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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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쓴 용산이라는 장소에 관한 산책의 흔적이다. 저자는 이 책이 '용산이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글쓰는 산책자인 '나'는 익명의 실존이 돌아다는 흔적이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용산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으며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지역이기 때문이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의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영감을 주는 특별한 장소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지나친 장소, 차마 지나치지 못한 장소가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그런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이 책에서 삼각지, 효창공원, 청파동, 용산전자상가, 용산역, 서부이촌동, 삼각지 화랑거리, 전쟁기념관, 녹사평역, 해방촌, 이태원, 후커 힐, 남산, 한남동,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남일당 터라는 용산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용산역의 역사가 1906년 러일전쟁 직후의 경의선 출발역으로 역사를 세움으로서 본격화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개발 시대인 1974년에는 수도권 전철역이 만들어지고 1990년 서부 역사가 준공되었는데 이때 용산 역사는 70년대의 전형적인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2004년 민자 역사가 건설되고 이곳이 호남선,전라선,장항선의 고속철도의 출발역이 되면서 용산역은 새로운 위미를 갖게 되었으며, 새 역사는 거대한 복합 쇼핑몰이 둘러싼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화려한 아이파크몰을 뒤로 하고 더이상 떠날 수 없는 장소로 용산역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의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한국영화 <화차>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아 살던 여자는, 새로운 범죄를 위해 용산역에서 떠나려 하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 파국에 이르자 여자는 아이파크몰의 쇼핑몰을 가로질러 도망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철길 위로 몸을 던진다. 여자가 더이상 도망칠 수 없었던 마지막 자리를 용산역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절묘하다. 역이란 떠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젠 더이상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깨닫게 해주는 장소이다. 다른 생으로 옮겨 가는 것, 또 한번 이번 생의 시간을 바꾸는 것은, 때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저자가 이태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태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 때 이곳에 큰 배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원래는 조선 시대 공무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여관이 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근대 초기에는 일본인 거주 전용 거주 지역이 조성되어 이타인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태원의 이방적인 성격은 미군 부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태원은 이 도시의 가장 다양한 인종의 전시장이다. 이런 장면들은 내국인들에게는 혼란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고, 내국인들의 평균적인 삶과 문화에 단절과 균열의 경험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 혼란과 균열의 경험은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것이었다.(...) 이곳에서 한국인은 주인도 아니며 어쩌면 내국인도 아니다. 거리로 나오면 외국인 특유의 몸냄새와 각종 향수 냄새와 이국적인 음식 냄새가 순식간에 뒤섞인다. 이곳이 모든 것을 뒤섞는 이방의 세계임을 직감한다. 국가의 안과 밖이 전도된 이 장소에서 한국인은 다만 여행객일 뿐이다. 한국인을 여행객으로 만드는 이 기이한 공간을 소비하려는 한국인들로 이곳은 언제나 넘쳐난다."

책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용산이라는 장소를 산책하며 사유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서울의 중심지인 용산의 다양한 장소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나니 용산의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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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마크 트웨인 지음, 북트랜스 옮김 / 북로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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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드 출판사에서 나온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아름다운 표지부터 끌린다. 미국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제목은 무척 유명하다. 어릴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소설이지만, 이 책을 읽어본것은 성인이 된 지금이 처음이었다.

매일 술에 취해있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시시피 강에 있는 잭슨 아일랜드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도망친 흑인 노예 짐을 우연히 만나 두 사람은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고 다양한 모험을 겪게 된다.​

백인 소년 허클베리 핀과 흑인 노예 짐의 모험담은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함께 백인 소년과 흑인 노예의 우정을 담아낸다. 또한 자신의 굴곡진 삶에서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바라는 소년의 성장기로도 볼 수 있다.​

"나는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어디론가 가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꼭 어디로 가고 싶다기보다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작가 마크 트웨인은 기독교적 관습에 대해 반항하는 내용을 표현하여 인상적이다.​

"간혹 더글러스 아주머니는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들려주기도 했다. 제법 마음이 끌리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왓슨 아주머니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결국 나는 하느님의 섭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해 더글러스 아주머니 쪽 하느님의 섭리로는 못난 사람들도 구제될 수 있지만, 왓슨 아주머니 쪽 하느님의 섭리에 의하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더글러스 아주머니 쪽 섭리를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고 변변치 못한 내가 하느님의 섭리를 따른다고 해서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최초로 인종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뜻깊은 소설이 아닐까.​ 양심의 가책 속에서도 흑인 노혜 짐을 도와주는 허클베리 핀의 우정과 모험담이 생생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강을 내려가며 여행하던 때의 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낮이나 밤이나 달밤에도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노래하고 웃으면서 뗏목을 타고 내려왔다. 생각해보니 나는 짐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곤히 잠든 나를 깨우지 않고 내 몫까지 불침범을 서던 짐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안개 속에서 돌아왔을 때 그렇게도 반가워하던 짐. 두 집안이 서로 반목하던 북쪽 마을의 늪지에서 재회했을 때의 모습. 그리고 늘 나를 착한 아이라고 부르며 귀여워해주었고, 나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주었던 짐, 항상 선량하던 짐, 마지막으로 뗏목 위해 천연두 환자가 있다고 둘러대며 짐을 구해주었던 일이 생각났다. 짐은 굉장히 기뻐하며 나에게 이 세상에서 사귄 친구 중 가장 훌륭하고 둘도 없는 친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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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렌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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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렌>은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 상과 유럽추리소설 대상, 페이퍼백 추리소설 대상, 코냑페스티벌 일등소설상, 미스터리문학 애호가상 등 전유럽 문학상을 휩쓴 피에르 르메트르의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의 첫권이다.​ 이 책의 작가인 피에르 르메트르는 대학교수로 프랑스문학과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써내려간 한 편 소설로 2006년 코냑 페스티벌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며 55세의 나이로 등단하였다. <이렌>이 그의 처녀작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이 책의 제목인 '이렌'은 소설 속 주인공인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의 아내의 이름이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이렌인가는 책의 결말 부분을 읽고 나면 이해되기 시작한다. 

카미유 베르호벤 수사 팀은 현장에 남겨진 가짜 손가락 지문을 통해 이 사건이 2년 전 트렝블레에서 발생한 또 다른 매춘부 살인사건과 연계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사건들의 공통점은 현장과 시신에 가짜 손가락 지문이 남겨져 있었다는 것과 어떠한 이유도 찾아낼 수 없는 범행과정상의 디테일들이 넘쳐 난다는 것. 그 무렵 카미유 반장의 아내 이렌은 임신 8개월째를 맞아 사건 수사에만 전념하는 남편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수사가 미궁에 빠진 카미유 반장은 그런 아내를 돌볼 겨를이 없어 심적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혹시 몇몇 탐정소설들의 범행 장면을 범인이 재현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는 추리가 떠오르면서 범인이 혹시 탐정문학광일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어느 탐정문학 전문지에 광고를 내기에 이른다. 그러자 범인에게서 뜻밖에도 카미유의 추리를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답신이 온다. 이후 카미유와 범인은 몇 차례에 걸쳐 이런 접촉을 이어간다. '르 마탱'지의 사회부 기자 필립 뷔송이 이런 접촉의 부당성을 대서특필하자 카미유는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그런 안팎의 협공에 굴하지 않고 카미유는 특별수사팀을 꾸려 계속 수사에 몰두하던 중 이렌이 범인에게 납치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카미유로서는 그 단서를 확보하기 위해 범인이 재현 대상으로 삼은 또 하나의 원작이 무엇인지 찾아 나선다.

<이렌>에서 ​145cm의 왜소한 체구를 지닌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이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흡입력있게 펼쳐진다. 카미유 베르호벤은 예리한 지성과 천재화가인 어머니의 예술적 감수성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가물거리기 시작하는 의식을 마지막으로 모아, 그는 이제부터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두 가지 목표를 정리해두기로 했다. 첫 번째는, 자기가 지금 어루만지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에는 미처 기대할 수도 없었던 선물을 자기에게 안겨주려 하는 이 여인을 극진히 사랑하겠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가엾은 아가씨들을 살해하고 강간했을 뿐 아니라 토막 내서 벽 위에 전시하기까지 한 살인마들을 반드시 찾아내 자기 손으로 체포하고야 말겠다는 것."​

<이렌>에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책속에 등장하는 내용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독특하다.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살인의 과정을 문학작품에 표현하는 과정대로 재현한다는 설정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살인마가 형사반장 카미유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단순한 광기의 살인마가 아닌 지적인 살인마와 대결하는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소설의 끝부분에 드러나는 지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반전은 탐정소설의 색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그런데 제게 주어진 소명은 우리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표현한 허구적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해내는 종류의 과업입니다. 이 '정확하게'라는 부사어야말로 제 작업이 지향하는 중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 최소한의 디테일조차도 다른 대상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주의 깊게 다룰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 앞에 트여 있는 예술의 길은 바로 모사입니다. 한마디로 저는 재생해내는 사람, 중세 시대에 성서를 베껴 적어야 했던 수도승들과 마찬가지로 필경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를 사로잡고 있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저는 자신을 억제해가며 고전명작들을 되풀이 읽는 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고전명작들과 친숙해지는 일은 저에게 영혼이 고양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주기도 했지요.(...) 탐정문학의 경이로운 성공은 세상이 얼마나 죽음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줍니다. 신비로운 수수께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작금의 세상은 이러한 이미지들에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이 이 이미지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에는 오로지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전쟁 상황의 조성과 터무니없는 학살을 제외하면, 죽음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정치는 무엇을 비축해두고 있을까요? 바로 그 이미지들입니다. 인간은 불나방처럼 저돌적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향해 몰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죽음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예술가들만이 그런 인간의 죽음 충동을 달래줄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죽음을 원하는 인간들을 위해 죽음에 대해 씁니다. 그들의 써낸 허구의 참사들은 모두 죽음의 욕구를 진정시켜주기 위한 방편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늘 그보다 더 강력하고 실제적인 무언가를 원하기 마련입니다."

<이렌>에서 카미유의 어머니가 살아생전 <골이앗의 머리를 든 다윗>의 그림을 평하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처럼 독자에게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을 뒤집는 질문을 던져 놓는다.

"사람들은 흔히 악에 맞선 선의 투쟁이라고 이 그림의 주제를 단정짓곤 하지.

하지만 다윗과 그의 광기 어린​ 눈을 보렴. 골리앗이 드러내는 고통과 체념도. 여기서 선은 어느 쪽이고, 악은 어느 쪽이겠니? 여기서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보이는구나......"

<이렌>에 등장인물인 발랑제르 교수가 이야기하는 탐정소설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탐정문학을 연구하는 발랑제르 교수의 이야기는 작가가 대중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렌>에 등장하는 발랑제르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문학에서 범죄는 사랑못지않게 오래된 주제'임을 이야기하며 탐정소설의 가치를 드러낸다.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의 첫권 <이렌>을 읽고나니, 다음 시리즈물에서는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에게 어떤 사건이 전개될지 더욱 기대된다.

"탐정소설은 오랫동안 하찮은 분야로 취​급받았다.이 소설 장르가 본격문학과 같은 대우와 권리를 누리게 되기까지는 거의 한 세기 이상이 걸렸다. 이른바 '유사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격하되어온 탐정소설 장르의 해묵은 소외는, 독자들과 작가들 그리고 편집자들이 오랫동안 무엇을 두고 문학적이라고 여겨야 하는지 합의해온 문화적 관례와 상응하는 결과였다. 또한 소재의 측면에서 주로 범죄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그릇된 선입견을 불렀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어떤 유형의 작품만이 문학이라는 이름에 부합한다는 담합이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문학의 정의에 대한 근거 없는 자명함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아집은 살인과 수사라는 소재가, 도스토옙스키에서부터 포크너에 이르기까지 또는 중세문학에서 모리아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고전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는 몇몇 문호들의 작품 속에서도 특별한 재료들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학에서 범죄는 사랑 못지않게 오래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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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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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여행에세이이다. 이 책은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이후의 우리가 사랑한 유럽의 두번째 이야기이다. 정여울은 여행이 저절로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라도 내 삶을 바꾸겠다는 절실한 의지가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무엇을 수확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판가름하지 말라.

당신이 어떤 씨앗을 심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평가하라.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나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소중한 것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는 것, 내가 그 꿈을 사랑한다는 것,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마음의 열매가 아니라 마음의 씨앗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하나의 거대한 씨앗을 심는 느낌이었다. 그 열매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10년 전에 뿌린 내 여행의 씨앗이 10년 후에야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처럼, 이루지 못한 우리의 꿈도, 사랑도, 우정도 하나같이 소중한 씨앗이 되어 오늘 우리 마음밭에 무사히 잘 심어지기를."

 

 

 

정여울이 '런던의 뒷골목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다. 여행을 떠날 때 가보고 싶은 장소보다는 만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한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평생 살아갈 용기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시절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에게 그런 고민에 빠져 낙담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너는 충분히 너 자신을 내던지지 않았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정여울에게 한발은 안전된 삶을 향해 뻗어 있고, 나머지 한 발만 꿈꾸는 삶을 향해 가까스로 걸치고 있는 위태로운 걸음마로 휘청거리는 삶에 따스한 위안이 되어준 사람이였다.

여성이 작가가 되기는커녕 어엿한 직업을 가지기도 힘들었덛 시대, 버지니아울프는 자유의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로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을 선언했다. ​

"그녀는 작가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즉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쓰기. 동시에 남성처럼 쓰지 말고 오직 여성들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기. 그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여성이기 때문에 힘겹고, 여성이기 때문에 더 아픈 그 무언가를 벗어던질 때 진정한 자아가 해방된다는 것. 나아가 그렇게 힘겨운 투쟁을 통해 얻은 자유야말로 진정으로 여성적인 글쓰기의 씨앗이 아닐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고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 " 

 

 

 

 

 

정여울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융 연구소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가장 싫어하는 여행지가 가장 멋진 여행지로 탈바꿈했다고 말한다. 물가가 너무 비싸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던 도시 스위스 취리히가 그녀의 오랜 멘토였던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의 흔적을 찾아 걸어가는 동안 꼭 한번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꿈꿔온 삶이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끝도 없이 토론하고 연구하는 삶을 함께할 친구를 찾는 것. 학위나 논문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열정적으로 인간의 마음, 상처, 꿈, 사랑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이 소원이었다.

융은 지상에 살아있진 않지만, 막다른 골목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생명수를 찾듯 매번 의지하는 마음의 스승이다. 그의 넋과 손길, 친구들과 환자들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는 융 연구소는 타인의 마음을 만지고 구슬리고 달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답게 무척이나 아늑하고 고즈넉했다. 취리히를 가로지르는 리마트강을 한가득 품어 안고 있는 융 연구소는 융 자신의 성격처럼 섬세하고 담대하며 인자했다."

 

 

 

 

사춘기 시절부터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이 여행기였다고 말하는 정여울. 그녀는 여행지에서 겪은 수많은 우여곡절이 지금의 자신을 다독이고, 일깨워주고, 쓰다듬어 준다고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신체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다.'라고 말하는 정여울의 글귀에 공감한다. 여행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우연 속으로 나를 던질 수 있을때 폭넓은 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을 읽으면서 유럽의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읽는 동안 유럽의 색다른 장소를 떠난 듯한 기분 좋은 여행 에세이로 추천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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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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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작가 윤대녕이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그는 연재를 시작할 무렵 쉰 살의 문턱을 막 넘어서고 있었고, 때때로 지나온 생을 돌아보게 되는 나이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쓰여진 윤대녕 작가의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 윤대녕 작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 자신의 이야기도 찾아가게 만드는 힘을 배운다. 이 책은 윤대녕 작가의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삶은 한갓 꿈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니 정말이지 보든 게 찰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끄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가끔 찾아가보았다. 짐작했듯 대부분의 공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는 마음의 텅 빈 장소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매달 한 편씩 연재를 하면서 나는 무척 행복했던 것 같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고향집(왜 하필 '거기'여야만 했을까?), 늙은 그녀(나라는 존재가 비롯된 아득하고 영원한), 휴게소 공항 역 터미널(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지점), 누군가 술을 마시다 떠난 지하 카페(은행잎이 쏟아져 내리던 날), 노래방(그림자처럼 머물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바다(영원의 순간과 마주하며), 유랑의 거처(글쓰기의 시간대), 술집들(폐허에의 환속), 골목길들(실루엣들이 서성대는 곳), 사원들(성스러운 사유의 집), 역전 다방(우리 모두가 남루한 행인이었을 떄), 경기장(함성과 고독 사이에서), 음악당(황활한 명상의 기쁨이 가득한), 여관들(별빛 속의 수많은 나그네들이 길을 가다가), 부엌(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목욕탕(벌거벗은 몸뚱이로 참회하고 또한 참구하고저), 영화관(<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시절), 자동차(근대 이후의 유목민을 위하여), 도서관(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 우체국(제비들이 날아오고 날아가는 곳), 공중전화 부스(저쪽 연못에서는 붕어가 알을 까고), 병원(그래, 이제 좀 웬만하오?), 광장(<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윤대녕 작가와 함께했던 시공간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휴게소, 공항, 역, 터미널'이라는 제목의 내용의 인상적이다. 윤대녕 작가는 마흔 무렵에 가난한 여행자였고, 미래가 불투명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우울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휴게소 식당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그는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전보다는 조금 겸허해지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도 얼마쯤 ㅍ녀견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나 작가 자신이나 결국 한통속, 한종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삶 자제츼 무게가 한결 가볍게 여겨지는 현상이 찾아왔다고 고백한다.

"휴게소 식당 문을 밀고 나오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생은 다른 곳에'(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스쳐 가는 한갓 여행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한 그것을 가장 잘 의미하는 공간은 이렇듯 휴게소, 공항, 버스 터미널, 기차역 같은 분기점에 위치한 임시적 장소라는 것을."​

"전에 제주도에 살 당시(2년을 살았다) 나는 사람이 그립거나 삶의 감각이 무뎌진다 싶으면 공항에 가서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오랫동안 눈여겨 보다가 작업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일은 확실히 글을 쓰거나 삶을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여행자 차림의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과 기대, 피로와 허무, 슬픔과 고통, 기쁨과 설렘 같은 삶의 온갖 감정들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이 삶이 축소된 공간이라는 것을. 삶의 현장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윤대녕 작가가 '바다'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했다. 아이와 함께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이야기 등 바다에 관한 사색이 담겨있다.

"겨울이 되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바다다. 바다는 꿈에서 먼저 찾아온다. 마치 생리 현상처럼 거역할 수 없이 주기적으로 떠밀려 오는 것이다. 그리고 보리 싹이 팰 무렵이 되면​ 바다는 내게서 썰물이 되어 속절없이 빠져나간다. 그 지점에서 나는 이빨이 하나씩 뽑혀 나가듯 한 살씩 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느끼며 응시한다. 바다는 순환을 통해 영원을 지속하지만 나는 저항하지 못한 채 늙어가고 차츰 병들어간다. 이것이 말하자면 바다와 나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상응하되 점점 멀어지는 관계 말이다."

이 책에서 특히 윤대녕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그는 어린시절 잦은 이사로 이해서 노마드적 성격이 형성되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글을 쓰기 위해 자취방에 은거할 때는 제외하고는 주로 여행을 다녔다고 말한다. 그는 30대 후반 유럽의 여행지인 시골  마을에서 독일 시인의 시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고백한다. 그 시는 바로 한스 카로사의 <옛 샘>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나는 집필여행 삼아 수시로 여행을 떠났다. 등단 초기에는 주로 해남을 비롯한 전남지방으로 몸과 거처를 옮겨 다녔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소설들이 길에서 쓰여지고 허름한 여관방에서 완성되었다. 30대 중반부터는 하동을 비롯한 경남 지역으로 자주 내려갔다. 40대에는 제주도에 곧잘 머물렀으며 그곳에서 2년 동안 체류하며 글을 쓰기도 했다."

윤대녕 작가는 등단한지 10년 정​도가 된 30대 후반의 나이에 꾼 꿈을 소개한다. 밤마다 얼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 목을 조르고 원망을 하고 고통에 찬 아우성을 치는 악몽이었다. 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상처를 주었거나 고통을 준 사람들의 얼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며 타인의 고통에 대체로 무감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로 인해 그는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으며 술로 의지하다가 산사에 들어가 참구했다. 생각다 못해 그는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고, 제주도에는 우주만한 거대한 목욕탕인 바다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바다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으며 지난 생을 돌아 보았다고 고백한다.

"하나의 사소한 고백이 되겠는데 나는 매일 목욕탕에 간다.(...)한가지 더 고백을 하자면 나는 평소에 딱히 만날 만한 친구가 없으며 좀처럼 연락을 해오는 사람도 없다. 내자는 그런 나를 은근히 부끄럽게 여기고 또한 실망스럽게 바라본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무안하기 짝이 없다. 진심을 터놓고 얘기를 나눌 만한 사람 하나 없이 차차 늙음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 눈에는 아주 오래전 아버지와 함게 처음 목욕탕에 갔던 날의 풍경이 선연하게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수행이라도 하듯 노예나 죄수처럼 벌거벗은 몸뚱이로 자신을 참회하고 참구하던 사람들의 엄숙하고 비장한 모습들이 말이다."

윤대녕 작가가 영화관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그가 영화를 위면서 휴식과 위로를 얻었다는 말 속에, 영화와 소설은 이야기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극장에 갈 때는 조용히 혼자 갔다. 영화를 일컬어 사람들은 흔히 '꿈의 공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어둑한 사각형의 공간에서 온전히 혼자 꿈을 꾸고 싶어 영화관에 자주 드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듯 꿈의 공간을 출입하면서 누구에세도 말 못할 상처와 괴로움을 치유하고 그럭저럭 10대의 날들을 살아내지 않았다 싶다."​

"현실이 되레 허구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극장 안에 들어가 앉아 있곤 했다. 나는 그 사각형의 어둠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이 비록 꿈이거나 환상이거나 혹은 가공된 이야기라 할지라고 거기서 나름의 휴식과 위안을 얻었다. 이윽고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의 밝음에 당황하기는 매번 마찬가지였으나, 그렇게 문득 방향성을 상실한 채 거리를 걷다 보면 내게도 뭔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나는 구원처럼 받아들였다."​

윤대녕 작가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관해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이라고 표현한다.​ '글은 쓰여지면서 동시에 유서가 되고 저자는 자신이 쓴 글에 배반당하며 또한 적극적으로 소외되고 타자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면 도서관 내부는 조용히 웅성거리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만의 자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즈음이 바로 유령들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돌연 긴장한 상태가 되어 사위를 두리번거리거나 거역하기 힘든 호기심에 이끌려 어두운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곤 했다. 말해 무엇하랴만 도서관은 죽은 말들의 세계였고 그러므로 밤마다 유령들이 출몰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사실상 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책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었고 혹은 저자가 살아 있다고 해도 글쓰기를 마치는 순간 필연적으로 유물로 변하게 바련이었다. 그렇다는 것을 나는 작가가 되어 글을 쓰면서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 글은 쓰여지면서 동시에 유서가 되고 저자는 자신이 쓴 글에 배반당하며 또한 적극적으로 소외되고 타자화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작가의 운명이며 그 되풀이되는 운명의 결과로 한 권의 책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죽은 자들의 잠정적 현현으로 가득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모든 존재는 시공간의 그물의 갇혀 살아가고 있다.'는 윤대녕 작가의 말처럼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시간과 공간의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윤대녕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어떤 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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