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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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며 지난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뛰어난 작품을 선별해온 김유정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의미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왔다. 2024년 올해 김유정문학상은 배수아의 '바우키스의 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신화 속 '바우키스'라는 인물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을 통해 소설가 배수아는 누구도 떠나지 않고 영원히 머무는 문학의 순간, 그 아득한 곳을 향한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함께 실린 수상 후보작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 박지영 <장례 세일>,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 이서수의 <몸과 무경계 지대>, 전춘화 <여기는 서울> 다섯 편의 작품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면과 문학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바우키스의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우키스'의 일화를 변형한 작품이다. 나그네를 정성스레 돌봐준 바우키스와 그의 남편 '필레몬'은 소설 속에서 '나'와 '모형 비행기 수집가'에 비유된다. 모형 비행기 수집가에게 선물받은 구형 타이프라이터를 거쳐 '나'의 말들은 편지 속 글자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마다, 편지를 보내려고 할 때마다 그 마음이 나무가 되어 '나'의 입을 뒤덮는다. 영원히 말해지지 않을 것 같던 '나'의 말은 언어가 아닌 음악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화된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작별을 앞두고, '내'가 쓴 편지의 어휘들은 '음악가'의 곡으로 승화되며 그들은 영원히 두 그루의 나무로 남게 된다. 배우가 작가는 끝없이 이어지고 움직이는 신비로운 장면들을 통해 작별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잎이 나무껍질로 완전히 변하기 직전, 바우키스는 작별인사를 건넨다. 마침내 나뭇가지가 얼굴을 뒤덮기 시작한 최후의 순간, 일생 동안 내 입에서 살던 하나의 어휘가 해방되었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뉴욕 맨해튼에 허리케인이 휘몰라치던 어느 날 밤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집에 물이 차오르는 걸 알게 된 '나'는 고등학교 동창 '피터'의 집에 하룻밤 묵게 되며 과거 그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와 자신 사이 끝끝내 훔칠 수 없는 '계급'을 실감한 '나'에게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위태로움이 지속된다. 뿐만 아니라 <허리케인 나이트>에서 누군가에게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는 대체되고 소비될 수 있다는 계급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을 '피터'의 롤렉스 시계로 은유하여 눈길을 끈다. 그리고 <허리케인 나이트>는 인간이 가진 부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각자의 몫만큼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잃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잃어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고, 그게 무엇이든 도무지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상상을 했다. 아이 우는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의 정체에 관해. 완벽해 보이는 피터와 당신 뒤에 존재할 비밀과 그림자에 관해. 우리가 모두 어쩔 수 없이, 그러나 공평하게 빠져 있는 시궁창에 관해."

박지영의 <장례 세일>은 아들 '현수'가 평생을 '실패한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아버지 '독고 씨'의 죽음을 세일즈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로, '장례 세일'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생동감 있는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장례 세일>의 주인공 현수가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애도를 확장하고 가치 비용을 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죽음의 화제성과 특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글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현수는 거짓된 감사라 해도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감사를 모아 아버지 독고 씨의 삶과 죽음을 축복하고 애도하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독고 씨의 죽음 비용을 결정하는 데 고려할 것은 공정함이 아니었다. 불공정함, 그 불공정한 축을 어떻게 최대한 내 쪽으로 기울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불공정함을 위해 죽음의 흥행성을 결정할 오락적인 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부과할 것인가가 현수가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독고 씨의 죽음에 어떻게든 높은 가격표를 붙여놓고 그게 정가인 양 속이며 기간 한정 파격 세일을 붙여 소비자를, 더 많은 조문객을 끌어모으고 더 두툼한 조의금으로 장례 비용을 충당하고 이왕이면 영업이익도 남기는 것, 독고 씨의 죽음을 싼값에 자신의 슬픔과 애도로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현수가 하고자 하는 장례 세일의 목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독고 씨의 죽음을 비싼 값에 세일즈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진짜 팔아야 하는 건 독고 씨의 가치 있는 삶이 아니라 가치 없는 삶이었다. 독고 씨는 그렇게 예비된 애도객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애도 가격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은 독고 씨의 그래도 싼 죽음이나 그에 대한 슬픔이나 연민, 죄책감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인품을 지닌 과거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과 뿌듯함이었다. 그리하여 독고 씨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그 감사한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만나게 되기를, 보여줄 기회를 희망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그래도 싼' 인생은, 본인이 무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아무 관계 없는, 이유 없는 타인의 완전한 선의에 의해서 다른 의미의 '그래도 싼' 인생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현수는 먹먹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비싼 가격을 매기더라도 그래도 싸다, 그래도 싸, 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한 사람 몫의 공정. 그러니 현수뿐 아니라 그 누구도 타인과 자신의 인생에 함부로 싸구려 인생이라는 가격표를 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독고 씨의 죽음은 오늘 밤, 낯설고 온전한 선의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그래도 싼' 죽음이 된다."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은 운동권 세대였던 아버지 '태수'의 딸 '수민'이 상주를 맡게 되며 그의 장례식 풍경을 그려낸다. 작품 속 부녀의 모습과 그 세대 차이를 통해 과거와 오늘날 혁명의 의미가 어떻게 달려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던 아버지 '태수'의 장례식에서 반려견을 데리고 와달라는 아버지의 바램이 이루어진 후 장례식의 풍경이 뒤바뀌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있잖아, 수민아.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우리는 그렇게 태수 씨의 죽음에 관해 우스갯소리를 하고 이것저것 계획하며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것은 죽음을 도모하며 삶을 버티는 행위였다. 태수 씨는 자신이 죽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 두 가지는 태수 씨에게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태수 씨는 나와 수진에게 자신의 장례식에 관한 계획 하나를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말이야, 아빠도 좀 이상한 건 아는데, 유자가 내 장례식에 와줬으면 좋겠다."

이서수의 <몸과 무경계 지대>에서는 무대에 오른 주인공 '윤세진'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첫사랑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 세진이 만나고 있는 '단밤'과의 일화 사이사이 삽화처럼 등장하며, 몸이 하나의 경계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질문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세진이 자신이 과거에 만났던 인물들을 떠올리며 타인이 경계를 짓고 타자화하며 대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눈길을 끈다.

"어떤 지역에서 나고 자랐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본래의 기질을 따라 몸이 확장되는 데 일조하는 장소적 기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 몸은 그렇습니다. 경계가 없는 다양성 속에선 확장되고, 상상력이 부재하는 획일성 속에선 축소됩니다."

"사람들은 내 몸을 보고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본다는 게 실은 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나는 혈연 기반의 원가족이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잘 알아. 웃으면서 내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얼굴들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운지. 자기들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너무 싫었어. 어릴 때부터 집에서 빨리 도망쳐 나와 내 가족을 이루고 싶었고. 당연히 혈연일 필요는 없고. 지금은 사랑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네 감정이 뭔지 묻지 않고서 나랑 같이 살겠냐고 물어도 될까?"

"새로 정착하게 될 동네는 어떤 곳일까요. 그곳에서 저와 단밤의 기질은 얼마나 발현되고 확장되고 소거되고 움츠러들까요."

전춘화의 <여기는 서울>은 20대 조선족 여성 청년이 서울에 정착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안정적인 짜임새로 중국 교포의 시선에 담긴 현재 한국의 청년 세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혼란 속에서 과거와 연결되기도 하고 주위에 감응하여 확장되고 하며, 가끔은 볼품없이 축소되고 부정당하는 자아를 견디며 서울에서 살아가는 중이라고 아버지에게 전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는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배고프지 않고 따뜻하게 누울 곳이 있으며 선대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고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저를 둘러싼 환경을 탐색할 의욕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서울이 만화경처럼 복잡한 세상이라면 저는 아주 천천히 셔터를 계속 눌러 기하학적인 그 무늬들을 남김없이 오래도록 응시할 것입니다. 서울이 회전무대처럼 느껴져서 멀미를 느끼는 날도 있지만 줄을 꼭 잡고 그 속도를 견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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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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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작가는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장해 소설집 '개그맨', '국경시장'. 에디 혹은 애슐리', 중편소설 '이슬라' 등을 통해 환상과 실재가 뒤섞인 총천연색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여왔다. 그는 한계 없는 상상을 읽는 이를 순식간에 자신이 만든 세계 속으로 빨아들이는 탁월한 이야기로, 삶의 비의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문학적 서사로 구현해왔다.

<화성의 아이>는 김성중 작가가 등단 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무려 삼백 년 후 미래의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백 년 전 지구에서 미래의 화성으로 쏘아보낸 실험체가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던 각양각색의 존재들과 조우한다. 시시때때로 냉소적인 농담을 던지는 수다쟁이 유령 개, 마음을 가진 만능 화성 탐사로봇, 눈꺼풀 제거형을 받고 지구를 탈출한 소녀, 아득한 시간과 아흔아홉 우주를 가로질러 화성으로 날라온 정체불명의 존재까지.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은 유사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며 연결의 순간을 빚어낸다.

<화성의 아이>는 화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SF 소설은 아니다. 소설 속 '삼백 년 후 화성'은 끝없는 사막이 펼쳐진 황량한 행성이 아니라 수풀이 우거지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호수가 있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작가 김성중이 탄생시킨 또하나의 매혹적인 세계다. 어쩌면 화성판 <오즈의 마법사>라고도 말할 수 있을 이 이야기 속 매력적인 인물들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밤하늘에 두 개의 위성이 떠 있는 미래의 화성에 발 딛고 선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책은 다양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먼저 300년 전 지구에서 미래의 화성으로 쏘아올린 실험체 '루'의 시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뿐만 아니라 루는 자신이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화성에서의 폐허가 더이상 냉혹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라이카와 데이모스가 생활이라는 리듬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멸이라는 끝을 향해가는 운명 앞에서 루가 태어날 아이를 향해 말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동료들이 꿈에서 죽음으로 항로를 바꾸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충실하게 바이털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박동이 사라진 심장과 얼어버린 신체 속에 동면해 있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안 화성은 붉은 벌레, 붉은 옷, 붉은 구름의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나 춤을 추었다. 나는 얼음으로 된 그릇이었으나 꿈만은 얼지 않았다. 몇 세기가 단지 기나긴 낮잠 같았다."

"그러나 나의 감정은 진짜이고, 진실이다. 알 수 없는 세계에 알 수 없는 존재로 내던져진 내가 스스로에게 분명히 해두는 소리였다. 이 감정은 진실이다. 나만의, 나만의 고유한 진실."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루의 딸인 '마야'는 어머니를 죽음이라는 상실과 함께 태어난 마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은 마야가 데이모스와 라이카를 통해서 따뜻한 연대을 경험하고 연인 키나를 만나서 사랑을 꽃피우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먼저 어머니의 죽음이 있었고, 그다음에 나의 출생이 있었다. 그전에는 우주인의 공격이 있었고, 그전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전에는 쿠키처럼 구워진 별들이 노란 태양을 따라 천천히 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모든 이야기의 끝은 쿠키처럼 바싹 구워지다 부서져버리는 별의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내가 없다."

"‘화성은 얼어붙은 사막, 금성은 타오르는 지옥.’

오래전에 지구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은 그렇게 춥지만은 않다. 아늑한 우주선과 간헐천이 솟아오르는 우물, 무엇이든 가르쳐주는 데이모스와 모닥불처럼 따뜻한 라이카의 등이 있으니까."

"꽃잎에 눈이 가려진 키나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미소를 만들었다. 얼굴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아. 나는 홀린 듯이 몸을 굽혀 입을 맞췄다. 화성을 떠나는 순간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도 이 모습이다. 꽃잎을 덮은 채 웃고 있는 키나. 나의 친구, 나의 연인. 영원히 붉은 별 키나."

"오래전 우리가 쌍둥이 로봇으로 화성에 함께 왔을 때, 우리는 모든 모험과 실험을 함께했다. 화성의 크레이터를 샅샅이 찾아내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가 떠나온 ‘창백한 푸른 점’을 향해 데이터를 전송했다. 우리는 ‘애정’이라는 말을 알았고 ‘그리움’이라는 말도 알았다. 그것은 끝없이 한 방향으로 데이터를 송신하는 행위였다."

라이카는 과거 모스크바를 떠돌던 유기견이었지만, 출산한 새끼를 잃었고, 인간을 믿고 사랑한 결과 실험동물이 되어 스푸트니크 2호에 올라 수다쟁이 유령 개가 되었다. 이 책에서 인간에게 상처과 고통, 소외를 경험한 라이카는 비스듬히 처박힌 우주선에서 냉동 상태였다가 깨어난 루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루의 딸 마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또한 유령 개 라이카는 진실한 사랑이 슬픔이 아니라 연약한 존재들을 연결하고 강인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붉은 별에 도착했을 때 평화를 느겼다. 이 별에는 인간은 고사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으니까. 황폐한 오렌지 빛 사막이 성모상 뒤의 덤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사랑할 인간이 없으므로 안전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가 왔다. 삼백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죽음밖에 남지 않은 짧은 생을 시작하기 위해 나에게 왔다. 루는 연약했다. 보호가 필요했고 아는 것이 적었으며 가진 것은 더 적었다. 고장난 우주선과 짧은 수명. 그게 다였다. 하지만 웃음만은 태양처럼 밝았다. 그 환한 웃음은 인공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온기가 내부를 다뜻하게 데우고 밖으로 흘러넘치는 듯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마야의 지성과 환상은 모두 루에게서 기인한다는 것, 마야가 어떤 식으로든 루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마야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마야가 더 많은 꿈의 물감을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짠해진 나는 마야의 앙상한 어깨를 핥아주었다."

마음을 가진 만능 화성 탐사로봇 데이모스는 통증과 다정한 마음을 지닌 라이카처럼 자신의 존재에 의심을 품지 안않는다. 이 책에서 비인간인 유령개 라이카와 화성 탐사로봇 데이비스가 루에게서 태어난 딸 마야를 함께 양육하는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꿈을 꾸고 신기루를 본다. 나는 꿈꾸지 못하고 신기루 또한 보지 못한다. 나는 이 결함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결함은 로봇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개성이다. 금간 부분이 있어 특별해지는 도자기처럼 특정한 것에 대한 나의 무능이나 유치하게도 인간 흉내를 내는 것, 이런 것들이 데이모스라는 개별 주체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도중인 이곳. 마야보다 앞서 태어난 것은 '우물'이라 불렀던 작은 샘뿐이다. 우물은 점점 깊고 넓어져 호수가 되었고 가장자리에는 작은 파도마저 찰싹거리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생명들은 순수하고 진실했다. 순수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무언가'의 의도이다. '무언가'를 신이라고 부르든 우주의 질서라고 부르든 파악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의도로 우리에게 자꾸 '선물'을 주는 거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바퀴 근처에서 새로운 버섯을 발견했다. 나는 버섯의 삿갓 부분을 조금 떼어내 조직을 관찰하기로 했다. 또다시 선물을 받은 셈이다."

"라이카는 펼쳐진 대기를 향해 윙크를 했다. 우유의 강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가졌다는 게 중요하지 기도가 이뤄지고 이뤄지지 않고는 상관없다고 라이카는 말했다."

키나는 마야에게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야는 키나에게 화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키나는 마야의 아가미가 넓어질수록, 자신의 예지력과 생물과의 교감 능력 또한 늘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 대문에 '일어났으면 좋았을' 말들을 더 많이 꺼내놓는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아빠가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면, 배급받은 케이크의 촛불을 단번에 껐더가면 하는 것들을. 한번 속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멈출수가 없다. 나조차 들여다보기 무서웠던 과거가 중단되지 않고 펼쳐진다."

무해한 천국보다 지옥의 복잡함을 사랑하는 한 남자는 자신이 존엄한 생명에 대해서 저질렀던 비극적인 악행을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마야를 알리체로부터 지켜낼 것이라는 결심을 한다.

"개와 로봇을 실험체에 붙여 한 세트로 구성한 트리플 데커는 내가 유일하게 로열 헤더로 참여한 프로젝트다. 내 키메라는 65개 종을 섞은 암컷인데, 한 개체를 성공시킬 때마다 사용되고 죽어나간 실험동물의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65종이라니. 우리는 신을 만들려던 것일까? 신들은 인공 포궁 속에서 자주 사산됐고, 쓸데없이 연약했고, 태어나자마자 미치거나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서로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녀들과 숲의 번영은 연결되어 있다. 이 숲은 마야의 성장과 더불어 자라났고, 무성해졌고, 권역을 넓혀나갔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연이 마치 마야의 '맞춰서' 자라도록 누군가 설계한 것일까? 이곳도 유리 돔을 씌운 개미들의 서식처럼 누군가의 실험실인가?"

"그 순간 나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희생이 없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고 했다. 이 이상한 별에서, 사후도 우주도 꿈속도 환각도 아닌 구식 화성에서,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악몽 속으로 뛰어들었고, 몇 번이나 파도에 휩쓸려 난파되고 혀가 잘리고 새에 쪼이면서 이 자리에 서 있다. 모두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화려하기만 한 화면보호기 같은 알리체는 상대방에게서 데이터를 빌려 형상으로 바꿀 뿐 독자적인 감각이 없는 상태다. 이 책에서 알리체가 별들을 파괴하고, 중력을 고무줄처럼 늘려가며 밤도 낮고 없는 시간을 건너뛰어 불사에 가까운 존재가 됐지만 타인이라는 빛이 존재하지 않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얻은 것은 우주적 허무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모습을 담아내어 인상적이다.

"내가 누리지 못한 뭔가가 마야에게는 있다. 저 의기양양한 푸른 숲을 보라. 윤슬이 반짝거리는 호수는 어떻고! 지구의 한 자락을 옮겨놓은 것 같은 숲과 호수는 마야가 단기간에 화성을 정복했음을, 그야말로 제대로 테라포밍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착생식물 하나, 금속 곤충 하나 변변히 키워내지 못한 내 고향 별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나의 성장은 주변 은하를 파괴하는 데만 쓰였다. 거미가 떠나버린 거미줄, 무의미하게 패턴만 이루고 있는 거미줄. 내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그것뿐이다. 왜? 왜?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마야가 어떻게 해줄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책은 벼룩 콜린스가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하여 여운을 남긴다.

"마침표를 넘어서는 공간을, 그 미지의 세계를, 책장이 덮이고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죽음 너머의 페이지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우주까지 나가봤지만 사후 세계는 미지의 곳이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피를 빨아먹고 높이 뛰어 오를 것이다. 누군가 공중으로 솟아오른 내 모습을 본다면 문장 끝에 찍히는 마침표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난 그런 것이 좋다.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인 것이 좋다. 이제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에 다다랐고,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내 모습을 여러분에게 공개하겠다. 자, 똑똑히 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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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사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 교사와 학생의 마음건강을 위한 교육 멘토링
조벽 지음 / 해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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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민원, 학생 생활지도, 행정 엄부 등 수업보다는 부수적인 업무가 교사들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교권 침해로도 이어져 교사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실제로 청년 교사 10명 중 8명이 이직 및 사직을 고민하고 있고, 전체 교사 4명 중 1명은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현 교육 제도나 시스템 환경에서 교사들은 피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일은 그야말로 힘겹다. 교육자로서 의욕을 잃고, 교직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밀려오는 지금, 교사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요즘 교사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40여 년간 지구 100바퀴를 돌며 국내외 교육현장을 경험하고, 수많은 교육정책가, 교사, 학부모들을 만나며 21세기 교육 리더십을 실천해오며 교육정책과 교수법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최고의 교육 멘토인 조벽 교수는 다시 교사로서 자긍심을 일깨우고, 의미 있는 교사로서 살아각기 위한 지혜를 전한다. 변화한 시대를 반영한 교육 비전을 세우고, 교사의 역할과 학습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실천해야 할 해법을 제기한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교육자들에게 멘토링하듯 교육 매체에 연재한 칼럼을 바탕으로 수정하고 보퉁하여 새롭게 엮었다.

이 책은 '1부 새로운 교육을 위한 뜻을 세우다, 2부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3부 교사와 학생들의 마음건강을 돕는 심리 기술'이라는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전통적인 학교와 교육과 가정의 종말이 시작된 지금, 우리에게는 원대한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이 그리는 미래에는 최소 세 가지 모습이 선명하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한국인이 한국 제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인재로 빚어졌기 때문에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둘째, 산학협력을 넘어서 산학통합 교육이 활발하다. 셋째, 복지가 소비사업이 아니라 교육사업화로 탈바꿈해서 성장 동력이 되어 있다. 이처럼 저자는 지금의 교육 문제에 골몰해서 절망에 빠지는 대신 새로운 미래를 그려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입시 방식만 수정되는 교육에서 입시가 아니라 입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입지란 '뜻을 세우다'라는 말이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이 공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러한 생각을 해보고 꿈과 비전을 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입지가 목적이고 입시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목적 없이 수단에 매달리는 건 무의미합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가장 빠른 보트를 확보했는데 앞에 놓인 곳이 폭포라면 재앙입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공부하느라 너무나 많은 학생이 방황하고 불행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과 실력을 오로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소인배의 삶으로 내몰리다 보니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한국 교육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입시정책은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존 틀은 유지하면서 부차적인 면들을 끝없이 수정하고 보완하는 게 아니라 아예 교육의 중심을 옮기고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성공적인 교육혁명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첫째, 패러다임 이동이 간단명료해야 하고, 둘째, 교육혁명에는 새로운 가치관(윤리관)이 등장해야 하며, 셋째, 혁명 과정에 피비린내가 나지 말아야 한다고 전한다.

"교육은 입시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와 학생이 교육의 두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자는 지식 전달자 역할의 교사는 도태되고 지혜를 전달해 주는 멘토 역할의 교사는 각광받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식 전달 교육은 죽은 교육이고, 지혜 전수 교육이야말로 사람이 살아있는 생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인생 교육이며, 구체적으로 마음이 살아있다는 뜻에서 인성 교육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교사가 학생에게 스승으로 다가가는 길만이 학생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역설적으로 그럴 때만 교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교권 회복을 위해서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첫째, 교육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하고, 둘째, 교권이 확보된 미래를 상상해야 하며, 셋째, 교사가 다시 스승이라고 불리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는 지혜 전달 교육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교육문제를 꼬이고 엉킨 실타래로 인식하는 바람에 교육 중심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표면만 뜯어 고치거나 새롭게 겉포장만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실타래가 아니라 교과과정, 학생평가, 대학입시와 더불어 생활지도, 학생인권, 교복, 급식, 교원양성 시스템과 교권 등 수많은 크고 작은 요소들이 서로 세밀하게 연결된 거미줄 같습니다. 각 요소들이 사방팔방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거미줄은 어느 부분도 잘라내거나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교육은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가 아니라 중심 잡고 균형을 이룬 거미줄입니다."

저자는 사람은 그저 생존하는 게 아니라 비전이나 꿈을 지니고 성장하는, 단어 그대로 '어른으로 되어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사람 구실'을 하는 어른으로 커가는 것이다. 교육자는 이 과정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희망이 없는 터전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학업중단 청소년'이라는 명칠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상에 붙이는 이름에 우리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해결책의 기본 방향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그들을 '학업중단 청소년'이 아니라 '탈학교 난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교육 현장 역시 학교가 변해야 하며, 학교가 희망을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위로 올라가기 위한' 교육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한'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학업중단 청소년'이라고 하면 마땅히 해야 하는 학업을 중단한 학생을 탓하는 발상입니다. '탈학교 난민'이라고 하면 마땅히 희망을 베풀어야 하는 교육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학교와 교육행정에 책임이 있다는 발상입니다. 우리 교육자를 참으로 아프게 하는 말이지만, 아이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어른이 책임지겠다는 성숙한 자세를 보일 때 해결책이 등장하겠지요."

저자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게 없는 경우가 숨겨진 트라우마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보금자리, 보살핌, 양육, 지지, 지도가 없을 때 숨겨진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어둡고 추운 그늘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줄 수 있는 따뜻한 방법은 교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숨어있는 아이들의 감정을 만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천덕꾸러기와 싸움쟁이들 중에는 애착손상을 입고 숨겨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저 행동만 보고 야단쳐서 자제시키고 벌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은 컴컴하고 싸늘한 인간관계에 마음이 잔뜩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따스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아버지, 교사, 관리자 등 집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 감정을 차단하면 그와 불가피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다른 사람은 정서적 연결결핍 상태가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감정 차단은 고통을 주는 벌같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권력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선별적 차가움이 남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와 같기에 잔인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서적 베풂은 가장 위력적인 나눔이며 가장 확실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감정이 차단되어 소중한 사람과 함게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공유하지 못하면 가까운 사람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관계는 죽습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중요해야 관계가 삽니다. 내 주변 사방에 테두리를 쳐서 고립시키면 모두 남이 되어버립니다."

저자는 창의력은 정신 차린 상태에서 발휘된다고 말한다. 정신을 집중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비전'이 된 상태이고, 정반대로 정신 차림은 시야가 확 트이는, 알아차림이 확장된 상태이다. 보이지 않던 해결 방안들을 볼 수 잇는 혜안이 생긴 상태이고, 기존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직관과 영감을 만날 수 있는 창의적인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시야를 트이게 하는 정신 차린 상태에서 내 인생에 이루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할 때 내 인생이 가장 가치로운가에 대한 답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정신 차림은 진로, 꿈과도 직결되어 있다.

저자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는 다르다고 말한다. 세상은 지속적인 하나지만 세계는 변화무쌍하고 다양하다. 세상은 모두에게 같지만 세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세상은 생존과 투쟁이 있으나 세계는 나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성장과 창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 사는 게 힘들더라도 우리는 각자 행복한 세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자신의 세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세계를 더 좋고 멋지게 만들어보는 게 순서입니다."

저자는 교육은 아이들의 스펙을 높게 쌓아주는 게 아니라 좋은 스토리가 나오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스펙 쌓기는 피 터지는 경쟁을 해야 베스트가 될 수 있고, 나머지는 다 실패자가 되지만, 스토리는 남과 얼마나 다르냐의 개념으로, 베스트가 아니라 유니크가 핵심 키워드라고 이야기한다. 스토리는 유사성이 아니라 유일성이 핵심이며, 남과 얼마나 다른가가 자신만의 경쟁력이 된다.

"유니크한 사람은 남과 경쟁하지 않고도 경쟁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스펙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를 보여준다면 스토리는 살아온 모습과 살아가는 방법과 인간의 품격(인생)을 보여줍니다. 인성은 벼락공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시험 날 컨디션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인성은 오랜 기간에 걸친 학습으로 닦이는 실력입니다."

저자는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알아야 남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가 되지 않는다로 말한다. 깨어있어야 거짓에 고종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직감에 귀기울여 가짜 뉴스를 감별하고, 확신이 없는 일들에 활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외부 세상이 가짜인지 진실인지를 알아차리려면 내가 먼저 거짓이 없고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오감이 시끄러운 소음이라면 직감은 정말 잔잔한 음악입니다. 소음을 꺼야 잔잔한 음악이 들립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편안하게 자기조율 상태를 유지하는 기술을 평상이 실천하도록 도와주세요."

저자는 진로 선택은 현시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내가 원하는 미래에서 현시점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답이 나온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저자는 꿈과 비전을 갖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마음속을 들여다보는데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진로는 내다보는 게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행복한 나나을 보내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봐야 합니다. 성공하고 행복한 '미래의 내'가 '오늘날의 나'에게 "이리 와. 여기가 바로 네가 가장 원하는 곳이야'라고 손짓하면서 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 행복한 나의 미래 모습에 이끌려야 합니다."

저자는 배려과 과배려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순차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배려하다고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곧바로 중단한다. 둘째, 힘든 상황에서 불평 또는 하소연하지 않으려면, 스트레스 받아서 생기는 부정적 감정이 넘쳐나지 않게 하려면, 내 안에 스트레스를 담아낸 용량을 키워야 한다. 마음은 베풀수록 더 깊고 넓어지고, 그런 마음의 용량이 커지면 어떤 스트레스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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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김영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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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는 치매를 앓고 있는 94세 할머니와 손녀의 따뜻한 일상을 담은 유튜브 채널 '롱롱TV'의 첫 에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와 재밌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유튜브는 그야말로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서먹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의 손을 잡고 온 동네를 거닐던 그 옛날처럼 가까워졌고,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많았던 엄마의 마음에도 시린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세상과 단절되어 흐릇해져가던 할머니의 일상이 다채로워졌다는 것이다. 14만 구독자의 응원을 받으며 매주 웃을 일이 생겼다.

이 책에는 그간 영상에서 볼 수 있었던 유쾌하고 따스한 일상뿐만 아니라 서로를 지금처럼 사랑하기 위해 이들이 겪어야 했던 포기와 화해, 눈물의 순간들이 빼곡하게 담겼다. 이 책은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돌보는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방법을 잊은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낯선 이들에게 그저 한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기만 해도 서로의 진심이 전해질 수 있음을 말하는 책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외면했던, 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볼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 책은 '1장 할머니라는 섬, 2장 기억이 사라져도 기억되는 사랑, 3장 할머니의 장례식의 초대합니다'라는 3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의 환시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할머니가 사랑한 사람들이자 현실에서 더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온 우주였던 할머니의 외로움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환영이 나타날 때 할머니를 가만히 안아준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깊은 공감을 전한다.

"이제 나는 할머니의 눈앞에 그리운 사람의 환영이 나타날 때면 가만히 안아준다. 할머니가 잠이 들 때까지 옆에 누워서 어깨를 토닥인다. 특별히 말을 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그 대신 눈 맞춤과 체온, 손짓으로 마음을 전달한다. 할머니의 환시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내가 곁에 있으니 이제는 외로워하지 말라고. 다음번에 어린 영롱이가 할머니 방에 또 오게 된다면 할머니 곁에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잠들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유튜브에 올릴 첫 영상을 찍던 날, 침대 맡에 걸터앉은 할머니가 "슬프면 슬픈 대로 살고, 좋으면 좋은 대로 살다 보면 당신들도 이렇게 오래 살아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말이 지독한 슬픔도, 넘치는 기쁨도 결국에는 한데 섞여 하나의 삶이 된다는 말로 들린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살아온 끔찍한 세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했던 방법이 '흘러가는 대로 산다'였나 보다. 어쩌면 흐릿해진 기억 덕분에 이렇게 무덤덤하게 자신의 인생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신과 엄마, 할머니라는 삼대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아빠가 너그러워서라던가, 엄마가 할머니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지만, 모두 다 보기 좋게 틀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의 대한 고마움과 비록 서투르지만 남은 날들은 과거와 다르게 살아보고자 한 엄마의 결심 덕분이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자신의 우울증과 할머니의 우울증은 다가오고 드러나는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우울증은 관계 속의 좌절과 외로움에서 비롯되어 큰 사건들과 함께 요란스럽게 찾아왔지만, 할머니의 우울증은 적막함 속에서 아주 천천히 찾아왔다고 이야기한다. 할머니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더니 어느새 작은 섬과 같아졌고, 할머니의 치매는 세상과의 소통이 멈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뇌가 웅크리면서 시작된 병이자 지독한 외로움에 시작된 병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내가 그동안 쌓아뒀던 상처들을 눈물로 다 폭발시키고 난 후에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할머니의 아픔은 조용히 속으로 삼켜지는 것 같았다. 결말도 달랐다. 나는 할머니와 엄마가 만든 울타리 안에서 점차 나아졌지만, 할머니는 누군가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조차 거부했다. 슬픈 일은 쓰레기통 비우듯이 확 치워버리는 게 할머니가 곁뎌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의 우울증을 눈치챈 엄마가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하면 늙음을 이유로 들며 거기에는 어떤 도움도 필요치 않다는 듯 욕설과 신경질로 엄마를 밀어냈다. 할머니는 자꾸만 더 가라앉았고, 불 꺼진 방에서는 홈쇼핑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저자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보다 엄마를 더 걱정했다고 말한다. 저자 자신 또한 할머니가 피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할머니에게 자주적인 행동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치매 노인 타이틀을 받은 순간부터 할머니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잃은 사람이 되었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우리는 치매가 사소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엄청난 세심함과 관찰이 요구되는 병이라는 걸 예쌍하지 못한 채, 치매 간병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저자는 유튜브에 할머니와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리면 매주 할머니와 뭘 할지를 고민하게 될 테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활력이 생길 거 같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나중에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할머니와 첫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면서 할머니가 치매를 진단받고 4년이 지나도록 치매 증상들을 할머니의 전부라고 생각해 버린 게 실수였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 가족이 겪은 힘듦의 해결책은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는 저자의 글은 독자에게 치매라는 질환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일상의 힘든 모습을 최대한 배제하려다 보니 무엇을 찍어야 할지, 찍을 수 있을지 더 생각이 복잡해졌다. 결국 나는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 되어줄 수 있는 영상을 만들자는 커다란 틀만 정해놓은 채 첫 촬영을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치매는 할머니의 일부일 뿐인데, 나는 치매만 쳐다보다가 '우리 할머니'를 잊고 있었다. 할머니의 정체성과 감정은 내가 보고자 하면 언제든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내 신경이 온통 이상행동과 실수에 몰려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그게 바로 문제였다."

저자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에 대한 유튜브 촬영을 시작하면서 4년간 묵혀왔던 갈증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과는 영상 편집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바빠졌지만, 신기하게도 피로감과 갑갑함은 더 이상 자신을 짓누르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할머니에게 필요했던 것은 곧 기억에서 사라질 경고와 주의가 아니라 사는 걸 재미있게 만들어줄 활력, 자존감을 높여줄 칭찬과 대화, 우울감을 낮춰줄 움음이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모든 영상은 기획이라 할 것도 없이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큰 주제로 두고, 할머니의 말과 반응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우리의 대화를 촬영했다. 꾸밈없는 영상들은 내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같은 장면만 수십 번 보다 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의 작은 몸짓과 눈빛,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편집은 할머니가 내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일상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저자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자신의 가족에게 생긴 값진 변화는 할머니와 엄마, 자신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연민의 감정이 스며들며 관계의 변화를 시작한 저자의 여성 가족 삼대의 이야기가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우리 삼대가 지금처럼 웃으며 지낼 수 있게 된 건, 자신의 아픈 상처만 들여다보던 이들이 서로의 상처로 시선을 돌리면서 '저 사람도 얼마나 아팠을까?'를 헤아려보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몇 십 년에 걸쳐 생겨버린 상처가 아물기까지 우리에겐 분명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동화의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사람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도 아니다. 우리는 태어난 김에 만나 서로를 어느새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가족이자, 함께 성숙해져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세 명의 여성들이다."

저자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에게 신우요관암이라는 병이 함께 찾아오면서 다가올 이별을 생각하며 일상이 더욱 소중해졌다고 말한다. 아직 할머니를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저자의 글에서 뭉클한 감정이 전해진다.

"할머니의 삶이 죽음 쪽으로 더 가까워졌다 해도 할머니에게서 퍼지는 따뜻한 온기와 사랑은 여전히 내 곁에서 나를 품어주고 있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엄마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가족을 감싸고 있는 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할머니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저자는 유튜브를 통해서 할머니가 직접 구독자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영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타인의 아픈 사연에 과하게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공감과 진심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데, 할머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게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어느새 얼굴을 모르는 이들부터 옆에 앉은 자신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나대로 고민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져 좋았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내게 조언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 고민을 듣는 순간마늠은 치매로부터 멀어지는 할머니를 보며, 어쩌면 할머니의 치매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건 그동안 애써 시도해왔던 낱말 퍼즐 맞추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활동보다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보고 들으며 함게 섞이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우리가 한 사람에게 치매라는 단어가 붙었을 때 그 단계가 초기인지 중기인지 말기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모든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쉽게 간주하게 된 이유는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린 매스컴에 8할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치매 환자들 각각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증상도 다양하며, 그들의 존엄성과 고유함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나의 할머니가 치매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된다. 매스컴에서도 마찬가지다. 치매 말기 환자의 모습을 함부로 치매의 이미지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치매에는 다양한 모습과 증상, 단계가 있고, 환자의 개별성이 존재한다. 그 다양성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치매 인식은 개선되기 시작할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의 저자는 치매 환자의 마지막을 똑같은 프레임으로 씌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꾸만 어두워지는 삶에서 위태롭게 빛나고 있는 그 반짝임을 어떻게 지켜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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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은 주역에서 답을 찾는다 - 부와 운을 끌어당기는 불변의 인사이트
오구라 고이치 지음, 류휘 옮김, 김승호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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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은 기원전 중국의 제왕들이 제력과 권력을 총동원해 모은 부와 운의 질서를 압축한 경전이다. 그래서 공자부터 이순신, 이나모리 가즈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수많은 시대의 거인들이 3,000년 넘게 동양 최고의 경전이자 삶의 전략서로 삼았다. 일본의 '주역' 커뮤니케이터이자 리더십 코치로 활동하는 저자 오구라 고이치는 탄탄대로였던 인생이 처참하게 무너진 순간 '주역'을 만났다. '주역' 64괘의 의미와 가르침을 깨닫고 삶에 직접 적용하자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던 그의 인생관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주역'이 전하는 진리를 현대인의 부와 성공에 접목하는 통찰을 얻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심리, 철학, 경영 이론을 총망라해 신간 <거인들은 주역에서 답을 찾는다>에 집약했다.

이 책에는 윈스턴 처칠이나 오타니 쇼헤이까지 '주역'과 맞닿은 거인들의 생각법부터 일하는 사람을 위해 새롭게 재편한 64괘에서 얻는 인사이트, 시대를 이끈 위대한 구루들의 명언으로 이해하는 인생의 진리, 퍼실리테이션, 퍼포스 경영 등 실무에 도움이 될 비즈니스 철학까지 가득하다.

이 책은 '1장 성장, 2장 연결, 3장 성공, 4장 역할, 5장 출세, 6장 재물, 7장 위기'라는 7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주역'은 이 세상의 끝을 상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은 영원히 변화를 거듭한다는 순환론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관점이 확고하기에 '완성'이라는 결과물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성취감 뒤에 감춰진 '방심'과 '자만심'을 우려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수화기제라는 괘는 이미 갖추어져 완성된 시기를 뜻하며 완성은 흐트러짐의 시작이기도 하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이는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다른 곳에서도 통용될 새로운 배움에 시선을 돌리라는 조언을 담아 눈길을 끈다.

"평평한 것은 언젠가 기울고 정돈된 것은 결국 흐트러질 운명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즉 '완성했다 해서 자만하지 마라. 불필요한 욕심을 삼가라. 즉시 다음 준비에 착수하라'는 교훈을 전한다. 이는 '처세를 누림에 있어 난세를 잊지 않는다(평화로울 때일수록 방심하지 마라)'라는 경구와도 일맥상통한다. 본 괘에는 우리가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저자는 '주역'의 괘인 화산려란 시시각각 변하는 여행길에서 삶의 고독을 느끼는 시기로, 여행은 성장의 계기가 된다는 의미를 말한다. 저자는 '여행의 덕'을 주제로 한 본 봬에서 말하는 바를 재해석하면 평소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도 여행지에서는 감사히 여기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적극적인 모험심으로 여행의 설렘과 새로운 성장을 즐기자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주역의 괘인 '산수몽'이란 미숙함을 의식하는 시기로, 배움을 통해 자타의 가능성을 발굴하라는 의미에 대해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기량이란 행위나 기술과 같은 '양=미는 힘'을 의미하고, 도량이란 경청이나 그릇의 크기, 마음가짐 같은 '음=당기는 힘'이자 '받아들이는 힘'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배우는 자세는 음의 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학문은 단순한 시직의 수집이 아닌 대화와 관대함, 어진 마음, 실행력 등 인간적 성장까지 포함한 개념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주역의 괘인 '풍지관'은 인생을 깊이 통찰하는 시기로, 보이지 않는 중요한 부분까지 면밀히 관찰하라는 의미에 대해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견'은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일, '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관찰하는 행위이며, 풍지관에서는 '관'이라는 한자는 후자에 속한다고 이야기한다. 대화할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프로야구 닛폰햄 파이터스를 지휘해 2016년 일본 시리즈와 2023년 일본 야구 대표 팀 '사무라이 재팬'을 WBC 우승으로 이끈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도 '주역'에서 가르침을 얻는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말한다. 구리야마 감독은 현역 시절 메니에르병과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해 갖은 고생을 하고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안게 된 고민을 극복하고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소타니 쇼헤이 선수를 키워낸 일은 구리야마 감독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다. 주역의 쾌인 '수풍정'은 표리부동하지 않고 꾸준히 일하는 시기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란 정성스럽게 환경이 정비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리야마 감독은 주역의 본괘와 같이 사람이 모이는 곳은 늘 관리를 게을리하지 말고 쾌적하게 유지하라는 조언을 잘 실천한 인물이다.

"본 괘에서는 '스스로 그 일을 하라'라고 말한다. 비록 누구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 못하더라도 빈틈없이 꼼꼼하게 꾸준히 작업하는 것이다. 계속 노력하면 이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나타나 그동안의 고생을 인정받게 되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었듯 자신도 행복해진다. 지금은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난다.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재능을 더 갈고닦으라고 강조한다.

우물이란 많은 사람이 찾아와 물을 마시고 기뻐해야 존재 가치가 있다. 이타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 세상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면 훗날 큰 보상이 돌아온다.

구리야마 감독은 '우물 뚜껑을 닫고 독점해서는 안 된다.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크게 길할 것이다'라는 본 괘의 가르침대로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타자와 투수로 맹활약하며 팀의 에이스로 성장한 오타니 선수를 흔쾌히 메이저 리그로 보내주었다."

저자는 주역의 쾌인 '수지비'는 사이좋고 화기애애하게 나아가는 시기로, 부름에는 신속하게 답하고 말은 먼저 나서서 건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을 할 때 반응속도는 성의 표시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반응속도가 빠른 사람은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쉽다. 나아가 저자는 본 괘에서는 리더는 집요하게 완벽함만 추구하기보다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좋은 동료를 모은 이상 믿고 맡기는 것이 성공하는 리더의 비결이다.

"본 괘에서는 '뒤늦게 찾아오는 자는 타산적이고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흉에 해당한다'라고 말한다. 오기 전까지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다시 말해 즉시 가야 자신에게 득일지, 일단 가만히 있어야 득일지 따져보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대방에 대한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설령 왔다고 해도 진심으로 도와줄지 의문이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나 늦은 반응은 상대방에게 부정적 인상을 심어준다."

<거인들은 주역에서 답을 찾는다>의 저자 오구라 고이치는 '주역'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해설과 예시가 추가되면서 끊임없이 확장해가고 있으며, 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영원히 미완성인 상태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책'이라고 전한다. '거인의 어깨'라고도 하는 선조들이 축적한 성과물인 '주역'을 맛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계속 함께 등반해나갔으면 한다는 저자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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