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2 : 묘사와 배경 -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에는 섬세한 문장이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2
론 로젤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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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쓰기의 모든 것> 시리즈 중, 두번째는 묘사와 배경이다. 지은이인 론로젤은 스스로 뛰어난 작가이면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소설 작법을 가르치는 이름난 강사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다 넘기고 나서도 한참이나 나는 론로젤을 당연히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굳이 뛰어난 작가에 여성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동안 나 자신도 모르게 섬세한 묘사와 탁월한 배경 설정은 여성작가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니었는지...

론로젤은 말한다. 

누구나 소설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발상과 아이디어를 떠올리지만 그들 모두가 이를 소설작품으로 완성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구체적인 묘사와 배경을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냥 줄줄 이야기만 나열한다면 마치 앙꼬 없는 단팥빵을 씹어 먹는 것처럼 맛이 없고 재미가 없다. 그렇다면 뛰어난 묘사와 배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로 작가의 치밀한 구상과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상상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일지라도 인류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약간 혹은 다소 많은 수정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소설은 기본적으로 '그럴듯'해야만 한다. 즉, 언제 어디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어야만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이란 바로 이 언제 어디서에 해당되는 시공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라는 장소는 작가의 고향인 경남 하동의 어느 마을일거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럴 것이라는 추측에 불과할 뿐,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해 창조된 마을이라고 한다. 토지의 배경 설정이 너무나도 그럴듯해서 이미 독자들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평사리'라는 가상의 배경을 통해 허구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소설의 배경이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열고 들어가는 '옷장의 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경이 그럴듯 할수록 작가는 독자를 훨씬 쉽게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의 속으로 이끌 수 있는 반면, 배경이 엉성할수록 독자가 이야기속으로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여 결국 독자를 속이는데 실패하고 만다.


론로젤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02 에서 좋은 소설작품은 배경 못지 않게 묘사가 훌륭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묘사는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구구절절해서는 안되며, 정곡과 헛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되 독자의 관심을 '꽉ㅡ' 불들어 매두는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묘사와 배경은 독자의 두뇌활동을 자극하는 데에 앞장선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지만 모든 것들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소설의 성공 여부는 설명하는 데에 있지 않고 바로 보여주는 데에 있다. 일일히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독자가 느끼고 상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론로젤은 바로 이 점을 알려주기 위해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02 에서 다양한 예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잊지말자. 소설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임을......


'좋은 소설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대학교 시절 문학 수업시간에 교수로부터 이 말을 듣고 깊은 충격에 사로잡힌 바 있는 론로젤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02 <묘사와 배경>를 이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진실이다. "좋은 소설은 배경과 묘사가 뛰어나지만 또한 배경과 묘사에 집착하지 않고 초월한다."


끝으로, 론로젤이 진부한 표현으로 언급한 '그림처럼 예쁘다’거나 인물이 ‘교회의 생쥐처럼 조용하다’거나 ‘머리 잘린 닭처럼 돌아다닌다’ 등의 표현은 첫번째 문장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신선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아마 영어와 한국어라는 언어적 '배경'의 차이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때론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원문이 그대로 들어난 번역투 문체-번역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좋은 번역문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를 통해 새로운 표현을 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국어 번역사로서 그동안 도착어를 기준으로 한 번역을 지향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만약 문화적 차이로 인해 원문식-출발어 위주의-표현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표현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 도착어 위주의 번역을 할 것인지 아니면 출발어 위주의 번역을 할 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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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1 : 플롯과 구조 -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에는 뛰어난 플롯이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1
제임스 스콧 벨 지음, 김진아 옮김 / 다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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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의 모든 것>시리즈는 Part 01~Part 04로 총 4 Part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Part는 각기 다른 작가에 의해 쓰여질 예정이다. 현재(2011.10월) '플롯과 구조(part 01)'편과 '묘사와 배경(Part 02)'편이 출간되어 있으며 앞으로 인물,감정,시점(Part 03)과 대화(Part 04)편이 출간될 예정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시리즈는 글쓰기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기술'이라는 점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각 파트를 담당한 지은이들 역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특히, Part 01의 플롯과 구조에서 지은이인 제임스 스콧 벨은 어떻게 하면 독자의 시선을 사로 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그는 스티븐 킹, 리처드 매드슨, 딘 쿤츠 등등 스릴러 소설 분야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소설이 어째서 재미있는지 꼼꼼하게 분석하여 설명해준다.


스콧 벨은 '우선, 비정상적인 사건들을 일으켜라. 그리고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라.'고 주장한다.

날씨나 계절 혹은 지리적 배경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루함을 동반할 따름이다. 스토리와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설명들은 가차없이 삭제한다.

썸네일 

놀라운 사건 사고 혹은 장면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드는데 성공했다면 이제부터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사건의 개요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을 납득시켜라.'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발생 원인이나 인물의 행위에 대해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동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가가 여러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범죄소설이라면 범죄자와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 및 인체구조와 의학적 배경 지식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정소설 역시 법에 대한 기초 상식만으로는 독자를 효과적으로 설득시키지 못한다.


끝으로, '마지막 대단원에서 독자의 긴장감이 풀릴 즈음 막판 반전도 빼먹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다. 막판 반전으로는 제프리 디버의 <소녀의 무덤>을 최고로 치고 싶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시리즈 Part 01에서 많은 소설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대부분 스티븐 킹, 리처드 매드슨, 딘 쿤츠 등의 작품들이었다. 아무래도 문학소설보다는 대중소설이 플롯과 구조가 훨씬 더 선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임스 스콧 벨은 어린 시절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로스쿨를 마치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10여년 간 근무하다가 전업 작가로 들어선 인물이다. 그는 소설을 쓰기에 앞서 20여 편이 넘는 스릴러 소설들을 읽고 꼼꼼하게 분석한 후, 하나의 공식을 도출해냈다.


(목표를 위한) 행동 --> (그에 대한)반응 --> 대단원(비극/해피엔드)이 바로 그것이다.


각 단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예를 들면, 겉으로는 목표달성을 했지만 주인공이 불행할 수도 있고, 비록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주인공이 삶의 의미라든가 가족간 사랑 등등 비물질적인 가치를 깨닫게 되다는식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유 역시 다양하다. 직업적 소명일수도 있고 사랑이나 우정 혹은 약속등을 지키기 위한 것일수도 있고 그것을 깨트리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것 part01을 읽은 후, 나는 이 책에 언급되어 있는 작품들 중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제임스 스콧 벨이 좋아한다는 딘 쿤츠의 작품이었다. 딘 쿤츠 역시 많은 작품을 갖고 있는 작가였는데 내가 읽은 작품은 <검은 비밀의 밤>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로 읽은 작품은 제프리 디버의 <소녀의 무덤>이다. 이 작품은 도살장을 배경으로 한 인질극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Part 01:플롯과 구조>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성공한 소설 작품들은 하나같이 근사한 주인공과 탄탄한 플롯 및 구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참고로, <나는 전설이다>와 <검은 비밀의 밤> <소녀의 무덤>등 이상 세작품에 대한 도서감상문을 알라딘 서제의 같은 카테고리 안에 올려놓았으니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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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글쓰기다 - 이제 번역가는 글쓰기로 말한다
이종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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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영어 전문 번역가로 살아온 지은이의 내공이 엿보인다.


'번역은 글쓰기다'라는 책 제목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한줄 한줄 섬세하게 다듬은 문장들과 번역실제를 통해 번역의 기술을 설명한 점도 훌륭한다.

 

번역이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처럼 '2의 창작'이 되려면 번역가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루쉰과 무마카미 하루키와 같은 소설가들이 각각 독일소설과 영어번역을 많이 했다는 점도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면서 나도 언젠가는 번역가로 출발하여 작가가 된 사람들처럼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되새기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양억관 김남희 등 일본어 번역가들의 실력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종인은 영어 번역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번역가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한껏 들어내고 있다.

 

특히, 그가 언급한 양억관 김난주 부부는 일본어 부부 번역가로 한국내에서 일본 소설 매니아 층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일찍이 일본 문학을 접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빼어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감탄하며 눈여겨 본 역자의 이름이 바로 이들이었다. 특히, 그 당시 읽었던 아사다 지로의 주옥같은 단편들은 정말 '번역문학'의 백미라 할 만 하다.

 

 

다만, 나의 전공 분야인 중국어번역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다. 그만큼 영어나 일본어에 비해 중국어번역이 뒤늦게 출발한 감이 없지 않은 데다가 아직까지는 한국 출판계와 독서시장에서 중국번역문학이 확실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2000년대 중후반에 접어 들면서 몇몇 세간에 화제를 뿌리는 중국책들이 번역 소개되곤 하지만 아직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영어나 일본어 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 출판시장이 그 규모면에 있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학 분야에만 치중되어 있는 중국어 출판 시장에 관심과 역량을 더욱 집중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현대 문학을 전공한 소수의 교수진에 의한 추천과 번역에만 치중해서는 중국 소설에 대한 한국 독자층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기타 중국내 '연줄'등 정치적 파워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한국의 중국어 번역 분야에 중국교포출신 비전문가 대거 진출하면서 실력있는 중국어 번역가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져 고급 인재들이 번역에 종사하지 않게 되면서 번역의 질이 떨어지고, 이는 또 다시 독자들의 악평과 외면을 불러 일으키는 악순환을 끊지 않으면 안된다.

 

중국어 번역 출판계가 직면한 이와 같은 어려움은 한편으론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중국어 소설 번역을 대표하는 이름 있는 번역가가 아직 없다는 점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내가 첫번째로 중국어 번역계에서 네임밸류를 갖는 번역가가 되겠다'는 의욕을 다지는 계기로 삼으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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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관하여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2
예자오옌 지음, 조성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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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쑤저우에서 태어나 난징대에서 수학한 작가는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집안 출신이다. 그의 조부인 예성타오(葉聖陶)는 중국 최초의 창작 동화집인 <허수아비(稻草人)>의 저자이며, 부친 예쯔청(葉至誠) 역시 책을 좋아한 장서가였다고 한다. 그와 동년배의 작가들이 문화대혁명으로 암울한 십대를 보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자오옌은 일찍부터 동서양 고전과 현대 문학을 두루 접하면서 작가적인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식 블랙코메디라 할 수 있는 <화장실에 관하여(關于厠間)>는 동양 고전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화장실을 소재로 한 이 중편 작품은 역자인 조성웅씨의 표현대로 배설 욕구와 함께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권력욕, 성욕, 치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좀 더 깊게 파고 들면 이런 욕망의 표출과 좌절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화자인 '나'를 통해 문화대혁명 때 지식인이었던 부모가 동네 공동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해야 했던 일과 지식인의 자녀인 화자 또한 피난처로 삼은 시골 학교에서 마찬가지로 화장실 청소를 맡으라는 담임선생님의 명령에 '무단결석'으로 저항한 일들을 거론하며 인간 욕구의 뒤틀린 단면을 보여준다. 

 

깨끗이 청소를 해도 어느새 금방 더러워져버리는 동네의 공동 화장실은 '혁명'을 거친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래의 부패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버리는 현상과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가장 사적인 개인의 '배설' 행위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가장 집단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담장 밖으로 던져진 문제는 내가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내 일'에서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너의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건, 만리장성도 아니요 자금성도 아닌 중국의 그 독특한(?) 화장실이었다. 누구라도 안 가고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혁명하느라 바빴던 대다수 중국인들에 의해 관심 밖으로 훌쩍 던져 버려진 화장실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포기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쉰 양하이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지의 그 부분이 돌연 짙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느릿느릿 그러나 활짝 피는 한 송이 꽃처럼 보였다. 처음엔살짝 젖었던 부위가 점점 커졌고 수정 같은 물방울이 한 점씨 배어나더니 급기야는 땅에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인 오줌은 이내 낮은 곳을 향해 천천히 흘러갔다.

 

                                                    -예자오옌, <화장실에 관하여> 中,1991년12월 作- 

마치, 80대년 홍콩 르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회사의 꽃으로 뭇남성들의 로망이었던 양하이링이 대도시 상하이에서 시내 관광을 하다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결국 화장실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실례를 하는 이 장면 말이다. 

 

천천히 날아오른 총알에 핏줄이가 솟구치고 인물의 표정이 극대화되면서 장엄한 배경음악이 흐른다......

배설과 죽음이라는 상황만 다를 뿐 분위기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같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시각적 효과가 강렬한 이 장면을 매우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리라. 매우 리얼하게 묘사하여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장면을 말이다. 

 

 

우수중편문학상과 장쑤문학예술상을 수상한 <추월루> 역시 예자오옌의 대표작으로써 손색이 없다. 청말과 민국을 거쳐며 격동의 현대사를 살다 간 중국의 마지막 지주 딩(丁) 선생의 생애가 작가의 담담한 필치에 담겨 한편의 역사드라마가 펼쳐진다. 

 

청 조정에서 한림원 관리로 일했던 딩 선생은 자신의 칠순을 기념하여 뒤뜰에 '추월루'를 앉힌다.  수 천년 동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축첩제도와 남존여비사상 그리고 철저한 신분제 사회의 마지막 황혼빛이 이곳 추월루에 비쳐든다.  

 

딩 선생은 평생 자신이 과거 시험 출신이란느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향시, 회시, 전시를 잇따라 장원으로 급제하지는 못했으나 시험을 치를 때마다 합격을 했던 것이다. 늠생은 말할 것도 없고 향시에 합격한 거인이나 회시에 합격한 진사도 말 한마디로 결정되었다.

(......)

신당이 득세했을 때는 고관이 될 수 있었는데 재수없게 목이 잘렸다. 그리하여 딩 선생은 회를 피해서 상하이로 일본으로 정신없이 도피하였다.

청나라 말기, 일본은 중국 혁명의 근거지였다. 딩 선생이 일본에 있을 때는 혁명이 자신을 찾아왔다. 여러 사람이 그가 진사 출신이란 점을 맘에 들어했다. 그는 어영부영 동맹회에 가입을 하고 맹세를 했다. 수류탄을 던지고 봉기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한 일이라고는 유학생 집회에 두 번쯤 가서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고어체의 격문을 썼을 뿐, 그 외에는 예전처럼 공부만 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춘추삼전정의>의 초고도 사실 그때 완성한 것이었다.

민국 이후, 딩 선생이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은 자기 뜻대로 누각을 짓는 것이었다.

(......)

추월루가 완공되고 일 년이 채 못 되어 일본인이 왔다. 딩 선생은 추월루에 칩거하면서 수천 년에 걸친 중국 문명과 역사를 뒤적이면서 처연하게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온갖 천신만고를 다 겪는 듯한 감회에 빠졌다.

                                                                                   -예자오옌, <추월루> 中-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대학살을 일삼자, 딩 선생의 큰 사위 밍쉬안과 장손 보치 그리고 둘째 손자인 중샹 등이 모두 피난을 떠가고 딩 선생과 그의 어린 첩 샤오원만이 홀로 남는다. 두달이 지나 가족들이 돌아오고 어르신을 모신 샤오원의 위상은 높아진다. 칠순을 넘긴 딩 선생에겐 이미 열 명의 딸이 있건만 샤오원과의 사이에서 이제 막 아장 아장 걸음마를 하는 막내딸 샤오마오를 두었다.

 

칠십 평생 딩 선생의 삶은 제국의 몰락과 열강의 침략 그리고 비적과 혁명군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중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혜가 깊다 한들, 역사의 큰 물줄기를 막거나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을 미리 내다본다는 '혜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연히 역사의 흐름을 잘 탄 것에 불과할 뿐, 개인의 역할이나 노력은 사실 극히 미약했으리라. 딩 선생은 이 모든 이치를 깨닫기라도 한 듯 혼란스런 세상을 뒤로 하고 스스로를 추월루 속에 감금시켜 버린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모습은 마지막 선비로서의 예를 충분히 갖춘 것이었다.

 

딩 선생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무슨 큰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등에 종기가 났을 뿐이었다. 민간에서 흔히 '등띠'라고 부르는 질환이었다. 심지어는 딩 선생 자신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늘 하던대로 먹고 마셨으며, 숨이 끊기던 그날에는 사우원에게 영화도 보러가게 해주었따.

(......)

갑자기 딩 선생이 비명을 지르며 답답증을 호소했다. 중샹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다.

(......)

"가만히 앉았거라, 할아비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중샹은 훈계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오를 다진 후 하문을 기다렸다. 딩 선생은 그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성인은 예절에 구속받지 않고, 현인은 예절을 굳게 지키며, 어리석은 자는 예절을 잃고 함부로 행동한다고 했다. 할아비는 늙고 병들었지만 이 도리를 감히 잊지 못한다. 너희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할아비가 여러 말 해도 쓸모가 없겠지."

말은 마치고 눈을 감은 그의 표정은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중샹은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훈계는 맏고 싶지 않았떤 터라 일부러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고개를 돌려보니 딩 선생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눈물이 코끝에 달린 채 빛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중샹은 그 코끝에 맺힌 눈물이 계화향처럼 느껴졌다.

                                                                                      -예자오옌, <추월루> 中-

 

 

1987년 12월 作 <대추나무 이야기>는 예자오옌의 출세작이라고 하는데, 불분명한 인칭과 시점으로 인해 나에게는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난징 대학살의 유탄을 피하기 위해 난징의 부잣집 외동딸 쉬윈은 서둘러 얼한과 결혼한 후 그의 고향으로 간다. 그렇지만 얼한이 고향마을의 비적 두목인 바이롄에게 목숨을 잃게 되면서 청상과부가 된 쉬윈의 삶은 그때부터 얽히고 섥히기 시작한다. 결국, 남편을 죽인 바이롄의 애첩이 된 쉬윈은 얼한의 동생 얼융이 바이롄을 토벌하러 오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세상이 또 한번 바뀌어 천하가 공산당의 손아귀에 떨어지고...쉬윈 또한 어느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천천히 달려간다. 그리고 20대 젊은 나이에 병사한 그녀의 아들 융융과 생년월일이 같다는 작가인 '나'와 조우하게 되면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과거사와 주변 인물들의 행적이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다.

 

대하역사소설 정도의 중량감을 갖춘 이 작품은 '무인칭 화자'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무명의 논픽션 작가가 등장하여 1970년대 타이핑 읍의 파출소 소장인 얼융을 인터뷰하면서 바이롄과의 악연이 서술된다. 그리고 작품의 말미에 작가 예자오옌을 대신하는 듯한 젊은 작가가 현재 시점에서 이젠 노인이 된 쉬윈을 만나 그녀의 과거사와 아들 융융의 이야기를 보충하는 형식이다. 

 

작가는 어째서 이처럼 다양한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했을까?

일관적이지 않은 시점으로 인해, 독자는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과 큼지막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종종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새로 시도된 형식이거나 아니면 작가 개인의 취향이나 고도로 계산된 의도가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한 이유를 모르겠다. 

 

참고로,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추리소설 <이유> 역시 무인칭 화자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지만 작품은 어디까지나 사건에 연류되어 있는 인물들을 방사형으로 이어 나가면서 인터뷰하는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살인사건을 제3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형식을 통해 작가는 독자와 사건 그리고 독자와 등장인물들간에 일정한 거리감을 둠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탐정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혹은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의 이와 같은 작품 형식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데이코쿠 은행사건의 수수께끼-일본의 검은 안개 중에서>와 상당히 닮아 있다.

 

 

한편,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리고 대학입시제도 부활과 함께 성년을 맞이한 중국의 젊은 지식층 부부의 결혼생활을 그린 <연가>는 풍자와 과장으로 얼룩져 있는 중국의 신사실주의 문학에서 '사실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감정변화를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연가>는 공교롭게도 1989년에 일어난 톈안먼사건 바로 전해인 1988년 9월29일에 쓰여져, 중국의 80년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방향타가 되어준다.

 

그 당시 중국 지식층은 비전없는 '단위(직장)'에서의 시간때우기와 아르바이트를 통한 부수입 올리기 그리고 부모세대와는 달리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의 부재와 개인적인 감정과 삶의 중시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갖추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과 사회변화를 견인한 내재적 힘의 원동력이 바로 이들은 아니었을까?  이들은 과연 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사회의 빠르고 놀라운 변화에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청왕조의 멸망과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다룬 작품들은 많은 반면, 80년대 이후의 중국 그리고 중국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예자오옌의 <연가>는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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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1934 년도에 처음으로 출판된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을 '작가의 길'로 인도한 글쓰기의 '바이블'이라 할 만하다. 다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는 상당히 뒤늦게 번역 소개되었고, 최근 인터넷 개인 블로그의 발달과 더불어 '일반인의 책쓰기와 책내기'가 유행하면서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주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언급하고 있다면 도러시아 브랜디는 이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점이 그 어떤 글쓰기의 기술을 논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책으로 쓰면 한 열권은 될 것이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갖고 싶어하며 어떠한 형식이든지 글쓰기를 시도해 봤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 세상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작가들이 살았었고 또 살고 있어야 하리라.


사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글쓰기의 성패 역시 추진력과 인내심에 달려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신선하고 창의적인 이야기들을 알고 있고 또 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것을 글로 엮어 내는 이들은 결국 추진력과 인내심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일 뿐이다.



이제 '재능은 배운다고 해서 트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맥빠지는 말 속에 숨은 진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이 말은 옳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거의 전적으로 그르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재능이 느는 것은 아니지만 재능이 늘기를 바랄 이유가 없다. 재능이라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재능의 흔적을 아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인간은 없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너무나 위대해 타고난 재능을 남김 없이 무한정 사용하는 인간 또한 없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중-

 

 

도러시아 브랜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바로 '작가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글쓰기 또한 연습을 통해 향상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본성은 이중 인격이 아닌 삼중 인격이라는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작가는  이중 인격이 아니라 삼중 인격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본성은 이중이 아니라 삼중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희미하든 뚜렷하든, 지속적이든 산발적이든 삼중 인격 가운데 이 세 번째는 바로 각자이 타고난 재능이다. 번득이는 통찰력과 날카로운  직관 그리고 상상력은 서로 협력해 평범한 경험을 '더 고귀한 현실이라는 환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이 세 가지는 예술의 필수 요소다. 아니면 한 발 양보해 삶을 해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중-

 

쓰여진지 다소 오래된 책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가수업>을 읽으면서 솔직히 깊게 빠져들지는 못했다. 다소 어려웠다고나 할까. 그건 아마도 작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내면적인 면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작가도 아닌 내가, 작가가 되려고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동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책을 읽는 과정 곳곳에서 벽에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는 나 자신을 보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뜨거운 욕망이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음을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지 이제는 욕망을 행동에 옮겨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확인하게 되었다.


참고로, 만약 내가 이 책을 다시 손에 든다면 그건 순전히 <작가수업>에 대한 영국의 소설가 겸 문학 창작 강사인 하비 채프먼의 다음과 같은 평가 때문일 것이다.

 

1934년에 처음 출간된 <작가수업>은 오늘날 글쓰기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지난 75년 동안 끊임없이 판매됐으며, 똑같이 그렇게 판매됐다고 주장할 만한 다른 창조적 글쓰기 지침서는 사실상 없다. 도러시아 브랜디는 누구든 글을 쓸 수 있고 모든 이가 제각가의 글쓰기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녀는 창조적 글쓰기라는 행위가 어렵지 않을뿐더러 소수의 지식인들이나 추구할 일로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야기 구성을 어떻게 짜고 등장인물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하는 것 따위에 관한 조언은 한마디로 하지않느다. 대신에 자신의 창조성을 강화하고 그녀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다고 믿는 무의식적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녀는 이 책에서 이런 주제들을 다룬다.

작가의 기질을 배양하는 방법, 작가의 이중 인격, 쉬운 글쓰기, 일정한 시간에 글쓰는 방법, 순수한 시각을 되찾는 법, 독창성 대 모방, 작가의 비법 등등. 이 가운데 마지막 것이 최고다. 이것은 자신의 독창성을 직접 발굴해낼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사실 이책을 작가의 비법에 관한 이 한 장(章)만으로도 구입할 가치가 있다.


   -하비 채프먼(영국 소설가 겸 문학 창작 강사, www.novel-writing-help.com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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