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3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최지향 옮김 / 부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세계화의 정의를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세계화는 이미 개개인의 일상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제품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세계를 무대로 생산되고 유통되며 최종적으로 소비된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국을 상징하는 '청바지'를 통해 세계화의 실체를 공개(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올바른 소비를 통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녀는 청바지 원료인 목화 주생산지 아제르바이잔에서 여전히 18,19세기 노예처럼 목화를 따며 연명하는 가이나와 목화 감정사인 메만을 만나는가 하면, 이탈리아의 청바지 원단 다자이너 파스칼과 캄보디아의 청바지 생산공장 여공인 나트와 라이를 만난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때론 신분 상승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물건 하나가 생산, 소비되기 위해서는 '원료 -> 가공 -> 생산 -> 유통 -> 소비' 라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며, 세계화란 바로 이와 같은 단계가 전세계를 무대로 전개됨을 의미한다. 물론 그 목적은 다름 아닌 '비용 절감'이다. 즉, 소비자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제품을 소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면의 원료인 목화를 생산하는 아제르바이잔의 시골 아낙네인 가이나는 청바지 한벌을 구입하지 못할 만큼 가난하며, 목화 감정사인 메만은 줄곧 하향곡선을 보이는 국제 목화 가격에 암울해한다.

 

우울의 그림자는 패션의 원조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내던 레글러의 원단 디자이너인 파스칼의 어깨 위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가 만든 데님 원단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혹은 남미의 여러 나라로 흩어져 청바지의 앞감 혹은 뒷감이 된다. 그리고 '원산지 표시 규정'에 따라 'made in 000'라는 꼬리표를 달고는 다시 유럽 대륙으로 돌아와 대형 매장에 걸린다.

 

흔히, 명품에는 만든 이의 '혼(魂)'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지난 수 백년 전부터 장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던 유럽의 명품은 더 이상 유럽산(産)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실체다.

물 론, 저자는 세계화가 캄보디아와 같은 저개발국가의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빈곤 탈출을 돕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식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또한 놓치지 않는다. 과거 독재와 빈곤 그리고 남여 성차별적인 전통문화의 희생양이었던 제3세계 여성들이 비록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 환경일지언정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면서 가족내 지위가 향상되고 인간적 자유를 만끽하게 된 것 또한 세계화 덕분(혹은? 때문)이리라.

 

저자는 노동자에게 합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의류 사업을 이끌고 있는 스콧과 로건의 이야기를 서두와 말두에서 다룸으로써 그들의 의미있는 '도전'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만약, 나라면 한벌에 100달러(스콧과 로건의 회사에서 만든 청바지들은 평균 1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가 넘는 소위 착한 청바지를 구입할 수 있을까?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이와 같은 소비 행위가 세계의 또 다른 이들에게 희망의 불꽃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갈등을 일찌감치 감지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한다.

 

아마도 핵심 질문은 소비자들이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지기 위한 추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가 아니라 더 많은 소비를 원하는 욕망을 자제할 수 있을 것인가가 될 것이다.

 

-에던, 희망의 청바지-

 

 

 

바로 직전에 읽은 조지 매그너스의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은 저자가 유엔(UN) 웹사이트에 올라온 인구통계자료를 분석하여 쓴 책이다. 반면, <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는 저자가 직접 현장을 누비고 관련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탄생한 책이다. 

 

소재도 주제도 전혀 다르고 책을 집필한 과정과 방식도 전혀 다르지만 나에겐 똑같은 의문을 가져다 주었다.

바로, 만약 그들이 미국인이 아니었더라도 이와 같은 책들의 집필과 출간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 출판이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다.


유엔에서 사용하는 공용어는 영어다. 그리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위상은 당연히 높기 때문에 각종 자료에 대한 접근도 협조 요청도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점은 레이첼 루이즈 스나이더에게는 더욱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가 캄보디아의 청바지 하청 공장을 방문하고 도움을 줄 '취재원'을 만나는 등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원청업체가 미국 기업이가나 최종 수입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 출신 르포 작가들에게도 과연 그녀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을까?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그들은 이미 세계화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으며, 이 점은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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