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 몸에 관한 어떤 散 : 文 : 詩
권혁웅 지음, 이연미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그를 일컬어 '감각을 육화'하는데 전문인 시인이라고 하더라. 

과연 맞는 거 같다.

난, 그의 이름을... 그의 시들을... 최근에서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두근두근>과 김소연의 <마음사전>을 읽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함께 같이 읽게 되었다.

 

둘 다,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고.... 몸을 마음으로 등가시켜 표현하고 있었다. 어딘가 낯설다. 그래서 더 좋은 걸까? 그렇지도... 혹은 아닐지도...

 

흐릿한 빨강색 표지에 7~8cm는 족히 될 법해 보이는 두께의 <두근두근>은 시집이라기 보다는 낙서장(?) 혹은 메모장(?)에 더 가깝다. 시인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으며 시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와 함께 읽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래서 또 찾아봤다.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를....

그랬더니, 몇 편의 시들이 통째로 건져올라왔다.

 

<섬-코1>

조그마한 향기에도 출렁이는 섬이 있다고 합시다

익사가 아니면 익명이라고 합시다

들고나는 일이 부등가교환이어서

한번 든 이들이 무덤처럼 쌓여갔다고 그래서

그곳이 무인도거나 선산 같은

위장전입한 주인의 몫이라고 합시다 그가 없는데도

물 풍선처럼 터지는 향기를 어떡해야 하겠습니까

멱 따는 소리로 꿀꿀대는 이 안절부절을

어디에 버려야 하겠습니까

 

 

<혀 끝에 맴도는 이름 -입술6>

그녀가 내 입안에서 윤곽을 이루었습니다

긴 머리카락이 식도를 타고 흐르거나

실개천에 놓인 징검돌처럼

젖은 얼굴이 만져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더듬거릴 때마다

풀잎을 구르는 물방울처럼, 순식간에,

그녀가 무너졌습니다

그것은 수사(修辭)도 수격(手格)도 아니었으나

공들이지 않고서는

하나의 표정도 불러낼 수 없었습니다

성과 이름 사이 가로놓인

강물을 건너갈 수 없었습니다

한 번 이름 부르는 일이

어떤 이에겐 평생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지나간 후에야 다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앉은 자리에 -엉덩이1>

내가 앉은 자리에 네가 거듭해서 앉는다면

휘말린 먼지들이 혹은 가라앉고 혹은 떠돌아

동심원 두 개가 고요하다면

거기에 내 손을 가만히 얹는다면

그 자리가 번져나가 끝내 너를 적신다면

 

 

 

역시, 시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었다.

우선, 눈으로 바라본 다음, 마음으로 새긴다.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거들랑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봐야한다.

손가락을 움직거려 시를 적어보니 새롭다. 그리고 좋다. 눈으로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수위표>

네 머리카락은 검은 강물이다. 너를 쓰다듬을 때면 내 손에서 네가 흘러간다.

그때 내 손의 마디는 수위표(水位標)이다. 아, 나는 네게 이만큼 잠겼구나. 

 

<교차로>

길이 인생에 대한 은유라면, 교차로는 사랑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먼지의 길>

마음은 늘 비포장이었다. 왜 그리 불퉁거려야만 했을까.

 

<사랑을 건너가는 두 가지 방법>

첫 번째는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 횡단보도는 일종의 사다리다. 이곳의 사랑은 오래 기다리는 사랑이며, 천천히 조금씩 디뎌야 하는 사랑이며, 주어진 시간 안에 건너야 하는 사랑이다.

두 번째가 무단횡단이다. 이 사랑에는 이곳저곳도 없고 지금과 나중도 없으며 중앙선도 없다. 누가 건너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생(平生)을 질러가는 덤프트럭과 붉은 티켓을 마련해둔 경찰을 피해야 하는 필생(畢生)이 있을 뿐이다.

 

<버짐나무에 핀 버짐처럼>

그렇게 마음이 번져가는 오후가 있습니다. 마른버짐을 쏟아내는 저 나무처럼 그늘진 오후가 있습니다. 틈틈히 햇빛을 허락하는 저 그늘처럼 성긴 마음이 있지요.

버짐의 경계는 희미합니다. 물을 잘못 뺀  청바지처럼 희미하지요. 제 풀에 풀어지는 것을 허락하는 오후입니다.

어떤 입술도 받아들인 것 같은 번짐이지요.

 

<백락과 천리마>

"세상에 백락(천리마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명인)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가 있는 것이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한유) 비단 인재(人才)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랑에 빠진 자들은 모두 백락이다. 내가 그이를 발견했어, 그이처럼 착하고 멋지고 능력 있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없어. 그런 이가 왜 없겠는가. 그건 그이의 속성이 아니라 사랑의 속성이다. 천리마가 늘 있지만 백락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듯, 사랑할 만한 사람은 늘 있지만 그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실어증>

사랑에 빠진 자의 말은 점점 실어증을 닮아간다. 그의 말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짧은 단문으로 점점 축소되어간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어떤 말도, 그 말로 다 흘러들어간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에는 이전도 이후도 없다. 이전 말은 그 고백을 향해 가는 긴 정서적 논증의 과정이며, 이후 말은 그 고백을 추인하는 동어반복이다. 

 

<할증>

그리움에도 할증이 붙는다. 밤이 깊을수록 더욱더 생각난다고.

 

<엎질러진다는 것>

내 마음은 이런 것, 그 누군가 나를 건드린다면 언제라도 엎질러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이는 어디에 있는가. 엎질러지는 내 앞에? 아니다, 그이는 내 엎질러짐 속에 있다. 

 

<안심>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안쪽에 있는 것, 그것이 안심(安心)이다.

 

<비트박스>

아, 그이가 내게 걸어왔어요. '두근두근'이 발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란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

.

.

이 책 제목이 '두근두근'이다.

설마...? 싶어 찾아보니 두근두근은 부사로 '몹시 놀라거나 불안하여 자꾸 가슴이 뛰는 모양'이란다.

두근두근 울려대는 마음을 뚜벅뚜벅 소리내는 발(足)로 육화(肉化)시켰다.

아, 기가 막히는구나!

 

나, 지금...

두근거린다.

그의 시가 뚜벅뚜벅 내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오니 마음이 두근두근...두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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