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물 -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열아홉 해의 생일선물과 삶의 의미
제너비브 킹스턴 지음, 박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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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엄마를 잃은 딸의 아주 긴 애도의 기록이자, 삶의 불확실함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내일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제너비브의 엄마는 죽기 전, 딸을 위해 커다란 판지 상자를 준비했다. 그 안엔 엄마가 함께하지 못할 딸의 기념일들, 이를테면 매해 돌아올 생일, 졸업, 약혼과 결혼, 출산과 같은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선물들이 담겨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제너비브는 수십 년간 어디를 가든 상자와 함께한다. 깊은 슬픔에 빠져 방황하고 불안해하던 시간을 지나, 엄마가 남긴 열렬한 응원과 사랑의 메시지들을 하나둘식 따라가면서 제너비브는 비로소 내일을 맞이할 용기를 얻는다.

'뉴욕타임스' 모던 러브(Modern Love) 색션을 통해 소개되어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에세이 <판지 상자에 담은 못다 한 사랑>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마지막 에세이>는 실화라고는 믿기 어려운 꼼꼼한 기록들과 섬세한 묘사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묵직하고도 따뜻한 위로를 선물한다.

이 책은 '1장 엄마의 상자, 2장 칠흙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다, 3장 빛을 향해 나아가다'라는 3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엄마가 자신이 죽어가고 있고,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으면 1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고백을 듣는다. 저자가 어느 순간 오빠의 뺨 위로 눈물이 뚝 떨어지던 순간을 기억하던 모습과, 1년이라는 시간이 가진 의미가 무언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엄마의 말이 징을 때리듯 내 가슴을 때렸다. 1년, 열두 달, 52주, 365일. 1년이면 학교에서 한 학년을 마칠 수 있는 시간이고, 씨앗을 심으면 충분히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간이다. 머리카락이 15센티미터 정도 자라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부러진 팔이 나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제 막 일곱 살이었던 내게 이전까지는 1년이 꽤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생각해 보니 1년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멍하니 탁자 위의 촛불 네 개를 바라보았다."

저자가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지 못했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글이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나는 엄마가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안다고, 그리고 엄마와 떨어져 있었던, 아니 떨어져 있고 싶었던 시간과 엄마가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던 그 방에 가득 찬,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끔찍한 슬픔과 떨어져 있고 싶었던 시간에 매일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이 모든 일이 끝나기를, 그래서 지금 모습의 엄마가 아니라 예전 모습의 엄마를 기억하고 싶었던 것에 가장 크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래도 잠에 빠져들었다."

저자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순간을 마주했던 내밀한 감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엄마의 병에 대해 제이미 오빠와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해 본 적 없었고, 그래서 적절한 표현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엄마의 장례식 마지막에 오빠가 "저는 오늘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진정한 지표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백파이프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한 순간을 떠올리며 적은 글이 인상적이다.

"그날 밤, 오빠와 나는 둘 다 아래층에 있었다. 우리는 컴퓨터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나면 내가 알아챌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의 어떤 문이 열리거나 닫힌다거나, 빛이 어떻게 변한다거나, 내가 뭔가를 감지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빠는 계속 게임만 했고, 나는 옆에서 오빠를 응원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빠가 우리를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와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이제 끝났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날 밤, 오빠는 엄마의 시신을 보고 나서 게임 CD를 전부 꺼내 뒷문 밖의 빗속으로 모두 던져버렸다."

"나는 곧 있으면 열여섯이 되는, 키가 훌쩍 커버린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오빠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짧은 몇 마디였지만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괜찮은지에 대한 무언의 질문에 오빠의 말이 답이 된 듯 안도의 눈빛을 보냈다. 이야기를 마친 오빠는 백파이프의 리드를 입술로 가져갔다. 그리고 악기에 숨을 가득 불어 넣으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엄마가 죽은지 다섯 살이 지나 열두 살이 되며 홀로 맞이하는 삶의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엄마가 남긴 '그웨니그의 초경'이라는 편지를 읽고 발견한 회색 녹음테이프를 듣는 장면에서 남겨진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처음으로 엄마에 대해,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자신이 태어나기 전 수십 년간 인생의 대부분을 '크리스티나 마이야드'로 살아온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부족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엄마는 네게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고 싶구나. 생리를 한다는 건 네가 세상에 또 다른 그웨니와 제이미를 태어나게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해. 얼마나 기쁜 일이니! 이제 넌 진짜 여자로서 삶의 첫발을 내딛게 된 거야. 너와 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그러면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여자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더욱 성숙하고 깊어지는 네가 얼마나 대견한지 말해주었을 텐데."

"그웨니, 넌 정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아이란다. 그 열정은 되도록 너 자신을 위해, 너의 관심사와 너의 배움을 위해 아껴두렴.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생각에 맞추느라 네 열정을 너무 빨리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자애들은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너무 빨리 내어주곤 하지. 하지만 네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야.

엄마도 알아. 어른이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걸.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우리 인생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나머지 4분의 3은 그 시절을 돌아보는 데 쓴단다. 그러니 그 시간을 즐기도록 해봐. 한순간 한순간을 최대한 만끽해 보는 거야. 너 자신과 친구가 되는 시간을 가져봐. 네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생각들을 하고, 어떤 감정들을 느끼는지 알아보렴. 세상에 대한 너만의 생각과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해. 인간으로서 한 사람이 되어야 해.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란다. 그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된다고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 우리는 인생의 단계마다 자신을 새롭게 발전해야 해."

저자는 엄마가 남긴 영상 속 이야기를 통해서 자식들이 정말로 힘들고 복잡한 문제를 만났을 때, 혹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헷갈릴 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엄마가 엄마의 모든 경험과 모든 지식, 모든 사랑을 작은 물건에 담아서 자식들이 항상 지니고 다닐 수 있게 해줄 방법을 찾고 싶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마흔 네 살에 인생의 끝을 마주하고 있었던 엄마가 쓴 편지들이 삶을 체념한 사람의 글이 아니라 여전히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며 싸우는 사람의 글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먼저 엄마가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 지난 몇 달간 엄마는 너희에게 편지를 썼단다. 지금도 계속 쓰고 있어. 그 아이디어는 죽어가는 엄마가 딸에게 작은 인형을 선물한다는 바실리사의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랐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바실리사는 주머니에 그 인형을 넣어 다니다가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주머니에서 인형을 꺼내. 그러면 인형이 바실리사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었지. 사실 인형은 바실리사의 직감과 지혜, 그리고 딸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었어."

"인생을 살다 보면 엄마, 아빠와 함게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 중요한 순간들이 있을 거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생일이라든가 고등학교 졸업식, 운전면허증을 따는 날, 약혼식, 결혼식, 첫 아기를 낳을 때와 같은 그런 날들 말이야. 그래서 그런 중요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편지를 썼어. 엄마가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엄마가 그런 일들을 겪을 때 어땠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싶었단다. 그리고 엄마가 언제나 너희를 생각하고 있었단 걸 알 수 있게 그런 날들을 기념하는 작은 선물도 준비했어. 엄마가 그런 순간들에 너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슬프지만 적어도 너희는 매 순간 엄마가 너희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엄마가 쉽게 떠난 게 아니란 것도."

저자는 많은 배우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데서 연기의 즐거움을 찾았다면, 저자는 자신에 더 몰두할 기회를 얻는 데서 즐거움과 위안을 얻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래 친구들, 심지어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엄마의 죽음에 대해 잘 말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나누기 위한 어휘를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인물들은 자신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삶과 싸웠다고 이야기한다. 여자들은 같이 사는 남자에게 구타당해 목숨을 끊었고, 부모들은 사고나 전쟁으로 자식을 잃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는 굶주리고, 피 흘리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그런 사람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내가 우리 집과 내 인생의 모든 다른 환경에서 통제하기 어려워했던 감정들이 무대에서는 큰 자산이 되었다. 내가 무대 위에서 독백하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같이 눈물 흘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감정의 자유를 얻는 해답을 찾을 것 같았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느꼈던 산타로사의 장밋빛, 미국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여행하는 내내 간직했던 그 빛깔도 산타로사 경계선 안으로 다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고, 함께할 친구와 학교가 없는 도시의 풍경은 텅 빈 것처럼, 아무 색깔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삶을 붙잡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삶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고 말았다며, 주디 선생님의 말을 통해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주디 선생님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썼다. 맞는 말 같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세상이 온통 흐릿해 보이고, 뼛속까지 피곤한 그런 증상들은 내가 느끼는 기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내가 왜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나 제이미 오빠가 떠났을 때, 아빠가 다른 사람과 재혼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우울하지는 않앙ㅅ다. 그런 일들을 겪었을 때 뾰족하고 강렬하고 압도되는 감정은 느꼈어도 다음 날을 마주해야 한다는 암울한 공포심이 나를 덮친 건 처음이었다."

저자는 예전에는 엄마의 투병 생활을 생각했을 때 자신의 관점에서만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오고 몇 달 동안은 처음으로 '엄마'의 관점에서 죽어가는 삶이 어땠을지가 궁금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빠와 함께 본 영상으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데 혼자 죽어가는 삶, 어린 두 자식을 남겨두고 죽음을 맞는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려 노력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다락방에 올라가 엄마의 물건들이 담긴 상자들을 뒤적였고, 엄마가 남긴 또다른 테이프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결국에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엄마는 우리가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진실한 모습으로 사는 거라고 생각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친절, 연민, 행복한 감정으로 기억되는 것, 고통과 아픔은 최소한만 남기고 떠나는 것,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해. 일과 성취는 어떠냐고? 그건 잘 모르겠구나. 엄마가 남기고 가는 것 중에 엄마가 이룬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 엄마가 남기고 가는 진짜 보물은 너희 둘뿐이고, 너희는 너희 스스로 이루었으니까."

저자는 엄마를 잃은 자신의 슬픔이 엄마가 죽은 날 시작되었다면 아빠의 슬픔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었고, 상처보다는 흉터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엄마의 죽음 뿐만 아니라 아빠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경험한 저자는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올가미나 그 올가미를 묶은 손이 아닌, 아빠의 깊은 절망이 목숨을 버린 원인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아빠의 죽음은 삶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는 증거였고, 아빠가 죽기로 결심했다는 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다는 충분한 증거였다고 말한다.

"아빠의 죽음은 엄마의 과거에 대한 내 갈망은 엄마의 과거에 대한 내 갈망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잃고 나니 내 안의 어떤 줄이 끊어진 것 같았고, 내 삶이 뿌리를 잃고 표류하는 듯했다. 나는 나를 묶어줄 수 있는 배경이 있다면 무엇이든 갈망했다."

저자는 엄마가 남긴 상자는 자신과 수년을 함께하며 그 자체로 소중한 물건이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저자는 보이지 않게 옷장 속에 숨겨져 있는 상자의 존재만으로도 자신과 엄마의 관계를 지켜주는 듯했다고 이야기한다.

"상자는 16년 동안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안심시켜 주는 존재였다. 나는 이제 거의 바닥이 드러난 상자를 겨울 코트를 걸어둔 자리 아래에 넣어두고 옷장 문을 닫았다."

저자는 상자에서 처음 물건을 꺼냈을 때만 해도 자신의 세상은 엄마의 상실로 규정되고, 엄마의 존재가 안전함을 불어넣은 몇제곱킬로미터 안에 국한 될 거라고 믿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엄마가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를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엄마는 자신이 한때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보다 더 크로 풍요로운 삶을 선물해주었다고 말한다. 딸이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랬던 엄마의 마음처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 저자의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엄마의 가장 큰 바람은 엄마와 아빠가 너희에게 준 큰 사랑으로, 너희가 스스로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서 스스로 소중히 여겨질 가치가 있고, 마찬가지로 짝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거란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긴다는 건 그 사람의 능력이나 성공, 외모에 관한 게 아니야. 그건 상대방의 눈에 비친 가장 멋진 자신을,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신성한 자아를 보는 거지. 내가 어떠해야 한다는 타인의 생각이 아니라, 나에게 삶을 주는 신성한 불꽃을 통해 이미 나의 것이 된 것을 지지하는 것이지. 그건 우리 각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빛을 표현할 자유를 갖는 동시에 우리의 생명력을 다른 사람의 생명력과 결합해서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해 주는 거란다. 이런 사랑을 위해 두 사람 모두 충분히 성숙하고 많이 노력해야 하지만, 먼저 자신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가 기본이 되지 않으면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아. 우리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은 물론 상대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지녀야 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상대받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알아야 하지. 또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생각이 필요해. 우리는 이런 힘을 모두 내면에 지니고 있단다. 우리가 얻는 행복의 원천은 다른 곳이 아닌 자기 내면에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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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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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멜라의 신작 소설 <환희의 책>은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두 번째 소설선이다. 2023년 10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가 연구원이자 저술가가 되어 연인인 '버들'과 '호랑'의 사계절을 곤충의 시점으로 관찰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대상인 연인이 치열하게 사랑하고, 때론 과거의 상처에 아파하며,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삶과 인간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나는 우리의 저술가들에게 말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사소함, 그것이 우리가 부여받은 필력이다. 가라, 독토기답게 튀어 올라 유한한 두발이의 삶을 무한한 갉작임으로 기록하라. 모기답게 깊숙이 침을 찔러 익은 복숭아 같은 인간의 외피에서 비탄의 적혈구를 뽑아내라. 거미답게 단백질 실을 엮어 우리를 눌러 죽이는 그들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방사형 텍스트를 수놓아라!"

이 책은 편견으로 가득찬 인간의 세계를 비판하며, 자연 안에서 늘 변화하는 비인간 존재들의 생명력과 다채로운 감정의 아름다움에 관한 시선을 담아내어 흥미롭다.

"누 선생의 말씀대로 지구의 모든 구성원에겐 실상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이란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우리의 탈바꿈을 가둬놓는 두발이엄지의 형식이다. 우리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고 늘 다른 것으로 흐른다. 물방개와 물땅땅이는 두꺼비에게도 흘러 구름이 되고, 황풍댕이와 산누에나방은 동고비에게도 흘러 빗방울이 된다. 꽃과 나무는 나비로 날개를 갖고, 땅과 바위는 벼룩의 도움으로 점프한다. 느낄 수 있겠는가? 위가 들리고 밑이 빠지는 쾌감을, 삼키는 뜨거움과 씹히는 상쾌함을, 구름으로 응결되고 빗방울로 추락하는 기쁨을. 두발이엄지도 우리처럼 믿고 느끼는가?"

이 책은 레즈비언이자 연인인 호랑과 버들이라는 인간의 사랑과 고통을 책으로 저술하고자 하는 비인간 존재의 섬세한 탐구를 담아내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성폭력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레즈비언이라는 편견으로 억압된 감정들이 응축된 상처들로 뒤덮인 삶 속에서 우울증과 양극성장애 등의 정신 병력을 지닌 버들과, 버들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을 경험했고 버들의 곁을 지키며 버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호랑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간들이 외면하는 차별, 그리고 고통에 공감을 받지 못하는 심리적 통증에 대한 따뜻한 대처 방법을 이야기하는 비인간 존재의 글을 통해서 남과 다른 타인의 편에서 이해의 폭을 확장해야 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는 각자의 다양한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버들, 너는 너 자신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꾸지 않아도 돼. 입술을 깨물며 목소리를 참지 않아도 돼. 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빛의 파장을 보는 거니까. 박새가 자외선으로 상수리나무에 앉은 나방을 찾듯이, 너는 마음껏 날개를 펴지 못한 다른 이들의 두려움을 알아보지. 네가 보는 빛은 새가 보는 세상처럼 너에게 숨은 나방을 보여줄 거야. 보호색으로 위장했지만 네 눈에는 금세 발각되겠지. 그 나방은 날개 대신 겨드랑이에 수북한 털이 있는데......"

"호랑은 버들의 리듬을 알고 싶었다.

모필자가 말한다.

언제 조증의 파도가 몰아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물살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지, 약이 도움이 되는지, 의사의 상담은 오히려 버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게 아닌지.

호랑은 혼란스러웠다. 모든 굴레와 의심을 벗어버린 버들 대신 자신이 더 무거운 갑옷을 입고 두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들은 발가벗고 싶었다. 마음의 흐름을 가로막는 계산과 망설임을 몽땅 걷어치우고 싶었다. 몸을 압박하는 조임줄과 살갗에 닿는 온갖 섬유들이 참을 수 없이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졌다."

"돈이란 버들에게 단순한 숫자일 뿐이었지. 자물쇠를 여는 비밀번호 같은 거였어. 제대로 알아봐주길 바라며 세상에 나온 사물들.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호명해주고 싶었지. 길가에 핀 꽃들에게 '갑순이, 을순이, 병순이'라고 이름을 붙여주듯 버들은 오래되고 흠집난 물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이 못한 어느 날, 버들은 찬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맸어.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 물었어. "당신이 날 그렇게 대한 이유가 뭔가요?" 버들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어. 17년 동안 땅속에서 기다린 매미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수 있을까? 5년간 유충으로 지낸 장수하늘소에게 참나무를 날아다니는 2주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어? 해저 생물의 울음으로 잠의 밑바닥을 헤엄쳤던 버들은 장수하늘소가 되고, 매미가 되어 세상에 대고 외쳤어. 더는 자신의 소리를 감추지 않았지. "오빠 친구는 나한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왜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지?" 버들의 울음은 온통 의문문이었어. 과거로 되돌아가 캄캄하고 눅진 상처의 종유석을 더듬었지."

"시간의 풍화와 침식작용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의 난반사와 응어리진 충격파가 필자의 윗입술을 떨리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버들의 팬티 검사 기억과 호랑의 욕실 구멍 기억은 두 암컷 엄지의 내면 진피와 관절지 형성에 주요 영향을 미쳤기에 필자는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그것이 호랑이 이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였다. 그것이 호랑이 버들의 옷과 신발을 정리하며 버들의 욕망과 버들의 상처, 버들의 조증을 이해하려는 이유였다."

"나도 그렇다고, 나에게도 당신의 그 상처가 있다고. 그렇게 입을 열어 자신의 생채기를 꺼내 보이면 어떤 이들은 버들 앞에 재판소를 세워 땅땅땅 판사봉을 때렸지. 냉소와 야멸찬 웃음으로 버들의 진심을 내동댕이쳤어. 그렇게 멍들고 찢어져도 버들은 계속 사람들과 연결돼 있고 싶어 했어. "왜 너 자신을 낭비해. 왜 그렇게 너 자신을 꺼내어 진열해놔." 호랑은 버들을 이해하지 못했어. 버들의 마음은 알았지만 머들의 방식을 위험하고 어리석어 보였지. 하지만 기절하듯 쓰러져 잠든 버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몰인정함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끝없이 싸우고 있는 버들을 느낄 수 있었어."

이 책에서 비인간 존재가 서로가 주고받은 상처와 아픔으로 이어져 관계의 쇠사슬을 끌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불균질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에 공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자연의 시간을 재단하고 비교하며 허무와 잔혹의 단어로 자연이라는 생명의 삶을 못 박아 고정하는 인간의 세계를 비판하여 눈길을 끈다.

"묻혀 있지 않았다면, 어둠과 잠에 둘러싸여 고치 안이나 땅 밑에서 깜빡 이 세상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끝없이 끝없이 다른 몸과 다른 느낌을 상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탈바꿈의 신비를 우리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을까. 물러서고 비워두지 않았다면, 다름쥐가 나중에 먹으려고 도토리를 이곳저것 숨겨왔다가 자신이 아껴둔 것조차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검은머리박새가 잣나무 열매를 모아둔 걸 까맣게 잊지 않는다면, 어떻게 또 하나의 갈참나무와 잣나무가 싺을 틔울 수 있을까. 인간이야말로 이 세상이 먹다 흘린 씨앗 부스러기 아닌가. 자연이 그 존재를 잊은 사이, 인간은 저 혼자 진화의 잎사귀를 무럭무럭 뻗어갔다. 그리고 우리 육발이들은 지상의 모든 잎사귀를 갉아 무한대로 퍼져나가는 걸 막듯이 두발이엄지들의 사나운 곁가지를 분질러 다듬어야 하는 데 우주적 책무를 떠맡은 것이다."

이 책에서 비인간인 존재가 레즈비언인 연인 버들과 호랑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서로 다른 삶의 태도로 인해서 갈등하며 고통과 아픔에 대한 이해와 세상으로 확장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장면들을 담아낸 글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버들이 어릴 때 겪은 버스 사건을 말했을 때, 말하며 고통스러워할 때, 이 말은 너한테 처음 하는 거야, 꺼내면 죽을 것 같아서, 입 밖으로 소리 내면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이제껏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어, 그렇게 호랑의 시선을 피하며 친구의 뒤축이 구겨진 운동화 얘길 했을 때, 호랑은 놀랐지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환상, 환각, 망상이란 말들로 버들의 경험을 재단하고 싶지 않았고, 버들이라면 버스에 내려치는 무서운 빛을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챌 수 있다고 생각했지. 세상에는 이따금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니까. 지금 이렇게 번개가 치는 것처럼. 아무도 저 잦은 번개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니까. 우린 그저 빛과 소리에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까. 인간의 이성으로 분석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이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다고 호랑은 생각했어. 그런데 그 누군가가 너라면, 너의 경험이라면, 너의 확신이라면."

"약을 먹고 약을 먹지 않고

너의슬픔을 끄면 너의 그 밝은 눈도 같이 사라지니까.

믿음을 갖고 믿음을 버리고

호랑은 버들이 들었다는 번개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그렇게 외로웠을가. 잠깐 번쩍였다 사라지는 번개에 마음을 줄 만큼? 그 무서운 굉음에 네 마음을 비춰볼 만큼, 그만큼, 너는 혼자였을까.(...)

그래, 이제 나도 괜찮아. 죽음이든 삶이든. 그러니 나에게 무너져 내려."

"호랑은 버들이 주는 애정의 크기가 자신의 것보다 크다고 여기며 자기의 욕심과 의지를 내려놓고 버들의 뜻을 받아들였지. 그런데 아니었어. 버들의 부등호는 호랑을 넘어 다른 곳을 향해 있었어. 버들은 한 사람의 사랑만으로 살 수 없었어.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잃고서는 슬퍼서 살아갈 수 없었어. 그런 세상에선 더 살고 싶지 않았어. 같이 말하고, 함께 웃고, 마음을 나눴던 이들이 사라진 곳에서, 그 폐허에서, 버들은 살아갈 수 없었어. 버들의 사랑은 호랑이라는 한 사람을 넘어 세상으로 흐르고 있었어."

"호랑이 헛웃음을 지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어. 뭐라고 설득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막막했지. 호랑에겐 버들의 마음을 돌릴 근거나 당위가 남아 있지 않았어. 버들이 자신에게 어떤 사랑을 주든, 그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어야 했으니까. 그래야 버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플 테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너는 언제나 세상에 지게 되어 있고, 널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세상에 두들겨 맞고 돌아온 너를 또다시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내가 아는 사랑, 너에게 배운 사랑의 방법이니까."

이 책은 비인간인 존재가 연인인 버들과 호랑이라는 인간이 서로의 연약한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써내려가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지닌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들을 담아내어 따뜻한 위안을 선사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우리보다 크고 우리보다 뇌가 무겁고 우리보다 우주와 심해에 관해 궁금해하며 우리처럼 끈질기고 우리만큼 탈피를 원하는 그 한 사람의 가장 연약한 속까지 파고들었다. 결국 지구란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 그 눈동자니까.

느끼려고 한다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발 밑에서 구석에서 나뭇잎에서 인간들의 따뜻한 살 위에서, 끝도 없이 갉작이는 우리의 리듬을, 먼지처럼 부유하는 작은 몸, 물처럼 스미고 빛처럼 굴절하는 우리의 삶을."

<환희의 책>을 쓴 김멜라는 작가의 말에서 "어느 한 시절에 저와 연인이 세상과 동떨어져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해도, 우리는 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웃거나 아파할 때 우리를 지켜보는 무수한 눈과 섬세한 몸들이 함께였습니다. 저는 그 분명한 사실을 소설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준 환희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를 담은 메시지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너에게만 보이는 마음의 방, 그 꿀의 길, 비록 나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네가 보고 듣는 요정의 느낌을 나는 사랑하니까. 네가 나를 열고 나에게 너를 비벼 날개를 갖게 해줬으니까. 나는 너의 생각과 너의 느낌과 너의 불안과 너의 환희로 흐르면서 나라는 틀 밖으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신이 악이라면. 그 악이 우리이 날개를 만들고 두발이엄지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악에 올라타겠어. 번식하고 살아남아 나와 이어진 다른 생명들에게 내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 나는 수레바퀴를 굴리겠어. 그 바퀴에 내 몸이 짓이겨진대도, 우리가 낳은 인간이 또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대도, 나는 또 다른 버들과 호랑을 만들고 싶어. 설령 그게 악이라 해도 그 악은 끝없이 희망을 품고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니까. 태어난 아이들과 태어날 아이들과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터무니없을 정도로 흥겨운 나의 이 도약과 떨림을 그 애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그러니 버들과 호랑은 비생식 암컷 엄지가 아니야. 나를 낳았으니까. 내 안에서 어리석은 꿈을 일으켰으니까. 나는 다시 나에게서 탈피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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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인류학 강의 - 사피엔스의 숲을 거닐다
박한선 지음 / 해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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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존재한 지도 어느덧 수백만 년. 그러나 여전히 인류는 우리에게 연구 대상이다. 여기에 진화인류학은 이해되지 않는 인간성도 납득할 만한 현상으로 해석하여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았다. 분노, 죄책감, 사이코패스, 사기꾼의 기만 전략처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인간의 감정과 행동도 '생존을 위한 진화의 일부'라는 설명은 삶의 모든 것에 '이유'를 찾아야 안심하는 인간에겐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10년째 서울대학교의 인기 교양 강의로 자리하고 있는 '진화와 인간 사회'는 진화인류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이다. 이 강의를 6년째 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한선 교수는 <진화인류학 강의>를 출간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진화인류학을 더 많은 이들이 알기를 원하는 마음에서다. 의학과 분자생물학, 인류학 등을 전공하고 신경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인간의 몸과 마음을 깊게 연구한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학문인 진화인류학을 통해 입체적으로 이해한 인간을 알려준다. 실제 대학 교양 수업에서 다루는 진화인류학의 기본 개념부터 유인원의 진화 과정, 생존 과정에서 획득된 인간성, 인간과 함께 진화해 온 사회문화까지 방대한 진화인류학의 핵심을 한 권에 압축했다.

이 책은 '1장 진화인류학의 숲에 들어서기 전에, 2장 사피엔스가 걸어온 수백만 년의 시간, 3장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 4장 믿고 속이고 사랑하는 사회'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진화인류학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듯이 우리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매혹적인 학문입니다. 몇백만 년에서 몇십억 년에 이르는 광대한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탐구하죠.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성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오늘날의 진화인류학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그것들의 특성들이 만들어낸 집단의 역사를 과학적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연구한다고 말한다. 진화인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검증과 반성의 과정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몸에 익힌다는 의미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진화인류학에 관한 대중적 편견은 지난 200년 동안 진화인류학이 저지른 실수 때문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오래도록 지속된 인간적 속성, 즉 여러 지역과 문화의 인구 집단을 제멋대로 분류하고, 우열을 나누고, 위계를 만드는 인간 본성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쉽게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무지는 편견을, 편견은 혐오를, 혐오는 증오를 낳습니다.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진화인류학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 즉 나와 다른 사람을 동떨어진 존재로 폄하하고 사람의 우열을 나누고 싶어하는 본성을 깨트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를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타고난 본성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에 입각한 진화인류학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고 인간과 세계에 관한 참신한 시각을 가지게끔 도와줄 것입니다."

저자는 진화라고 하면 공룡의 멸종과 같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변이는 익투스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미묘하고 사소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변이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이러한 변이가 아주 오랫동안 축적되면 새로운 종의 출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선택은 진화의 흐름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축적하여 종의 변화를 가져오는 주요한 동력입니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변이가 거듭되고 축적되다 보면, 기존의 집단과는 번식할 수 없는 새로운 집단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종이 나타나는 것이 '종의 기원'입니다. 자연선택이 진화적 변화를 유발하고 생명의 나무가 새로운 가지를 내어 새로운 열매를 맺는 것이죠."

저자는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조산과 난산을 겪었고, 이러한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오랜 기간에 걸친 양육 동맹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기의 건강한 출산과 양육을 위해 각자 잘하는 일을 나누는 커플이 점점 번성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부는 서로 협력하고, 부모는 아이를 오래도록 돌보며, 두발걷기로 인해 가족이 탄생한 것이다.

"조산으로 인해 양육 분담이 중가하자, 초기 호미닌 집단의 사회적 조직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영아는 부모의 양육에 더 의존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은 남성에게 양육 분담을 강요했죠.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의 양육을 돕는 남성이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기의 생존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조산과 난산의 선택압은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여성과 남성의 양육 분담이 진화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은 환청을 듣고 착시를 경험하는 존재로, 정신 장애인뿐 아니라 보통 사람도 흔히 경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뇌가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모듈들이 결합하여 진화해 온 복잡한 기관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저자는 협력, 공감, 예측을 하지만,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어리석을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뇌는 완벽함을 추구하도록 진화한 게 아니라 다양한 생태적 조건에거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남성이 아내보다도 여러모로 자질이 부족한 여성과 위험천만한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단기적 관계에서 적용하는 짝의 기준이, 장기적 관계에서 적용하는 짝의 기준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장기적 관계를 위한 자질에 미달하는 대상이라도 단기적 관계라면 허용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이야기한다.

"배우자의 외도로 놀란 아내는 외도의 상대를 알고 나서 다시 한번 놀라곤 합니다. 배우자가 엄청나게 매력적인 상대를 만났기 때문에 바람을 피웠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 보면 영 시시한 상대인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인간이 만든 사회, 그리고 사회를 지탱하는 진화적 감정 모듈의 강력한 효과에 대해 말한다. 불안과 공포, 분노, 슬픔과 우울, 질투, 혐오, 죄책감, 사랑과 같은 진화적 감정 모듈에 관한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분노는 사회적 상황에서 다양한 기능들을 수행합니다. 이 감정은 때때로 타인에 대한 경고 혹은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분노가 발생하는 상황은 주로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해를 입었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게 행동하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 분노는 이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타인에게 그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분노는 단기적으로는 갈등이나 대립을 야기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타인의 행동을 조절하고 사회적 규범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슬픔과 우울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복잡한 감정적 경험을 반영합니다. 상실이나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했을 때 느끼는 슬픔은 개인이 현재의 전략이나 상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행동이나 목표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슬픔은 타인에게 지지와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변 사람에게 개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리고,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저자는 공항은 절도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서 경찰이 늘 감시하고 있지만 절도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목욕탕은 처음 보는 사람이 등을 밀어주기도 하고, 사우나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친한 사람처럼 굴기도 하며 범죄와는 먼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이유는, 다들 벌거벗고 있으니 도망갈 수 없고, 등을 밀어주면 매우 높은 확률로 되돌려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항에서 상대는 곧 비행기를 타고 떠날 승객이고, 물건을 훔쳐도 발각되지 않으면 다시 물건을 찾겠다고 돌아올 리 없다. 이렇듯 저자는 협력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재회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고 주고받은 도움의 상대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면, 장기적인 협력 관계가 진화할 수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인지적 능력이 있고, 수명도 길며, 집단을 이루고 사는 종에서 흔히 이러한 지연 시간 상리공생이 일어납니다. 주고받은 도움의 상대적 사치가 서로에게 큰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면 좀 더 강력한 협력이 일어날 수 있고요."

끝으로 책 <진화인류학 강의>가 여러 대학의 학생들, 그리고 일반인 과학 독자들께 진화인류학의 세계를 엿볼 기회를 제공하기 바란다는 저자 박한선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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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의 구원 - 부서진 땅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난 희망에 관하여
빅토리아 베넷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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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의 구원>은 영국의 시인 빅토리아 베넷이 야생 정원을 가꾸면서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고통을 자연의 생명력으로 바꿔나갔던 10년의 회고를 선연하게 그려낸 에세이다. 저자는 언니의 죽음과 아들의 지병 등 자신이 지나온 삶의 조각들을 치유의 힘을 지닌 90개의 들풀과 연결 지으면서 한 권의 압화집처럼 펼쳐낸다. 회복력을 상징하는 데이지, 역경에 맞설 힘을 주는 서양민들레, 외로움을 물리치는 붉은장구채, 희망을 안겨주는 보리지. 아름다운 들풀로 무성한 야생 정원에 서서 시인은 말한다. "때로 우리는 부서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부서진 덕분에 살아갈 수도 있다"고.

"우리가 심는 잡초가 언젠가 야생의 약초원이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대는 이것이 책이 될 줄 몰랐습니다. 망가진 애도의 땅에서, 나는 그저 무엇이 자랄 수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삶의 이상하된 정원에 들어맞지 않는 것, 이를테면 외로움과 상실과 그 모든 분투를 너무나 열심히 뽑아내는 바람에, 우리는 가끔 그것이 품은 아름다움을 못 보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아름답지요.

그러니, 씨앗을 심어요. 당신의 희망이라는 선물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은 것을 찾아보아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자라리라는 것을 믿어요. 비록 그것이 꽃피우는 것을 당신이 볼 수는 없을지라도."

이 책은 '1장 이것은 내가 꿈꾸던 정원이 아니다, 2장 애도와 모성, 그 가혹한 순환 속에서, 3장 삶이 우리를 진흙탕으로 이끌 때, 4장 생명은 내내 굳세게 들이닥친다, 5장 돌무지에서도 쉽게 자라나는 사랑, 6장 어머니 식물은 시앗에 기억을 남긴다, 7장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 8장 들풀의 구원'이라는 8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빅토리아 베넷은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해 문예창작학 석사를 취득했고 30여년간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몇 번의 유산 끝에 어렵사리 아이를 갖게 된 그는 장미 정원 같은 미래를 꿈꿨으나 출산을 석 달 앞둔 어느 날 새벽, 한 통의 전화가 그 정원을 짓밟는다. 강에서 카누를 타던 언니의 익사 사고를 알리는 전화였다. 그날 이후 5년이 지나도록 베넷은 깊은 상실과 돌봄 사이에서 고통받는다. 그의 아들은 겨우 세 살에 제1형 당뇨를 진단받아 간병이 손길이 절실하고, 예술가의 삶은 늘 가난하다. 베넷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캡브리아주 석공장터에 지어진 공공 주택단지로 이사한다. 그리고 어머니와 언니가 가르쳐준 대로, 그 역시 아들과 함께 돌무지 마당에 들풀의 씨앗을 받아 뿌린다. 누군가는 잡초라 부르는 풀들이 부서진 흙과 길러진 바위틈에서 무심하게 자라나더니, 어느새 그곳을 재생과 희망의 약초원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경험한 후 지병이 있는 아들과 함께 야생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글이 인상적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식물인 잡초가 얼마나 악착스럽게 버티는지, 그 씨앗이 길러내는 생명이 얼마나 굳센지 생각해본다는 저자의 글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잡초는 사람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만 잡초다.

"나는 정원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정원사의 모습에는 맞지 않는다. 나는 제때에 심지 않고, 심어야 할 곳에 심지 않는다. 무엇을 심어야 하고 무엇을 심지 말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호기심과 우연에 이끌려서 되는 대로 가꿀 뿐이다. 내게는 여기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사전은 잡초를 '사람이 원치 않는 곳에서 자라는 야생 식물'로 정의한다. 하지만 그 운명은 누가 정할까? 여느 야생화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 흔한 잡초에는 인류가 어떤 때는 일부러 그것들을 재배하고 또 어떤 때는 내쫓으면서 개입한 상호 의존의 역사가 있다. 이 역사는 마법과 치유, 음식과 전설, 식물학자와 표본실과 여자 주술자의 주문을 떠올리게 하는 식물들의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때 사람들은 이 끈질긴 식물들이 우리를 먹이고 치료하고 입히고 채색해주는 것을 귀하게 여겼고, 그래서 그 씨앗을 받아 거뒀다."

저자는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의 감정을 내밀한 언어로 드러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영원히 언니에 대해서 모를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서 죽음이라는 상실의 고통과 그리움이 깊이 전해진다.

"문득 내 갈비뼈를 차는 발길이 이 고통의 안개 속에서도 생명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는 쉬고 먹고 품고 준비하고 강해지고 낳고 놓아줘야 한다. 어떻게 그걸 해낸다지? 말은 넘 작고, 상실은 너무 크다. 시인들과 신비주의자들은 삶이란 다 지나가는 것이고 한 생명이 끝나면 다른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지금 그 비유는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저자는 삶은 그 끝에 도달하는 길을 아주 다양하게 제공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길을 안다고 상상하기를 좋아하지만 대체로 모른다고. 대체로 길을 잃는다. 저자는 우리가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점을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걸어온 길이 보일 뿐이며, 바로 그때 어쩌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끼는 마법 같은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 이끼는 도깨비와 요정, 그 밖에 비밀스러운 것들이 사는 곳에 자란다. 저자는 그곳에 햇빛이 가 닿으면, 이끼는 관능적인 몸을 부풀리고 뻗어서 서서히 모난 돌을 덮어 돌담을 부드럽게 만들고, 그것은 돌과 포자가 함께 아주 느리게 추는 춤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끼는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 회복력이 뛰어나고 강인하며, 시간이 충분하다면 이끼는 화강암을 흙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끼는 4억 5,000만 년 넘게 불, 가뭄, 얼음, 혹서를 견디면서 천천히 세상을 바꿔왔다. 자발적으로 생장을 멈춰서 더 나은 기후가 올 때까지 기다림을 아는 능력 덕분에 이끼는 죽음의 목전에 다다르다가도 첫 비에 되살아난다. 불탄 땅에 맨 먼저 옮겨오는 생명 중 하나로서, 황량하기 그지없는 바위 표면도 생물 다양성이 넘치는 세상으로 바꿔놓는다. 딱딱한 돌에서도, 푹신한 숲 바닥에서도 자라며 모든 곳을 고대 생명체의 메아리로 바꿔놓는다."

저자는 "내 못생긴 슬픔은 분홍색으로 물든 모성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토록 죽음이 탄생에 가까운 일인데도 말이다."라고 말하며 산산이 부서진 세상에서 자신을 현실에 묶어두는 것은 아이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첫 아기를 떠나보낸 유산의 경험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죽음을 노폐물로 취급했던 의사의 언어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모성애와 슬픔 사이를 비틀비틀 오가고, 마음이 날카롭고 낯선 풍경에 찢겨서 너덜너덜해진 이야기를 건넨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애도의 노파는 밤에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때 지켜준다고 말한다. 애도는 죽음이 있는 곳에는 생명 또한 있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모성은 달콤한 젖과 감미로운 꿈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애도는 숲에서 사는 음침한 노파다. 그는 다정함을 불러들이지도, 사랑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는 진흙탕에서 사는 야생의 사나운 존재이고, 결코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나를 할퀸 상처는 분홍색으로 벗겨진 채 영영 아물지 않는다.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한다. 조각난 자신을 꿰맞추고, 모너지려는 중심에 실용적 기능이라는 핀을 박아서 그것을 떠받친다. 빨래를 하고, 이야기를 읽어주고,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보살핀다. 나는 가끔 울지만 무슨 수를 쓰든 살아서 버텨야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닫는다."

저자는 어머니의 다른 모든 행동처럼 정원 가꾸기는 어머니가 별달리 애쓰지 않고도 해내는 일인 양 보였고, 자신의 세상을 뒤덮은 감각을 불러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어머니는 자연을 끊임없이 매만짐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이상에 맞도록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정원을 가꾸는 것은 조용한 반항의 행동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연을 길들이려고 애쓸 때, 어머니는 자연을 격려했다. 어머니는 가방에 작은 휴대용 칼을 갖고 다니다가 눈에 띄는 잡초가 있으면 파내어와서 집 화단에 심었다. 아무 표시도 없는 봉투에 연중 야생화 시앗을 모았다가, 가을에 게릴라처럼 그 내용물을 정원 가장자리에 뿌렸다. 어머니는 자라난 꽃을 보고 깜짝 놀라기를 바랐다. 낡은 화분에 심은 양파를 라벤더 밭 속에 뒀고, 줄기 끝에 보라색 꽃이 피는 병풀들과 흰점나도나불이 길게 늘어지게 놔뒀다."

저자는 아이의 일상은 끊임없는 탐구와 발견의 연속이고, 자신의 역할을 최대한 답해주는 것, 그리고 가끔은 답을 몰라고 괜찮다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사람들은 아이의 당뇨병을 통제해야 하는 정복의 어휘로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고 전한다. 우리는 춤을 배우는 중이고, 당뇨병은 그저 까다로운 파트너일 뿐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아들의 희망은 내 슬픔에 빛이 되어주고 내 용기는 아들의 비틀거리는 발을 지탱해준다. 헛디디고 미끄러지고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춤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이에게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교사가 필요 없다. 아이는 스스로 그것을 찾아가고 있다.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아이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 땅속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자기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언어란 무엇인지, 믿음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저자는 '만약', '이랬다면', 이것은 우리의 후회를 양쪽에서 떠받치는 북엔드지만 우리는 늘 어떤 선택이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어쩌면 사실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이란 없고, 그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 작고 덧없는 순간만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선택은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만, 누구도 처음에는 그 방식을 알 수 없다.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올 때, 그제야 우리는 탓할 대상을 찾고 울부짖는다.

"언니가 죽고 나서 몇 달 동안 어머니는 '만약 그날 이해싿면 딸이 살았을 텐데' 하는 갖가지 길을 떠올리곤 했다. 만약 언니가 그냥 집에 있기로 선택했다면. 만약 언니가 급류를 만났을 때 카누를 계속 타지 않고 걸어서 지나가기로 선택했다면. 만약 언니가 다른 강을, 다른 동행을, 다른 날을 선택했다면. 선택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만약 언니가 야외 활동 교육가가 되지 않고 계속 정원사로 일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아예 언니가 컴브리아로 이사 오지 않았다면? 만약 언니가 하나뿐인 소중한 인생에서 위험을 덜 감수하면서 살았다면?"

저자는 아이의 병이 곧 아이는 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아들은 흙탕물에 젖어도 활개치면서 세상을 탐구하는 소년이라고 이야기한다. 병에 따라오는 위험이 몹시 두렵더라도, 옆으로 비켜서서 아이가 빗속에서 놀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아이에게 내가 필요할 때에 대비하여 여기 서 있을 것이다. 비록 주머니의 내용물은 변하여 예전에는 물티슈와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다녔다면 지금은 혈당 측정기와 인슐린과 고당도 간식을 가지고 다니지만, 나는 아이가 삶을 살도록, 진흙투성이 손을 만끽하도록 나둬야 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럴 수 있도록, 길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슬픔이 이 땅을 차지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서서히 땅이 변하고, 눈에 보이지 않은 땅속에서 결과물이 뿌리에 양분을 준다. 저자는 잎과 줄기가 펼쳐지고, 금세 모든 생명에 생명을 낳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생명은 내내 굳세게 들이닥쳐서, 한때 돌밭이었던 곳을 무성하게 뒤덮는다고 말한다.

"슬픔은 우리와 함께 산다. 그래도 나는 것이 우리의 나날을 몽땅 차지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우리의 좁고 고불고불한 오솔길을 걸으면서 발밑에서 피어나는 사이프러스 향을 맡는다. 아들은 제 나무와 관목을 포옹하며 생명체 하나하나에게 무럭무럭 자라라고 격려한다. 길어지는 빛 속에서 우리 정원이 자란다. 우리는 비와 해를 선물처럼 반기고 그것들이 하는 일을 목격한다."

저자는 아들이 제 몸을 에워싼 하늘을 느끼기 바라고, 제 심장이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알기를, 제 비행을 자신만만해하면서 공중을 날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들에게 차츰 형체를 갖춰가는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려면 저자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글에 공감한다.

"애도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순간뿐이고, 그 속에서 나는 살아야 한다. 다만 그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순간이 되도록 노력할 뿐이다. 내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아들이다. 내가 이러저러해서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며 물가에서 아이를 물러서게 할 때, 아이가 한 발짝 더 뛰려는 것을 막을 때, 아니는 내게 미소 짓는다.

"알라, 엄마. 하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아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내 손을 놓는다."

"내가 갖게 된 나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내 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어디가 부러졌고 어디가 휘어지는지 알아봐야 한다. 엄마가 되는 법과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양쪽으로부터 잡아당겨지는 기분이 들 테고, 그 틈새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양쪽 모두에 실패했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는 아이가 상냥함이라는 재능으로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한 생명을 기르려면 다른 생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원에는 많은 사람의 선물이 심겨 있다. 이것은 아들과 나 단 둘이서 해내는 일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단절됐기에, 우리는 삶의 갈라진 틈에서도 민들레처럼 쉽게 자라나는 사랑을 미쳐 못 알아보곤 한다."

저자는 죽음을 향해가는 어머니와 자신을 묶어주는 끈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가 가진 것은 삶과 죽음이고, 그 사이에서 대부분 놓치고 마는 수많은 평범한 기적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울면서도 우리가 가진 순간을 고맙게 여겨야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루가 깊어간다. 우리는 웃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엉망진창 음정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열일곱 살에 파리에 가면 쓰려고 산 챙 넓은 모자를 자전거 앞에 매어두고서 훗날 결혼할 남자와 함께 전후 유럽을 자전거로 누볐던 여자에게. 야생의 스코틀랜드 해안을 그림으로 그렸던 여자에게. 30년간 매일 우리에게 도시락을 싸줬던 여자에게. 자주 울었고 가끔 죽으려고 했지만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자신이 날 수 있는지 보려고 두 팔을 퍼덕였던 여자에게. 나는 어머니에게 그 여자가 보인다고 말해주고 싶다. 세월이 극구 길들이려 했던 아름다운 야생의 여자가 보인다고. 그 여자가 되어낸 어머니가 보인다고."

"이윽고 다가온 죽음은 조용하다. 죽음은 시계가 조용히 자정을 넘기듯이 은근슬쩍 다가온다. 이별의 약속도, 사랑의 다짐도 없다. 가냘픈 호흡 세 번, 그 끝에 어머니의 입에 맺힌 가벼운 갈색 거품, 뒤이어 마치 한숨 같은 날숨. 그리고 어머니는 떠난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빛나는 별을 본다. 밤이 되니 바람이 차다. 어머니가 마침내 가벼워져서 떠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벽을 기어오른 덩굴에서 마지막으로 핀 장미 꽃봉오리는 꺽어와 그것을 어머니 옆 작은 화병에 담는다.

"안녕, 내 아름다운 엄마." 나는 속삭인다. 반은 어른으로서, 반은 아이로서."

저자는 과거로부터 자신의 펜이 조급하게 또각거리며, 말이 영영 사라져버리기 전에 우리 삶의 해설지에 뭐라도 적어넣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본다고, 기억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인생에 담긴 그 수많은 작은 사랑의 행위들은 어머니가 매일같이 자기 힘으로 만들어낸 선물이었으며, 어머니는 그 하나하나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 꿈의 씨앗을 뿌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 얼마나 멋진 정원을 우리에게 만들어줬는지."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아들과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상실에 바쳤고, 그 시간은 우리가 영원히 되찾을 수 없지만 그와 동시에 저자는 너무 큰 사랑을 발견했으며, 그 사랑은 스스로 빛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어둠에서 나온 아이를 보고, 자신에게 아이는 여전히 보고 있기만 해도 기적적인 존재라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야생의 어머니가 곁에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은 한 단위의 기쁨과 한 단위의 슬픔으로 이뤄진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행복의 봉우리란 없고, 성취해야 할 완벽한 삶도 없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지럽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삶뿐이며, 나는 이 삶에 감사한다."

저자는 언니가 죽음 뒤로 열다섯 번의 봄이 흘렀고, 눈가에 거미줄이 모였고, 머리카락에는 은색 실이 쉬었지만 삶과 죽음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슬픈 세상, 내가 뒤에 남기는 것은 이 세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어둠에 지지 않고 희망을 지켜내는 씨앗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때 돌과 쓰레기와 모든 망가진 것으로부터 정원을 길러냈으며, 게다가 그 정원이 번성했다는 기억이다."라고 이야기라는 저자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나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기 위해서 이 땅을 팠지만, 땅을 갈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야생으로 돌아가는 길, 세상의 경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집으로 삼은 좁은 땅은 이후 10년간 계속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우리는 매년 새 생명을 발견한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흙 위에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정원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기억한다. 달리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을 때는 앞으로 자라날 작은 것들에게 돌아가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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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는 어떻게 인생의 답을 찾는가 -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삶의 기술
카우식 바수 지음, 최은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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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고 장애물과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여정에서 우리 모두가 소유하고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도구가 하나 있다. 바로 추론하는 능력이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카우식 바수는 '호모 사피엔스'의 대표적인 특징인 추론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하고,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또한 추론 능력이 현실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를 제어하는 방법을 알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면 전문가의 심리 상담이나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지침보다 훨씬 더 명쾌하고 강력한 인생 해법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는 어떻게 인생의 답을 찾는가>의 저자 카우식 바수는 43년간 연구해온 경제학과 게임이론을 어떻게 실제 삶의 현장에서 인생 전략으로 삼을 수 있을지 안내한다. 어려운 수식이나 통계 대신 저자의 실제 경험과 누구든 실생활에서 겪을 법한 예시가 담긴 이 책은 경제할뿐 아니라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합리주의 철학의 사고법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한 바를 이루는 구체적인 과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를 비롯한 일상의 고민에 대한 해법은 물론 개인적인 행복, 나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사고하고 이를 실행하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터득하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1장 인생의 난제, 어떻게 풀 것인가, 2장 인생의 해법을 찾는 게임이론, 3장 불안을 이기는 균형이론, 4장 더 나은 선택을 도와주는 사고법, 5장 선한 선택에 대한 역설, 6장 집단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7장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이라는 7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학의 근본적인 과제는 일상에서 수집된 다양한 사실과 정보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 문제의 해결점을 제시하고, 이를 논리적인 모델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저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우리 일상의 문제, 나아가 더 거대한 인생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추론'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인생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적어도 그레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추론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저자는 삶의 행로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과거에 좋았던 일을 떠올리고 미래도 과거만큼 좋을 거이라고 '가정하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닭이 저녁 식탁에 오르는 상황을 피하고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십중팔구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초조해한다면 스스로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할 뿐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더 좋은 선택을 통해 돈이나 권력, 명성 등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최대한 얻게 해주는 '실행 가능한' 행동이나 전략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일은 당연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로 불안해하며 고민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다. 닭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면 남자에게 화를 내며 달려들어봤자 먹이가 줄어들거나 발길질만 당했을 것이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추론을 잘하기 위해 수학자나 게임이론가, 분석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추론 능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대표적인 특징이기에 사실상 우리 모두 활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 성가신 친구, 못된 상사를 상대하거나 긴박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는 평소보다 추론 능력이 떨어져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이처럼 저자는 현실에서 추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당 부분 감정적 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게임이론에만 있는 독특한 요소는 바로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합리성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이유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행동과 전략을 고려하며 자신이 얻으려고 하는 것(보수)을 극대화하는 행동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어떤 선택을 하지 전에 자신의 보수 함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살면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작정 상담을 받거나 자기계발서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보수 함수가 무엇인지 놓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깅을 하다가 문든 내 인생의 목적인 무엇인지 자문했다. 게임이론의 관점으로 바꿔 말하면 "내 보수 함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내 수명이 최대한 늘어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조깅하는 시간 대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게 후자라면 조깅을 10분 할 때마다 기대 수명이 8분 늘어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시간은 2분 잃는 것이다. 나는 다시 생각해야 했다. 그때 이후로 조깅을 더 이상 규칙적으로 하지 않았다. 비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보수 함수가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생의 게임이론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른 사람이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하든 거기에 분노하거나 원망을 품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화를 품으면 그로 인한 해는 달느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 책에서 인생 게임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선택뿐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나쁜' 인간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는 보수 함수를 가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는 호랑이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화'를 내지는 않는다. 호랑이한테 공격을 받아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상태에서 대처하려고 하면 상황만 더 나빠진다. 우리는 호랑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호랑이는 원래 그런 존재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호랑이를 다루는 최상의 전략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저자는 새로운 목표를 채택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인간의 성향은 대기업이나 강력한 조직, 나아가 정치 지도자 같은 개인에게 굉장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새로운 게임과 목표를 만드는 정치인을 흔히 볼 수 있다. 불운한 사람들이 그렇게 새롭게 창조된 목표를 이루이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최종 승자는 정치인이다. 이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저자는 승자가 된 정치인이 극대화하려는 보수 함수가 무엇인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시민의 복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면 전략적으로 목표를 창조하는 것은 실제로 유용할 수 있지만, 자기 주머니만 채우려고 한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저자는 지금 당장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선을 이루겠다는 '도덕적 의지'를 계속 품으며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적 의지가 있어야 눈앞에 있는 게임 너머를 생각하고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전환점을 맞이한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지금이 바로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로드맵을 세우기 위한 선언문, 의제, 협약, 헌법이 필요한 때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격동하고 있다. 위험 수준에 이른 양극화가 권위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위험을 공룡 멸종과 같은 자연재해로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인류 멸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집단적이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상생활을 한다고 해서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사악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하수인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악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저자는 인간에게는 성찰하고 분석하고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안에는 추론을 통해 바른 선택을 하고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비단 눈앞에 닥친 고비를 넘기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지역과 세대에 관계 없이 함께 번영하는 공정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경제학자는 어떻게 인생의 답을 찾는가>에서 우리가 친절, 사랑, 도덕성이라는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전략을 설계하기 위해 지적인 능력을 결합시킨다면 이룰 수 있는 변화가 많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의 이익이 한층 더 성숙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카우식 바수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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