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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류헝.츠리 지음, 김영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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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리는 우한(武漢)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여류소설가이다.

 

 

 

그녀의 단편 <번뇌인생>은 창장(長江)강-한국인들에게는 양쯔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 도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우한시를 배경으로 한다. 압출 작업장에서 조작공으로 일하는 인자호우는 아내와 네살배기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의 일상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버스와 연락선을 갈아 타고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은 길거리 음식인 냉국수로 대충 때운다. 더운 국수보다 냉국수를 더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먹는데 시간이 덜 걸리기 때문이다. 한편, 말썽꾸러기 어린 아들은 피곤에 절어 사는 그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귀찮을때가 훨씬 더 많다.

 

 

인자호우가 얼른 아이를 껴안으려 했지만, 아들이 그 아가씨에게 마침 상처 부위를 차였다. 레이레이가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자 그의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귀가 움찔거렸다. 아들은 그의 어깨에 매달리면서 찰싹 하고 그 아가씨의 빰을 한 대 때렸다.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그 아가씨는 잠시 멍해 있다가 갑자기 엉엉 울어버렸다.

두 부자는 완전히 승리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아들은 가슴을 쑥 내밀고 배를 집어넣으며 아주 흡족해하면서, 작은 엉덩이를 불룩 내밀고 깡충깡충 뛰었다. 인자호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었다. 그는 왠지 아들처럼 기뻐할 수가 없었다.

-츠리, 번뇌인생 中-

 

 

단위(單位: 직장) 역시 인자호우에게는 자아실현의 장(場)이라기보다는 약육강식의 원칙이 철저히 지배하는 정나미 떨어지는 곳일 뿐이다. 직장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집도 아직 배정받지 못했고 순번제로 돌아가는 장려금마저 인자호우가 탈 차례가 되자 평가제로 바뀌어 3등으로 밀려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이 그에게 쥐꼬리만한 월급말고 부여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직속 여자 부하인 야리와의 로맨스일 것이다.

 

 

야리가 깔깔거리며 예쁘게 웃었다. 얼굴이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 그녀가 말했다.

"인생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한 명만 얻어도 족하느니라."

인자호우는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야리는 종종걸음을 치다가 훌쩍 뛰어 분홍색의 협죽복숭아꽃 한 송이를 따서 공중으로 후 불어 날렸다. 마치 한 마리 새끼사슴같이 천진하고 발랄한 모습이었다. 실룩거리는 엉덩이와 솟아오른 가슴이 아주 섹시해 보였다.

(......)

야리는 여인이 자주 사용하는 고통스럽고 쉰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미 결심했는걸요. 아무것도 원하는 건 없어요. 영원히 원하지 않아요. 선생님도 절 원하지 않으세요?"

인자호우는 말했다.

"야리, 너는 아직 너무 어려......"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요!"

"너 아직 모르겠니?"

네, 몰라요! 선생님 솔직히 말해 보세요. 사실은 절 좋아하지 않는 거죠?"

"아니야! 내가 왜 널 좋아하지 않겠니"

"그럼, 왜요?"

"야리, 이해 못하겠니? 넌 우리 집에도 온 적이 있잖니?"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나는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데. 전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선생님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돼요. 그건 너무 재미없고, 힘들고 사람을 매몰시키는 거예요."

인자호우의 머릿속에서 웅웅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츠리, 번뇌인생 中-

 

 

의식주 문제도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랑은 사치일 뿐이다. 인자호우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매몰차게 그 사랑을 거절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사람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한 늪과 같은 삶 속에서 피어난 한송이 연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인자호우의 정신적 외도는 분명 부부간의 순결 서약에는 위배되지만 기껏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작가는 어쩌면 인자호우라는 인물을 통해 삶의 조건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범인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성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발현되는 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간성을 발휘하고 도덕성을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성인 군자도 상황이 허락되어야지 마음 먹는다고 누구나 성인 군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츠리의 <번뇌인생>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최선을 다하지만 형편은 좋아질 기미가 없는 인자호우, 생활의 무게에 찌들대로 찌들어 버린 그의 안내, 어린 아이다운 동심보다는 제 몫을 먼저 챙기는 걸 배워버린 아들 레이레이......

 

인간이 이처럼 연약한 존재라면 우린 자기 자신을 최대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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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류헝.츠리 지음, 김영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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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두>와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의 원작가인 류헝(劉恒)은 중국의 신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원작이 <白涡>인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는 성공한 중의학 교수 저우자오루라는 인물을 통해 중년의 일탈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접해왔던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문학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류헝의 작품은 과장이나 해학이 없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석도 없다. 뭔가 끊임없이 설명하고 강조하려는 여타의 중국 작품들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 류헝은 권력지향적이고 위선적인 주인공을 통해 상류 지식층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작은 핸드백이 흔들렸다. 그녀의 집은 동47조에 있었다. 30분 안에 그녀는 남편과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 앞에서는 이렇게 나긋나긋하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다른 남자의 체취를 지니고 집에 들어갈 것이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전히 그였지만 이미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의 그가 아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는 순결했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전혀 새로운 체험을 한 뒤 비열하게 변해버렸다. 그는 만약 이런 자신이 비열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세상에 비열함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열함을 숨길 수 없었다.

-류헝,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중-


 

 

문제는 바로 새로운 감정인 체험인 것이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모든 것이 안정 궤도에 오른 저우자오루에게 여제자인 유부녀 화나이칭과의 밀회는 충분히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러나 어긋난 밀회에 빠진 현실의 남자들이 그렇듯 저우자오루는 가정과 직장 그 어느 것 하나 잃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밀려드는 죄책감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화나이칭의 요부기질탓으로 돌려버린다. 여기에서 화나이칭이 성공하기 위해 '미인계'로 저우자오루를 이용하려했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저우자오루라는 인물을 통해 혼외정사를 하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거울에 비추듯 과장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는 여자에게 유혹당한 연약한 남자였다. 그는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해쳤다. 아마도 화나이칭만은 예외일 것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이런 사랑은 그를 현기증 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기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그녀의 육체만을 사랑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 육체는 소속된 곳이 없는 고립된 여성의 육체 같았다. 그는 그녀를 떠올릴 때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화나이칭으로 위장하여 존재할 뿐 인격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믿을 만한 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든다.

 

-류헝,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중-


 

 

 

저우자오루는 화나이칭이라는 타자에 의해 자기 존재를 재확인하고 있다. 자신을 열어 타인을 맞아들임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사랑이라면 저우자오루의 자기 고백은 놀라울 만큼 솔직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육체를 사랑하며 그녀의 육체 안에 깃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우자오루는 강단 위에 섰다. 믿음 가득한 자세로 전체를 주시했다. 그는 자기의 형상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형상이다. 형상은 모든 것을 대표한다. 속마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누가 그의 영혼을 똑바로 볼 수 있는가? 아마 그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

그는 박수소리에 현기증이 났다. 이는 그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몽롱한 가운데 그는 몸이 마치 제비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가고 싶은 곳으로 바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는 천마처럼 빨리 달리고 있었다.

소리 하나가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조심해! 그는 웃었다. 그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았다. 저우자오루는 이미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류헝,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중-


 

한여름의 소나기가 지나갔다.

옷이 좀 젖었을 뿐이지만 햇살에 금방 마를 것이다. 그리고 주변은 비내리기 직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오히려 빗물에 젖은 만물이 더욱 생기발랄해지듯 저우자오루는 더욱 더 여유있어지고 강해질 것이다.

어느 분야나 세계인에게 어필하려면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지극히 지역적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류헝은 중국 사회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세계는 중국이라는 한나라의 범주 안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작품의 소품은 물론 지극히 중국적인 것이지만 그가 침잠하는 주제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집중되어 있다. 회자되는 것처럼 만약 중국 대륙 작가인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된다면 그건 그의 작품 세계가 너무도 '중국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지극히 '중국적'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현재, 한국에 번역된 류헝의 작품은 이 작품외에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과 신사실주의 소설선에 몇 편의 단편들이 소개되었을 뿐이다. 앞으로, 그의 작품들이 더 많이 번역 출판되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번역에 대해 언급하자면 어느 블로거가 지적한 바대로 역자는 어째서 원제목인 <白涡:하얀 물보라>대신, <사랑이 지나간다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라고 옮겼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참고로, 이 책의 역자가 류전윈의 작품 <一地鷄毛>를 <닭털같는 나날>로 번역한 것을 보고 '한국독자들에게 어색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어감을 줄 수도 있는 표현으로 굳이 제목을 직역을 해야 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중국적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함으로 이해했었다. 근데 이번 작품의 제목은 그때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지나치게 의역하여 원작가의 의도와 원작품의 분위기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중국의 전통 의학인 中医学를 중의학으로 번역해도 되는데, 한의학으로 번역한 것이 눈에 띄였다. 물론, 한의학이 중의학과 비슷한 부분이 많고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과 한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오랜 세월 밀접한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토불의(身土不異)적 관점에서 볼때 한의학과 중의학은 상당히 유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한국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이 곧 중국의 전통 의학인 중의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허균의 <동의보감>이 중국의 <본초강목>을 그대로 옮긴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중의학이란 표현 대신 한의학이란 표현으로 번역한 것은 아무래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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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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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잘 넘어간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옳소!'이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고문이 적당히 섞여 있고,

친절하게도 단원의 시작과 끝을 해당 단원의 줄거리 요약으로 시작하고 끝맺는다. 

첫눈에도 잘 팔리게끔 만들어진 '책'임을 알 수 있다.

 

손자병법은 춘추전국시대에 쓰여진 병법서로써 종이조차 발명되기 이전이라 나무편(片)에 적어야 했기에 최대한 글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최소한의 글자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기에 손자병법은 읽는 이의 시선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시대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 신문기자인 저자의 눈에 손자병법은 이기기 위한 방법이 아닌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을 역설하는 책으로 다가왔나 보다. 좋은 지적이다. 그 많은 병법 중,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과 '36계 줄행랑'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만큼 손자병법의 핵심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지지 않고 또한 끝까지 살아 남는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수단은 마음 아니면 이익, 이 두가지 뿐이다.

돈이든 지위든 명예든 체면이든 이익이 주어지면 사람은 움직인다.

이익이 아니면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 또한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심, 다른 하나는 속임수이다.

진심이 전해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가 좋지만,

자기 속을 남에게 다 보여주고 산다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진심을 전한답시고 자칫 자기 패만 보여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속임수를 자주 썼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中-


그러므로 강상구의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욱 절박해진 현대인에게 '속임수를 써서라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라'는 메세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이리라. 

 

이처럼 고전을 재해석한 책들은 어려운 원문 번역서 대신 쉽게 해석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기에 좋아 보이지만, 바로 이러한 점때문에 혜안을 갖고 있는 독서가라면 멀리해야 하는 책이다.

 

물론 기자출신 글쓴이는 손자병법에 대한 분석으로 해박한 지식을 쌓았을 것이고, 그 결과물이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라는 한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요즘, 서점가에는 독서평이나 책읽기에 관한 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형의 책들은 저자로서는 책도 읽고 책도 냈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되겠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저 뭔가 읽고 있다. 혹은 읽었다라는 심리적인 만족감만 느낄 따름이다. 시간을 보내거나 정신적 휴식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독서는 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 역시 최근 멋모르고 덥썩 집어들었다가 아니 읽느니만 못했던 책이 바로 정민교수가 쓴 <다산선생의 지식 경영법>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다선 정약용은 정말 훌륭한 독서가이자 필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를 제외하면 방대한 그 책속에 언급된 다산 정약용식의 책 만들기 기술은 단 하나도 습득하지 못했다. 물론, 나의 독서력이 빈약하여 아직 그만한 책을 '내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때문일 터이지만. 

 

무릇, 간접경험의 최고라는 '독서' 역시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고 책 속에서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만큼은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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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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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된 책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명작도 있지만 동시대인이 발간한 책들은 유난히 유행을 탄다. 특히, 자기개발서나 경영재테크 분야의 책은 출간된지 1~2년만 지나도 올드(old)'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초판이 90년대 말에 나왔으니 출판된지 10년이 훌쩍 지난, 말 그대로 올드 중에 올드가 되버린 책이다. 지난 세월동안 너무 많이 알려진 탓에 신선함이 다소 떨어져 식상할 법도 하련만 오히려 행간에 담겨 있는 글쓴이의 진정성에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자기개발서로는 보기 드물게 유행을 타지 않는 '좋은 책'이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재능의 한계에 대한 '꾸짖음'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렇지만 야박하다고 글쓴이를 탓할 생각일랑은 추호도 없다.어쩌면 처음부터 눈꼽만큼의 능력도 타고나지 않았건만 각고의 노력으로 없는 '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인생을 낭비한 것은 아닌가 싶어 눈사위가 자꾸만 떨렸다.



하고 싶지만 잘 못하는 일은 그대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다.

옷소매조차 스치지 못한 인연이니 잊어라.

하기 싫지만 잘하는 일 역시 그대를 불행하게 만든다.

평생 매여 있게 하고, 한숨 쉬게 한다.

죽어서야 풀려나는 일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연결시킬 때 비로소

그대, 빛나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


(중략)


물론, 감성지능이 높아 자제와 인내력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재능은 떨어지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본문 中-


 


애당초 인연이 아니면 아닌 것을...

사람도 돈도 명예도 다 인연인 것을...

끊어질듯 간신히 이어지는 가느다란 줄을 기어이 이어 붙여 '인연'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며 살아들 간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알고, 타인의 삶이 아닌 나다운 삶을 꾸준히 추구해가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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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의 책읽기 - 내 삶을 리모델링하는 성찰의 기록
유인창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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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하나만을 먹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그렇다고 꿈꾸기마저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마흔이란 나이는 바로 이런 나이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사람이 나이 40에 이르면 '미혹한 것이 없다'하여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일컬었지만, 마흔을 건너본 사람은 안다. 마흔이 얼마나 마음을 위태롭게 하고 마음을 뒤흔드는 나이인지를 말이다.

 

 

나이 40을 왜 '마흔'이라 하는지 아는가.

바로, 마음이 흔들린다를 줄여 마흔인 것이다.

 

썸네일

온 마음을 다해 살아온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과연, 이 삶이 내가 원했던 그 삶이었는지'

'혹시, 다른 사람의 삶을 내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이대로,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만약, 이렇게 살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이런 나에게 한권의 책이 찾아왔더랬다.

마치 건조한 봄가뭄이 계속되던 어느날 예기치 않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허둥지둥 소나기를 피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아무 담벼락이나 찾아들 듯 그렇게 유인창의 <마흔살의 책읽기>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만이 아니었구나. 마음 흔들리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특별히 정답을 찾은 것도 아니요 삶이 바뀐 것도 아니지만, 그저 이점 하나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수많은 시험문제를 풀면서 살아 왔지만 자신의 문제에는 질문을 던져 본 적도 답을 구해 본적도 없고, 그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돈을 벌며 살았을 뿐이다. 그저 그것 뿐이다. 밥 먹은 힘으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또 밥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세월도 먹어치웠다.'

이와 같은 필자의 고백이 나의 독백으로 바뀌었다. 나 역시 그랬다.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전쟁하듯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며 투쟁하듯 살았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게 잘못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

처절한 외침으로 바뀐 나의 독백은 안다.

그건 바로 지나간 세월에 대한 미안함이자, 앞으로 다가올 세월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걸...

.

.

.

밑줄긋기와 메모하기 그리고 페이지 밑단 접기...

책읽을 때마다 나에게 나타나는 못된 습관들이다.

그런데...

유인창의 <마흔살의 책읽기>는 나에게 더 이상의 밑줄긋기도 메모도 밑단 접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대신 나는 살아온 삶에 밑줄을 쭉ㅡ긋고 마음을 고이 접어 그 위에 메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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