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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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며 지난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뛰어난 작품을 선별해온 김유정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의미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왔다. 2024년 올해 김유정문학상은 배수아의 '바우키스의 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신화 속 '바우키스'라는 인물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을 통해 소설가 배수아는 누구도 떠나지 않고 영원히 머무는 문학의 순간, 그 아득한 곳을 향한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함께 실린 수상 후보작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 박지영 <장례 세일>,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 이서수의 <몸과 무경계 지대>, 전춘화 <여기는 서울> 다섯 편의 작품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면과 문학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바우키스의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우키스'의 일화를 변형한 작품이다. 나그네를 정성스레 돌봐준 바우키스와 그의 남편 '필레몬'은 소설 속에서 '나'와 '모형 비행기 수집가'에 비유된다. 모형 비행기 수집가에게 선물받은 구형 타이프라이터를 거쳐 '나'의 말들은 편지 속 글자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마다, 편지를 보내려고 할 때마다 그 마음이 나무가 되어 '나'의 입을 뒤덮는다. 영원히 말해지지 않을 것 같던 '나'의 말은 언어가 아닌 음악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화된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작별을 앞두고, '내'가 쓴 편지의 어휘들은 '음악가'의 곡으로 승화되며 그들은 영원히 두 그루의 나무로 남게 된다. 배우가 작가는 끝없이 이어지고 움직이는 신비로운 장면들을 통해 작별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잎이 나무껍질로 완전히 변하기 직전, 바우키스는 작별인사를 건넨다. 마침내 나뭇가지가 얼굴을 뒤덮기 시작한 최후의 순간, 일생 동안 내 입에서 살던 하나의 어휘가 해방되었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뉴욕 맨해튼에 허리케인이 휘몰라치던 어느 날 밤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집에 물이 차오르는 걸 알게 된 '나'는 고등학교 동창 '피터'의 집에 하룻밤 묵게 되며 과거 그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와 자신 사이 끝끝내 훔칠 수 없는 '계급'을 실감한 '나'에게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위태로움이 지속된다. 뿐만 아니라 <허리케인 나이트>에서 누군가에게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는 대체되고 소비될 수 있다는 계급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을 '피터'의 롤렉스 시계로 은유하여 눈길을 끈다. 그리고 <허리케인 나이트>는 인간이 가진 부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각자의 몫만큼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잃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잃어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고, 그게 무엇이든 도무지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상상을 했다. 아이 우는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의 정체에 관해. 완벽해 보이는 피터와 당신 뒤에 존재할 비밀과 그림자에 관해. 우리가 모두 어쩔 수 없이, 그러나 공평하게 빠져 있는 시궁창에 관해."

박지영의 <장례 세일>은 아들 '현수'가 평생을 '실패한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아버지 '독고 씨'의 죽음을 세일즈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로, '장례 세일'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생동감 있는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장례 세일>의 주인공 현수가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애도를 확장하고 가치 비용을 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죽음의 화제성과 특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글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현수는 거짓된 감사라 해도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감사를 모아 아버지 독고 씨의 삶과 죽음을 축복하고 애도하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독고 씨의 죽음 비용을 결정하는 데 고려할 것은 공정함이 아니었다. 불공정함, 그 불공정한 축을 어떻게 최대한 내 쪽으로 기울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불공정함을 위해 죽음의 흥행성을 결정할 오락적인 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부과할 것인가가 현수가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독고 씨의 죽음에 어떻게든 높은 가격표를 붙여놓고 그게 정가인 양 속이며 기간 한정 파격 세일을 붙여 소비자를, 더 많은 조문객을 끌어모으고 더 두툼한 조의금으로 장례 비용을 충당하고 이왕이면 영업이익도 남기는 것, 독고 씨의 죽음을 싼값에 자신의 슬픔과 애도로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현수가 하고자 하는 장례 세일의 목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독고 씨의 죽음을 비싼 값에 세일즈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진짜 팔아야 하는 건 독고 씨의 가치 있는 삶이 아니라 가치 없는 삶이었다. 독고 씨는 그렇게 예비된 애도객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애도 가격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은 독고 씨의 그래도 싼 죽음이나 그에 대한 슬픔이나 연민, 죄책감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인품을 지닌 과거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과 뿌듯함이었다. 그리하여 독고 씨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그 감사한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만나게 되기를, 보여줄 기회를 희망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그래도 싼' 인생은, 본인이 무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아무 관계 없는, 이유 없는 타인의 완전한 선의에 의해서 다른 의미의 '그래도 싼' 인생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현수는 먹먹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비싼 가격을 매기더라도 그래도 싸다, 그래도 싸, 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한 사람 몫의 공정. 그러니 현수뿐 아니라 그 누구도 타인과 자신의 인생에 함부로 싸구려 인생이라는 가격표를 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독고 씨의 죽음은 오늘 밤, 낯설고 온전한 선의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그래도 싼' 죽음이 된다."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은 운동권 세대였던 아버지 '태수'의 딸 '수민'이 상주를 맡게 되며 그의 장례식 풍경을 그려낸다. 작품 속 부녀의 모습과 그 세대 차이를 통해 과거와 오늘날 혁명의 의미가 어떻게 달려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던 아버지 '태수'의 장례식에서 반려견을 데리고 와달라는 아버지의 바램이 이루어진 후 장례식의 풍경이 뒤바뀌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있잖아, 수민아.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우리는 그렇게 태수 씨의 죽음에 관해 우스갯소리를 하고 이것저것 계획하며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것은 죽음을 도모하며 삶을 버티는 행위였다. 태수 씨는 자신이 죽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 두 가지는 태수 씨에게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태수 씨는 나와 수진에게 자신의 장례식에 관한 계획 하나를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말이야, 아빠도 좀 이상한 건 아는데, 유자가 내 장례식에 와줬으면 좋겠다."

이서수의 <몸과 무경계 지대>에서는 무대에 오른 주인공 '윤세진'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첫사랑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 세진이 만나고 있는 '단밤'과의 일화 사이사이 삽화처럼 등장하며, 몸이 하나의 경계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질문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세진이 자신이 과거에 만났던 인물들을 떠올리며 타인이 경계를 짓고 타자화하며 대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눈길을 끈다.

"어떤 지역에서 나고 자랐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본래의 기질을 따라 몸이 확장되는 데 일조하는 장소적 기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 몸은 그렇습니다. 경계가 없는 다양성 속에선 확장되고, 상상력이 부재하는 획일성 속에선 축소됩니다."

"사람들은 내 몸을 보고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본다는 게 실은 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나는 혈연 기반의 원가족이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잘 알아. 웃으면서 내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얼굴들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운지. 자기들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너무 싫었어. 어릴 때부터 집에서 빨리 도망쳐 나와 내 가족을 이루고 싶었고. 당연히 혈연일 필요는 없고. 지금은 사랑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네 감정이 뭔지 묻지 않고서 나랑 같이 살겠냐고 물어도 될까?"

"새로 정착하게 될 동네는 어떤 곳일까요. 그곳에서 저와 단밤의 기질은 얼마나 발현되고 확장되고 소거되고 움츠러들까요."

전춘화의 <여기는 서울>은 20대 조선족 여성 청년이 서울에 정착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안정적인 짜임새로 중국 교포의 시선에 담긴 현재 한국의 청년 세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혼란 속에서 과거와 연결되기도 하고 주위에 감응하여 확장되고 하며, 가끔은 볼품없이 축소되고 부정당하는 자아를 견디며 서울에서 살아가는 중이라고 아버지에게 전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는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배고프지 않고 따뜻하게 누울 곳이 있으며 선대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고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저를 둘러싼 환경을 탐색할 의욕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서울이 만화경처럼 복잡한 세상이라면 저는 아주 천천히 셔터를 계속 눌러 기하학적인 그 무늬들을 남김없이 오래도록 응시할 것입니다. 서울이 회전무대처럼 느껴져서 멀미를 느끼는 날도 있지만 줄을 꼭 잡고 그 속도를 견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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