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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작가 최인호가 쓴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그가 두달만에 쓴 작품이다. 두달 동안 항암치료 속에서 손톱 한개와 발톱 두개가 빠져나가는 고통속에서도 직접 원고지에 만년필로 써내려간 소설이기에 작가의 집념과 의지가 더욱 살아난 작품이 아닐까. 더욱이 이 소설은 최인호 작가가 누군가의 청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 작가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한 작품이였다.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최인호 작가 혼자만의 독자를 위해 쓴 작품이다. 암투병중에 자신에게 바치는 글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애틋한 소설이 아닐까.
K는 어느 날 아침 자명종이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임을 감지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나와 함께하는 아내, 딸이 내가 알고있는 아내와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시작한다.
"7시 정각에 자명종이 울린 것으로부터 이 혼란은 시작되었다. 그 누구도 작동하지 않은 자명종이 스스로 울린 것이다. 그리고 K는 결혼한 지 15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벌거숭이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났으며, 잠옷 또한 마술사의 손끝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비둘기처럼 증발해버렸다. K가 매일 아침 사용하던 스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 K가 전혀 알 수 없는 천박한 상표의 스킨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어머니를 때렸던 아버지를 싫어했던 반면에 K는 어머니의 존재를 걱정인형이라는 표현으로 대변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K가 가진 단 하나의 걱정인형을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걱정할 때 그 걱정을 대신해준 어머니. 걱정인형이 없다는 것은 K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아내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정신과를 알아보던 중에 K는 학창시절 친구였던 H를 알게된다. 그리고 정신과의사인 H에게 아내와 딸 등 주변의 사람들이 가짜로 보이는 혼란스러움을 고백한다. 의사 H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K에게 치료방법을 권한다.
"가족 중에 가장 좋아했던 사람을 만나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거야."
K는 결국 의사 H가 권해준 방법대로 가족중에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누나는 찾기 시작한다. 지금은 누나와 이혼한 매형을 찾고 매형에게서 누나의 연락츠를 알게된다. 그리고 마침내 K는 누나를 찾았다.누나에게 가족 사진 2장을 가지고 가겠다는 말을 꺼내는 K. 사진을 통해서 자신과 가족이 사랑했던 기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는 K.
"K는 두 장의 사진을 골랐다. 한장은 K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고, 또 한 장은 덕수궁에서 어머니,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K는 두 장의 사진이 자신에게 필요한 치료제임을 알 수 있었다. K는 언젠가 H가 이야기했던 거울요법을 떠올렸다. 한쪽 팔을 잃은 환자가 잃어버린 환상의 팔로부터 계속해서 극심한 통증을 느낄 때의 유일한 치료 방법인 거울요법. 거울을 통해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실제로 존재하는 통증이 아니라 환상사지에 대한 착각임을 인지케 하는 대증요법처럼, 두 장의 사진 역시 K의 정체성을 찾는 거울이자 특효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K는 누나가 자꾸 자신에게 "그때 일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듣는다. 과연 누나는 왜 자신에게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K가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자신이 친누나에게 성욕을 갖았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가족인 친누나에게 성욕을 갖을 수 있는것일까.
"이제 K는 알 수 있었다. 간질환자들은 발작이 시작되기 직전에 몽롱한 현기증을 느낀다. 개미들은 비가 오기 직전에 자신의 집 주변에 흙을 쌓고, 쥐들은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에 떼를 지어 안전지대를 찾아 대피한다. K에게도 그런 육감이 생긴 것이다. 오관으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신비한 섭리나 깊은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기능인 식스센스가 생긴 것이다. 그 슈퍼센스는 '낯이 익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K에게 타인은 너라는 2인칭이었다는 문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신 외에는 모두 타인이라는 K의 생각은 세상과 자신을 완전히 분리해버리는 이분법이 아닐까.
"K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K의 고백은 그래서 주로 자선에 것이었다. K는 남에게 온정을 베풀거나 재물을 기부하거나, 남을 위해 봉사하거나, 헌신하거나, 희생하거나 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하였다. K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독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K에게 타인은 '너'라는 2인칭이었다. '너'는 '그'라는 3인칭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질적인 자선 행위와 정신적인 자비 행위는 모두 '나'와 '너'는 다르지 않고 하나이며, '나는 곧 너'고 '너는 곧 나다'라는 등호와 같은 모순된 진리라고 K는 생각하고 있었다."
"K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만약 자신이 굶주린 사람이 될 경우에도 결코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병이 들어도 남에게 간호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며, 헐벗을 때에도 남에게 동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K의 인생철학이었다."
K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듯 자꾸만 눈에 보이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낯익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K는 나중에 자신과 똑같은 K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자신은 결국 K2였고 K1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과 똑같은 K1을 바라보는 K2의 기분은 어땠을까. 세련된 회사원도 아니고 행색이 초라한 K1의 모습에서 K1조차 K1과 K2가 동일인물이라면 이렇게 다른 사람일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내가 누구인지, 내 가족,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이 맞는 것일까. 낯은 익지만 서로를 알 수 없는 진정성이 없다면 우리는 낯익은 타인일 뿐이다. 어쩌면 K2가 K1을 발견해가는 과정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