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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ㅣ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평점 :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쓴 용산이라는 장소에 관한 산책의 흔적이다. 저자는 이 책이 '용산이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글쓰는 산책자인 '나'는 익명의 실존이 돌아다는 흔적이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용산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으며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지역이기 때문이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의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영감을 주는 특별한 장소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지나친 장소, 차마 지나치지 못한 장소가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그런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이 책에서 삼각지, 효창공원, 청파동, 용산전자상가, 용산역, 서부이촌동, 삼각지 화랑거리, 전쟁기념관, 녹사평역, 해방촌, 이태원, 후커 힐, 남산, 한남동,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남일당 터라는 용산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용산역의 역사가 1906년 러일전쟁 직후의 경의선 출발역으로 역사를 세움으로서 본격화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개발 시대인 1974년에는 수도권 전철역이 만들어지고 1990년 서부 역사가 준공되었는데 이때 용산 역사는 70년대의 전형적인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2004년 민자 역사가 건설되고 이곳이 호남선,전라선,장항선의 고속철도의 출발역이 되면서 용산역은 새로운 위미를 갖게 되었으며, 새 역사는 거대한 복합 쇼핑몰이 둘러싼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화려한 아이파크몰을 뒤로 하고 더이상 떠날 수 없는 장소로 용산역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의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한국영화 <화차>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아 살던 여자는, 새로운 범죄를 위해 용산역에서 떠나려 하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 파국에 이르자 여자는 아이파크몰의 쇼핑몰을 가로질러 도망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철길 위로 몸을 던진다. 여자가 더이상 도망칠 수 없었던 마지막 자리를 용산역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절묘하다. 역이란 떠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젠 더이상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깨닫게 해주는 장소이다. 다른 생으로 옮겨 가는 것, 또 한번 이번 생의 시간을 바꾸는 것은, 때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저자가 이태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태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 때 이곳에 큰 배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원래는 조선 시대 공무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여관이 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근대 초기에는 일본인 거주 전용 거주 지역이 조성되어 이타인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태원의 이방적인 성격은 미군 부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태원은 이 도시의 가장 다양한 인종의 전시장이다. 이런 장면들은 내국인들에게는 혼란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고, 내국인들의 평균적인 삶과 문화에 단절과 균열의 경험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 혼란과 균열의 경험은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것이었다.(...) 이곳에서 한국인은 주인도 아니며 어쩌면 내국인도 아니다. 거리로 나오면 외국인 특유의 몸냄새와 각종 향수 냄새와 이국적인 음식 냄새가 순식간에 뒤섞인다. 이곳이 모든 것을 뒤섞는 이방의 세계임을 직감한다. 국가의 안과 밖이 전도된 이 장소에서 한국인은 다만 여행객일 뿐이다. 한국인을 여행객으로 만드는 이 기이한 공간을 소비하려는 한국인들로 이곳은 언제나 넘쳐난다."
책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용산이라는 장소를 산책하며 사유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서울의 중심지인 용산의 다양한 장소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나니 용산의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