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리술사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8월
평점 :
추리장르소설이 매우 발달한 일본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작가 중 한명인 미야베 미유키의 시리즈 2막 중 제3편이다.
시리즈라는 걸 알았더라면 2008년도와 2010년도에 각각 나온 <흑백>과 <안주>를 먼저 읽었을 텐데
아쉽다. 신작을 굳이 찾아 읽지 않는 나로서는 의도치않게 최신작을 서둘러(?) 읽어버린 셈이 되었다.
<피리술사>에는 모두 여섯편의 괴담이 실려있다. 이 괴담의 청자는 에도의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의 오치카다. 열일곱 처녀인
그녀가, 원래는 주인 이헤에가 바둑을 두던 '흑백의 방'에 앉아 괴담을 들어주는 청자가 된 사연은 이렇다.
오치카가 집을 떠난 것은 작년 봄에 일어난 비극 때문이었다. 혼인을 목전에 두고 약혼자가 소꼽동무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가해자나 죽은
약혼자나 어릴 적부터 오치카와 친하게 지내온 청년들이었다. 그래서 두 청년 사이에 응어리진 감정과 갈등을 더욱 알아차리지 못했던 오치카는 사건이
벌어지자 슬픔보다 자책감에 더 깊이 빠져 영혼이 갈기갈기 헤지고 말았다. (......)
영혼이 부서질 정도로 비극적인 일을 겪은 젊은 처녀에게 어지간한 위로나 격려는 별 소용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치카가 이런 식으로
항간의 신기한 이야기, 업보 이야기, 온갖 인생담을 듣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실을 자아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수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
이 괴담 자리에 엄격한 규칙은 없다. 화자는 내키는 대로 말하되 감추고 싶은 내용은 감추어도 상관없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도 아무렴
상관없다.
화자는 말하고 버린다.
청자는 듣고 버린다.
그것만이 규칙이다.
-미야베 미유키, <피리술사> p17~18 中-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의미다.
슬픔의 한가운데에서는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오고가는 경우에는 화자보다는 청자의 마음수련이 더 중요해진다. 그
이야기가 신비롭고 무섭고 슬플수록...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의 어둠, 즉 괴담을 듣기 위해선 그 '알 수 없음'까지 귀로 듣고 가슴에 담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청자
노릇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말하고 버리고... 청자는 듣고 버린다... 는 이 규칙을 액면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때까지 수행을
쌓지 않으면 안된다.
첫번째 이야기는 서로 사랑하는 남여가 함께 모습을 비추어 보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연못에 관한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불안에 대한 경종이 아닐까 싶다.
"장수한 멧돼지에게 무슨 영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신은 몸에 낀 이끼를 위해 해마다 한번 목욕을 한답니다. 그때는 물고기도 못 살 정도로
깨끗한 물이어야 한대요. "
이노카미가 저택의 바로 뒤에 그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손거울처럼 동그랗고 조그만 연못이에요. 연못 건너편에는 작은 무덤이 있었어요. 이노카미 가 사람이 아니면 무덤에도, 연못가에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됐다고 합니다."
청정을 좋아하는 까다로운 신이다.
"그 신은 여자ㅡ그러니까 암멧돼지인데, 아주 오래전에 남편이 사냥꾼 총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노와 원한 탓에 그냥 멧돼지가
아니라 원령 같은 것으로 변해서 그 지역에 재앙을 내리게 되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덕이 높은 스님의 훈계를 듣고 참회하여, 앞으로는 이 고장
사람들을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고 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
거울 연못에 가까이 가는 일은 금기였다. 거울 연못에 제 모습을 비춰 보는 짓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금기를 깨면 어떻게 될까?
"멧돼지 신의 노여움을 사서 남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된답니다."
"남자에게 어김없이 다른 여자가 생겨요. 그래서 원래 함께하던 여자를 배반하고 차버리는 거죠."
-미야베 미유키, <다마토리 연못> p40~43中-
특히 남자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원래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상대방이라고 한다.
정말 짓굳지 않은가.
그러나 이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한가지 교훈이 담겨 있다고도 하겠다.
'사랑은, 시험하지도 장담하지도 말라!'
천재지변으로 함께 어울려 놀던 동무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시체조차 찾지 못한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은 어린 조지로는 꿈속에서 '숨박꼭질'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동무들의 시체가 발견된다는 <기치장치 저택>은 '죽은 귀신과 함께 놀았다'는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혼자만
살아남은 미안함으로 승화시켜 눈시울을 붉힌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무조건 두려워하는 건 불필요한 억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처럼 죽은 자와의 '조우' 혹은 '인연'을 강조(?)한 작품으로는 함께 실려 있는 <절기얼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24절기마다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빌려서 단하루 이승에 모습을 나타내는 죽은자들.....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이별의 정을 나누기도 하고... 구천을 헤매던 영혼이 이승에 잠깐 나타나 원한을 풀고 가기도 하고...
단, 영혼에게 얼굴을 빌려준 사람은 그림자가 서서히 흐릿해진다. 즉, 그만큼 수명이 짧아서 종국엔 '죽음의 강'인 삼도천(三渡川)을 건너가게 된다.
젊어서 나쁜짓을 많이 했던 하루이치가 병든 몸으로 본가에 찾아든 이유 또한 영혼에게 얼굴을 빌려주는 것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씻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하루이치는 굳이 죽어서 산자의 얼굴을 빌려 이승에 나타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죄를 갚는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아려왔다. 그리고 보면, 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란 없지 않을까... 싶다. 진심으로
사죄한다면 말이다.
알았다면 사죄하지 못할 죄가 있을까...?
떠나는 마당에 열번 백번이라도 사죄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문제는 본인조차도 알지못하는 죄가 아닐까...?
나도 모르게 그 누군가에게 엄청난 슬픔과 상처를 줬다면....?
이건 또, 어떻게 풀고 가야 할까...?
그래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자신의 원수를 죽음의 길동무로 삼기 위해 영혼이 죽음의 강인 삼도천을 건너지 않고 기다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저질러진 타인의 고통과 아픔 앞에서 우린 결국 죽음으로 빚갚음을 할 수 밖에 없단 말일까...?
'아, 스산해...'
표제인 <피리술사>는 몇 십년에 한번씩 여름에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 '마구루'를 퇴치하는 여인의 이야기고, 이 밖에도
감춰진 악행을 꿰뚫어보는 <우는 아이>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가랑눈 날리는 날의 괴담 모임> 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네편의 괴담을 들려주는 방식은 참 신선했다.
증축을 하면서 기둥을 거꾸로 세운 것을 고치지 않고 고집스럽게 우긴 결과, 새로 지어진 별채에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리는 괴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자신의 고집과 아집을 반성하지 않는 주인 양반은 결국 자신이 지은 별채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
자신의 남은 수명 10년과 뱃속 아기의 수명 1년을 맞바꾼 모정을 그린, 건너는 도중 넘어져서는 안되며 설령 넘어졌더라도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되는 나무다리 이야기...
사람의 병을 예견하는 애꾸눈 이야기...
원한에 사무친 영혼들이 밤마다 차례로 찾아와서 몸을 만지면 검게 썩어 들어가 결국엔 숨이 끊어진다는 이야기.... 등등...
하나같이 모두 흥미진진하다.
이야기에는 정말 놀라운 힘이 담겨 있는 거 같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순간,
근심 걱정따위는 가랑눈처럼 씻은 듯 녹아버리고...
한숨이 나올만큼 두 어깨를 짓누르던 고민들마저, 한줌의 새털처럼 가벼워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