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 - 슈퍼 차이나 거품 뒤에 가려진 위기들
랑셴핑.쑨진 지음, 이지은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한국에 번역 출판된 랑셴핑 교수의 책을 모두 세권 읽었다. 

첫번째는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이었고, 두번째로 읽은 책은 지난 2월 초에 읽은 <누가 중국 경제를 죽이는가>였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읽기 시작했으나 1/3만 읽은 채 손을 놓았다가 재도전(?) 끝에 최근 완독하게 된 책이 바로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라는  책이다.


이미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언론과 학문의 자유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는 중국에서 정부(공산당)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않는 사람의 '출현'에 적잖이 고무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랑셴핑 교수는 홍콩 출신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대륙인들보다야 훨씬 더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처지에 있긴 하지만, 역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앙 정부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기 위해선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저자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누가 중국 경제를 죽이는가>를 읽고 나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이 책은 마치 저자가 그동안 중국 공산당을 향해 쓴소리만 해댄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 위해 작정하고 쓴 책 같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일어난 티베트 독립시위를 비난하고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폭력 사태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해외 언론의 쓴소리에 대해 거치없이 반격하고 있다. 그런데 평소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기로 유명한 랑셴핑 교수가 중국 정부를 두둔하는 방면에 있어서 만큼은 이성을 잃은 것 같다. 하여, <누가 중국 경제를 죽이는가>라는 책은 다분히 '중국인을 위한 국내용'이라 하겠다.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랑셴핑 교수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해법이 돋보인다. 

책 은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 있는데, 이 중 중국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첫번째 파트(사면 초가에 몰린 중국 경제)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국유기업 개혁을 비판한 두번째파트와 문제 투성이의 금융정책을 언급한 세번째 파트는 솔직히 너무 지루했다. 이건 아마도 시시콜콜 관련 수치를 말하길 좋아하는 중국인 특유의 성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너무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안을 자세하게 설명하다보니 중국 상황 그것도 경제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나름 중국어를 전공했고 중국 사회를 일반인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나 역시 책장을 넘기고는 있지만 머리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아주 많았다.

솔직히 오기와 의무감 때문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리라.

해 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외국인들이 도저히 알 수도 없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는 구체적인 사안들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출판 전에 이런 부분들을 요약하거나 생략하여 출판했더라면 더 많은 한국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통해 랑셴핑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하다.

더도 덜도 아닌 '중국, 아직 멀었으니 더욱 분발하자!'에 다름 아니다.


사실 중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크게 보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건비 상승으로 국내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국제 무역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

둘째, 부동산 개발에 의지한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자산 거품을 만들어낸다는 점. 

셋째, 사회 공공 자원을 독점한 국유기업은 민간기업의 시장 진출 진출을 가로막은 채, 대중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


중국과 비스니즈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업 대 기업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대 국가의 형국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중국 기업이 다른 나라의 기업을 매수 매도하는 것은 사실상 중국 정부가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국유기업을 내세워 중국이 경제 분야 이외의 방면까지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유기업들이 외부적으로는 전세계 무역 질서를 어지럽히고 내부적으로 민간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량셴핑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4대 국유은행 그리고 3대 항공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중국 인민들에게 끼친 피해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는 두자리 수로 성장을 하는가하면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 경제가 휘청한 상황에서도 7~8%의 고성장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는 주로 국유기업을 필두로 한 시장 독점에 의한 성장일 뿐,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이 강해진 것이 결코 아니다. 하여,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엄청난 경기부양 정책으로 내수시장을 확대시킬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발언만 믿고 중국 증시에 '올인'한 전세계 투자자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중국 증시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비유통주식' 등을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국유기업들이 투자자들보다 먼저 이익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은행의 기업 대출 역시 국가와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국유기업에 대해서는 무분별한 대출을 일삼는 반면, 민영기업에 대해서는 대출을 옭아매고 있다. 그러니 원저우 등 소상인 경제가 활발한 곳에서는 사금융이 활약(?)하는 것이다.


랑셴핑교수는 진단만큼 명확한 처방 또한 함께 내렸다.

국 유기업은 민간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거나 민간기업이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에 집중할 것과 부패의 온상을 뿌리 뽑기 위해 무엇보다도 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기관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져 소수기관이 독점하고 있던 행정 권한을 분산시키고 행정 투명성을 높이라고 주문한다. 물론, 중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성이 높아지려면 언론의 자유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현재 중국의 반부패 척결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건, 국가 감찰기관도 아니고 공안 당국도 아니며 언론도 아닌 바로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이라는 사실은 중국 국가기관들과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CCTV등을 통해 종종 공개되곤 하는 중국 지도층의 권력 남용과 호화생활등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서도 한참이나 넘어섰다.

이제 중국인들은 부정부패를 척결할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자문해야 할 터이다.


권력 조직 자체가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부패에도 혹시 또 다른 '음모'가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 또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 반대파를 몰아내기 위해 혹은 일반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잠정적이고 일시적으로 작은 탐관오리만 무섭게 징벌하고 큰 탐관오리는 살아남는 것 등등이 대표적이리라.


암튼, 중국 사회가 한단계 더 성장하려면 겉으로 들어나는 GDP등의 숫자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고 내적인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 히, 가짜기름 멜라닌분유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사회의 먹거리 제품에 대한 불신은 일상사가 된지 오래다. 중국은 이제 자국산 제품이 전세계 쇼핑몰을 점령한 지금, 유독 중국산 식품만 세계인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리라.


중국 사회가 양적인 팽창이 아닌,  내적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랑셴핑 교수의 말은 새겨 들을 만하다. 


어떻게 해야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먼저 전 국민에게 제 발로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평등한 출발선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를테면 거주 이전의 자유나 공정한 기회, 복지를 제한하는 차별적인 호적제도를 폐지하고, 평등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기업에 공정을 추구하는 서비스형 정보를 제공하고 민간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제2부문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경우 현재와 같은 상황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 부족으로 임금이 자연스럽게 제1부문에 접근함으로써 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 간 임금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도 부자고 만들어주고 나아가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427~428)


그렇다면 서민을 중산층으로 만들려면 어떻게해야 할까?

결 론적으로 말해 소득만으로 중산층을 판단하는 현재 중국의 방식은 전부 틀렸다. 오해하지 말기바란다. 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 소득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득이 가장 중요한 혹은 유일한 지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전형적인 중산층 사회인 미국에서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양질의 교육, 전문지식과 직업 기술의 보유, 둘째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가시간, 마지막 요소는 뛰어난 자질을 지닌 주인 의식과 공중도덕이다. 그런 점에서 중산층은 행복하고 안정된 상태를 주로 가리키는데, 구체적인 소득이 얼마인가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경우를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굳이 정해야 한다면 의식주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여행을 가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다. (p437~438)


-랑셴핑, 쑨진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 중-



랑셴핑 교수의 위와 같은 지적은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교훈과 더불어 질문을 던져준다.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은 사회의 도움을 조금도 받지 않은 채, 100% 자신만의 노력으로 부를 일군 것이 아니기에 그 부를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기부 등과 같은 방법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것에 국한될 뿐 궁극적으로 가난한 이가 부자가 되도록 해주지는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국가의 개입 필요성과 법치 제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국가는 부자들로부터 합리적으로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예산을 분배하고 집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혹은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 더 나아가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를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싶다.  


과연, 우리나라는 '좋은 정부에 의해 좋은 정치가 실현되는 좋은 나라'일까?



어렵고 힘든 책이다.

그러나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중국을 한번 더 생각하고 아울러서 한국을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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