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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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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가 실종된 젊음의 감옥 그 잔디밭 어딘가에서 만세라도 외치고 싶었다. 먼지 먹은 책장 속에 숨어있던 사랑에 대한 진실은 불편하도록 합리적이기에 오히려 감탄스러웠다. 한없이 숭고하고 아름답게만 치장된 사랑의 실체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자기애의 발현이라는 주장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유감이다. 허나 완벽한 타인에게 멋대로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투사하고 그것이 격정적인 사랑의 시작이라며 황홀해 하는 이기적인 멍청이가 되느니 로맨스 따윈 잠시 실종되어 버려도 좋다.

하지만 나도 유감이다. 어째서 사람의 사랑은 완전한 타인을 향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사람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람의 사랑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숭고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기적이라도 자기에게로 밖에 향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은 숭고해야 한다. 타인에 기생하는 옹졸한 나르시시즘이 아닌 나와 너의 깊은 생체기까지 어루만지는 순수한 열정이었으면 좋겠다. 멋대로 환상으로 치장해 놓고 실체를 드러내 보일 때마다 실망하고 멀어지는 치졸함이 아닌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황이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끝없는 해양 같았으면 좋겠다. 설령 그것이 어수룩한 나의 판타지에 불과하더라도 그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러나 허구 속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순수하지 못하다. 과정을 생략하기 좋아하는 매체에서의 사랑은 사랑의 껍데기를 업은 복수극이요 사기극이다. 글자 속에 묻힌 사랑은 불가능한 환상 혹은 사랑의 치부만을 묘사 할 뿐, 그 속에서도 사랑은 세속적이다. 완벽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그럴듯한 거짓말만 늘어놓는다. 아름다운 척, 고고한 척 하고 있지만 진실하지 못하고 뻔하다. 뻔한 거짓만 늘어놓는 허구의 사랑은 흥미를 끌지 못하는 너절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사랑을 이야기하는 전경린 작가의 신작을 앞에 두고 나는 망설였다. 이 책은 나신을 드러내 놓고도 관찰자를 똑바로 응시하는 창녀의 그림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누경과 강주의 사랑이 지독히도 이기적이면서 숭고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이 서로에게 투영되는 그리운 자신의 모습을 향했을 지언즉 유치하거나 속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으며 사랑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끝이 났다. 서로의 눈 속에 사는 자신을 미련 없이 놓아주었다. 애초에 바꾸거나 가질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깨끗하게 물러났다.

본래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사랑에 갈급해 한다. 스스로를 핥아낼 수 없기에 남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다. 타인의 눈 속에서 스스로를 찾고 타인의 눈 속에 들어 앉아 스스로를 본다. 괴로워하는 스스로를 타인의 손으로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누경과 강주의 사랑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강간의 상처를 가진 누경은 상처를 입은 열여섯 살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버티고 있었다. 상처 이전의 강주를 좋아하던 순수했던 누경을, 누경은 그리워하고 있었다. 불행했던 유년시절의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누경 식구들에 대한 추억은 누경을 통해 각인된다. 강주가 누경을 모르면서 무조건 예쁨이라고 말하는 것은 누경으로 말미암아 떠오르는 지난날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가릴 수 있는 혹은 행복한 기억을 대표하는 무언가 이기에 서로의 눈에 들어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것은 되돌릴 수 없고 현재를 살며 항상 곁에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래가 없는 관계를 가지면서도 불평하거나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던 그들은 이미 자신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의 실체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강주와의 관계로 열여섯 살 이전의 자신을 붙들고 있던 누경은 그것이 현재를 사는 자신과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이어주기는커녕 유리시킬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별을 고한다. 그러자 강주는 “나는 어쩌지” 라고 말한다. 강주는 현재의 강주가 누리는 현실과 누경과의 관계를 오가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다만 그리워하며 참는다. 강주의 사랑이 온전히 누경을 향해 있었다면 아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주의 사랑은 누경을 향하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기억에 대한 짝사랑을 누경에게 쏟아 부은 것일지도 모른다. 누경도 아마 강주의 사랑이 온전한 자신을 향해 있지 않음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괴롭지만 끊어내고 찾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부도덕하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사랑을 했던 그들이, 그들이 사랑했던 본질을 깨닫고는 이별을 한다. 누경은 강주와 이별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붙들고 있던 상처 이전의 그리움과 이별한 것이다. 누경은 깨진 유리병을 다시 조형하며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각인된 잊고싶은 상처와 마주한다. 강주로 기억되는 순수했지만 되돌릴 수 없는 날과 이별하며 멈춰있던 현재를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과거의 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추고 현재의 멈춰버린 자신을 사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누경은 또 다른 이의 눈에서 어찌하지 못할, 혹은 알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다시 사랑에 빠질 것이다. 기형이 누경에게서 자신과 같은 고독을 느끼고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의 사랑은 온전히 서로를 향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에게서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려 하고 자신을 그리워한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사랑으로 그것을 치유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타인을 향하지 않는다. 타인의 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에게 열렬한 위로와 구애의 손길을 뻗을 뿐이다. 그런 사랑만이 오히려 숭고하고 진실하다. 들에서 핀 꽃나무가 누구를 향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듯, 누경의 사랑도 강주의 사랑도, 기형의 사랑도, 다른 누군가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그녀가 바랐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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