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사람들 -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5
제정임.단비뉴스취재팀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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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맴도는 몇 가지 질문들...

 

도대체 우리 사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과연, 대한민국은 발전하고 있는가?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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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사람들>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생들이 만드는 온라인 신문 <단비뉴스>에 실렸던 특집 기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노 동, 주거, 보육, 의료, 금융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섯가지 핵심 문제에 대해 젊은 예비 기자들이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여 사실성을 높였다. 그리고 각 주제의 후반부에 취재 과정에서 느꼈던 점이나 향후 대책 등을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르포문학'의 한계인 대안 부재를 극복하고자 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었고 그 결과 많은 비정규직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기업은 정년보장과 4대 보험 등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단기간 비정규직 위주로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소나 관리 등등 기업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조차 비정규직으로 채운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이는 노조의 우산 아래에 있는 정규직 보호를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다큐멘터리 <밥, 꽃, 양>을 보면 사내식당 아줌마나 청소원 및 경비원들이 어떻게 제일 먼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하기야 정부도 비용절감과 경쟁력 향상이라는 미명하에 도로 청소 등 공공 분야를 과거의 직접 고용 형식에서 외주청소업체와의 계약으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니 무한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겠다. 중간에서 용역업체가 떼어가는 '몫'만이라도 현장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지급된다면, 통상 비정규직 임금이 현재와 같은 100만원대 초반의 저임금은 아닐텐데... 정말 안타깝고 아쉽다.

 

이 밖에도 청년실업 해소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서비스직'은 거의 대부분 감정노동으로 고용 상태가 불안정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낮은 임금으로 청춘의 열정을 빨아먹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특히, 기자가 직접 체험한 TM(텔레마케터)의 세계를 다룬 부분은 사실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텔레마케터를 자주 대하면서 느꼈던 짜증이 미안함과 안타까운 연민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공공주거 분야가 매우 취약함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잇었다. 주거 분야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도 미국보다 더 '시장화'되어 있었다. 특히, 건강보험 적용률이 60%밖에 되지 않다보니 나머지 비급여 부분은 전적으로 환자 본인이 책임지는 현 의료체제는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같다. 결국 이와같은 이중구조가 민간 보험 가입을 부축여 민간 보험 회사와 병원의 뱃속만 채우고 있지 않은가.

 

교육과 의료야말로 공익성이 가장 필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은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망각한 채, 시장경제 논리로만 접근하여 민영화시키려고만 하는데 그 대표적예가 바로 영리병원 도입이라고 한다. 특히, 대학교육은 국공립대학 비율이 매우 낮은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대비(전세계 30위) 대학등록금은 미국에 이어 전세계2위라는 지적에는 정말 이 나라 정부가 과연 누구의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보육 역시 공익 사업을 위주로 하되 민간은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영유아 보육의 80%를 민간에 내맡기고 있으니,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게 아닐까 싶다. 이미 어린이 보육 시설은 정부의 예산을 따먹는 '돈벌이' 사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보육 시설에서 보육자-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또 다시 저임금에 혹사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 파트에서는 '빚 권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흔히, 빚지는 사람들은 과소비를 하거나 무분별한 낭비벽이 있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사채 등을 빌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주택 보증금이나 갑작스런 병으로 병원비가 필요하거나 고액 등록금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사회 병폐는 별개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그 해결책 역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겠다.

일단,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되는 노동시장을 '동일노동-동일임금' 하에 안정적인 고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보호가 필요하지 않은 노동자는 지나치게 보호하고,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잘못된 구조에 빠져 있는 것이다.

파견직의 선두 주자인 일본 역시 비정규직이 사회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인식하에 다시 과거와 같은 노동 구조로 되돌아가는 추세라고 한다. 

 

복지란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필수 요건이다.

스웨덴 독일 등과 같은 복지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더 낮았던 60여 년 전부터 현재와 같은 복지 제도의 틀을 마련했다. 즉, 그들 나라가 잘 살기 때문에 탄탄한 복지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훌륭한 복지 제도를 구축했기 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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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왜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한 나라보다 더 자본가를 편애하는가?

우리 나라는 왜 세계화를 부르짖는 서구보다 더 세계화의 단점인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는가?

우리 나라는 왜 노동 시장의 유연화가 빈곤 등 모든 문제의 시작임을 알면서도 개선하려 하지 않는가?

우리 나라는 왜 보육, 의료, 교육 등등 공공부문을 어째서 민영화 시키려고만 하는가?

우리 나라는 왜 건강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영 의료 실비 시장이 발달되어 있는가?

우리 나라는 왜 국공립 어린이집이 그리도 적은 걸까?

우리 나라는 왜 대학 졸업해도 취직도 잘 안되는데 대학 등록금은 비싼걸까?

 

이처럼, <벼랑에 선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단비'와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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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들의 나라 -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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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 <긍정의 배신>이 가져다 준 충격의 여파가 아직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충격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부가 상향 재분배 되는 나라 미국,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직설적인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미국은 더 이상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지금이야말로 정치인과 자본가의 영악함과 권모술수 그리고 말바꾸기에 언제까지 속아 넘어가기만 할 것인지 자문해야 할 때라고 호소하고 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월가 점령 시위의 도화선과도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노동의 배신>의 저자이다. 그녀는 빈곤의 악순환(혹은 워킹 푸어 현상)을 증명해내기 위해 무려 2년 동안이나 직접 비정규직 일자리를 체험하였으며 그 경험담을 책으로 엮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혹시...?' '에이, 설마 아니겠지....'

의혹을 부인해 버리면 마음은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몸은 피곤해진다.

단순히 몸만 피곤하면 괜찮을 텐데 아예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 

 

초상류층으로의 부의 쏠림 현상은 생산과 소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중산층의 붕괴를 불러왔다.

사무직이건 생산직이건 해고의 위협 속에서 얼마 남지 않은 재화-부자들이 다 빼먹고 남은-를 놓고 죽을 둥 살 둥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협력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고 개개인으로 분열되어 고립되는 것이다. 

 

연이어 밀려온 아웃소싱과 대량 해고의 물결에 떠밀린 중산층은 날로 상승하는 의료비, 연료비, 대학 등록금을 대기 위해 버둥거렸다. 이미 탈산업화에 희생된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은 저임금 서비스 직종으로 내몰려 안전모를 벗고 대걸레를 손에 쥐었다. 빚을 갚기 위해 고금리 재대출 담보로 잡힌 집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못한 자녀와 손자들로 북적거렸다. 일터에서는 작업 효율만 강조되고 임금은 오히려 떨어졌다. 의료보험료가 주택 대출금이나 집세보다 더 높아지자 보험을 포기하고 진통제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오! 당신들의 나라> 머리말 中-

 

 

저자는 미국처럼 규제가 거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노동자는 더 가난해지며 중산층은 몰락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헨리 포드 같은 100여 전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야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살 수 있고 그래야지만이 회사가 더 많은 이윤을 챙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임금인상은 기업가의 이윤추구의 결과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은 어떠한가.

무엇보다도 공장에서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판매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윤을 거둘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

현 재 세계 최고의 부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놀이로 거액의 연봉과 스톡옵션 그리고 배당수익을 거둔 자들이다. 그런데 금융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므로 즉 사회 재화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가 돈을 벌었다는 건 그만큼 누군가는 돈을 잃었다는 의미다. 바로 '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공장을 떠난 자본가들은 고용 비용을 줄이고 시장을 장악함-여기에는 노동시장까지 포함됨-으로써 돈을 벌어야 한다.

이처럼 노동자를 쥐어짜면 창의성과 그것의 부산물인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렇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는 창의성과 혁신을 밑거름으로 한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절대 다수인 노동자의 '인건비 삭감'을 통한 기업 운영은 지속될 수 없다.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규제 완화와 청년 고용을 늘리기 위해 해고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터무니 없는 억지논리에 우리는 왜 좀 더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월가로 행진하라고 주장했듯 우리 역시 뭔가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외쳐되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민자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먹고 사는 그곳은 더 이상 우리의 목적지가 될 수 없다.

의료와 교육 등 공공분야에 대한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기는 정부가 다스리는 그곳이 우리의 롤모델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득과 협박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그런 그곳을 향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행동을 멈춰야 할 때이다.

우리는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다.

 

단비뉴스 취재진의 현장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벼랑에 서 있는 사람들> 역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용기 있는 도전에 얼마간의 '빚'을 지고 있디. 여러명의 그것도 젊은 예비 기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취재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절감했는데, 환갑을 훌쩍 넘긴 저자는 홀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저자의 열정과 용기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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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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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꾸베씨의 행복 여행> 이라는 책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읽고 나서, 오래된 궁금증이 되살아났더랬다.

"도대체 이런 책들을 돈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얇고 가벼운 교훈을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 책들이 전세계적으로 수십 수백만 심지어 수천 만부가 팔려나가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시멜로 이야기> <시크릿> 등등...


제목만 들어도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광고와 함께 초대형 베스트셀러 목록에 장기간 올라있었던 책들이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행복은 내 안의 인내와 긍정적인 사고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걸까...?'


자기개발서와 기업의 동기 유발 강연 등도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메세지를 담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 부정적인 관점과 현실적인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낙관과 개인의 반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행복전도사'나 '자기개발코치'등등의 수사어가 따라 붙은 강사들이 지상파 프로그램의 단골 초대손님이 되는가 하면, 강연 강좌 등으로 꾸며진 교양프로그램이나 토크쇼등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책임과 원인을 자기자신에게서 찾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마치 청년 실업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고생 모르고 자란 나태한 20대의 탓이며, 회사에서 해고된 4,50대들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며 매서운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어디 이 뿐인가? 가정과 육아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원더우먼'이 되어야 한다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누가 봐도 뻔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개인의 문제로 둔갑시키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세계관이 형성된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서부터다.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미국에서도 지난 90년대 초부터 긍정 심리학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마음먹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비현실적인 현상이 '긍정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나 보다. 말도 안되는 <시크릿>이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은 긍정 심리학이 불어닥친 원인과 배경 그리고 목적을 예리하게 지적한 시의적절한 책이라 하겠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미국 사회에 '긍정 심리학'이 휘몰아치게 된 배경으로 칼뱅주의의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구대륙의 기근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넘어온 초기 이민자들은 혹독한 환경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부는 곧 신의 은총'이요 '가난은 죄악이자 징벌'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엄격한 생활태도와 윤리적 잣대를 확립하게 되었단다.


초기 자본주의가 노동을 통한 생산력 향상을 위해 칼뱅의 운명예정설을 교묘하게 활용했다면, 그후 나날이 번창한 자본주의는 대중의 소비를 자극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낙관적 사고를 널리 장려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긍정 심리학의 모태가 되었다.


<긍정의 배신>은 바로 이처럼 '긍정적 사고'를 주장하고 칭송하는 이면에 기업과 자본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긍정적 사고는 미국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일종의 상징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본래 자본주의와 긍정적 사고 사이에는 내재적이고 자연스러운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막스 베버가 쓴 사회학의 고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가 엄하고 가혹한 칼뱅주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칼뱅주의는 만족을 뒤로 미루고 향락의 유혹에 저항하면서 열심히 일해 부를 쌓으라고 가르쳤다.

초기 자본주의가 긍정적 사고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반면에 후기 자본주의, 곧 소비자 자본주의는 긍정적 사고와 훨씬 더 죽이 잘 맞았다. 소비자 자본주의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개인의 욕구와 '성장'이라는 기업의 지상 과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문화는 더 많은 것(자동차, 더 넓은 집, 텔레비전, 휴대전화, 갖가지 종류의 신제품)을 원하도록 부추기고, 긍정적 사고는 소비자들에게 '당신은 더 많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으며, 정말로 그것을 원하고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한다면 실제로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경쟁 속에서 상품을 생산하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성장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의 이면이다. 당신이 경영한 기업이 도산하거나 당신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성공 필연성을 굳게 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고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금융 혼란의 여파가 중산층에까지 미치자 긍정적 사고의 전도사들은 점점 더 이런 부정적인 판정을 강조하고 있다. 낙담하고, 분개하고, 풀죽은 사람들은 '제물'이 되고 '눈물을 쏟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경고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머리말 中-


나의 오래된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어째서 유난히 긍정적 마인드와 낙천성이 행복이요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어째서 개인적 반성과 스스로 능력을 개발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강사들에게 기업(방송국 포함)은 높은 강연료와 출연료를 기꺼이 지불하는지 알 것 같다.

 

의문이 풀린 자리에 분노가 밀려온다.


 

초대형 교회 건물은 기업 사무 건물이나 본사와 흡사하다. 목사는 성직자용 예복이 아니라 주로 정장 차림이다. 종교적 상징과 상은 사라지고 없다. 게다가 핵심 철학에서 기업과 교회는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장애물을 극복하고, 긍정적 사고를 통해 바라는 것을 손에 넣으라고 한다. 더구나 목사들은 으레 자유기업 체계와 그것이 일반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내용에 찬동하기 때문에 기업과 교회의 유사성은 더욱 짙어진다.

(......)

하지만 초대형 교회와 기업 사이에는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교회는 다정하다. 아무도 당신에게 고함치지 않고, 불가능한 마감 시한을 설정하지 않으며, 당신이 미숙하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지 않는다. (......) 초대형 교회는 기업의 모습을 띠고 기업의 힘과 효율성을 그대로 보여 주면서도 무자비함과 공포라는 요소는 없다. 교회는 다운사이징을 해서 당신을 내쫒지 않는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p204~205-


 

 

저자는 종교와 기업은 점점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는 록콘서트홀을 닮아가고 성직자들은 기업의 CEO와 흡사하며, 기업은 마치 종교처럼 신비주의와 1인 우상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정말이지 예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위계질서의 꼭대기에 있는 CEO들은 급속히 변하는 세상사에 대해 올바른 직관과 육감을 가졌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는 새로운 자아상을 연출해 냈다. 구식 CEO들은 회사에서 뼈가 굵은 인물로 정상에 오르기 전에 여러 분야를 거치며 업무 전반에 통달했지만, 요즘엔 사업 분야와 무관해도 유명세를 내세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 CEO의 이미지는 유능한 관리자에서 지도자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현란한 지도자로 바뀌었다. 아무리 봐도 동기 유발 강사와 흡사하다. (...) 경영 컨설턴트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동기 유발 전문가들의 적잖은 영향을 받아 CEO들은 정장을 차려입은 인물이라기보다는 '카리스카 넘치는 선지자'라는 자아상을 갖게 되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p158~159-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이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대중들에게는 현명한 현실인식과 위기의식를 갖는 대신 낙관주의와 긍정적 사고를 퍼뜨려 소비를 부추기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술책'에 다름 아니었다.

 

긍정적인 사고가 질병에 더 강한 면역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낙천적인 태도가 암을 예방하지도 치료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과학적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골적으로 긍정을 강요당하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사회 구성원의 삶이 각박해질수록 긍정 심리학은 활개를 펼친다.

이런 무차별적 긍정 심리학에 대한 저자의 처방은 명쾌하다.


지금까지 인류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명한 근본 기술들은 모두 냉철한 경험주의에 철저하게 의존한 것이었다. 조짐이 상서롭거나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해서, 화살촉이 숨어 있는 들소를 꿰뚫고 뗏목이 물 위에 뜰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 안 된다. (...) 지금까지 이루어진 인류의 지적 진보는 우리가 사물을 자기 감정의 투사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장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파악하려 했던 오랜 투쟁의 결과다. 천둥은 하늘의 분노가 아니고, 질병은 신이 내리는 벌이 아니며, 마법이 사고나 죽음을 초래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가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그것은 이 세계가 인간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인과관계, 개연성, 우연이라는 자체의 알고리즘에 의해 전개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는 과정이었다. (...)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쾌활하게 생활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고 해도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데는 심리학자 줄리 노럼이 말한 '방어적 비관주의'가 필요하다. 조종사만 최악의 사태를 그려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운전자도 그렇다. 아무도 차 앞으로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가정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보다 부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p271~273-


 

긍정적 사고나 생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막연히 다 잘 될 것'이요 '생각대로 다 이루어진다'라고 여기는 대책없는 긍정주의야말로 우리를 사회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신의 은총'만 바라는 눈 먼 장님으로 만들고 기업만 배불리는 무분별한 소비 행태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자, 그럼 이제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고 믿었던 '멘토'들을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언니의 독설'은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걸까?

'청춘은 정말 당연히 아파야만 하고 방황해야만 하는 걸까?'

'행복이란 정말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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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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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상 참 쉽지 않다고만 생각했더랬는데...

시야를 가리고 있던 꺼풀이 한겹 벗겨지니,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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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을 읽어라 - 비합리적인 소비심리를 파고드는 100가지 마케팅 전략
로저 둘리 지음, 황선영 옮김 / 윌컴퍼니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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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의 '뇌'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행동과 생각을 조종하는 것을 ''NLP'혹은 '신경마케팅'이라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분야가 학문적으로 발전하기 훨씬 이전부터 상공인은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사실과는 다른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돈을 벌어들이곤 했는데, 우리는 이를 흔히 '상술'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장사치의 '상술'에 한두번 휘둘리고 나면 '학습효과'로 더 이상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TV와 인터넷 등 멀티미디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술'에 노출되어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TM(텔러마케터)의 전화에 판매 계약을 하고, 홈쇼핑 쇼호스트의 장점만을 부각시킨 달콤한 말과 '매진 임박'이라는 현란한 광고문구에 속아 물건을 구입한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배달된 택배 상자를 열어보고 만족한 경우는 아마도 손에 꼽을 만큼 적을 것이다. 오히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상품으로 실망한 적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쾌한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는 반면 기분 좋은 기억은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번 현란한 화면와 화려한 광고 앞에서 택배 상자를 열었을 때 실망했던 기분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이성적이라고 믿고 싶은 존재'인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마다 돈을 지불할때 느끼는 고통의 강도가 다르단다. 25%의 사람들은 고통의 강도가 너무 커서 쉽게 지갑을 열려 하지 않는 일명 '구두쇠'집단이고, 60% 정도는 중간 수준, 그리고 손쉽게 지갑을 열어 버리는-즉, 돈을 지불할 때 느끼는 고통의 강도가 약한-사람들이 15%정도라고 한다. 이와 같은 '지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반복적인 고통의 지점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다.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거나 카트에 담은 후 한꺼번에 계산하는 것 역시 각 품목을 선택할 때마다 돈을 지불하게 하여 지불의 고통을 반복, 상기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걸 마케터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초밥은 각 접시당 개별 가격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접시를 집어 들어 입속에 초밥 한개를 넣을 때마다 지불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아주 안 좋은 판매 방식이라는 저자는 주장에 십분 공감이 간다.

 

스포츠카를 판매하는가? 그렇다면 고객이 서류에 사인하자마자 새로 장만한 컨버터블을 몰고 갈 수 있도록 보장해주라. 비타민을 판매하는가? 여섯 달 치를 한꺼번에 사는 고객에게 유리하도록 가격을 책정하라. 지불 기한을 연기해주거나 비타민을 주기적으로 배송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우선, 판매하는 품목이 '욕구'에 관계된 것인지 '의무'에 관계된 것인지 알아내라. 그러고 나서 적절한 타이밍 전략을 수립하라. 인생과 비지니스에서 여러 가지가 그러하듯이, 고객의 욕구와 의무 간의 전쟁에서도 타이밍이 승부를 가른다.

 

 

-로저 둘리, <그들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을 읽어라> p274~275-

 

 

 

마케터들이 과소비집단인 15%의 사람들을 공략하기는 쉽지만 그만큼 경쟁자 또한 많다. 그러므로 대다수인 60% 집단과 구두쇠 집단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자는 매진임박이나 군중심리에 휩쓸릴 가능성이 큰 반면, 후자는 가격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마케터들은 꿰뚫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여 성별의 차이가 소비에도 나타나서 남자의 경우 과시하기 위한 제품에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을 지불할 확률이 큰 반면, 여자의 경우 명품일지라도 세일가격에 구입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남자는 세일에 구애받지 않을 만큼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하는 한면, 여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낭만적으로 점화된 남성들은 돈을 거침없이 썼고, 같은 그룹에 있는 여성들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맹렬히 나섰다. 남성이 자원 봉사를 하겠다고 한 경우는 드물었고, 여성들은 돈을 별로 쓰지 않았다. (...) 후속 연구에서 연구원들은 이런 과시적인 면모가 어느 정도나 공개적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낭만적으로 점화된 남성은 자신이 입거나 운전할 수 있는 것을 사는데 초점을 맞추고 집에 둘 수밖에 없는 품목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같은 그룹에 있는 여성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혼자 하는 활동은 기피했다.

 

-로저 둘리, <그들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을 읽어라>, p305-

 

 

이와 같은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특히 비영리단체의 경우 남성에게는 은근히 기부한 점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여성에게는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봉사 행위나 활동을 권유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 특히, 높은 곳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내려온 사람들보다 헌금함에 잔돈을 넣을 확률이 훨씬 높으며 높은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나 공중에서 내려다본 사진 등에 노출된 경우, 기부를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며 기부 금액 또한 커질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교회당이나 사찰의 대웅전은 주로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설계되어 있다!

 

 

이 밖에도 거울이나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사진이나 영상에 노출된 경우, 사람들은 훨씬 더 양심적으로 행동하며 너그러워진다는 점 또한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래서 교회나 행사장 입구에는 대형 거울이 걸려 있는 반면, 도박장에는 거울이 없다고 한다.

 

 

 

한편, 제품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 경우에는 전문가의 판단과 주장에 쉽게 휘둘리며 무엇보다도 가격에 따른 호불호가 큰 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와인이라고 한다.

 

 

와인 연구는 소비자들이 믿는 것이 제품의 실제 특성을 넘어 제품에 대한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해당 연구에서 소비자들은 '비싼 와인이 싼 와인보다 맛이 좋을 거야.' 또는 '캘리포니아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 노스타코타에서 와인을 생산하는지도 몰랐어!'와 같은 생각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객이 브랜드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제품을 사용할 때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도 큰 비약은 아닐 것이다.

(......)

고객이 100달러를 주고 와인을 샀는데 와인에서 식초 맛이 난다면 즐거운 와인 경험에 대한 기대는 끔찍한 맛에 의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 약간의 부조화는 극복할 수 있지만 둘 사이에 공백이 심할 경우 마케팅 전략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5달러를 주고 산 와인은 설령 맛이 없더라도 하루만에 잊어 버릴 수 있지만 유명한 포도주 양조장에서 산 50달러짜리 와인에서 썩은 코르크 마개의 맛이 난다면 불만 수준은 즉시 높아질 것이고 그 브랜드를 오랫동안 불신하게 될 것이다.

 

 

-로저 둘리, <그들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을 읽어라> p294~295-

 

 

식품 시식 코너에서는 유난히 작은 조각으로 잘라 놓곤 하는데, 이는 순전히 비용 때문만이 아니다. 맛을 충분히 느낄만큼 즉 욕구를 충족시킬만큼의 양을 제공하지 않으므로써 시식을 한 소비자로 하여금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제품을 구입하게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두 세개씩 집어 먹는 사람보다 한개만 집어 먹은 사람이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공짜 마케팅 전략을 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특정 계층을 소비자로 하는 경우에는 공짜 샘플을 지급하는 것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마트 입구에서 고양이 사료 샘플이 공짜로 제공된다고 하자. 비록 고양이를 키우진 않지만 고양이 먹이를 본 순간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이웃이나 친구가 떠오르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에게 가져다 줄 요량으로 한 두 개쯤 집어오기 마련이다. 물론, 이 샘플이 고양이 주인에게 제대로 도착한다면야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은 집안 어딘가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있거나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확률이 매우 크다. 마케터나 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원치 않는 결과이다.

 

 

공짜로 제공되는 샘플과 당첨확률 100%인 쿠폰 등이 모두 위와 같은 치밀한 계산과 고도의 전략에 따른 마케팅에 다름 아니라고 하니, 이 땅에서 현명한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과거 산업화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지 전까지는 물건에 대한 가치와 용도가 매우 중요했다. 그러므로 제작자나 판매자는 제품의 품질만을 있는 그대로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기업의 수익구조가 '무한생산 무한판매'로 접어들면서 물건의 용도나 품질보다는 소비 욕구를 조장하여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구입하게 만드는 쪽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소비지상주의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확장/팽창에 따른 부작용이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오싹해진다.

 

 

 

이 책은 인간의 부조리한 심리나 생각을 이용하여 물건을 판매하는 마케터를 위한 마케팅 전략을 다루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불온하고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한 책이지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들을 폭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향후 기업가에게 고용되어 소비주의를 널리 퍼뜨리는데 일조하는 전문가 그룹(의사, 변호사를 비롯하여 카피라이터, 모바일 프로그래머의 등등)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그들만 알고 있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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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3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최지향 옮김 / 부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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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화의 정의를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세계화는 이미 개개인의 일상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제품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세계를 무대로 생산되고 유통되며 최종적으로 소비된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국을 상징하는 '청바지'를 통해 세계화의 실체를 공개(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올바른 소비를 통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녀는 청바지 원료인 목화 주생산지 아제르바이잔에서 여전히 18,19세기 노예처럼 목화를 따며 연명하는 가이나와 목화 감정사인 메만을 만나는가 하면, 이탈리아의 청바지 원단 다자이너 파스칼과 캄보디아의 청바지 생산공장 여공인 나트와 라이를 만난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때론 신분 상승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물건 하나가 생산, 소비되기 위해서는 '원료 -> 가공 -> 생산 -> 유통 -> 소비' 라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며, 세계화란 바로 이와 같은 단계가 전세계를 무대로 전개됨을 의미한다. 물론 그 목적은 다름 아닌 '비용 절감'이다. 즉, 소비자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제품을 소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면의 원료인 목화를 생산하는 아제르바이잔의 시골 아낙네인 가이나는 청바지 한벌을 구입하지 못할 만큼 가난하며, 목화 감정사인 메만은 줄곧 하향곡선을 보이는 국제 목화 가격에 암울해한다.

 

우울의 그림자는 패션의 원조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내던 레글러의 원단 디자이너인 파스칼의 어깨 위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가 만든 데님 원단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혹은 남미의 여러 나라로 흩어져 청바지의 앞감 혹은 뒷감이 된다. 그리고 '원산지 표시 규정'에 따라 'made in 000'라는 꼬리표를 달고는 다시 유럽 대륙으로 돌아와 대형 매장에 걸린다.

 

흔히, 명품에는 만든 이의 '혼(魂)'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지난 수 백년 전부터 장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던 유럽의 명품은 더 이상 유럽산(産)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실체다.

물 론, 저자는 세계화가 캄보디아와 같은 저개발국가의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빈곤 탈출을 돕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식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또한 놓치지 않는다. 과거 독재와 빈곤 그리고 남여 성차별적인 전통문화의 희생양이었던 제3세계 여성들이 비록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 환경일지언정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면서 가족내 지위가 향상되고 인간적 자유를 만끽하게 된 것 또한 세계화 덕분(혹은? 때문)이리라.

 

저자는 노동자에게 합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의류 사업을 이끌고 있는 스콧과 로건의 이야기를 서두와 말두에서 다룸으로써 그들의 의미있는 '도전'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만약, 나라면 한벌에 100달러(스콧과 로건의 회사에서 만든 청바지들은 평균 1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가 넘는 소위 착한 청바지를 구입할 수 있을까?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이와 같은 소비 행위가 세계의 또 다른 이들에게 희망의 불꽃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갈등을 일찌감치 감지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한다.

 

아마도 핵심 질문은 소비자들이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지기 위한 추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가 아니라 더 많은 소비를 원하는 욕망을 자제할 수 있을 것인가가 될 것이다.

 

-에던, 희망의 청바지-

 

 

 

바로 직전에 읽은 조지 매그너스의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은 저자가 유엔(UN) 웹사이트에 올라온 인구통계자료를 분석하여 쓴 책이다. 반면, <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는 저자가 직접 현장을 누비고 관련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탄생한 책이다. 

 

소재도 주제도 전혀 다르고 책을 집필한 과정과 방식도 전혀 다르지만 나에겐 똑같은 의문을 가져다 주었다.

바로, 만약 그들이 미국인이 아니었더라도 이와 같은 책들의 집필과 출간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 출판이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다.


유엔에서 사용하는 공용어는 영어다. 그리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위상은 당연히 높기 때문에 각종 자료에 대한 접근도 협조 요청도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점은 레이첼 루이즈 스나이더에게는 더욱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가 캄보디아의 청바지 하청 공장을 방문하고 도움을 줄 '취재원'을 만나는 등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원청업체가 미국 기업이가나 최종 수입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 출신 르포 작가들에게도 과연 그녀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을까?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그들은 이미 세계화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으며, 이 점은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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