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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작가는 책 머릿말에 지지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김연수 산문집 <지지않는다는 말>에서는 작가 김연수의 어린시절, 청춘에 있었던 다양한 일들, 그만의 깊은 사색의 글을 만날 수 있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책을 읽으면서 김연수 작가가 달리기와 비유하며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달리기를 끝낼 때마나 나는 어떤 어마어마한 만족감을 느끼는데 그건 단지 계획대로 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에서 초월한, 더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달리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잠을 자면서 달린다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잠을 자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틱낫한 스님이 전하는 베트남의 속담은 다음과 같다. '공통체를 떠난 수행자는 파괴될 것이다. 산을 떠난 호랑이가 인간에게 잡히듯이.' 내 식대로 고치자면,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라."
책 속에서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글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김연수 작가 자신또한 여리고, 쉽게 상처받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도시를 살아가는 나이기에 에세이 속의 '도시에 공급하는 고독의 가격을 낮춰 주기를'이라는 제목이 공감갔다. 건물들이 하루아침에 허물고 다시 세워지는 도시의 하루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도시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5백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이 다닌 골목도 한순간에 부숴 버린다. 도시에는 나보다 늦게 태어나서는 나보다 일찍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쓴다. 그들은 모두 개별적인 한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쓸 것이다. 여기까지가 마흔이 되기 전에 내가 이해한 예술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그 개별적인 존재의 슬픔이란 그 존재 역시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나는 모든 화가와 작가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나에 대해서 그리고 썼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거나 읽은 대가들의 작품은 예외 없이 나를, 나 자신의 삶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처럼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동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에세이 속 제목중에 '한 번 더 읽기를 바라며 쓴 글'을 처음에는 그대로 읽어내려갔는데 다시 보니 끝에서부터 다시 읽어내려가보라는 작가의 권유라는 뜻을 알았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다. 왜냐면 처음부터 읽었을때도 부자연스러운점을 특별히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질문만이 영혼을 깨울 수 있을 뿐이라는 글귀를 읽으니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은 과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일까? 한계를 깨달을 수 있는 인간만이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으리라.
" "이것이 지금 네가 읽고 싶은 책이냐?"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영혼은 깨어 있는 셈이다. "이것이 지금 네가 쓰고 싶은 글이냐?" 이건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인데 좀 생각해봐야 겠다. "이것이 지금 네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냐?" 이건 영혼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어쨌던 질문만이, 오직 근본적인 질문만이 영혼을 깨울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에게 한계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 누구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영혼이 깃든 대답을 하듯이 말이다. 그 반대의 세계는 무제한을 장려하는 사회다. 무한한 소비, 무한한 정보, 무한한 인맥..... 무한이란 아마도 죽고 난 뒤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한한 소비와 정보에 둘러싸인 사람이란 아무리 뭐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는 사람, 그러니까 지금 죽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혼자에겐 추억, 둘에겐 기억이라는 책 속 제목이 인상적이다. 김연수 작가는 20대만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염세주의자인 것처럼 다녔다고 한다. 20대의 김연수가 혼자 글을 쓰는 행위에는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김연수 작가는 추억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내가 사 온 보석바를 보더니 친구도 "어, 보석바가 아직도 나오네."라며 반색했다. 사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만나는 친구였다. 둘이서 어렸을 때 먹었던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한참 떠들었다. 물론 보석바를 먹던 시절의 이야기도. 그때 나는 깨달았다.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사람은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대로 산다고 본다. 우리가 자꾸만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이다. 회사원은 사장을 원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결혼을 원한다. 정말 멋진 사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자기계발서에 써 놓은 것처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우리는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원하지 않고 20대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럼에도 20대가 끝날 무렵에 우리 대부분은 알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지질하며, 자주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을. 그건 아마도 20대란 씨 뿌리는 시기이지 거두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청춘이라는 단어에 '봄'의 뜻이 들어가는 건 그 때문이겠지. 20대에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뿐이니까."
"어떨 때 나는 소설을 쓰는 일보다 달리기를 더 좋아한다. 소설을 쓰는 일은 끊임없이 나를 긴장시킨다. '정말 여기까지가 다냐?'고 항상 물어보지 않으면 마음은 곧 '그래, 그 정도면 됐어'라고 말하기 일쑤다. 하지만 달리기는 다르다. 마라톤은 언제나 내게 최고의 능력만을 요구한다. 나 자신을 좀 속이고 대충해서 결승점까지 들어간다, 이런게 마라톤에는 없다. 결승점에 들어가는 그 순간이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점이다. 그러므로 그 순간만은 나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 누구의 말에도 상처받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무적의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