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인류학 강의 - 사피엔스의 숲을 거닐다
박한선 지음 / 해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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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존재한 지도 어느덧 수백만 년. 그러나 여전히 인류는 우리에게 연구 대상이다. 여기에 진화인류학은 이해되지 않는 인간성도 납득할 만한 현상으로 해석하여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았다. 분노, 죄책감, 사이코패스, 사기꾼의 기만 전략처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인간의 감정과 행동도 '생존을 위한 진화의 일부'라는 설명은 삶의 모든 것에 '이유'를 찾아야 안심하는 인간에겐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10년째 서울대학교의 인기 교양 강의로 자리하고 있는 '진화와 인간 사회'는 진화인류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이다. 이 강의를 6년째 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한선 교수는 <진화인류학 강의>를 출간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진화인류학을 더 많은 이들이 알기를 원하는 마음에서다. 의학과 분자생물학, 인류학 등을 전공하고 신경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인간의 몸과 마음을 깊게 연구한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학문인 진화인류학을 통해 입체적으로 이해한 인간을 알려준다. 실제 대학 교양 수업에서 다루는 진화인류학의 기본 개념부터 유인원의 진화 과정, 생존 과정에서 획득된 인간성, 인간과 함께 진화해 온 사회문화까지 방대한 진화인류학의 핵심을 한 권에 압축했다.

이 책은 '1장 진화인류학의 숲에 들어서기 전에, 2장 사피엔스가 걸어온 수백만 년의 시간, 3장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 4장 믿고 속이고 사랑하는 사회'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진화인류학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듯이 우리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매혹적인 학문입니다. 몇백만 년에서 몇십억 년에 이르는 광대한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탐구하죠.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성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오늘날의 진화인류학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그것들의 특성들이 만들어낸 집단의 역사를 과학적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연구한다고 말한다. 진화인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검증과 반성의 과정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몸에 익힌다는 의미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진화인류학에 관한 대중적 편견은 지난 200년 동안 진화인류학이 저지른 실수 때문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오래도록 지속된 인간적 속성, 즉 여러 지역과 문화의 인구 집단을 제멋대로 분류하고, 우열을 나누고, 위계를 만드는 인간 본성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쉽게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무지는 편견을, 편견은 혐오를, 혐오는 증오를 낳습니다.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진화인류학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 즉 나와 다른 사람을 동떨어진 존재로 폄하하고 사람의 우열을 나누고 싶어하는 본성을 깨트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를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타고난 본성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에 입각한 진화인류학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고 인간과 세계에 관한 참신한 시각을 가지게끔 도와줄 것입니다."

저자는 진화라고 하면 공룡의 멸종과 같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변이는 익투스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미묘하고 사소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변이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이러한 변이가 아주 오랫동안 축적되면 새로운 종의 출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선택은 진화의 흐름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축적하여 종의 변화를 가져오는 주요한 동력입니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변이가 거듭되고 축적되다 보면, 기존의 집단과는 번식할 수 없는 새로운 집단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종이 나타나는 것이 '종의 기원'입니다. 자연선택이 진화적 변화를 유발하고 생명의 나무가 새로운 가지를 내어 새로운 열매를 맺는 것이죠."

저자는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조산과 난산을 겪었고, 이러한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오랜 기간에 걸친 양육 동맹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기의 건강한 출산과 양육을 위해 각자 잘하는 일을 나누는 커플이 점점 번성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부는 서로 협력하고, 부모는 아이를 오래도록 돌보며, 두발걷기로 인해 가족이 탄생한 것이다.

"조산으로 인해 양육 분담이 중가하자, 초기 호미닌 집단의 사회적 조직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영아는 부모의 양육에 더 의존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은 남성에게 양육 분담을 강요했죠.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의 양육을 돕는 남성이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기의 생존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조산과 난산의 선택압은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여성과 남성의 양육 분담이 진화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은 환청을 듣고 착시를 경험하는 존재로, 정신 장애인뿐 아니라 보통 사람도 흔히 경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뇌가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모듈들이 결합하여 진화해 온 복잡한 기관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저자는 협력, 공감, 예측을 하지만,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어리석을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뇌는 완벽함을 추구하도록 진화한 게 아니라 다양한 생태적 조건에거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남성이 아내보다도 여러모로 자질이 부족한 여성과 위험천만한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단기적 관계에서 적용하는 짝의 기준이, 장기적 관계에서 적용하는 짝의 기준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장기적 관계를 위한 자질에 미달하는 대상이라도 단기적 관계라면 허용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이야기한다.

"배우자의 외도로 놀란 아내는 외도의 상대를 알고 나서 다시 한번 놀라곤 합니다. 배우자가 엄청나게 매력적인 상대를 만났기 때문에 바람을 피웠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 보면 영 시시한 상대인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인간이 만든 사회, 그리고 사회를 지탱하는 진화적 감정 모듈의 강력한 효과에 대해 말한다. 불안과 공포, 분노, 슬픔과 우울, 질투, 혐오, 죄책감, 사랑과 같은 진화적 감정 모듈에 관한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분노는 사회적 상황에서 다양한 기능들을 수행합니다. 이 감정은 때때로 타인에 대한 경고 혹은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분노가 발생하는 상황은 주로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해를 입었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게 행동하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 분노는 이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타인에게 그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분노는 단기적으로는 갈등이나 대립을 야기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타인의 행동을 조절하고 사회적 규범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슬픔과 우울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복잡한 감정적 경험을 반영합니다. 상실이나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했을 때 느끼는 슬픔은 개인이 현재의 전략이나 상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행동이나 목표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슬픔은 타인에게 지지와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변 사람에게 개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리고,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저자는 공항은 절도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서 경찰이 늘 감시하고 있지만 절도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목욕탕은 처음 보는 사람이 등을 밀어주기도 하고, 사우나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친한 사람처럼 굴기도 하며 범죄와는 먼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이유는, 다들 벌거벗고 있으니 도망갈 수 없고, 등을 밀어주면 매우 높은 확률로 되돌려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항에서 상대는 곧 비행기를 타고 떠날 승객이고, 물건을 훔쳐도 발각되지 않으면 다시 물건을 찾겠다고 돌아올 리 없다. 이렇듯 저자는 협력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재회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고 주고받은 도움의 상대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면, 장기적인 협력 관계가 진화할 수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인지적 능력이 있고, 수명도 길며, 집단을 이루고 사는 종에서 흔히 이러한 지연 시간 상리공생이 일어납니다. 주고받은 도움의 상대적 사치가 서로에게 큰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면 좀 더 강력한 협력이 일어날 수 있고요."

끝으로 책 <진화인류학 강의>가 여러 대학의 학생들, 그리고 일반인 과학 독자들께 진화인류학의 세계를 엿볼 기회를 제공하기 바란다는 저자 박한선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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