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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멜라의 신작 소설 <환희의 책>은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두 번째 소설선이다. 2023년 10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가 연구원이자 저술가가 되어 연인인 '버들'과 '호랑'의 사계절을 곤충의 시점으로 관찰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대상인 연인이 치열하게 사랑하고, 때론 과거의 상처에 아파하며,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삶과 인간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나는 우리의 저술가들에게 말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사소함, 그것이 우리가 부여받은 필력이다. 가라, 독토기답게 튀어 올라 유한한 두발이의 삶을 무한한 갉작임으로 기록하라. 모기답게 깊숙이 침을 찔러 익은 복숭아 같은 인간의 외피에서 비탄의 적혈구를 뽑아내라. 거미답게 단백질 실을 엮어 우리를 눌러 죽이는 그들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방사형 텍스트를 수놓아라!"
이 책은 편견으로 가득찬 인간의 세계를 비판하며, 자연 안에서 늘 변화하는 비인간 존재들의 생명력과 다채로운 감정의 아름다움에 관한 시선을 담아내어 흥미롭다.
"누 선생의 말씀대로 지구의 모든 구성원에겐 실상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이란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우리의 탈바꿈을 가둬놓는 두발이엄지의 형식이다. 우리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고 늘 다른 것으로 흐른다. 물방개와 물땅땅이는 두꺼비에게도 흘러 구름이 되고, 황풍댕이와 산누에나방은 동고비에게도 흘러 빗방울이 된다. 꽃과 나무는 나비로 날개를 갖고, 땅과 바위는 벼룩의 도움으로 점프한다. 느낄 수 있겠는가? 위가 들리고 밑이 빠지는 쾌감을, 삼키는 뜨거움과 씹히는 상쾌함을, 구름으로 응결되고 빗방울로 추락하는 기쁨을. 두발이엄지도 우리처럼 믿고 느끼는가?"
이 책은 레즈비언이자 연인인 호랑과 버들이라는 인간의 사랑과 고통을 책으로 저술하고자 하는 비인간 존재의 섬세한 탐구를 담아내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성폭력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레즈비언이라는 편견으로 억압된 감정들이 응축된 상처들로 뒤덮인 삶 속에서 우울증과 양극성장애 등의 정신 병력을 지닌 버들과, 버들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을 경험했고 버들의 곁을 지키며 버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호랑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간들이 외면하는 차별, 그리고 고통에 공감을 받지 못하는 심리적 통증에 대한 따뜻한 대처 방법을 이야기하는 비인간 존재의 글을 통해서 남과 다른 타인의 편에서 이해의 폭을 확장해야 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는 각자의 다양한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버들, 너는 너 자신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꾸지 않아도 돼. 입술을 깨물며 목소리를 참지 않아도 돼. 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빛의 파장을 보는 거니까. 박새가 자외선으로 상수리나무에 앉은 나방을 찾듯이, 너는 마음껏 날개를 펴지 못한 다른 이들의 두려움을 알아보지. 네가 보는 빛은 새가 보는 세상처럼 너에게 숨은 나방을 보여줄 거야. 보호색으로 위장했지만 네 눈에는 금세 발각되겠지. 그 나방은 날개 대신 겨드랑이에 수북한 털이 있는데......"
"호랑은 버들의 리듬을 알고 싶었다.
모필자가 말한다.
언제 조증의 파도가 몰아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물살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지, 약이 도움이 되는지, 의사의 상담은 오히려 버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게 아닌지.
호랑은 혼란스러웠다. 모든 굴레와 의심을 벗어버린 버들 대신 자신이 더 무거운 갑옷을 입고 두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들은 발가벗고 싶었다. 마음의 흐름을 가로막는 계산과 망설임을 몽땅 걷어치우고 싶었다. 몸을 압박하는 조임줄과 살갗에 닿는 온갖 섬유들이 참을 수 없이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졌다."
"돈이란 버들에게 단순한 숫자일 뿐이었지. 자물쇠를 여는 비밀번호 같은 거였어. 제대로 알아봐주길 바라며 세상에 나온 사물들.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호명해주고 싶었지. 길가에 핀 꽃들에게 '갑순이, 을순이, 병순이'라고 이름을 붙여주듯 버들은 오래되고 흠집난 물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이 못한 어느 날, 버들은 찬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맸어.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 물었어. "당신이 날 그렇게 대한 이유가 뭔가요?" 버들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어. 17년 동안 땅속에서 기다린 매미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수 있을까? 5년간 유충으로 지낸 장수하늘소에게 참나무를 날아다니는 2주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어? 해저 생물의 울음으로 잠의 밑바닥을 헤엄쳤던 버들은 장수하늘소가 되고, 매미가 되어 세상에 대고 외쳤어. 더는 자신의 소리를 감추지 않았지. "오빠 친구는 나한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왜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지?" 버들의 울음은 온통 의문문이었어. 과거로 되돌아가 캄캄하고 눅진 상처의 종유석을 더듬었지."
"시간의 풍화와 침식작용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의 난반사와 응어리진 충격파가 필자의 윗입술을 떨리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버들의 팬티 검사 기억과 호랑의 욕실 구멍 기억은 두 암컷 엄지의 내면 진피와 관절지 형성에 주요 영향을 미쳤기에 필자는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그것이 호랑이 이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였다. 그것이 호랑이 버들의 옷과 신발을 정리하며 버들의 욕망과 버들의 상처, 버들의 조증을 이해하려는 이유였다."
"나도 그렇다고, 나에게도 당신의 그 상처가 있다고. 그렇게 입을 열어 자신의 생채기를 꺼내 보이면 어떤 이들은 버들 앞에 재판소를 세워 땅땅땅 판사봉을 때렸지. 냉소와 야멸찬 웃음으로 버들의 진심을 내동댕이쳤어. 그렇게 멍들고 찢어져도 버들은 계속 사람들과 연결돼 있고 싶어 했어. "왜 너 자신을 낭비해. 왜 그렇게 너 자신을 꺼내어 진열해놔." 호랑은 버들을 이해하지 못했어. 버들의 마음은 알았지만 머들의 방식을 위험하고 어리석어 보였지. 하지만 기절하듯 쓰러져 잠든 버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몰인정함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끝없이 싸우고 있는 버들을 느낄 수 있었어."
이 책에서 비인간 존재가 서로가 주고받은 상처와 아픔으로 이어져 관계의 쇠사슬을 끌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불균질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에 공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자연의 시간을 재단하고 비교하며 허무와 잔혹의 단어로 자연이라는 생명의 삶을 못 박아 고정하는 인간의 세계를 비판하여 눈길을 끈다.
"묻혀 있지 않았다면, 어둠과 잠에 둘러싸여 고치 안이나 땅 밑에서 깜빡 이 세상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끝없이 끝없이 다른 몸과 다른 느낌을 상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탈바꿈의 신비를 우리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을까. 물러서고 비워두지 않았다면, 다름쥐가 나중에 먹으려고 도토리를 이곳저것 숨겨왔다가 자신이 아껴둔 것조차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검은머리박새가 잣나무 열매를 모아둔 걸 까맣게 잊지 않는다면, 어떻게 또 하나의 갈참나무와 잣나무가 싺을 틔울 수 있을까. 인간이야말로 이 세상이 먹다 흘린 씨앗 부스러기 아닌가. 자연이 그 존재를 잊은 사이, 인간은 저 혼자 진화의 잎사귀를 무럭무럭 뻗어갔다. 그리고 우리 육발이들은 지상의 모든 잎사귀를 갉아 무한대로 퍼져나가는 걸 막듯이 두발이엄지들의 사나운 곁가지를 분질러 다듬어야 하는 데 우주적 책무를 떠맡은 것이다."
이 책에서 비인간인 존재가 레즈비언인 연인 버들과 호랑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서로 다른 삶의 태도로 인해서 갈등하며 고통과 아픔에 대한 이해와 세상으로 확장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장면들을 담아낸 글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버들이 어릴 때 겪은 버스 사건을 말했을 때, 말하며 고통스러워할 때, 이 말은 너한테 처음 하는 거야, 꺼내면 죽을 것 같아서, 입 밖으로 소리 내면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이제껏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어, 그렇게 호랑의 시선을 피하며 친구의 뒤축이 구겨진 운동화 얘길 했을 때, 호랑은 놀랐지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환상, 환각, 망상이란 말들로 버들의 경험을 재단하고 싶지 않았고, 버들이라면 버스에 내려치는 무서운 빛을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챌 수 있다고 생각했지. 세상에는 이따금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니까. 지금 이렇게 번개가 치는 것처럼. 아무도 저 잦은 번개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니까. 우린 그저 빛과 소리에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까. 인간의 이성으로 분석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이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다고 호랑은 생각했어. 그런데 그 누군가가 너라면, 너의 경험이라면, 너의 확신이라면."
"약을 먹고 약을 먹지 않고
너의슬픔을 끄면 너의 그 밝은 눈도 같이 사라지니까.
믿음을 갖고 믿음을 버리고
호랑은 버들이 들었다는 번개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그렇게 외로웠을가. 잠깐 번쩍였다 사라지는 번개에 마음을 줄 만큼? 그 무서운 굉음에 네 마음을 비춰볼 만큼, 그만큼, 너는 혼자였을까.(...)
그래, 이제 나도 괜찮아. 죽음이든 삶이든. 그러니 나에게 무너져 내려."
"호랑은 버들이 주는 애정의 크기가 자신의 것보다 크다고 여기며 자기의 욕심과 의지를 내려놓고 버들의 뜻을 받아들였지. 그런데 아니었어. 버들의 부등호는 호랑을 넘어 다른 곳을 향해 있었어. 버들은 한 사람의 사랑만으로 살 수 없었어.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잃고서는 슬퍼서 살아갈 수 없었어. 그런 세상에선 더 살고 싶지 않았어. 같이 말하고, 함께 웃고, 마음을 나눴던 이들이 사라진 곳에서, 그 폐허에서, 버들은 살아갈 수 없었어. 버들의 사랑은 호랑이라는 한 사람을 넘어 세상으로 흐르고 있었어."
"호랑이 헛웃음을 지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어. 뭐라고 설득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막막했지. 호랑에겐 버들의 마음을 돌릴 근거나 당위가 남아 있지 않았어. 버들이 자신에게 어떤 사랑을 주든, 그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어야 했으니까. 그래야 버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플 테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너는 언제나 세상에 지게 되어 있고, 널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세상에 두들겨 맞고 돌아온 너를 또다시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내가 아는 사랑, 너에게 배운 사랑의 방법이니까."
이 책은 비인간인 존재가 연인인 버들과 호랑이라는 인간이 서로의 연약한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써내려가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지닌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들을 담아내어 따뜻한 위안을 선사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우리보다 크고 우리보다 뇌가 무겁고 우리보다 우주와 심해에 관해 궁금해하며 우리처럼 끈질기고 우리만큼 탈피를 원하는 그 한 사람의 가장 연약한 속까지 파고들었다. 결국 지구란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 그 눈동자니까.
느끼려고 한다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발 밑에서 구석에서 나뭇잎에서 인간들의 따뜻한 살 위에서, 끝도 없이 갉작이는 우리의 리듬을, 먼지처럼 부유하는 작은 몸, 물처럼 스미고 빛처럼 굴절하는 우리의 삶을."
<환희의 책>을 쓴 김멜라는 작가의 말에서 "어느 한 시절에 저와 연인이 세상과 동떨어져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해도, 우리는 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웃거나 아파할 때 우리를 지켜보는 무수한 눈과 섬세한 몸들이 함께였습니다. 저는 그 분명한 사실을 소설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준 환희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를 담은 메시지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너에게만 보이는 마음의 방, 그 꿀의 길, 비록 나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네가 보고 듣는 요정의 느낌을 나는 사랑하니까. 네가 나를 열고 나에게 너를 비벼 날개를 갖게 해줬으니까. 나는 너의 생각과 너의 느낌과 너의 불안과 너의 환희로 흐르면서 나라는 틀 밖으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신이 악이라면. 그 악이 우리이 날개를 만들고 두발이엄지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악에 올라타겠어. 번식하고 살아남아 나와 이어진 다른 생명들에게 내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 나는 수레바퀴를 굴리겠어. 그 바퀴에 내 몸이 짓이겨진대도, 우리가 낳은 인간이 또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대도, 나는 또 다른 버들과 호랑을 만들고 싶어. 설령 그게 악이라 해도 그 악은 끝없이 희망을 품고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니까. 태어난 아이들과 태어날 아이들과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터무니없을 정도로 흥겨운 나의 이 도약과 떨림을 그 애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그러니 버들과 호랑은 비생식 암컷 엄지가 아니야. 나를 낳았으니까. 내 안에서 어리석은 꿈을 일으켰으니까. 나는 다시 나에게서 탈피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