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의 방법과 기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30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고 그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터넷과 워드프로세서의 발달로 과거보다 글쓰기의 기회가 많아졌고 한결 수월해진것도 있지만 인간은 뭔가 읽고 쓰고 남기고 추억하는 욕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쳤던 강사이자 작가였던 윌리엄 진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글쓰기는 힘 안들이고 쉽게 써내려간 글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피나는 연습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글은 편안함과 평범한 속에 누구나 느끼는 진실을 담고 있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쓰기 행위는 자기 성찰이며 반성이고 또한 용서이자 이해의 과정인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상처받고 긴장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일부를 종이 위에 펼쳐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이끌리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대로 쓰지 못한다. 집필이라는 것을 한답시고 앉아 있지만, 종이 위에 나타나는 자신은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보다 훨씬 뻣뻣하게만 보인다. 문제는 그런 긴장 뒤에 있는 진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 中-


 

그 다음으로 윌리엄 진서가 말하는 좋은 글의 조건은 다름 아닌 '간결함'이다. 문장 속에서 뺄 수 있는 표현은 뺄 수 있는데까지 전부 빼야 한다. 사실, 글쓰기 과정에서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빼거나 생략하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 즉 글쓰기의 결과에 얽매이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글다운 글은 입력키보다는 삭제키를 잘 사용함으로써 탄생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사람들은 대체로 글을 난삽하게 쓰는 병이 있다. 살다보면 불필요한 단어, 반복적인 문장, 과시적인 장식, 무의미한 전문용어 때문에 숨이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글이 난삽하다는 것은 뜻이 같은 짧은 단어를 제쳐두고 까다로운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 장황한 완곡어법을 써도 문장이 난삽해진다. (...)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공식적인 표현도 난삽하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 쓰는 긴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라 덧붙일 수 있다.", "~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따위가 그렇다. 덧불일 수 있다면 그냥 덧불이자. 어떤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면 그냥 지적하자. 무언가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면 그냥 흥미롭게 하자.

                                                                       -버릴 수 있는 만큼 버리자 中-


윌리엄 진서가 지적한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즐겨 쓰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금껏 나는 난삽한 글들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서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자기 만족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 진서가 구체적인 예시문장을 들어 설명한 부분은 비록 원문이 영어 문장이긴 하지만 한국어 문장을 '난삽'하게 만드는 표현들로 채워져 있어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밖에도 <글쓰기 생각쓰기>에는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설명문, 비즈니스문장, 비평문, 콩트 등등 다양한 장르에 적합한 글쓰기 방법들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다만, 윌리엄 진서의 모국어가 영어인 관계로 한국어 번역본을 통해 글쓰기 방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전달되기를 바란다는 건 독자의 과욕인 것 같다. 문법이 중요하지만 기본 회화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이해하기 쉽듯이, 글쓰기의 이론 또한 분명 중요하지만 충분한 실전 연습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렵고 지겨운 '공부'일 뿐이다. 일단, 쓰고 보자. 그것도 많이......


글쓰기 이론에서 멈짓한 책장은 어렵게 4부로 넘어갔고,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의 자세'에 귀기울이던 나는 3부에서 읽기를 멈추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제목들을 눈여겨 보자.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글쓰기 자세란 무엇인지 가르쳐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른 작가를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모방은 예술이나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창조적 과정의 일부이다. 바흐도 피카소도 애초부터 완전히 바흐나 피카소인 채로 솟아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본보기가 있어야 했다. 글쓰기에서는 특히 그렇다. 관심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작가를 골라서 그 작품을 큰 소리로 읽어보자. 그들의 목소리와 감각을, 다시 말해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 모방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일랑 말자. 곧 그 껍질을 벗고 여러분 자신으로 자라게 될 테니.

                                                            -글의 목소리를 듣자 中-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란 문장이 특히 마음에 든다. 오랫동안 이 문장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청각과 시각, 촉각등 오감뿐만 아니라 때론 환각까지도 동원해야 한다.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 정말 어디선가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윌리엄 진서는 말한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일은 어렵다. 만약 글쓰기가 고통이고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건 정말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습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한마디만큼 위로와 용기를 일깨워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스스로에게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배우나 무용가나 화가나 음악가에 못지 않은 일이다. 한바탕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 우리를 휩쓸어가는 작가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이 자리에 앉기만 하면 글이 술술 나오는 줄 안다. 아무도 매일 아침 그들이 시동을 걸기 위해 쏟는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즐거움, 두려움, 자신감 中-


한때 정상에 있었지만 이젠 스포츠 뉴스에서 멀어진 프로골퍼인 박지은선수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골프를 제일 잘 치던 때에도 골프 그 자체보다는 골프를 잘 쳤을 때 따라오는 것들 예를 들면 상금이라든지 인기와 같은 것들에만 관심을 갖었었어요."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과정에 집중할 수 없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법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하게 되면 글의 형식과 내용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윌리엄 진서는 이를 '최종 결과물의 횡포'라고 일갈했다.


작가들이 완성된 글에 집착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글의 형식과 목소리와 내용을 정하기 위해 미리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미국적인 문제다. 미국 문화는 승리를 숭배한다. 코치는 이겨야 돈을 받고, 교사는 학생들을 최고의 대학에 보내야 인정을 받는다. 그보다 덜 매력적인 성취, 예를 들어 배움, 지혜, 성장, 자신감, 실패의 극복 따위는 성적을 매길 수 없으므로 그만큼 존중받지 못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돈이 최고의 성적표이다.

                                                                -최종 결과물의 횡포 中-


윌리엄 진서는 '어떻게 하면 제 글을 팔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는 글 쓰는 사람에게 글을 파는 법을 가르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글 쓰는 법을 가르치고 싶을 따름이고, 글쓰기가 탄탄하면 저절로 좋은 글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저절로 팔릴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어 번역을 하면서 전문적으로 중국어 번역을 가르치고 있는 나 역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중국어 번역으로 돈을 벌 수 있나요?  얼마나 벌 수 있나요?" 번역가는 물론 번역 의뢰가 들어오고 의뢰에 따라 번역을 완료하여 납품하면 번역료를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번역 의뢰를 받느냐?'하는 것이다. 나는 '번역실력이 좋다면 언젠가는 번역을 할 기회가 오고 그리고 인정받게 된다'고 말한다. 나 역시 번역을 잘 할 수 있는 방법과 이를 되도록 잘 가르치려 노력할 따름이지, 번역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나 자신의 번역을 잘 파는 방법만큼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내리는 결정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많은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여러분의 세심한 노력이 문장 하나가 제대로 나왔을 때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독자도 안다.

                                                                          -글쓰기는 결정의 연속 中-


글쓰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바로 결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 너무 큰 결정이라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기회는 일생을 통털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한 두번이고 많아도 다섯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인생을 좌우할 큰 결정보다는 매일 매일 이루어지는 작고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우리 인생을 만든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고 시시한 결정일지라도 신중하되 일단 하기로 결정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종종 글쓰기의 가장 큰 목적은 기억을 간직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윌리엄 진서는 회고록 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가는 기억을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래 맞다! 작가는 바로 기억을 지키는 사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진서는 글쟁이가 갖추어야 할 자세로 '최선을 다해서 쓰되, 자신의 글을 끝까지 지키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원고료가 입금된 걸 확인한 뒤에는 자신이 넘긴 원고의 여정에 동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위험하다. 자신의 글이 함부로 수정되고 인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대중을 위한 글을 쓸 자격이 없는 것이다. 윌리엄 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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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류헝.츠리 지음, 김영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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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리는 우한(武漢)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여류소설가이다.

 

 

 

그녀의 단편 <번뇌인생>은 창장(長江)강-한국인들에게는 양쯔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우한시를 배경으로 한다. 압출 작업장에서 조작공으로 일하는 인자호우는 아내와 네살배기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의 일상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버스와 연락선을 갈아 타고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은 길거리 음식인 냉국수로 대충 때운다. 더운 국수보다 냉국수를 더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먹는데 시간이 덜 걸리기 때문이다. 한편, 말썽꾸러기 어린 아들은 피곤에 절어 사는 그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귀찮을때가 훨씬 더 많다.

 

 

인자호우가 얼른 아이를 껴안으려 했지만, 아들이 그 아가씨에게 마침 상처 부위를 차였다. 레이레이가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자 그의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귀가 움찔거렸다. 아들은 그의 어깨에 매달리면서 찰싹 하고 그 아가씨의 빰을 한 대 때렸다.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그 아가씨는 잠시 멍해 있다가 갑자기 엉엉 울어버렸다.

두 부자는 완전히 승리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아들은 가슴을 쑥 내밀고 배를 집어넣으며 아주 흡족해하면서, 작은 엉덩이를 불룩 내밀고 깡충깡충 뛰었다. 인자호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었다. 그는 왠지 아들처럼 기뻐할 수가 없었다.

-츠리, 번뇌인생 中-

 

 

단위(單位: 직장) 역시 인자호우에게는 자아실현의 장(場)이라기보다는 약육강식의 원칙이 철저히 지배하는 정나미 떨어지는 곳일 뿐이다. 직장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집도 아직 배정받지 못했고 순번제로 돌아가는 장려금마저 인자호우가 탈 차례가 되자 평가제로 바뀌어 3등으로 밀려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이 그에게 쥐꼬리만한 월급말고 부여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직속 여자 부하인 야리와의 로맨스일 것이다.

 

 

야리가 깔깔거리며 예쁘게 웃었다. 얼굴이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 그녀가 말했다.

"인생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한 명만 얻어도 족하느니라."

인자호우는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야리는 종종걸음을 치다가 훌쩍 뛰어 분홍색의 협죽복숭아꽃 한 송이를 따서 공중으로 후 불어 날렸다. 마치 한 마리 새끼사슴같이 천진하고 발랄한 모습이었다. 실룩거리는 엉덩이와 솟아오른 가슴이 아주 섹시해 보였다.

(......)

야리는 여인이 자주 사용하는 고통스럽고 쉰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미 결심했는걸요. 아무것도 원하는 건 없어요. 영원히 원하지 않아요. 선생님도 절 원하지 않으세요?"

인자호우는 말했다.

"야리, 너는 아직 너무 어려......"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요!"

"너 아직 모르겠니?"

네, 몰라요! 선생님 솔직히 말해 보세요. 사실은 절 좋아하지 않는 거죠?"

"아니야! 내가 왜 널 좋아하지 않겠니"

"그럼, 왜요?"

"야리, 이해 못하겠니? 넌 우리 집에도 온 적이 있잖니?"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나는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데. 전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선생님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돼요. 그건 너무 재미없고, 힘들고 사람을 매몰시키는 거예요."

인자호우의 머릿속에서 웅웅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츠리, 번뇌인생 中-

 

 

의식주 문제도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랑은 사치일 뿐이다. 인자호우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매몰차게 그 사랑을 거절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사람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한 늪과 같은 삶 속에서 피어난 한송이 연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인자호우의 정신적 외도는 분명 부부간의 순결 서약에는 위배되지만 기껏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작가는 어쩌면 인자호우라는 인물을 통해 삶의 조건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범인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성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발현되는 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간성을 발휘하고 도덕성을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성인 군자도 상황이 허락되어야지 마음 먹는다고 누구나 성인 군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츠리의 <번뇌인생>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최선을 다하지만 형편은 좋아질 기미가 없는 인자호우, 생활의 무게에 찌들대로 찌들어 버린 그의 안내, 어린 아이다운 동심보다는 제 몫을 먼저 챙기는 걸 배워버린 아들 레이레이......

 

인간이 이처럼 연약한 존재라면 우린 자기 자신을 최대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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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류헝.츠리 지음, 김영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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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두>와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의 원작가인 류헝(劉恒)은 중국의 신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원작이 <白涡>인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는 성공한 중의학 교수 저우자오루라는 인물을 통해 중년의 일탈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접해왔던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문학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류헝의 작품은 과장이나 해학이 없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석도 없다. 뭔가 끊임없이 설명하고 강조하려는 여타의 중국 작품들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 류헝은 권력지향적이고 위선적인 주인공을 통해 상류 지식층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작은 핸드백이 흔들렸다. 그녀의 집은 동47조에 있었다. 30분 안에 그녀는 남편과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 앞에서는 이렇게 나긋나긋하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다른 남자의 체취를 지니고 집에 들어갈 것이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전히 그였지만 이미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의 그가 아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는 순결했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전혀 새로운 체험을 한 뒤 비열하게 변해버렸다. 그는 만약 이런 자신이 비열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세상에 비열함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열함을 숨길 수 없었다.

-류헝,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중-


 

 

문제는 바로 새로운 감정인 체험인 것이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모든 것이 안정 궤도에 오른 저우자오루에게 여제자인 유부녀 화나이칭과의 밀회는 충분히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러나 어긋난 밀회에 빠진 현실의 남자들이 그렇듯 저우자오루는 가정과 직장 그 어느 것 하나 잃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밀려드는 죄책감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화나이칭의 요부기질탓으로 돌려버린다. 여기에서 화나이칭이 성공하기 위해 '미인계'로 저우자오루를 이용하려했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저우자오루라는 인물을 통해 혼외정사를 하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거울에 비추듯 과장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는 여자에게 유혹당한 연약한 남자였다. 그는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해쳤다. 아마도 화나이칭만은 예외일 것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이런 사랑은 그를 현기증 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기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그녀의 육체만을 사랑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 육체는 소속된 곳이 없는 고립된 여성의 육체 같았다. 그는 그녀를 떠올릴 때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화나이칭으로 위장하여 존재할 뿐 인격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믿을 만한 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든다.

 

-류헝,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중-


 

 

 

저우자오루는 화나이칭이라는 타자에 의해 자기 존재를 재확인하고 있다. 자신을 열어 타인을 맞아들임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사랑이라면 저우자오루의 자기 고백은 놀라울 만큼 솔직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육체를 사랑하며 그녀의 육체 안에 깃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우자오루는 강단 위에 섰다. 믿음 가득한 자세로 전체를 주시했다. 그는 자기의 형상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형상이다. 형상은 모든 것을 대표한다. 속마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누가 그의 영혼을 똑바로 볼 수 있는가? 아마 그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

그는 박수소리에 현기증이 났다. 이는 그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몽롱한 가운데 그는 몸이 마치 제비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가고 싶은 곳으로 바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는 천마처럼 빨리 달리고 있었다.

소리 하나가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조심해! 그는 웃었다. 그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았다. 저우자오루는 이미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류헝,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중-


 

한여름의 소나기가 지나갔다.

옷이 좀 젖었을 뿐이지만 햇살에 금방 마를 것이다. 그리고 주변은 비내리기 직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오히려 빗물에 젖은 만물이 더욱 생기발랄해지듯 저우자오루는 더욱 더 여유있어지고 강해질 것이다.

어느 분야나 세계인에게 어필하려면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지극히 지역적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류헝은 중국 사회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세계는 중국이라는 한나라의 범주 안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작품의 소품은 물론 지극히 중국적인 것이지만 그가 침잠하는 주제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집중되어 있다. 회자되는 것처럼 만약 중국 대륙 작가인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된다면 그건 그의 작품 세계가 너무도 '중국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지극히 '중국적'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현재, 한국에 번역된 류헝의 작품은 이 작품외에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과 신사실주의 소설선에 몇 편의 단편들이 소개되었을 뿐이다. 앞으로, 그의 작품들이 더 많이 번역 출판되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번역에 대해 언급하자면 어느 블로거가 지적한 바대로 역자는 어째서 원제목인 <白涡:하얀 물보라>대신,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라고 옮겼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참고로, 이 책의 역자가 류전윈의 작품 <一地鷄毛>를 <닭털같는 나날>로 번역한 것을 보고 '한국독자들에게 어색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어감을 줄 수도 있는 표현으로 굳이 제목을 직역을 해야 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중국적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함으로 이해했었다. 근데 이번 작품의 제목은 그때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지나치게 의역하여 원작가의 의도와 원작품의 분위기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중국의 전통 의학인 中医学를 중의학으로 번역해도 되는데, 한의학으로 번역한 것이 눈에 띄였다. 물론, 한의학이 중의학과 비슷한 부분이 많고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과 한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오랜 세월 밀접한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토불의(身土不異)적 관점에서 볼때 한의학과 중의학은 상당히 유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한국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이 곧 중국의 전통 의학인 중의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허균의 <동의보감>이 중국의 <본초강목>을 그대로 옮긴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중의학이란 표현 대신 한의학이란 표현으로 번역한 것은 아무래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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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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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잘 넘어간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옳소!'이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고문이 적당히 섞여 있고,

친절하게도 단원의 시작과 끝을 해당 단원의 줄거리 요약으로 시작하고 끝맺는다. 

첫눈에도 잘 팔리게끔 만들어진 '책'임을 알 수 있다.

 

손자병법은 춘추전국시대에 쓰여진 병법서로써 종이조차 발명되기 이전이라 나무편(片)에 적어야 했기에 최대한 글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최소한의 글자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기에 손자병법은 읽는 이의 시선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시대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 신문기자인 저자의 눈에 손자병법은 이기기 위한 방법이 아닌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을 역설하는 책으로 다가왔나 보다. 좋은 지적이다. 그 많은 병법 중,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과 '36계 줄행랑'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만큼 손자병법의 핵심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지지 않고 또한 끝까지 살아 남는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수단은 마음 아니면 이익, 이 두가지 뿐이다.

돈이든 지위든 명예든 체면이든 이익이 주어지면 사람은 움직인다.

이익이 아니면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 또한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심, 다른 하나는 속임수이다.

진심이 전해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가 좋지만,

자기 속을 남에게 다 보여주고 산다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진심을 전한답시고 자칫 자기 패만 보여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속임수를 자주 썼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中-


그러므로 강상구의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욱 절박해진 현대인에게 '속임수를 써서라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라'는 메세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이리라. 

 

이처럼 고전을 재해석한 책들은 어려운 원문 번역서 대신 쉽게 해석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기에 좋아 보이지만, 바로 이러한 점때문에 혜안을 갖고 있는 독서가라면 멀리해야 하는 책이다.

 

물론 기자출신 글쓴이는 손자병법에 대한 분석으로 해박한 지식을 쌓았을 것이고, 그 결과물이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라는 한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요즘, 서점가에는 독서평이나 책읽기에 관한 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형의 책들은 저자로서는 책도 읽고 책도 냈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되겠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저 뭔가 읽고 있다. 혹은 읽었다라는 심리적인 만족감만 느낄 따름이다. 시간을 보내거나 정신적 휴식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독서는 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 역시 최근 멋모르고 덥썩 집어들었다가 아니 읽느니만 못했던 책이 바로 정민교수가 쓴 <다산선생의 지식 경영법>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다선 정약용은 정말 훌륭한 독서가이자 필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를 제외하면 방대한 그 책속에 언급된 다산 정약용식의 책 만들기 기술은 단 하나도 습득하지 못했다. 물론, 나의 독서력이 빈약하여 아직 그만한 책을 '내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때문일 터이지만. 

 

무릇, 간접경험의 최고라는 '독서' 역시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고 책 속에서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만큼은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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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된 책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명작도 있지만 동시대인이 발간한 책들은 유난히 유행을 탄다. 특히, 자기개발서나 경영재테크 분야의 책은 출간된지 1~2년만 지나도 올드(old)'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초판이 90년대 말에 나왔으니 출판된지 10년이 훌쩍 지난, 말 그대로 올드 중에 올드가 되버린 책이다. 지난 세월동안 너무 많이 알려진 탓에 신선함이 다소 떨어져 식상할 법도 하련만 오히려 행간에 담겨 있는 글쓴이의 진정성에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자기개발서로는 보기 드물게 유행을 타지 않는 '좋은 책'이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재능의 한계에 대한 '꾸짖음'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렇지만 야박하다고 글쓴이를 탓할 생각일랑은 추호도 없다.어쩌면 처음부터 눈꼽만큼의 능력도 타고나지 않았건만 각고의 노력으로 없는 '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인생을 낭비한 것은 아닌가 싶어 눈사위가 자꾸만 떨렸다.



하고 싶지만 잘 못하는 일은 그대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다.

옷소매조차 스치지 못한 인연이니 잊어라.

하기 싫지만 잘하는 일 역시 그대를 불행하게 만든다.

평생 매여 있게 하고, 한숨 쉬게 한다.

죽어서야 풀려나는 일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연결시킬 때 비로소

그대, 빛나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


(중략)


물론, 감성지능이 높아 자제와 인내력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재능은 떨어지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본문 中-


 


애당초 인연이 아니면 아닌 것을...

사람도 돈도 명예도 다 인연인 것을...

끊어질듯 간신히 이어지는 가느다란 줄을 기어이 이어 붙여 '인연'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며 살아들 간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알고, 타인의 삶이 아닌 나다운 삶을 꾸준히 추구해가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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