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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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군가>는 미야베 미유키가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인물을 내세워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물 중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바로 직전에 읽었던 <이름 없는 독>보다는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도 자연스러운 것도 같고고 어쨌든 훨씬 더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갔다. 


다만, 우리네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듯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는 끝까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 


첫 번째 의문은 바로 가지타 부부가 어째서 노세 유코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냥 옆에서 간접적으로 도와준 것이 아니라 대신 시체를 처리해줬다. 이는 엄연히 범죄행위이다. 피를 나눈 한가족도 아닌, 그냥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회사 동료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부분은 어딘가 사라진 한개의 퍼즐 조각처럼 내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다.

만약,

가지타씨와 노세 유코가 나이를 뛰어넘어 남몰래 사랑을 하는 사이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가지타씨 아내가 눈치 챌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지타의 아내 입장에서 남편의 불륜녀의 범죄행위를 감춰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이를 빌미로 두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이 더 이치에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럼,

혹시, 노세 유코가 가지타의 혈육일 가능성은? 있다! 원래부터 행실이 좋지 못한 노세 유코는 친부(親父)로부터 학대를 받다가 자기방어적 차원에서 그만 살인을 하게 된 정황을 비추어 본다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아내의 불륜으로 태어난 딸을 구박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술주정뱅이 남편과는 달리 착실한 이웃 남자와 남편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젊은 이웃 아낙네와의 연분이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역시 이와 같은 가설에도 가지타 부인의 행동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잠깐만!

근데 만약 가지타 부부가 서로를 신뢰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미 병사한 것으로 처리되는 노세 유코의 어머니와 가지타 부인이 어린시절 친구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면 가지타 부인도 노세 유코를 안쓰러워 하며 보듬어 안으려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약, 가지타 부인과 노세 유코가 공개할 순 없지만 자매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 사실을 모른 채(혹은 알고서도) 가지타씨가 노세 유코의 어머니와 연애를 해서 노세 유코를 낳았다고 한다면 가지타 부인에게 노세 유코는 어찌되었던 조카인 것이다. 그것도 불쌍하게 매일 남편의 폭력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일찍 세상을 뜬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 남긴 딸이라면 비록 남편의 외도로 낳은 아이라 할지다로 연민이 가지 않았을까. 노세 유코의 범죄행위를 갖추어주기에 충분한 동기다.

앗!

<누군가>의 등장 인물인 가지타씨의 남겨진 두 딸 가지타 사토미와 가지타 리코 역시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연적관계다! 

놀라운 반전이다.

그런데 저자인 미미여사는 나도 상상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어째서 외면(?)하는 무리수를 둔 걸까? 아니면 이미 이와 같은 이야기를 대전제로 하여 '스기무라' 시리즈 중 하나로 또 한편의 작품을 구상 중인 걸까?


두번째 의문은 가지타씨의 돌발적인 죽음이 중학생에 의한 우연한 자전거 사고라는 점이다.

물론,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도 이와 같은 어이없는 죽음이란 종종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범죄동기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사회파추리소설의 대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흠'이 아닐 수 없다.

작품 속에서 미성년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의 문제점들이 살짝 엿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품의 소재일 뿐, 핵심 주제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얇고 옅다. 만약 작가가 이 점을 언급하려고 했다면 학교 상담 교사와 함께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는 가해 학생의 갈등과 고뇌가 깊이 있게 다루어졌어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세번째 의문은 제목이 어째서 <누군가>일까? 이다.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누군가'란? 도대체 '누구'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가지타씨를 자전거로 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가하면 피해를 입기도 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가지타씨가 노세 유코라는 사람을 평생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듯이 대다수 사람들이 한두 명쯤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누군가>라는 작품은 이상의 세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과 함께 상상의 여지를 가져다 준 작품이다. 이렇게 보면, '인생이 정답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미야베 미유키의 <누군가>라는 작품은 인생과 가장 닮아 있다 하겠다.


과거의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듯, 인생에 '왜?라는 질문이 때론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무'의미한 것 속에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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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사람공부 - 사람을 아는 것의 힘 정진홍의 사람공부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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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자기개발 방면 강연 등으로 이름을 얻은 저자의 경우, 저서는 강연을 그대로 옮겨 놓았거나 깊이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저자들을 폄하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주장이 '글'보다는 '말'에 더 적합하다는 의미다.


<정진홍의 사람공부>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三人行, 必有我師'로 요약된다. 즉, '타인의 삶을 거울 삼아 자신의 삶을 가꾸자'가 이 책의 핵심 주제가 아닐까 싶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법한 저자와 함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들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의 호수가 여러번 출렁거림을 피할 수 없다. 유명한 인물과 덜 유명한 인물들 예순 일곱명을 두 세명씩 묶어 그들의 열정적인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 답이 보이는 것 같다.


때론 세월에 떠밀리듯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지만 결단코 그렇지 않다. 인생이란 살아 숨쉬는 매순간 온몸을 다바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듯 하지만 확실히 남다른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드러낼 수는 없었으리라. 비범과 평범을 가르는 단 하나의 차이는 바로 '열정'이다. 책 속에 소개된 예순 일곱 개의 삶을 만든 건 원칙이 아니라 열정이었다!


이미 일본의 시대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음과 같은 말은 두고 두고 심금을 울린다.


하루키에게 있어서 달리기는 글쓰기와 닮았습니다. 달릴 때의 몸짓이 자아내는 반복적이면서 고통스런 신체표현이야말로 직업작가의 글쓰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키는 말합니다. "문장을 쓰는 것 자체는 두뇌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것은 육체노동이다"라고.


- 정진홍, <정진홍의 사람공부> p21中-


어디 하루키 뿐이겠는가.

장애아들에게 '하라키(일본어로 '빛'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를 끝까지 풀고 가겠다는, 그것도 '짐'으로서가 아니라 그 생명이 지닌 가능성이 만개하도록 돌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오엔 겐자부로의 인생은 그 자체가 인류를 밝히는 한줄기 '빛'이라 하겠다.  인생이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성실하게 완수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는 과연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라는 숙제의 종류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어떻게'라는 숙제에 임하는 자세가 아닐까.


흔히, '감동이 있는 인생' '이야기가 있는 삶' 등이 대세인 세상이다.

이야기 하나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진심이 담긴 인생.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인생이야말로 진짜 인생이라 하겠다.



이런 분야의 책들이 무릇 그렇듯, 책장을 넘길 때만큼은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며 마음이 마구마구 뒤흔들리다가도 책만 덮고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익숙한 일상으로 되돌아 오고 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책 속에 소개된 삶들이 쉽사리 잊혀져도 될만큼 가벼워서라기보다는 이와 같은 자기개발서가 갖고 있는 '한계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한계성은 저자의 명성에 기대어 판매효과를 얻으려는 출판사의 무리수로부터 나온 것일 수도 있겠고, 예순 일곱 명의 삶과 열정을 이해하고 본받으려는 저자 자신의 뼈아픈 노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으리라.


독자가 받는 감동은 저자의 노력에 정비례한다.

저자가 단순히 예순 일곱명의 열정적인 삶을 소개하는데 그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 자체가 큰 충격으로 휘청거렸는지는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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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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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먼저 제목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책 제목도 첫 인상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한번 각인된 선입견은 쉽사리 수정되지 않는다.

나는 최근까지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인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을 모르그라는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여겨왔더랬다. 얼마전 작품을 읽고 나서 모르그가의 가는 집 '家'가 아니라 거리 '街'라는 걸 알고는 소그라치게 놀랬었다. 무식함이 탄로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 스스로 주입(?)시킨 선입견이 무려 수십 년동안 확고부동하게 이어져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착각은 아모도 포의 또 다른 작품인 <어셔가의 몰락>에서 받은 영향이 컸을 것으리라.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명만 확인하고 골라잡은(?) <이름 없는 독> 역시 나에게 섣부른 선입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제목이었다. '독' 자를 독극물의 '毒'이 아닌 장독대의 '독' 자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평온한 일상을 찾아온 연쇄살인사건들...

그리고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힌 사람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나는 서서히 '독'이란 인간의 선한 모습 이면에 담겨 있는 악한 면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집에 오염은 없다. 집안은 청결하다. 계속 청결할 거라고만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

그 독의 이름은 무얼까.


옛날 정글의 어둠 속을 누비고 다니던 짐승의 송곳니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짐승이 잡혀, 사자란 이름이 붙혀지면서부터 인간은 그 짐승을 퇴치하는 법을 짜냈다.


이름이 붙여지자 모습도 없던 공포에는 형체가 생겼다.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잡을 수도 있다. 없앨 수도 있다.

나는 우리 안에 있는 독의 이름을 알고 싶다. 


-미야베 미유키 <이름 없는 독> 中 p526 -


사실, <이름 없는 독>은 추리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재미있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살인사건 그것도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범인과 범행동기 및 범행방식에 석연찮은 점이 많다. 

범행 동기로 보면, 후루야 야키토시의 딸과 내연녀가 모두 용의 선상에 오른다.

그런데 딸과 내연녀는 범행방법과 알리바이에 있어서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피해자 후루야의 외손녀 미치카는 엄마를 의심하여 사설탐정을 찾아가고...


한편, 얼떨결(?)에 재벌가 사위가 된 스기무라...

토양오염 등 환경에 예민한 아내와 어린 딸 때문에 노심초사하지만 선택받은 중산층이다. 

스기무라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 여사원으로 채용된 겐다 이즈미는 전형적인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다. 

겐다 이즈미의 협박으로 그녀의 뒷조사를 하러간 스기무라는 그녀의 전고용주로부터 전직 형사출신의 사설탐정을 소개받게 되는데...


이처럼 작품은 크게 두 줄기를 이루어 흐르다가 사설탐정을 정점으로 미치카와 스기무라가 조우하면서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지면서 예상밖으로 흘러간다.


언뜻 보면 종횡무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마침내, 자백의 형식으로 진범이 밝혀지고 범행동기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것'이었음을 알고는 허탈감마저 느껴졌다. 


마지막 책장을 다 넘기고 나서 '기껏, 이 따위 소설을 읽으려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더란 말인가'라는 자괴감이 밀려올거라 예상했는데...

'어라...?'

그게 아니었다.

가슴 깊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이 불편한 감정이라니...


이 작품은 결코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토양오염, 천식, 인질극, 근친상간, 독극물, 인격장애 등등...

놀랍도록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와 닮아 있었다.

고작 그 따위의 사소한(?) 이유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청산가리 독극물 범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있다!'

자신이 당한 고통만큼 타인도 고통스럽고 불행해져야한다고 믿고, 이를 계획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나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끔찍한 사건들은 일견 이처럼 사소하고 작은 이유들로부터 시작된다.

'아, 무섭다!'

독서의 재미가 사라진 그 자리에 서서히 소름이 차오른다.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추리소설들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치 요즘 방송사들이 경쟁하듯 방영하고 있는 리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다 보고나면 어이가 없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답답해진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리얼이고 어디까지가 연출인 걸까?

 

나 또한 우리 안에 있는 독의 이름을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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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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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인 '미미여사'(미야베 미유키의 애칭?)의 대표적 시대소설이다.

상하 두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이지만 나는 1년전  <혼조 후카가와의 이상한 이야기>와 <괴이>를 시작으로 일명 '미야베 월드'에 입성했기에 그녀의 시대 추리물이라면 읽기도 전에 군침(?)부터 넘겼다. 

'그래서였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장편시대소설이라서 그런진 몰라도 단편처럼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든지 가슴을 울리는 애틋함의 깊이는 한결 얇아진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쉽다.


그러나 <외딴집>은 에도 시대의 특징과 시대적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길라잡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의 에도 시대(1603년~1867년)는 '사무라이(무사)'가 지배하던 사회로 일반 민중들은 생존을 위해 숨죽이고 살아야만 했던 시기다. 


<외딴집> 역시 해안가 마을인 마루미라는 작은 번에서 벌어지는 지배층의 암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암투를 둘러싼 추리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가의 시선은 암투를 꾀하고 심지어는 전염병으로 꾸민 살인까지 일삼는 지배층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른 채 지배층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는 중간계급(사지: 의원)과 일반 서민에게 향해 있기 때문이다. 


"속는다"

"응, 그래. 가가 님이 오는 바람에 마른 폭포 저택에서 깨어난 나쁜 존재가 마루미 사람들에게 원한을 갚으려고 고토에 님을 노리고 목숨을 빼았았어. 고토에 님은 정말로 착하고 좋은 분이기 때문에 노린 것인지도 모르지. 마른 폭포의 나쁜 존재는 고토에 님이 돌아가신 일을 둘러싸고 우리가 많이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게 하려고, 너에게 미네 님의 환상을 보여 주어 미네 님이 고토에 님을 죽인 것처럼 보이게 했어. 나쁜 존재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서 괴롭히기 위해 그런 짓을 하거든."

앞으로도 나쁜 존재는 더욱더 나쁜 짓을 할 것이다. 마루미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곤란하게 하려고 갖은 짓을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반쯤은 스스로에게 들려주듯이, 우사는 이야기했다.

"우사 씨." 꺼질 것만 같은, 작은 목소리다.

"왜?"

"그러면 이 세상에는 나쁜 존재가 정말로 있나요?"

"응."

"마루미에는, 마른 폭포 저택에 있나요?"

"그렇지. 가가 님도 모레가 되면 거기에 들어갈 테니까."

호가 입을 다물자 바람이 울었다.

-미야베 미유키, <외딴집> p187-



소통과 교류가 차단되고 정보가 통제된 사회에서는 소문과 미신이 크나큰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이런 면에서 볼때, <외딴집>은 미스터리 시대물이라기보다는 사회 고발물에 더 가깝다 하겠다.

사리사욕에 가득 찬 권력층들은 정보를 통제하고 사실을 조작하여 대중을 호도하고 공포로 몰아넣으면...

진실로부터 차단된 대중은 소문과 미신에 휘둘리게 되면서 서로를 불신하고 결국엔 죽고 죽이는 살육전까지 벌이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사람은 그냥 속으면 그만이고, 호와 우사처럼 진실에 근접한 사람이라면 죽거나 입을 다무는 것 둘 중 한가지 밖에는 다른 선택은 없다.

400여년 전 일본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근현대사의 한끝과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미야베 미유키는 <외딴집> 출간 후, 갖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에도 시대의 번 단위의 세계는 매우 작아서, 어느 정도의 높은 지위에 잇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민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살짝 보이는 것에도 매우 무서워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뭐라고 해 보려고 해도 아무것도할 수 없는 채로 도중에 좌절하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도망칠 곳은 점점 사라져 간다. 현대 소설에서 이러한 것들을 쓰기는 매우 힘듭니다. 지금이아면 인터넷을 무기로 하면 단 한 사람의 시민이 사회문제를 파악할 수도 있으니까요. 진실은 감춰져 있고, 호소할 수단조차 없던 시대를 살아 온 서민들은 거대한 권력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겠지요.


- 미야베 미유키 <외딴집> 편집자 노트 中-

 

'진실은 감춰져 있고, 호소할 수단조차 없던 시대'가 과연 일본의 에도시대 뿐이었을까?

이제야 할 것 같다.

<외딴집>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평가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힘없은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진실로부터 차단되어 자신도 모르게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인터넷이 발달된 정보화시대에는 진실왜곡과 여론조작이 불가능하다는 작가의 말은 지나치게 겸손하거나 순진함의 발로이리라.  우리는 어쩌면 모두 다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더욱더 교묘한 수단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여론이 조작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바다토끼가 뛰는 것을 본 '호'와 '우사'처럼 순식간에 뜻모를 불안감이 밀려든다.


시대를 막론하고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지배와 지위를 공고히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퍼뜨리는데 열심히였다. 진실로부터 차단된 대중은 마치 안개와 같은 무지(無知) 속을 헤매다가 불안과 공포속에 내몰려 결국은 지배계급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된다. 여기에서 말한 이데올로기란 거창한 이론이나 학설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통념과 분위기를 말한다. 더 이상 봉건제사회도 아니며 민주선거제도가 정착된 현대사회에서는 이를 일컬어 '정치'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입을 다물자, 바람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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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 - 슈퍼 차이나 거품 뒤에 가려진 위기들
랑셴핑.쑨진 지음, 이지은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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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에 번역 출판된 랑셴핑 교수의 책을 모두 세권 읽었다. 

첫번째는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이었고, 두번째로 읽은 책은 지난 2월 초에 읽은 <누가 중국 경제를 죽이는가>였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읽기 시작했으나 1/3만 읽은 채 손을 놓았다가 재도전(?) 끝에 최근 완독하게 된 책이 바로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라는  책이다.


이미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언론과 학문의 자유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는 중국에서 정부(공산당)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않는 사람의 '출현'에 적잖이 고무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랑셴핑 교수는 홍콩 출신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대륙인들보다야 훨씬 더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처지에 있긴 하지만, 역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앙 정부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기 위해선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저자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누가 중국 경제를 죽이는가>를 읽고 나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이 책은 마치 저자가 그동안 중국 공산당을 향해 쓴소리만 해댄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 위해 작정하고 쓴 책 같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일어난 티베트 독립시위를 비난하고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폭력 사태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해외 언론의 쓴소리에 대해 거치없이 반격하고 있다. 그런데 평소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기로 유명한 랑셴핑 교수가 중국 정부를 두둔하는 방면에 있어서 만큼은 이성을 잃은 것 같다. 하여, <누가 중국 경제를 죽이는가>라는 책은 다분히 '중국인을 위한 국내용'이라 하겠다.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랑셴핑 교수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해법이 돋보인다. 

책 은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 있는데, 이 중 중국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첫번째 파트(사면 초가에 몰린 중국 경제)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국유기업 개혁을 비판한 두번째파트와 문제 투성이의 금융정책을 언급한 세번째 파트는 솔직히 너무 지루했다. 이건 아마도 시시콜콜 관련 수치를 말하길 좋아하는 중국인 특유의 성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너무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안을 자세하게 설명하다보니 중국 상황 그것도 경제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나름 중국어를 전공했고 중국 사회를 일반인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나 역시 책장을 넘기고는 있지만 머리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아주 많았다.

솔직히 오기와 의무감 때문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리라.

해 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외국인들이 도저히 알 수도 없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는 구체적인 사안들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출판 전에 이런 부분들을 요약하거나 생략하여 출판했더라면 더 많은 한국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통해 랑셴핑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하다.

더도 덜도 아닌 '중국, 아직 멀었으니 더욱 분발하자!'에 다름 아니다.


사실 중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크게 보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건비 상승으로 국내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국제 무역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

둘째, 부동산 개발에 의지한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자산 거품을 만들어낸다는 점. 

셋째, 사회 공공 자원을 독점한 국유기업은 민간기업의 시장 진출 진출을 가로막은 채, 대중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


중국과 비스니즈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업 대 기업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대 국가의 형국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중국 기업이 다른 나라의 기업을 매수 매도하는 것은 사실상 중국 정부가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국유기업을 내세워 중국이 경제 분야 이외의 방면까지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유기업들이 외부적으로는 전세계 무역 질서를 어지럽히고 내부적으로 민간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량셴핑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4대 국유은행 그리고 3대 항공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중국 인민들에게 끼친 피해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는 두자리 수로 성장을 하는가하면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 경제가 휘청한 상황에서도 7~8%의 고성장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는 주로 국유기업을 필두로 한 시장 독점에 의한 성장일 뿐,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이 강해진 것이 결코 아니다. 하여,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엄청난 경기부양 정책으로 내수시장을 확대시킬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발언만 믿고 중국 증시에 '올인'한 전세계 투자자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중국 증시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비유통주식' 등을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국유기업들이 투자자들보다 먼저 이익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은행의 기업 대출 역시 국가와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국유기업에 대해서는 무분별한 대출을 일삼는 반면, 민영기업에 대해서는 대출을 옭아매고 있다. 그러니 원저우 등 소상인 경제가 활발한 곳에서는 사금융이 활약(?)하는 것이다.


랑셴핑교수는 진단만큼 명확한 처방 또한 함께 내렸다.

국 유기업은 민간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거나 민간기업이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에 집중할 것과 부패의 온상을 뿌리 뽑기 위해 무엇보다도 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기관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져 소수기관이 독점하고 있던 행정 권한을 분산시키고 행정 투명성을 높이라고 주문한다. 물론, 중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성이 높아지려면 언론의 자유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현재 중국의 반부패 척결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건, 국가 감찰기관도 아니고 공안 당국도 아니며 언론도 아닌 바로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이라는 사실은 중국 국가기관들과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CCTV등을 통해 종종 공개되곤 하는 중국 지도층의 권력 남용과 호화생활등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서도 한참이나 넘어섰다.

이제 중국인들은 부정부패를 척결할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자문해야 할 터이다.


권력 조직 자체가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부패에도 혹시 또 다른 '음모'가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 또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 반대파를 몰아내기 위해 혹은 일반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잠정적이고 일시적으로 작은 탐관오리만 무섭게 징벌하고 큰 탐관오리는 살아남는 것 등등이 대표적이리라.


암튼, 중국 사회가 한단계 더 성장하려면 겉으로 들어나는 GDP등의 숫자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고 내적인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 히, 가짜기름 멜라닌분유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사회의 먹거리 제품에 대한 불신은 일상사가 된지 오래다. 중국은 이제 자국산 제품이 전세계 쇼핑몰을 점령한 지금, 유독 중국산 식품만 세계인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리라.


중국 사회가 양적인 팽창이 아닌,  내적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랑셴핑 교수의 말은 새겨 들을 만하다. 


어떻게 해야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먼저 전 국민에게 제 발로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평등한 출발선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를테면 거주 이전의 자유나 공정한 기회, 복지를 제한하는 차별적인 호적제도를 폐지하고, 평등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기업에 공정을 추구하는 서비스형 정보를 제공하고 민간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제2부문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경우 현재와 같은 상황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 부족으로 임금이 자연스럽게 제1부문에 접근함으로써 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 간 임금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도 부자고 만들어주고 나아가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427~428)


그렇다면 서민을 중산층으로 만들려면 어떻게해야 할까?

결 론적으로 말해 소득만으로 중산층을 판단하는 현재 중국의 방식은 전부 틀렸다. 오해하지 말기바란다. 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 소득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득이 가장 중요한 혹은 유일한 지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전형적인 중산층 사회인 미국에서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양질의 교육, 전문지식과 직업 기술의 보유, 둘째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가시간, 마지막 요소는 뛰어난 자질을 지닌 주인 의식과 공중도덕이다. 그런 점에서 중산층은 행복하고 안정된 상태를 주로 가리키는데, 구체적인 소득이 얼마인가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경우를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굳이 정해야 한다면 의식주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여행을 가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다. (p437~438)


-랑셴핑, 쑨진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 중-



랑셴핑 교수의 위와 같은 지적은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교훈과 더불어 질문을 던져준다.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은 사회의 도움을 조금도 받지 않은 채, 100% 자신만의 노력으로 부를 일군 것이 아니기에 그 부를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기부 등과 같은 방법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것에 국한될 뿐 궁극적으로 가난한 이가 부자가 되도록 해주지는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국가의 개입 필요성과 법치 제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국가는 부자들로부터 합리적으로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예산을 분배하고 집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혹은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 더 나아가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를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싶다.  


과연, 우리나라는 '좋은 정부에 의해 좋은 정치가 실현되는 좋은 나라'일까?



어렵고 힘든 책이다.

그러나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중국을 한번 더 생각하고 아울러서 한국을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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