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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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총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할머니의 시선이 담긴 강렬한 표지가 호기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100년의 역사를 관통하며 여성의 굴곡진 삶을 살아온 102살 할머니가 루처 총을 든 사연은 무엇일까? 이 책은 소설가인 동시에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 감독인 '브누아 필리퐁'이라는 남성 작가가 써내려간 페미니즘 소설로 독자들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역사와 독보적인 블랙코미디의 세계로 인도한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탕! 탕! 베르트는 총을 다시 장전했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며 독자들을 호기심의 눈으로 초대한다. 이후 경찰인 벤투라 반장은 경찰들에게 총을 쏘아댄 이유로 체포된 할머니 베르트를 상대로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하고, 주인공인 102살 할머니 베르트는 벤트라 반장에게 루거 총을 사용하여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위협했던 남자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 책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우월한 남성의식으로 둘러싸인 남자들과 결혼하며 그들을 베르트만의 방식으로 제거하는 과정들이 인상적이다. 베르트는 아문 상처 속으로 고통과 상처를 헤집는 과정에서조차 지난한 삶의 변곡점들을 지나온 여성만이 내뱉을 수 있는 유머를 독자에게 선사하며 통쾌한 이야기의 서사를 풀어낸다.


베르트는 1914년 7월 11일 프랑스 남동부의 생플루르 주변에 위치한 오베르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베르트의 부친은 갓 태어난 딸을 버린 채 조국을 지키러 떠났고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베르트의 모친은 남자가 부재한 가정에서 딸을 키웠으나 빛을 잃고 무기력과 공허 속에 묻혀 시들어갔다.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한 가부장의 역사를 지나온 베르트는 100살이 넘은 나이로 삶의 끝을 달려가지만 유쾌한 농담을 잃지 않는 여성이었다. 루거 총은 나치 친위대가 리통이라는 소년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권위의 상징이였으며, 베르트에게 루거 총이란 남성의 억압과 위협으로부터 혼자였고 여성이었던 자신을 지켜준 무기였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베르트의 할머니는 그녀에게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를 잃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베르트의 할머니는 따뜻한 집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남자 뤼시엥과 결혼했던 베르트의 실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베르트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난 생존자였으며 폭력과 폭언이라는 공포에서 자신을 지키고자하는 힘을 얻은 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몸과 영혼을 짓밟은 남편 뤼시엥을 직접 처단한 베르트가 느꼈던 감정은 해방감이었다.


베르트의 할머니는 베르트가 어린 시절 남자들이 베르트 자신을 절대 우습게 보도록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베르트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고통을 일삼는 남성들을 만나면서 남자들이 여성을 지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를 써야 한다는 할머니의 지혜를 떠올린다. 베르트의 할머니는 베르트가 남성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인물이었다.


"나의 귀여운 베르트, 안 그럴 수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살다 보면 남자들한테 네가 그들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려줘야 할 때도 있을 거야."


아이를 낳지 못했던 베르트는 재혼한 남편 루이지가 임신한 애인이 있다는 폭탄같은 말을 듣는다. 베르트는 사랑하는 남편과의 관계를 다시 접합하고자 했으나 지난 2년간의 분노를 그에게 쏟아냈고 고통을 멈추기 위해 누군가는 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르트는 생명을 주지는 못하나, 죽음을 주는 데는 뛰어났다. 베르트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매일 아내를 때리는 남편보다 더 비난받던 시대를 살아왔고 여자라는 이유로 일상을 폭력과 상처로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너나 다른 경찰, 네가 죽고 못 사는 그 헌법을 지키는 모든 자들, 정작 행동해야 할 땐 눈을 씻고 봐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어. 오래오래 천천히 죽이는 건 살인으로 치지들 않지. 아내를 때리고, 고문하고, 파괴하는 남편은 법으로 처벌하지 않아......"


베르트는 남성의 위협을 벗어나 잠잠한 삶이 이어지도록 루거 총을 손이 닿는 곳에 간직했다. 뿐만 아니라 베르트는 전 남편인 뤼시엥의 잡화점을 운영하며 골동품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페미니스트 작품들을 읽기 시작하고 문학 속에서 친구들을 찾았다. 베르트는 여성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남성과 차별을 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인간은 성에 다라 좌우되는 존재가 아닌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며 존중받아야 하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남성 우위라는, 자신에게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늘 혼자였던 베르트는 적확한 단어들로 남성의 억압을 고발하는 이 박식한 여성들의 문장 속에서 자신은 남성의 억압에 맞서 문자 그대로 남성들을 박멸하는 편을 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르트에겐 필력이 없었다. 그녀에겐 탄환뿐이었다. 따라서 이 작가들의 논리가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다. 베르트는 이 페미니즘 작품들 속에 파묻혀 캉탈 구석의 작은 시골집에서 더 이상 고립감을 느끼지 않았고, 여자일 수 있고 동시에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뮤즈가 되기를 원하던 베르트에게 청혼한 화가 노르베르는 돈을 벌지 않고 베르트의 생활력에 기대여 살아가는 남성이었다.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고 예술에만 심취해 있는 노르베르는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원하는 아내 베르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베르트는 남성 우월주의에 갇혀 있는 노르베르에게 루거 총을 장전한 후 지하실에 땅을 파고 묻었다.


"은행에 계좌를 트고 자기 돈을 자기가 쓰려고 해도 남편의 동의가 필수적인 건 어떻게 생각해? 그게 발목의 족쇄가 아니면 뭐야? 투표권을 얻기 위해 애걸복걸해야 했던 건, 그건 자유야? 바지를 입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건, 그건 어떻게 설명할래? 예술가라고 해서 꼭 바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베르트는 어머니가 되지는 못하지만, 너무 일찍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은 여성들을 도왔다. 베르트는 날카로운 뜨개바늘과 기술로 어린 나이에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의 몸에서 능숙하게 태아를 제거했다. 베르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신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임산부의 몸을 죄책감으로부터 해방하여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역할을 했다.


"수호천사였던 천사 제거자였든, 베르트는 여자들이 종교적 상징물로 그녀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 싫었다. 그들은 도움과 사랑이 필요했고, 베르트는 그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삽으로 퍼줄 수도 있었다."


벤트라 반장은 살인을 자백하는 베르트 할머니를 통해 실패한 자신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본다. 벤트라의 세 번째 결혼은 실패했다. 그는 사랑하는 것, 지속적인 애정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벤트라는 베르트 할머니를 심판하는 대신 여성이라는 성을 뛰어넘어 삶을 대하는 그녀의 강인한 태도에 감화한다.


"그래, 난 그들을 죽였어. 사실이야. 그래도 난 나한테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넌 아니란 말이지. 이 부분에서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구나. 너도 어쩔 수 없이 세 번 연속 실패를 했고, 실패하고도 또 도돌이표잖니. 세 번 이혼하나, 세 번 과부가 되나, 결과는 매한가지야. 너도 나처럼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은 거잖아."


베르트가 일생에 사랑한 사람은 단 사람 흑인 루터뿐이었다. 하지만 베르트는 나치 친위대에게 숨진 소년 리통의 죽음의 현장을 바라본 여동생 로즈를 집으로 데려가 치유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로즈의 아버지 튈리에는 베르트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며 레옹, 랑비냑과 함께 자신들의 구역이라 여긴 마을에 들어온 흑인 루터를 조롱하며 살해했다. 연인 루터를 살해한 세 명의 악인의 썩은 영혼을 루거총으로 처단하며 자신은 끝까지 생을 살아낼 것이라고 말했던 베르트의 오열을 바라보며 연인을 잃은 슬픔과 생의 의지를 다지는 그녀의 눈빛이 떠오른다.


"베르트는 새로 갈아엎은 땅에 무릎을 꿇었다.

땅에 한 손을 얹었다.

묵념을 했다.

마당의 나무 밑에서.

그녀의 호흡은 차분했다. 평온해지진 않았으나, 분노는 사라졌다. 고양이의 두 눈이 어둠을 꿰뚫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금 살금 다가오더니,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건하게 앉아 멀리서 그녀를 응시했다."


"베르트는 루커가 죽은 뒤로 호주머니 속에 소중하게 간직한 십자가상을 꺼냈다. 상아 십자가였다. 경찰은 가택 수색을 하며 노인을 속칭 옛쟁이로 상상했으나 관련 상품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 십자가, 그녀는 이것을 전리품처럼 몸에 지녔다. 인디언이 굴복시킨 적의 해골을 몸에 전시하고 다니듯 그녀도 목에 걸고 싶었으나 혹여 문제가 될까 두려워 보이지 않게 간직했다. 이제 선고를 받은 이상, 드러낼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목걸이를 여전사로서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던 할머니 베르트는 벤트라가 감옥에서라도 가끔 자신을 찾아와 생의 기쁨이라는 선물이 전해주기를 부탁했다. 베르트의 집이 불타오르고 불길이 온 마을을 환히 밝히며 베르트는 영원한 잠과 해방을 마주했다. 102살 노인인 베르트는 갈색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과거를 모두 경찰인 벤트라에게 이야기했으며, 검찰은 자백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베르트의 인생 이야기였다. 베르트는 죽음에 이르는 길목에서 삶의 진실을 토해내며 누군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수사관은 살인자를 부둥켜안는 것이 규칙에 위배되는 것인지 자문했다. 이어서 그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두 팔을 벌렸다. 베르트가 움찍 뒤로 물러났다. 남성의 접근에 대한 오랜 관성. 그녀는 정신을 추수른 뒤, 이 마지막 선물을 받아들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받아본 가장 아름다운 선물. 그녀는 수사관의 넓은 가슴에 기대어 눈을 감으며 얼굴을 비볐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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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걸 클래식 컬렉션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고정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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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980년대 빨강머리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특색없고 조용한 아이였던 나는 온종일 재잘대며 풍부한 감정을 가진 빨강머리 소녀 앤이 신기했다.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는 아이, 희노애락이 닥치는 순간마다 강렬한 감정과 반짝이는 상상력을 입으로 내뱉는 앤은 웅크리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머리 앤>은 빨강머리가 컴플렉스인 열한 살 고아 소녀 '앤 셜리'가 에이번리 그린게이블스에 사는 매슈와 마릴라 남매의 집에 들어오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빨강머리 앤>은 실제로 프린스에드워드섬에서 태어나 두 살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책을 읽고 상상을 하는 시간이 많았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자전적 삶이 투영된 작품으로 인상적이다. 


앤은 우리들이 잃어버린 상상력에 생기를 입히며 기쁨과 흥미를 발견한다. 호기심으로 가득찬 앤의 세상은 보물상자와 같다. 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상상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환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앤은 고통과 슬픔, 상처마저도 상상의 힘으로 극복한다. 앤은 내면의 어두운 감정을 마주했을 때 비극적인 현실을 더 나은 상상의 장소로 초대한다. 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인 상상하는 힘을 통해 다채로운 무지개와 같은 세상을 마주한다.   

    

"알아내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하면 정말 짜릿하지 않나요? 살아 있다는 게 기뻐져요. 세상이 너무 흥미로우니까요. 우리가 모든 걸 안다면 절반도 흥미롭지 않을 거예요. 상상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제가 저 나무들의 꼭대기 바람이라고 상상하겠어요. 나무들이 지겨워지면, 여기 고사리들 틈에서 부드럽게 물결치는 걸 상상할래요. 그런 다음에는 린드 아주머니네 정원으로 날아가서 꽃들을 춤추게 하겠어요. 그다음에는 클로버 들판으로 날아갈래요. 그리고 영롱한 물빛 호수로 가서 아른거리는 물결을 일으키는 거예요. 바람은 상상할 게 너무 많아요!"


"기차에 탔을 때 사람들이 다 저를 보고 딱하게 여기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냥 제가 아름다운 하늘색 실크 원피스를 입었다고 상상했어요. 상상을 하려면 진짜 좋은 걸 상상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리고 꽃과 깃털로 장식한 커다란 모자에 금시계를 찼고 장갑과 구두는 염소 가죽으로 만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바로 기분이 좋아져서 이 섬까지 오는 길이 아주 즐거웠죠."


온통 거리가 회색빛으로 보이는 시기가 있다.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울때 주변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온기가 없이 먼지가 쌓인 방처럼 관심이 사라진 대상은 썩어서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빨강머리 앤>의 주인공 소녀 앤은 꽃과 나무, 길에 이름을 지어줌으로서, 세상 모든 것을 마음을 지닌 대상으로 바라본다. 앤은 누군가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물건과 풍경들도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하나의 영혼으로 탄생한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앤은 이름을 통해 존재하는 것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발견한다. 다정한 앤의 입으로 이름이 불려진 대상은 다채로운 감정과 향기를 내뿜는다. 앤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채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기쁨, 공감와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한다.  


"저는 물건에 이름이 있는 게 좋아요. 그냥 제라늄 꽃이라도요. 그러면 좀 사람처럼 느껴져요. 제라늄을 그냥 제라늄이라고만 부르면 제라늄의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잖아요. 아주머니도 사람들이 여자라고만 부르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실 거예요, 그래요, 저는 저 꽃을 보니라고 부르겠어요. 오늘 아침 제 방 창밖의 벚나무에도 이름을 붙였어요. 너무 하얘서 '눈의 여왕'이라고요. 물론 꽃이 항상 피어 있지만 않겠지만, 상상은 계속할 수 있어요."


때론 기쁨과 고통이라는 강렬한 감정은 인간의 내면을 뒤흔든다. 하지만 앤은 슬픔과 기쁨, 고통과 행복이라는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들을 아무일도 아닌 일처럼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체화한다. 인간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강렬한 감정들이며, 고통을 뼛 속 깊이 느낄 수 있다면, 충만한 기쁨이 주는 행복의 의미는 더 커지기 때문이다.  


"앤에게 차분해지라는 말은 성격을 바꾸라는 말이었다. 앤은 '활기와 열정과 생기'로 가득해서 인생의 기쁨과 고통을 남들보다 세 배는 강하게 느꼈다. 마릴라는 아이의 그런 점 때문에 막연하게 걱정이 됐다. 인생의 굴곡이 이 충동적인 아이에게 고통을 안겨주리라고 생각해서였지만, 기쁨에 대한 큰 능력이 그것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앤은 기대하는 것이 즐거움의 절반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앤은 실망할 것을 두려워하는 대신 즐거운 일들을 마음껏 상상하고 기대하며 현재라는 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희망과 절망을 가르는 선택은 앤처럼 즐거움을 기대하며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원하는 일이 결국 안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걸 기대하며 누리는 즐거움은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린드 아주머니는 늘 말씀하시죠. '기대하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다. 그들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니.'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쁜 것 같아요."


앤은 결이 같으며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원했고, 영혼의 구멍을 이어주는 단짝 다이애나를 만난다. 앤은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의 다이애나와 영원한 친구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는 순간에도 상상력을 발휘하고, 에이번리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된 다이애나와 반짝이는 우정을 나누며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흐르는 물 앞에 가야 해. 우리는 그냥 이 길이 흐르는 물이라고 상상하자. 내가 먼저 서약의 말을 할게. 나는 해와 달이 빛나는 한, 단짝 친구 다이애나 배리와 충실한 우정을 나누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월 동안 너와 나눈 기억은 내 외로운 인생에 별처럼 반짝일거야. 우리가 함께 읽은 마지막 책에 나온 구절처럼."


앤은 에이번리 그린게이블에서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공부를 위해 에이번리를 떠난다. 하지만 매슈의 죽음은 앤을 에이번리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된다. 고아였던 소녀 앤에게 새로운 세상과 사랑을 건내준 매슈의 죽음을 애도하고 마릴라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무뚝뚝했던 마릴라와 수줍은 많은 매슈 남매의 삶을 변화하게 한 힘은 앤의 풍부하고 솔직한 감정이었다. 또한 앤은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던 마릴라의 이야기를 통해 길버트를 용서하고 친구가 된다. 상상하고 꿈꾸는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갈 앤의 미래는 늘 희망찰 것이다.    


"앤이 퀸스에서 돌아와서 거기 앉았던 날 이후, 앤의 세계는 좁아졌다. 하지만 앞에 놓인 길이 비록 좁다 해도, 그 길에 조용한 행복의 꽃이 필 것이다. 성실한 노동과 고귀한 열망과 따뜻한 우정이 앤에게 기쁨을 안겨주리라. 어떤 것도 앤이 공상할 권리와 꿈꾸는 세계를 빼앗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언제나 굽이가 있다!"


복잡한 감정들이 고개를 들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때마다 나는 앤을 생각했다. 에이번리 그린게이블스의 앤이 절망의 터널에서 표정을 잃어버린 나를 보고 손짓한다. 슬픔과 고통이 찾아올 때 기쁜 순간들을 상상하라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간은 꼭 찾아온다고. 앤의 재잘거림이 들리고 나는 즐거운 상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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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9.9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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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9월호 바람이 전하는 말 코너에서 '누적독자 씨, 안녕하세요!'라는 동화작가 홍종의님의 글이 인상적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쓴 책을 한 권씩 달라고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작가나 출판사나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쏟아야 하는 정성과 노력이란 다른 그 어떤 상품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그릇된 책 나눔 문화는 당당히 증정을 요구하는 그네들 책임보다 자신의 저서 증정을 남발해온 저자들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전한다. 그는 최근에 자신이 쓴 책 열권을 선물한 지인은 직접 저자에게 동화책을 선물해 책값 부담과 책 주문의 수고를 덜어주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샘터 9월호 휴식의 기술 코너에서 '언어에 담긴 휴식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소설가 김다은님의 글이 눈길을 끈다. 김다은님은 감탄사를 잘 발하는 사람들은 대화하면 유독 편일하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김다은님은 감탄사야말로 많은 말과 박학한 지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를 간단하게 설득시키는 신비한 단어임에 틀림없다고 이야기한다. 김다은님은 '아' 이 미미한 단어 속에 인간의 비밀스러운 휴식이 들어있다고 전한다.

"'아'라는 감탄사의 기능을 보면 '기쁘거나, 슬프거나,뉘우치거나,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초조하거나, 다급할 때 가볍게 내는 소리'이다. 감탄사는 특히 기쁜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지만, 인간의 모든 나쁜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발하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감탄사는 위로와 격려의 언어이기도 하다."

"감탄사는 공감을 끌어내는 데 더없는 무기지만, 더 큰 선물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발회자의 내면에 정서적 풍부함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즐거운 상황은 물론, 어떠한 나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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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9.8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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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8월호에서는 '솔직할 때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라는 제목의 소설가 김다은님의 글이 인상적이다. 김다은님은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이한 것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성이 있다는 설정이다. 눈먼 남편을 따라 자신의 의지로 격리소에 들어온 그녀는 후천적 맹인들이 집단적으로 보이는 광기 속에서도 남편과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저항한다. 집단의 억압과 폭력에 굴하지 않은 그 여성 덕분에 소설 마지막에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차례차례 눈을 뜨게 된다. 정말 좋은 게 좋은 것이 되려면, 억압적이고 맹목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적인 억압은 특정 개인만이 아니라 그 분위기에 속한 모두를 맹목적으로 만들고, 그 누구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샘터 8월호에서는 '인성의 재발견'이라는 코너에서 '옮음과 친절함 사이'라는 제목의 정승민님의 칼럼이 인상적이다. 정승민님은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후 이 영화의 탁월함은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게 만드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정승민님의 글에서 영화 <원더>에서 나와 다른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영화는 '옮음과 친절함 중에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선택하라!'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샘터 8월호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라는 제목의 차우진님의 칼럼이 인상적이다. 차우진님은 음악으로 힐링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 특히 상처받고 외로운 마음과 소외되고 배제된 마음이라고 말한다. 바로 소수자, 비주류, 이런저런 일로 버려진 사람들의 마음이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누군지 믿지 못하고, 나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진 채로 일상을 보낸다. 보통 10대 시절에 누구나 느꼈을 법한 감정인데 통계적으로도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TXT 뮤직비디오에서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뿔이 돋은' 것은 이런 맥락의 메타포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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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가까운 사람의 심리적 학대에서 벗어나는 법
샤논 토마스 지음, 송지은 옮김 / 사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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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가까운 사람의 은밀한 심리적 학대에서 벗어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한 학대를 알아차리고 나를 조종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6단계 로드맵을 알려준다.

 

이 책의 저자인 '샤논 토마스'는 심리적 학대 전문 치료사로 유명한 인물이며, 성격장애를 가진 엄마에게 오랜 기간 학대를 당했다. 저자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피해자들이 학대 관계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는 일에 열정적으로 매진하고 있다.

 

"학대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심리적인 학대는 멍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뼈가 부러지지도 않는다. 벽에 구멍이 나지도 않는다. 멍이 들고 부러지고 구멍이 생기는 것은 피해자의 내면이다. 가해자가 바라는 게 바로 이거다. 대외적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교묘하게 심리적으로 학대한다. 가해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완전히 이해하면 피해자는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1장 심리적 학대란 무엇인가, 2장 상처를 회복하는 6단계 프로그램, 3장 내 이야기 쓰기'라는 3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심리적 학대의 피해자를 '생존자'라고 부른다. 저자는 심리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교활한 학대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생존자가 학대를 당한 이후 성장하는 것은 그가 가진 강인함 덕분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학대를 가하는 사람 중에는 이미지가 좋을 뿐 아니라 정말 뛰어나게 괜찮은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심리적 학대를 가하는 사람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심리적 가해자가 얼마나 진실을 잘 숨기는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는 자신에게조차 정직하지 않으며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다."

 

저자는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는 상대가 자기 행동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독이 되는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자기 행동을 숨기려고 애쓴다. 이들은 타인을 조종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생존자가 가해자의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이들은 대개 방어적으로 나온다. 가해자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내 친구들은 나한테 이렇게 심술궂게 안 굴어." "좋은 배우자라면 이렇게 행동 안 하지." "성숙한 직원인 줄 알고 기대했는데."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초점을 가해자에서 생존자로 바꾸려는 의도다. 심리적 학대의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상처를 회복하는 6단계 프로그램으로 1단계 절망: 깊은 슬픔, 2단계 교육: 가해자들이 쓰는 수법, 3단계 깨어남, 4단계 경계 설정: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연락을 끊거나, 5단계 복구: 도둑맞은 삶을 다시 찾아오기, 6단계 유지: 관계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소개하여 눈길을 끈다.

 

저자는 1단계 절망 단계에서 생존자가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분노를 억제하지 않는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2단계 교육 단계에서 가해자들이 쓰는 수법인 가스라이팅(피해자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도록 세뇌시키기), 피해자를 고립시키기 위한 전술인 인신공격, 조력자를 동원하는 플라잉 멍키, 실수를 저질러놓고는 화를 내고 책임을 전가하는 자기애적 공격, 다정했다가 무심했다가 혼란스럽게 만들어 길들이기라는 간헐적 강화 등을 소개한다.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 심리적 학대를 당하는 당사자가 어떠한 방법을 통해 가해자들에게 학대를 당했는지 배울 수 있다.

 

저자는 3단계 깨어남 단계에서 심리적 학대에서 회복하려면 자기 본연의 모습이 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취급할 수가 있지?'라는 의문을 받아들이는 단계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깨어남은 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듯이 부드럽고 섬세한 재탄생을 뜻하는 게 아니다. 벽을 깨부수는 깨어남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분명 씁쓸하고도 달콤할 것이다. 심리적 학대의 실체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정말로 실망스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 단계는 혼란은 멈추지만 아직 학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상태다."

 

저자는 4단계 경계 설정 단계는 심리적 학대를 이해하는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았으면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모든 생존자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경계를 세우는 데는 개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치유가 일어나는 방식은 다르지만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세워야만 한다.

 

저자는 5단계 복구 단계의 포인트는 가해자가 가져간 것을 복구하기 위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구 단계에서 심리적 학대의 생존자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은 받아들이고 없어진 삶의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6단계 유지 단계의 핵심은 자신이 새로운 사람임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성장했고 달라졌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심리적인 학대의 목표물이 된 것은 당신 탓이 아니며 치유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심리적 학대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끝부분에 등장하는 자기성찰 노트를 직접 작성해보고 치유를 위한 한 걸음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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