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청소년 현대 문학선 10
이순원 지음, 이정선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게,

 내 19세의 신고식이었다.

 

이젠,

 정말 늘 푸르기만 해야 할......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사십대에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게...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다.

다시 십대의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게...

 

무엇보다도 머리로는 이해가 충분히 되나, 도무지 감정이 투척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라는 데에는 공감한다.

나 역시, 마지막 책장을 넘긴 다음에는 감동을 받았으니까...

물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동이라기보다는 잔잔하게 그러나 거듭거듭 몰려오는 파도와 같은 감동이라고 해야하리라... 

 

난 왠지모르게 자전적 작품에 많이 끌리는 편인데, 이 작품 역시 공간적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전적 작품같다.

작가도 고향이 강원도 강릉이고 상고를 나왔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정수처럼...

 

그렇다면...?

작가도 열일곱의 어느 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대관령에 올라가 고랭지 배추농사를 지었을까...?

대개는 부끄럽고 철없게 느껴지는 첫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준 승희누나와 같은 친구의 누나가 있었을까...?

 

"정수야."

"예."

"너, 누나 좋아하니?"

"......많이요."

"감격스럽다. 내가 정수 그 말 가슴속에 간직할게. 정수도 오늘 내게 했던 말 영원히 잊지 말고. 우리는 거기까지야. 지금 정수가 한 말이 아름다운 건 정수가 지금 내게 한 말도 아름답지만, 그 말을 하는 정수의 나이가 아름답기 때문인 거야. 아마 스무 살만 지나가도 그 말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몰라. 내 열여덟 살도 그랬거든. 선생님에게든 누구에게든, 어떤 때는 결혼한 선생님에게까지 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 다 아름다웠을 거야. 지금 정수도 그렇고. 그렇지만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똑같은 생각도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게 되어가는 것이 있어. 지나고 보면 정수 형에 대한 생각도 그랬고, 다른 생각도 그런 게 있었을 거고."

나는 눈이 가물가물한 배추밭의 능선만 바라보았다. 정말 누나가 그렇게 멋지게 말할지 몰랐다. 스무 살이 넘어 어느 한순간에 이르면 우리 마음을 보는 눈도 그렇게 깊어지는 것인지 몰랐다. 누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먼저 한 내 고백이 부끄럽지 않게 따뜻하게 내 마음을 만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그 고백을 앞으로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훗날 서른쯤 나이를 먹어, 또 마흔이나 쉰쯤 나이를 먹은 다음 오늘 이 시간을 다시 생각할 때 지금처럼 그때도 그것이 부끄럽거나 철없지 않고 아름답게 추억되었으면 좋겠다고. - 이순원, <19세>  p215~217 中-

 

이 부분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만약,

철부지 시절의 어설픔으로 아련한 추억 대신 '풋ㅡ'하고 웃음이 나온다면, 그 사랑은 '첫사랑'이 아닌 '풋사랑'이었으리라...

이런 감정의 경험을 꼭 '사랑'이라 불러야 하는지 난 참으로 유감이다. 이건 그냥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금은 색다른 감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무릇, '첫사랑'이라면...?

이처럼 정수와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애틋하고 소중해서, 솟구치는 본능적 욕망조차 넘어서 버리는 그런 어떤 거 말이다...

 

여자가 상을  치우고, 벽장문을 열어 요를 내려 깔고, 자신의 속치마의 어깨 끈을 풀 때까지만 해도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의 어른 세계에 대한 적당한 두려움과 적당한 설레임, 적당한 흥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아니, 참으로가 아니라 그 어떤 말로도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그 뒤끝은열 배의 두려움과 열 배의 어둠보다 더허망하고도 허망하던 어른의 선이 있었다. 지난 가을 책과 책가방, 교복을 불 싸지를 때보다 더 크고 깊은 죄의식이 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스며들며 슬픔의 강을 이루던 것이었다. 내 살에 닿아 있는 여자의 몸조차 벌레의 그것처럼 보이던 것이었다. 나는 거칠게 여자의 몸을 밀어냈다. - 이순원, <19세> p203~204 中-

 

 

이 순간, 정수가 참 부러웠다. 

주인공 정수처럼 어른이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처럼 강렬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19살이 내게도 있었더라면...

 

그리고,  

많이 배운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갖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부모다운 부모님을 둔 정수가 너무 부럽다. 

 

"사람이 늘 그렇게 살 것도 아닌데 편한 걸 알면 꾀가 나게 된다. 편한 걸 알게 되면 지 사는 데가 싫어지고 며칠 살아본 편한 곳만 자꾸 생가갛게 돼. 니 거기 가서 공부 잘했다니 애비도 좋긴 하다만, 불편하게 사는 사람은 불편한 게 무엇인지도 알고 또 참고 커야 한다. 지금 그게 그렇게 돼 있는 니 몫이면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아나?" -p049

 

"나중에 커보면 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공부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나지 안흔다.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의 차이도 그렇고. 그렇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적게 읽은 사람의 차이는 몇 마디 얘기만 나눠봐도 금방 눈에 보인다. 니가 대관령에 가서 농사를 짓든 뭘 하든 애비가 보내주는 책만 제대로  챙겨 읽는다면 학교 공부 손을 놓는다 해도 어디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게다." -p145

 

"그래. 그동안 니가 지은 건 농사가 아니다. 운이 좋아 남이 만지지 못한 돈을 만지긴 했어도 그거야 농사랄 것도 없이 노름이고 장난인 거지. 너는 그걸로 무얼 벌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만 더 크게 잃은 것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냥 허송세월을 한 시간만은 아닐 게다 .그건 앞으로 니가 하기 나름인 게지." -p220

 

그나저나,

작가에게도 이런 부모님이 계셨을까?

왠지 그랬을 것만 같다.

 

이젠 부모가 되었을 나이인 작가에게도 정수같은 아이가 있을까?

왠지 그럴것만 같다.

 

 

진솔함과 솔직함으로 무장한 '각주'를 보면, 이런 내 추측이 단순히 억측만은 아니라는 걸 미루어짐작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99년도에 쓰여졌으니 1957년생 마흔줄에 접어든 작가가 십대인 자신의 자식을 키우면서 20여년 전 십대의 끝으로 되돌아간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열일곱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정수는...

마침내,

어린 시절 잠시 기르다 날려 보낸 파랑새를 다시 가두듯 그렇게 열아홉에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2년동안 한 건, 어른노릇이 아니라 어른놀이였음을 깨달았기에...

 

왠지 그 기간동안 내가 했던 것은 어른 노릇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른 놀이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내 가슴을 무겁게 하던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 다시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 스무 살이 된다고 해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된다 해도 그 일에 대해 어떤 후회거나 미련 같은 것이 남는다면 그때에도 내가 하는 짓은 여전히 어른 노릇이 아니라 어른 놀이일 것 같은 생각이 들던 것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다하고 있는 어떤 것을 나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어떤 후회거나 소외감처럼 조금씩 내 가슴에 스며들어 오던 것이었다.

- 이순원, <19세> p219~220 中-

 

 

이렇게 정수의 열아홉 성인식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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