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기타 사건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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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륙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부르마블 같은 게임이다. 말판 위에 무언가가 적혀있고,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숫자대로 판에 말을 옮겨 나가 먼저 종점에 닿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사는 형편은 제각각이지만 돈독한 우정을 쌓고 있는 세 아이가 낡은 보드게임을 발견한다. 셋이 사이좋게 쌍륙을 하며 놀았다는데, 다음날 한 아이가 행방불명된다. 동네 어른들은 아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아이는 증발이라도 된 것처럼 흔적도 없다. 같이 놀았던 나머지 아이들이 증언하길 그들이 갖고 놀았다는 낡은 보드게임이 아주 묘했다는 것이다. 종이판위에 부스럼’, ‘금화 1’, ‘고열’, ‘눈병같은 좋지 않은 말들이 적혀있었고, 사라진 아이가 주사위를 굴려 말을 놓은 자리에는 행방불명이라고 적혀있었다고. 나머지 아이들은 각각 금화 3’, ‘염라대왕 앞에 말을 놓았다고 한다. 행방불명 됐던 아이는 사라질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나타났지만 그간의 일을 기억을 못하고, 금화 3냥 자리에 말을 놓은 아이의 집에는 누군가 두고 간 금화 3냥이 발견된다. 그리고 염라대왕 앞자리에 말을 둔 아이가 사라지는데! 사라진 아이의 부모는 염라대왕이 아이를 데려간 것이라며 체념하고 아이를 찾을 생각도 않는다. 이런 기묘한 사건이 발생하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햇병아리 오캇피키의 성장기

 

에도시대에는 민간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직접 발로 뛰며 정보를 모으고 범인 색출이나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오캇피키라는 직업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공권력은 아니지만 공인된 민간 조사원 같은 것이랄까.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에서도 탐정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시리즈에서도 그렇다. 다만 유능하지도, 능숙하지 못한 오캇피키라는 점이 신선하다.

 

첫 장이 시작하자마자 관록 있고 덕망 있는 오캇피키 대장 센키치가 복어 독에 급살을 맞는다. 어려서 그에게 거둬졌던 기타이치는 문고(책을 보관하는 종이상자) 행상을 하며 센키치를 도와 오캇피키 일을 하고 있었는데, 대장의 죽음으로 생활에 많은 변화를 겪는다. 기거하던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게 됐고, 생계로 해오던 문고 행상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어려운 와중에 센키치 대장의 미망인 마쓰바 부인과 셋집 관리인 도미칸, 느티나무집 요닌 신베에, 목욕탕 가마담당 기타지 등 인연이 닿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문고상으로서도 오캇피키로서도 조금씩 성장해간다.

 

주인공 기타이치는 겨우 16살로 마냥 어린아이 같은데, 에도 시대의 16세면 관례를 올릴 나이였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갓 성인이 된 사회 초년생 정도로 보면 되겠다. 척보면 다 아는 천재형도 아니고, 몸을 잘 쓰는 행동파도 아니고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성숙한 부분이 있지만 조력자들의 도움과 훌륭한 대장 밑에서 갈고 닦아온 실력으로 훌륭하게 사건을 해결해 가는 모습이 퍽 대견스럽다. 저주가 깃든 가면을 함부로 다룬 죄로 재앙을 겪게 되는 일가의 이야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방불명된 아이들을 찾는 이야기, 죽은 부인의 환생이라며 나타나 재혼 행사를 파토낸 여자의 이야기 같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건들의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도 흥미롭다.

 

작가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을 여러 편 쓰면서 참 많은 사연과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스터리와 추리요소가 섞인 장·단편의 이야기들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이렇게나 길고 길게 이어질 수 있는 힘은 그 다양한 캐릭터에서 나오는 것 같다. 미시마야 시리즈 에서도 청자가 바뀌자 다뤄지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재미있는 변화를 줬는데, 이번 책도 그렇다. 오캇피키를 주역으로 한 다른 책도 있지만 이번 시리즈는 아직은 미숙한 주인공을 앞세우고 있다. 그런 만큼이나 조력자 역할의 캐릭터들도 다수 등장하는데,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개되는 정도의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다음 책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어리숙한 문고상이 유능한 오캇피키로 거듭나기까지 아직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출판사가 힘을 좀 내 줬으면.

 

편집자의 덧붙임을 보니 기타기타 사건부가 미야베 월드 맏물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겹친다고 한다. 맏물 이야기는 아직 읽어보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하니 미야베 월드는 정말 거를 책이 없는 것 같다. 그야말로 개미지옥 같은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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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 케이팩션 2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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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배우자를 볼 수 있는 노인이 있다. 배우자의 얼굴을 그려주는 걸로 벌이를 하는 노인은 쓸데없이 정직해서 보이는 것만 그린다. 하나가 보이면 하나를 그리고, 둘이 보이면 둘을 그린다. 셋이 보이면……. 셋은 거의 없으려나? 소름 돋는 것은 보이지 않으면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이유야 상상에 맡기겠다. 뜬금없지만, 저 노인이 21세기를 살아간다면 돈 많이 벌었을까? 일단 배우자의 정의가 분명해야 되는데, 법적인 관계까지 가야지만 배우자로 친다면, 요즘은 비혼 주의인 사람도 많으니까 편의점 알바만도 못하려나?

 

삼개주막은 마포나루 쪽 어디에 있다. 마포나루는 뱃사람이나, 장사치, 옹기장이, 과거보러 가는 선비님네, 양반님 할 것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들고 날고 부대끼는 곳이다. 삼개주막은 남편 먼저 보내고 씩씩하게 자식 건사하는 주모 김 씨가 잘나게 생긴 큰아들 선노미와 엄마 닮아서 바지런하고 일 잘하는 복이, 옥이랑 생계를 꾸려가는 곳이며, 온갖 사람들과 온갖 이야기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주막에 모여든 사람들은 초면이라도 허울 없이 어울리며 이야기를 청한다. 본인의 얘기이거나,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양한 신분과 직업군의 화자들이 풀어낸다.

 

그림 그려주는 노인처럼 기발한 설정의 이야기도 있고, ‘유괴된 아이열녀처럼 역사서나 야담에서 소재를 빌려온 이야기도 있고, ‘과거 보러 가는 길이나 옹기장이의 꿈처럼 전설의 고향을 글로 읽는 듯 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있다. ‘기담회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하나같이 기이하고 으스스하고 소름이 돋는다.

 

삼개주막은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제대로 벌어진 판은 아니지만, 다양한 신분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화자로 등장해 가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정은 유명한 시리즈를 떠오르게 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가 그것이다. 설정이나 구성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읽으면서 자꾸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첩의 환생이라는 이야기는 미시마야 시리즈 피리술사의 우는 아이가 떠올랐고 소재가 유사하다. 전개는 전혀 다르지만-,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긴다는 부분은 물론 그 의도와 목적이 전혀 다르지만 어라?’ 싶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런 부분이 불편하게 느껴졌느냐 하면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담류나 시대극 소설을 좋아해서 저것도 재밌었는데 이것도 좋네 하면서 읽었다.

 

2권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로 끝나서 조만간 후속편이 나올 것 같기는 한데, 삼개주막 기담회 1이 아니라 그냥 삼개주막 기담회라서 확신은 못하겠다. 나온다면 찾아 읽어볼 것 같다. 미시마야 변조괴담을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겠다. 생소한 복식, 문화, 절기,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대명사가 없다는 것이 강력한 매력요소. 전설의 고향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좋아할 듯. 취향을 저격하는 무언가가 있다. 확실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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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
기도 소타 지음, 부윤아 옮김 / 해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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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공학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는 독특한 전설이 있다.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되어 모든 학생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뿐만 아니라 거스르는 학생에게 불운을 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나 뭐라나. 조건은 단 하나, 이름이 유리코이기만 하며 된다. 만약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여러 명 이라면 이들은 사고를 당하든, 전학을 가든, 추문에 휘말리든 불운한 일을 겪게 되어 결국 한명의 유리코만이 남게 된다.

 

야사카 유리코는 친구 시마쿠라 미사키를 따라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반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유리코는 그럴수록 미사키를 깊이 의지하고 따른다. 부활동 선배에게 학교의 유리코님 전설을 전해들은 유리코는 의지와 상관없이 유리코님 쟁탈전에 휘말려 불행해 질 까봐 걱정하지만, 친구 미사키는 말도 안되는 미신이라며 유리코를 안심시킨다. 유리코가 입학하기 전까지 유리코님으로 군림하고 있던 쓰쓰미 유리코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학생이 추락 사고를 당하고, 이를 계기로 학교에는 유리코님 전설이 다시 화재가 된다. 유리코님 쟁탈전에 전교의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유리코님 후보인 유리코들이 하나, 둘 사고를 당하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학교 전설인줄로만 알았던 유리코님 전설의 불가사의한 힘이 작용한 것인가? 아니면 전설을 방패삼은 누군가의 악의가 사건을 일으키는 것인가? 유리코와 미사키는 유리코님 전설의 기원과 실체를 파헤치기로 한다.

 

 

학교, 전설, 여고생 그리고 무능한 경찰

 

1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 U-NEXT, 간테레 상 수상작이며, 2020년 동명의 TV드라마로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는 wave에 공개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고. 확실히 영상화에 적합한 작품인 것 같다. 어떤 작품들은 너무 훌륭하고 기발하지만 영상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설정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는 무난한 편이다. 학원물과 추리물은 아주 대중적인 조합이기도 하고 말이다.

 

학교 전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사건들이 차례차례 벌어지고, 홈즈와 왓슨 같은 관계성의 여고생 콤비가 등장해 사건의 내막을 밝혀내는 전개가 이어진다. 21세기 고등학교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어떻게 범인을 제대로 목격한 사람이 저렇게나 없을 수 있으며, 경찰은 사건을 다루는 게 여고생만도 못할 수가 있나, 그렇게나 무능한 경찰인데 증거는 경찰이 찾아 줄 거야, 너는 자백만 하면 돼라는 식의 해결 등 몇 가지 걸리는 점은 분명 있지만 그런설정이려니 하고 눈을 질끈 감으면 가독성은 좋은 편이라 잘 읽힌다. 예측 가능한 전개지만 속도감이 있어서 지루함도 덜 한 편이다.

 

동기가 무엇인지에 집중하기 보다는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에 더 집중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독자를 속이기 위한 트릭이나 장치들이 되게 신선하지는 않다. 딱히 기발하지도 않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사건을 일으킬 정도의 원한이나 집념이라면 당연히 동기도 그만큼 강력한 것이 이치에 맞지 않나? 후반부에 밝혀지는 동기는 다소 갑작스러운 면이 있으며, 7,80년대에 써진 소설이라면 모를까 21세기에 너무 구식이 아닌가 싶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후반부에 반전에 반전, 또 한 번 뒤집기를 시도하기는 하지만 글쎄. 반전에 반전도 동기가 억지스럽다고 느끼는 입장에서는 반복에 반복일 뿐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또 한 번 뒤집기는 아니한 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충실하고 싶은 나머지 캐릭터가 어이없게 붕괴되어 버린 것 같아서 황당한 결말이라는 감상만 남는다.

 

타이틀도 있고, 영상화된 소설이라기에 기대하고 읽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망작 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평작은 못되는 애매한 괴작이다. 읽어나갈수록 단점만 찾게 되는 책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은 인정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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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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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도 들었지만, 훌륭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쉬워 보였습니다. 쉬웠습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고,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걸 요구하는 분들도 아니었고요. 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것, 그 정도로도 나는 좋은 아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나도 행복했습니다.

 

좋은 아이가 되는 건 쉬웠는데, 좋은 어른이 되는 건 너무 어렵더군요. 내게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요구들과 다양한 기대들은 때로는 상충되기도 해서 나는 때때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마치 거미줄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촘촘하고 끈끈한 줄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파닥거리고만 있는 기분이 뭔지 아실까요? 그 거미줄을 끊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개운해지지도 않았고, 내게 돌아온 것은 매도와 비난이었습니다. 싸가지 없는 년, 이기적인 년. 알 수가 없습니다. 좋은 아이로 있으려고 노력하면 모두 행복할 수 있었는데, 좋은 어른으로 있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행복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럴 바에야 그냥 이기적인 년으로 남아있는 것이 차라리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생각합니다.

 

완전한 행복은 완전한 행복을 추구한 어느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그 사건’, ‘그 여자를 모티브로 합니다. 이기적인 인간이 행복에 집착할 때 얼마만큼 무자비해지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극한으로 보여줍니다. 전개나 묘사가 집요하고 끔찍해서 골이 아파질 정도인데, 단지 소설일 뿐이라고 진정하기에는 현실의 그 사건이 떠올라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인의 독기는 종이를 뚫고 나올 정도로 강력한데, 그녀의 희생양이 되는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게 그려지며 엄청난 고구마를 선사합니다. 언제쯤 사이다가 터져줄까 그거 하나만을 기대를 하며 읽는데 결말이 이렇게 나는 군요. 찝찝합니다.

 

유나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독특합니다. 행복의 기준이 오로지 나, 본인 한정인 사람으로, 자식도 가족도 없는 사람이죠.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은 현실세계에서는 잘 없어요. 하지만 그녀의 주변인들은 어디서 본 듯도 합니다. 적당히 이기적인 면도 있지만 그래도 본인의 행복의 기준에 우리가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의 행복이 의 행복일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 유나 같은 인간상이 결국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하지만, 물론 제 기준입니다만, 평범한 행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휘둘리고 고통을 겪는다는 전개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특히나 마음을 끌었던 게 재인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회피형 인간인 줄 알았습니다. 감당이 안 되는 문제, 사람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그렇게 가만히만 있는 사람이요. 그렇게 당하면서도 고작 그 정도밖에 못하는 답답한 사람 말입니다. 후반부에야 밝혀지지만 재인은 좋은사람입니다. 그렇게 증오하는 유나를 우리라는 테두리 밖으로 밀쳐낼 정도로 독하지도 못하고, 부모와의 관계나 전남친과의 관계에서도 나의 행복보다 타인의 행복을 우선시 하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게 뭔가요? ‘좋은사람인 그녀지만 너무 많은 것을 뺏기며 살았고, 또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 모든 잘못은 유나에게 있다고, 그녀를 만나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싶었습니다. 원래 좋은사람은 손해를 보는 사람이고, 뺏기는 사람이고, 그렇게 대해져도 괜찮은 사람이지 않나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 같은 것이지요. 사람마다 행복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나고,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추구합니다. 행복을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는 것은 물론 안 될 일입니다. 반드시 실패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다고 행복을 위해 타인을 목적으로 삼는 일도 반드시 해피엔딩은 아닐 겁니다.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을 읽었어요. 악인과 희생양들의 처절한 사투보다도 그것이 더 무섭고 끔찍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물 건너 간 것 같은 상황에서 좋은 사람이라도 되고 싶었는데, 뭔가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사실 가장 바라는 것은 그건데요. 애초에 행복이란 게 뭘까요? 어디에 있으며, 무엇으로 오는 걸까요?

 

완독을 하고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는 행복은 과거에 있는 것이라고 얘기했어요. 어느 날 문득 과거의 어떤 일을 떠올렸을 때, ‘그 때 참 좋았지.’하는 것이 행복이라고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보며 나름의 위로라고 건넨 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기억이란 게 원래 왜곡되고, 미화되기 마련이잖아요? 거짓말쟁이 기억을 근거로 어떻게 행복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계속 과거로만 존재하는 행복이라니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완전한 행복이란 과거로 존재하는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로 있는 행복이야 말로, 관계에 기대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온전히 개인적인 행복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버리니 뭔가 개운해 졌습니다. 멀리서 형체도 없이 모였다 흩어지는 행복에서 눈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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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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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쪘다. 속옷이 끼기 시작한 지는 꽤 됐는데, 그냥 속옷 살 때가 됐나보다 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카운터펀치는 2주 만에 집에 온 언니가 날렸다. 엄마, 쟤 살 찐 거 아냐? 동글동글해졌네. 나한테 직접 말했다면 그런가? 허허 하고 가볍게 넘겼을 것을, 나 안 듣는 줄 알고 은밀히 얘기하는 것을 보니 진짜 내가 딱 보기에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있구나 싶었다. 침대 밑에서 먼지 먹던 체중계를 꺼내고 옷걸이로 쓰던 실내자전거를 내놨다. 기계는 내 기분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고 소수점 아래 한 자릿수까지 솔직했다. 어느새 이렇게 듬직해졌나, 나잇살, 나잇살 노래를 부르며 플랭크라도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던 언니의 저주인가, 실내자전거 페달을 이를 악물며 밟았다. 유산소 운동의 지루함과 괴로움은 몸에 맡기고, 운동 지옥에서 내 정신만이라도 구원해줄 아주 재미있는 책을 찾아다녔다. 그때 봐둔 몇 권중에 하나가 바로 대불호텔의 유령이다. 도서 카테고리가 호러, 공포소설에 악령의 저주에 빠진 소설가가 귀신의 씐 채 쓴 작품이라는 소개 문구를 보니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딱이다 싶었던 것이다.

 

책을 완독한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 책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거리가 있었다. 분명 공포소설로 분류가 되어 있지만 무서웠느냐고 하면은 솔직히, 밥도 반공기씩 먹고 간식도 안 먹는데다가 실내자전거도 빡시게 돌리는데 오히려 300그램이나 불어나 있는 내 몸뚱이가 더 무섭다. 이 책은 좀 애매하다. 좀 찾아보니 니꼴라 유치원도 발표된 작품이고, 대불호텔도 실재했고, 대불호텔이 있던 자리에 중구생활사전시관이 생긴 것도 진짜네. 시작은 이것은 소설이다. 소설에 불과하다라고 하는데 소설속의 는 작가 본인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듯 보인다.

 

문자로 된 이야기로 공포를 느끼려면 캐릭터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설가지만 소설을 한 줄도 쓸 수 없는 작가의 공포를 공감하기에는 나는 관련 경험치가 전무하다보니 기대했던 어떤 것은 느낄 수는 없었다. 책의 메인 호러스토리를 담당하는 2장의 이야기꾼 박지운에 대해서도 그렇다. 앞 장에서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전개가 있기 때문에 화자에 대한 호감도나 신뢰도를 아주 깔아뭉개고 이야기가 시작되어 몰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저 가볍고 적당히 전형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기대했던지라, 공포 카테고리에 놓이기에는 이래저래 애매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나는 아주 기묘한 연애소설로 읽혔다. 조금 많이 무미건조하고 어둡지만 어쨌든, 인간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르 말이다.

 

 

악의는 전염되는가?

 

는 어릴 적 아주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은 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쳐서 의 내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모두가 외면하며 돌을 던졌던 그 곳, 가지 말아야 하는 곳에 발을 들인 대가치고는 너무도 과했다. 성인이 되어 소설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는 한 줄도 써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비난과 자학의 말들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대불호텔의 유령을 호러 소설로 읽는다면 1부는 금기를 범하고 원귀에 씌어 오랜 시간 고통 받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영화 주온이나 장화홍련이 떠오르는데, 그저 우연히 그 집에 있었다는 이유로 평생을 발목 잡는 지독한 저주에 걸렸다는 것은 좀 뜬금없는 급전개가 아닌가 싶었다. 원한이 무슨 복불복도 아니고.

 

좀 다르게 생각해 보면, ‘가 그곳에서 만난 것이 정말 악의에 가득 찬 귀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존재를 부정당하고 모두에게 비난당하며 철저하게 고립된 삶을 살아간 사람의 집에서 어린 는 지독한 고독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것이 울분과 악의에 찬 귀신의 형상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어린 는 사기꾼 이문용의 빈 집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척당하는 것의 두려움을 알게 된 것이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은 관계에 대한 공포로, 타인에 대한 이유모를 울분과 자기 비하로 이어졌겠지. 그것이 를 괴롭힌 악의와 원한의 정체이지 않을까. 악의가 전염된 것이 아니라 는 지독한 외로움에 공감해 버린 것이다. 너무 공감해 버린 나머지 그에게 동화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지 못할 때 들려오는 환청은 가 얼마나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하여 주위의 실망과 비난을 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붙잡혀 있는 듯 몸을 굳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재앙 같은 악의라기보다는 좀 더 개인적이고,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는 인간관계에 대해 위축된 성향을 갖게 됐고, 호감을 품고 있는 상대에게 조차 관계의 발전이 아닌 현상유지만을 원하고 그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남사친 과는 나름 오래 만나왔지만, ‘가 진을 만나서 건네는 이야기는 소설에 대한 것뿐이다.

 

 

그녀에게 대불호텔은?

 

써지지 않는 소설의 영감을 얻고자 진과 함께 대불호텔을 찾은 는 터만 남은 그곳에서 어느 여성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진의 외할머니 박지운을 찾아가 대불호텔에 얽힌 불길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2장의 내용이다. 2장은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대불호텔의 유령인지 드러내는 장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작가 셜리 잭슨마저 등장시키며 작가는 아주 제대로 힐 하우스의 유령을 오마주한다. 1950년대 한국의 시어도라와 엘레노어가 등장해서 귀신들린 대불호텔에서 갈등하고 비극을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치매노인인 박지운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박지운의 이야기는 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섞여있어서 힐 하우스의 유령처럼 모호하고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지만 는 그 이야기에 매혹된다. 3장에서 바로 박지운이 들려준 이야기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그녀가 구지 힐 하우스의 유령을 빌려 대불호텔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한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박지운에게 대불호텔은 어떤 곳인가. 그녀의 전남편이고 청인인 뢰이한의 근무처 중화루가 있던 곳이 대불호텔이다. 박지운의 이야기에서 대불호텔은 방문자를 집어삼켜버리는 괴물 같은 그 곳, 힐 하우스와 겹쳐진다. 대불호텔의 관계자가 아닌 박지운이 어째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3장에서 그 의문점이 풀린다. 뢰이한은 중화루에 근무할 당시, 대불호텔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평생 고초를 겪는다. 한국인들에게는 청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청인들 사이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의 관련자로 오해받아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박지운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그렇게 만든 모든 일의 시작점인 대불호텔이 아주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방문자를 고립시키고 극한으로 몰아붙여서 미쳐버리게 만드는 힐 하우스처럼.

 

대불호텔의 이야기는 사실은 힐 하우스의 유령의 옷을 뒤어쓰고 있는 진의 불행한 가족사다. 먼저 떠난 그리운 이에 대한 원망이고, 다시 홀로 남은 한사람의 청승맞은 회상이고, 관계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밀쳐진 사람들의 희망 없는 세드엔딩이다. 그 이야기에 매혹된 나는 박지운의 한마디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너는 남 이야기가 그렇게 좋냐? 어디서 요사스러운 것을 데려와서는

 

이 부분에서 나도 멈칫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끄러운 세상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 얼굴도 몰랐던 누구 씨가 오늘은 뭘 먹었고, 뭘 입었고, 뭘 했는지 tmi가 넘쳐난다. 모두가 자기를 들어내며 자기 이야기를 한다. 들어달라고. 그러면 다른 얼굴 없는 이들이 반응한다. 응원하고,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빈정댄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이고, 보고 싶은 모습만을 보고 있지 않던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시선은 항상 서로에게서 빗겨나 있지 않던가.

 

평소에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런 말도 하지 않고, 이런 감상도 떠들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어서 초조해 지니까 말이다. 만약 관심 없어 한다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뱅뱅 도는 말들을 뱉어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좌절한다. 어쩌면 이런 것도 일종의 고립이겠지. 제대로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밖에서만 빙빙 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다른 사람들의 러브 스토리가 아니야. 너와 나의 이야기야. 그래야만 해. 아니야?” 진은 멋있는 남자고 는 진의 용기에 힘을 얻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는 여전히 그 목소리들을 듣지만 그저 흘려보내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악의? 그까짓 것들 하며. 대불호텔의 유령은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의 이야기는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낚였네, 낚였어 하면서 읽었는데 산뜻하게 끝나버리니까 후련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요사스러운 것이어서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너를 이해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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