 아니겠어. 그리고 생각하기도 싫지만 아프리카처럼 백인들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를 했고 곳곳에 불행을 뿌려 우리가 그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쳐봐. 지금 에볼라가 아프리카에서 생겨 옛날에 그들을 지배했던 백인들이 이제는 MSF(국경 없는 의사회)니 유니세프니 그 질병을  돕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지. 우리가 그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몇 천만 년 인간과 무관하게 공생해오던 세균과 바이러스들 역시 그냥 당하고 있겠어? 이제까지 초원과 사막 그리고 수풀에서 평화롭게 살아오던 원주민들이 백인들의 공격으로 갑자기 혁명 전사로 그 모습을 바꾼 것처럼 그들도 똑같이 인간을 물어뜯는 변종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그걸 이머징 바이러스(emerging virus)라 그래. 짐승만 걸렸던 질병이 인간에게로 옮아오고, 어제까지 괜찮던 대장균이 이질균과 합쳐 무서운 O157 신종 병균이 나타나고……. 중세의 페스트와는 질이 다른 세균과의 싸움이 벌어지게 된 거야. 그래서 이건 문명전이고 문화 전쟁이고 미래 전쟁이야.”
('에볼라의 이면' 중에서)


이어령 교수는 관심, 관찰 그리고 관계. 모든 지적 프로세스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종교든 정치든, 바로 그 세가지라고 말한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스포츠에서 에볼라로, 3D 프린터로 거미줄처럼 모든 언어들이 뒤얽혀 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것들과의 접촉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한다. 전부 밖에 있는 것들을 자기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게 남이라고 해서 전부 폐쇄하고 성벽을 쳐버리면, 인간은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밖의 것을 다 받아들이면, 나 아닌 것이 내 체계 안으로 들어와 나의 생명 시스템이 파괴되고 만다. 결국 감염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아토피 같은 면역 체계 이상으로 말이다.


"관심은 가슴이지만 관찰은 머리와 눈이야. 쿨해야지. 그 데이터를 가로세로 옷감 짜듯이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책으로는 아직 안 나온 것들이야. 살아 있는 정보들이지. 책이나 도서관에 있는 것은 이미 누군가 생각한 것들, 즉 소프(thought)야. 과거 분사지. 하지만 나는 지금 검색을 통해 싱킹(thinking)하고 있어. 싱킹은 think의 현재분사야. 질이 달라. 국경 없이 창궐하는 에볼라와 싸우는 것은 '국경 없는 의사회'만이 아니란 말이지. '국경 없는 지식인단'도 필요한 때가 온 거야. 소트가 아니라 싱킹하는 '국경 없는 지식인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정체불명의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겪지 못한 바이러스가 침입하잖아. 우리 몸에 면역 기관으로만 막을 수 있어? 병균만이야? 세계 도처에서 우리 DNA 정보에 한 번도 찍힌 적이 없는 놀라운 사건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잖아. 싱킹, 그게 인문학자들이 해야 할 면역체라고."


"아무런 혈청제도 없이 그렇게 100년, 200년 동안 에볼라 같은 문명 바이러스에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우리 형님이 쓰려졌지. 미구에는 내 아들이, 내 손자가 그렇게 쓰러질 거야. 이건 국수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편협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고. 적어도 나와 타자를 구별하고 그것이 침입할 때 그와 싸워 박명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타자를 나의 관용이라고 하는 특별한 세포로 포섭하여 그와 공생하는 면역체를 만들어내던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사활의 문화 문명의 문제인 거야."


"결국 바이러스와 인간의 관계지. 심각하잖아. 옛날에는 균이나 바이러스가 사람 몸으로 들어오면 인간의 면역 체계로 막아냈어. 공격과 방어야. 그런데 이게 말이야, 변하게 된 거야. 바깥의 침입자와 싸운다는 것은 나와 남(타자)이 다르기 때문이잖아. 그런데 나 혼자 살 수 있어? 타자를 밀어내면서도 타자와 함께 살아가려면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새로운 사상과 행동이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지."

('검색과 사색' 중에서)


이어령 교수는 '시프트(shift)'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어령 교수는 유선을 뛰어넘어 무선으로, 휘발유차를 뛰어넘어 전기차로 가는 것. 3D 프린터로 집과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것. 그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대한민국이 진정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테슬라는 벤츠나 토요타를 쫓아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섰다(shift)는 데 포인트가 있다. 테슬라는 인문학자와 같은 창조적 상상력이 있었던 것이다. 과학과 시술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상상이다. 그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마인드다. 그것도 과거를 소트(thought)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현재를 싱킹(thingking)하는 살아 있는 인문학. 이어령 교수는 에디슨이 왜 테슬라에게 이기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테슬라의 위대한 점은 전깃줄이 막 깔리고 있을 무렵에 이미 무선 시대를 생각했다는 거지. 무선 통신은 마르코니가 발명했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 테슬라가 2년 먼저 한 거야. 오늘날 리모컨 블루투스의 기초가 다 그 사람에게서 나왔어. 이 사람 생각이 너무 앞서가서, 일설에는 이 사람이 죽었을 때 연구 자료를 CIA가 모두 가져갔다는 얘기도 있어. 전파나 레이저로 무기를 만든다고 생각해봐. 하여튼 실리콘밸리 애들이 전기 자동차를 만들면서 이 에디슨의 라이벌 이름을 썼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지.”
이 교수는 ‘시프트(shift)’라는 말을 강조했다. “중국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훌쩍 뛰어넘어(shift) 앞서는 것은 정말 무섭다.”고 했다. 유선을 뛰어넘어 무선으로, 휘발유차를 뛰어넘어 전기차로 바로 가는 것. 3D 프린터로 집과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것. 그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대한민국이 진정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했다. 테슬라는 벤츠나 토요타를 쫓아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섰다(shift)는 데 포인트가 있다는 것이다.
('에디슨과 테슬라' 중에서)


이어령 교수는 산업이나 금융이 번영을 이끌어가는 자본이 아니라 생명을 새로운 자본으로 하는 시대를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한강의 기적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도 물거품이 되는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공감의 힘, 생명을 지키고 키우는 건강과 매력, 이를테면 지금까지 투자가들이 외면해왔던 병원(의료), 학교(교육), 문화 예술이 생산과 소비의 원동력이 되는 생명 자본주의 시대가 열린다는 거다. 지의 최전선, 우리가 점령해야 할 고지는 생명 자본주의이다. 빵은 자기가 먹기 위해서 사지만 생일 케이크는 남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생명이 태어난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산다. 생일 케이크는 생명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파티장의 박수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사랑과 그 공감을 함께 누리기 위해 그것이 존재한다. 생명 자본주의의 상품들은 빵이 아니라 생일 케이크가 기본이 되고 자본이 되는 그런 시장이다.


스페인과 제노바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노마크 찬스로 금 덩어리, 은 덩어리 다 실어다 금융으로 재미를 본다. 돈만 있으면 물건을 왜 만드나? 남이 만든 거 사오면 되지. 황금만 있으면, 그걸 맡겼다는 보증서인 지폐만 있으면, 가벼운 종잇장 하나로 세계를 살 수 있다. 바다를 자기 안방으로 만든 스페인의 무적함대, 그 해상 권력이 신대륙의 금은보화 실어다가 재미를 본 것이 바로 스페인이 망하게 된 원인이라는 거다. 물건을 만들지 않고 노동하지 않고서도 돈만 있으면 편하게 산다. 그게 소위 금융자본주의라는 거다. 헌데 금리 먹고 살아가는 금융 왕국 스페인-제노바가 16세기 중반에 오면 6퍼센트 대의 금리가 2퍼센트로 하락한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더 이상 돈이 자본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더 투자할 데가 없다. 그렇게 되면 종이 돈, 금 덩어리 있어도 쓸데가 없다. 지금 미국이나 일본이 그렇다. 금리가 2퍼센트 이하로, 심지어 제로로까지 하락했다. 미국은 스페인이고 일본은 제노바 역할을 한 거다. 그나마 국채를 사줄 데가 있으니 미국이 버틴 거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이제 토스트기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고 한탄한 [아메리칸 나우(American Now)]읽어보면 안다. 스페인이, 영국이, 미국이 그리고 일본이 그렇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거다.
('인터페이스 혁명' 중에서)


"미국의 한 대학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매일 자지가 먹은 음식 이름과 그 정보를 기록했다고 했다. 4년 동안 기록하니 그 자료들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통계 자료가 됐다. 젊은이가 먹은 음식들을 분석해 여러 유의미한 사실을 추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니 민주주의니 정치, 선거, 경제 문제 같은 '큰 이야기'를 다룬 어떤 학생들의 자료보다 비싸게 팔렸단다. 큰 이야기만 적은 역사책에서는 기록되지 않는 자잘한 이야기들... 그걸 적은 소설 속 데이터를 통해 오히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식인들이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주장하기 위해 쓴 논문이나 저술 같은 '대설'에는 없는, 새로운 진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큰 이야기'를 상실한 시대고, 자기 사상만이 모든 것의 해법이라는 큰 이념의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두어 두는 '대설'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발 장수는 모자 장수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어령 교수의 혜안을 통해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살아 펄떡이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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