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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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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은 약 30년간 벌어진 미국과 멕시코 마약 조직 간의 전쟁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기나긴 세월동안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마약 단속반인 아트 켈러와 마약 조직의 보스인 아단 바레라다. 거대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단속반의 이야기라고 하면 선악 구도가 뚜렷한 액션 스릴러물을 상상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딱히 인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부의 조직과 여러 단체들에 대해서도 ‘선’과 ‘악’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으로 대변되는 인간상들이 지독하게도 자주 보여진다. 결국 이 책은 악한들의 무자비한 악행과 고통 받는 피해자들과 대의를 잊어버린 정의롭지 못한 심판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야말로 악인들의 전쟁. 구약성경의 시편(22장 20절 ;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에서 연유한 제목인 ‘개의 힘’이란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몰아낼 수 없는 악이며 모두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이라는 설명인데 참 의미심장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CIA 요원으로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아트 켈러는 마약 단속국(DEA)에 전출되어 멕시코 시날로아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하지만 새로 합류한 조직에서는 겉돌게 되기만 하는데, 우연히 아단 바레라와 라울 바레라 형제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들의 소개로 아단의 삼촌이며 경찰인 티오를 만나게 된다. 티오로부터 다른 요원들은 알지 못하는 고급정보를 얻어듣게 된 아트는 시날로아에서의 마약조직 소탕작전에서 공을 세우게 되지만 결국 그것이 아트의 야망을 위한 계략이었으며 자신은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게 된다. 이번에는 다른 마약조직의 수괴가 된 티오를 검거하고자 작전을 펼치는데 그 과정에서 아트는 절친한 동료를 잃게 되고 가까스로 붙잡은 티오는 어이없게도 풀려나버린다. 그 모든 일련의 사건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조직의 검은 의도가 숨어있었음을 알게 되는 아트지만 거대한 조직과 잔혹한 범죄 집단의 횡포 속에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함구한다. 아트의 마약 조직 소탕 의지는 동료를 잃은 분노심에 휩쓸리고, 아트는 티오와 그를 이어 조직의 수장이 되는 아단까지 벌하기 위해 일전을 벌인다.

 

 

상당히 어마어마한 이야기이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소설적 상상력과 실화가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다는 점이 참 여러 가지 의미로 질리게 만든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일어난 여러 정치적 사건들과 마약 전쟁의 전개과정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인공인 아트 켈러의 실제 모델이 되는 인물도 실존하고 있다고. 작가는 5년여 동안 중남미 마약 관련 사건을 취재하고 고증하며 오랫동안 이 소설을 준비했다고 한다. 철저히 준비한 만큼 출간 이후에도 놀라운 리얼리티와 빠른 전개, 독특한 캐릭터 구성 등 갖은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시장이 굳건하고 거대한 일본에서도 호평과 꽤 큰 인기를 얻은 책이라고.

 

 

그런데 나에게는 재밌게 읽히지 만은 않았다. 오히려 읽기가 어려웠던 책 중에 하나였다. 충분히 소설적인 재미를 잘 갖추고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마약 전쟁이라는 소재나 멕시코의 여러 정치적인 상황이 낯설었기 때문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마약 조직의 잔혹한 행태에 대한 너무나도 세세한 묘사 때문에 순간 불편해 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직의 무자비한 보복행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라 치면, 언젠가 멕시코 시날로아 갱단의 소행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 십구에 달하는 사체가 훼손된 체 방치됐다던가, 어딘가에 전시됐다던가 하는 뉴스가 떠올라서 욕지기가 절로 나오기까지 했다. 아직도 멕시코에서는 마약 조직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던데, 그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기사를 본 일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이 나온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러더라. 물론 소설속의 이야기 이지만(아니면 이것이 진실일 지도 모르겠지만. 아, 정말 모르겠다) 겉으로는 마약 조직 소탕을 부르짖으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미국의 모습이 참 섬뜩하기도 하고, 이게 리얼 인지 픽션인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머리가 아파오기도 했다. 애초에 그런 이야기지만 희망적인 부분이 한조각도 보이지 않아서 무겁게 책을 덮었다.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재미있었지만, 이 책은 참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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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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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와 같군요.>

그 생각만 하고 그냥 자리를 떴으면 좋았을 텐데. 도스를 남겨두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도스를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싱긋 웃었고, 나는 그녀의 눈 속에서 기대감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를 떠날 수가 없었다. - 122쪽

 

그건 참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졸음이 밀려오는 시간, 강의실에서 우연히 눈을 돌리다가 발견한 것은 그 아이가 쥐고 있던 촌스러운 모나미 볼펜. 날렵하고 깔끔한 외제 펜이 아닌 한 글자 적을 때마다 볼펜 똥이 세어 나오는 싸구려 볼펜에 눈길이 멈췄다. 장점이라고는 지나치게 잘 나오는 잉크와 저렴한 가격 밖에 없는 그 볼펜을 쥐고 있는 손이 나를 설레게 했다. 아마 조금은 고집스러운 성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대게는 만사에 무심한 태도일 것이고, 그런 주제에 애착이 생기면 집요하게 탐닉하는 괴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고,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수록 그 아이가 좋아졌다. 사용하는 펜이 같다는 것, 그런 사소한 공통점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끌림’은 그렇게 조그마한 동질감에서 조차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그건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처와 다르지 않는 욕망을 가졌으니 ‘그녀들’이 서로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

 

애인은 떠나갔고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마저도 잃은 숙녀 마거릿은 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그녀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는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도 견디기 힘들지만 어머니는 그녀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괴로운 현실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전보다 심해진 어머니의 감시에 집에 있으면서도 감옥에 갇힌 듯 한 고독을 느낀다.

 

셀리나는 영매다.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 소통하고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그녀의 능력을 잘 활용할 줄 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긴다. 그녀가 불러낸 영혼 ‘피터 퀵’이 난폭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브링크 부인이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녀는 사망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게 되고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녀는 한조각 햇볕만이 허락된 밀뱅크 감옥에 수감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런 마거릿과 셀리나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우울증 치료를 목적으로 밀뱅크의 수감자들과 대화하는 일을 하게 된 마거릿은 유난히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셀리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의 신묘한 능력에 강력한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교류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와 비슷한 고독과 억압된 현실에서의 탈출욕구를 발견하고 더욱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녀들의 마음은 위험한 것이었는데…….

 

 

편견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읽는다면 즐길만 하다.

 

이 책은 광고하고 있듯이 레즈비언 소설이고, 끈적끈적하진 않지만 진득한 동성애 코드로 비벼져 있는 이야기이다. 아마 그런 부분에서 어떤 편견을 갖게 되기 쉬운데 한 가지 밝히자면 이 책을 동성애 연애소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다채롭다. 신비로운 강신술과 책의 서두에 펼쳐진 인사사건의 미스터리, 그리고 생각지 못한 반전 등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재미요소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이야기를 놓고 보자면 꽤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펼쳐지는 짙은 동성애 성향의 분위기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본인도 그런 점에서 이미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뜨악하게 여겼던 부분이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다른 모습이더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도 좋은 책이다. 때때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마도 이런 문학이 아직은 낯선 까닭일 테니 참고 본다면 충분히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한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된다.

 

딴소리를 하자면 전에 재미있게 읽은 미스터리 소설 중에, 데이비드 헌트가 쓴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라는 책이 있다. 사실 이 책은 미국 범죄 스릴러 소설의 대가 윌리엄 베이어가 데이비드 헌트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소설로, 꽤 좋은 반응을 얻어서 <뉴욕타임즈> ‘올해의 주목할 책’에 선정되기도 했고 권위 있는 ‘람다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람다 문학상’이 뭔가 해서 찾아보니, 이게 동성애 문학을 대상으로 주는 상으로 꽤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이라고 하더라. 물론 저 책에도 그런 요소들이 등장한다.(이 책은 남성과 남성간의 성매매, 연애 등이 주요소재로 등장한다.) 별로 의식하지 않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 우리에게는 아직 동성애 문학이 많이 낯설고 어색하다. 때문에 대놓고 동성애 문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편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큰 부담을 갖고 책을 펼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으면 그저 미스터리 소설로 읽힐 수도 있더라. 『끌림』도 그런 책이다. 단순히 동성애 문학이라고 낙인하고 의식하는 일은 불필요 하더라.

 

또한 두 여주인공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기 쉬운데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니 막상 그렇게 날을 세우고 볼 일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두 여성의 일기를 펼쳐보는 것처럼 구성된 이 책은 일기를 빙자한 고백록인데,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는 문체라 그녀들의 심리상태를 세세하게 엿볼 수 있다.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계기로 마음이 통하고 그 마음이 어떤 형태로 얼마만큼이나 커져 가는지 참 생생한데, 그 기록을 읽으며 이런 관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괴로운 이들이 어떻게 마음의 접점을 발견하고 마음을 합쳐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거더라. 단지 그 뿐이더라.

 

나는 이 책을 오컬트를 소재로 한 훌륭한 반전을 가진, 거기에 동성애 코드가 가미된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다만 조금 위장이 근질근질해 질 때가 있지만 끈적끈적하지도 않고 노골적이지도 않으므로 읽어볼 만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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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여인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손안의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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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치는 밤, 프랑스 바르비종의 샤토 샹탈에서 마음속 깊숙이 살의를 품은 두 남녀가 조우한다. 정전된 가게 안에서 마음속의 어둠을 털어놓은 두 남녀는 서로에게 강한 동지애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황홀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운명과도 같은 만남을 잊지 못한 채 귀국한 남자는 여자를 생각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남자에게 의문의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하고, 남자가 증오해 마지않던 교수가 독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의문의 편지 덕택으로 견고한 알리바이를 갖게 된 남자는 교수 독살사건의 용의선상에서 제외되고, 남자는 비로소 의문의 편지를 보낸 주인공과 교수를 독살한 범인이 폭풍우 치던 밤 만나게 된 운명과도 같은 그녀였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런 남자에게 날아든 엽서 한 장에 남자는 여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여자는 그녀가 그러했듯이 남자에게 여자가 살의를 품고 있는 자를 처단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인간은 그렇게까지 자신 이외의 인간을 믿을 수 있는 존재일까? 서로 한번 입 밖에 내 버리고부터 계획이 끝날 때까지의 과정 속에서 그들 마음속에는 아마 예상하기 어려운 갖가지 반응과 갈등이 생길 게 틀림없었다. 제아무리 강한 신뢰의 끝으로 묶여 있다 해도 말이다. - 254쪽

그날 밤 서로에게 살인을 부탁한 일은 없었다. 다만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 간에 위험하도록 달콤한 위로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여자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여자의 의도를 알아챈 남자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도 남자는 여자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있고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다. 교환살인을 모의한 것은 아니지만 남자도 결단을 내릴 시점인 것이다.

 

 

사랑의 인식이란 어떻게 증명되는 것일까?

 

『제3의 여인』은 짧은 만남으로 서로에게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된 남녀의 이야기이다. 그 ‘믿음’의 실체는 ‘사랑’이었노라고 그려지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 남녀가 서로의 얼굴을 모른다는 설정이다. 한 번의 만남 이후로 베일에 가려진 여인의 흔적을 뒤쫓으며 낯모르는 이를 살해할 궁리를 하는 다이고의 심리가 세세하게 묘사된다. 다이고에게는 그 이를 살해할 동기가 전혀 없지만 남자의 의지는 운명적인 그녀 ‘후미코’의 흔적을 추적해 나갈수록 더욱 굳건해 진다. 누군가에 대한 깊은 증오와 살의를 품고 있다는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긋지긋한 고민덩어리를 한방에 해결해 준 상대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어쩐지. 다이고의 행동이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모르는 이를 살해하기까지의 긴장감 넘치는 과정과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있는 ‘후미코’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사랑은 대체 뭘까요. 얼마만큼의 이해를 근거한 정서일까요? ………아뇨, 물론 상대를 거의 모른 채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모습도 알지 못한 채 사랑을 나누는 것 또한 그리 큰 기적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때에도 인간은 자신의 직감이 상대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말할 수 없는 내면을 재빠르게 통찰하고 인식하고서 사랑을 품었다 착각하는 존재가 아닌가요? - 298쪽

이야기는 다이고가 어째서 낯모르는 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일을 어떻게 실행하는지, 얼굴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후미코’를 보호하면서 살인을 완성시키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후미코’라는 여인이다. 후미코는 어둠속에서 다이고를 매료시킨 마성의 여인으로 평범한 가장이자 촉망받는 조교수인 다이고를 끝내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 인물이다. 그녀는 그녀가 증오하는 사람을 살해하고자 먼저 살인을 저지르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녀는 다이고가 품은 살의의 이유를 알고 있었고 또한 공감하고 있었지만, 다이고는 그녀가 살의를 품는 이유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런 다이고를 알게 모르게 조종한 여자, 치밀하게 움직이며 다이고에게 메시지를 보내지만 끝내 본인의 모습은 감추는 여자. 그녀의 의도와 정체를 추리해 나가는 과정이 또 색다른 재미였다.

 

더불어 전혀 다른 두 곳에서 벌어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는 두 건의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과정도 재미있는데, 조금은 우연적인 요소들이 섞여들어 가지만(아무래도 교환살인이라는 소재는 너무 현실감이 떨어져서 일까?) 역시 추리소설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실 줄거리로 공개된 정보들이 꽤 많아서 초반에는 조금 지루한데(대략 100페이지쯤?) 형사들이 수사를 시작하고 점차 용의자를 추리고 두 사람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하고 하니 정말 정신없이 읽히더라. 다이고의 시점과 전지적 시점이 교차하면서 후반부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데 읽을수록 더욱 빠져드는 이야기 였다. 막판에는 결정적인 반전도 숨어있는 꽤 괜찮은 책.(별 한 개 빼는 것은 내가 반전을 중반부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아아..) 교환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참 우아하고 로맨틱한 이야기다. 읽어본 사람은 알 듯.

 

쓸데없는 중얼거림을 덧붙이자면 다이고가 나는 참 슬프다. 사랑에 대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오만했었던 기억이 있다면 다이고를 동정하는 마음이 이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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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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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너희들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희들을 손가락질하고 미워하더라도, 엄마 아빠는 끝까지 너희를 편이고 변함없이 사랑할 거라고.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그 말처럼 가슴을 울리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때 느꼈던 커다란 감동과 미묘한 공포를 잊지 못한다. 아마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다시는 들어보지 못하리라. 무모할 정도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나는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고 있구나. 아마 나는 죽었다 깨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마음을 그 분들께 고스란히 되돌릴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사랑은, 특히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절대적이다. 혈연이라는 강력한 이끌림 때문이라고는 차마 다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세상의 도덕과 상식과 가치판단을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렇게 강력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자식을 사랑한다.

 

나는 처음으로 순수한 공포를 느꼈다. 이것은 현실일까? 오랫동안 함께 산 그 아버지의 얼굴도, 어머니의 얼굴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의식을 바로잡으려 해도 눈도 코도 없는 시커먼 일면만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라고 불렀던 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 의문 앞에서 몸이 떨렸다. - 111쪽

그리고

좀도둑도, 강도도, 인질범도, 살인마도 자식 앞에서는 부모가 된다.

 

 

4권의 살인수기. 나를 낳아준 부모님 가운데 살인마가 있다?!

 

한꺼번에 말도 안 되는 불행을 겪게 된 남자가 있다. 애견 카페를 운영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료스케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갑자기 실종되어 버리고, 정신없는 와중에 아버지마저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아버지 보다는 오래 사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어이없게 생을 마감한다. 정신없게 몰아치는 불행 속에 힘없이 휘둘리던 료스케는 아버지의 모습을 살피고자 찾은 집에서 우연히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가방과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공책 4권을 발견한다. 공책에 적혀 있는 것은 놀랍게도 살인을 고백하는 수기였다.

 

료스케는 노트에 적힌 내용이 소설이 아닌 실화이며, 노트의 주인공이 부모님 중 한분 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아버지는 인자하고 성실한 사람이며 어머니 또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평범하고 화목했던 가족들과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료스케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노트를 읽어가는 와중에 료스케는 어릴 적 어머니가 뒤바뀐 사실을 홀로 알아차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고 숨겨졌던 가족사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수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어머니가 뒤바뀐 기억의 진실은 무엇일까? 숨겨졌던 가족의 비밀에 다가갈수록, 잔혹하고 슬픈 가족사가 서서히 드러날수록 료스케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실을 밝혀내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료스케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보듬어준 부모라는 점이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애잔한 사랑 이야기

 

가족에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은연중에 서로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만 갖는 감정이 아니다. 자식 또한 그렇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가 현재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될지 판단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피를 이었다는 것은 그렇게 정신적인 부분 까지도 이어졌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만든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싶어 하기도 하고, 닮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내 부모 중 누군가가 인면수심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료스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덩달아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누가 살인마일까 하는 의문은 료스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가 알지 못하는 부모의 추악한 다른 얼굴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료스케의 부모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료스케가 4권의 노트를 읽고 노트의 주인을 추적하는 것은 살인마를 잡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잘못을 비난하고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료스케를 사랑했던 부모의 민낯을 대면하기 위해서다.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가슴이 떨린다.

 

운명과 죄의 사함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운명과 유리고코로는 같은 걸까요? 하지만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한 걸 까요? 제 운명은 당신일까요? - 140쪽

여러 건의 끔찍한 살인 장면이 묘사되고 이해할 수 없는 살인자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이지만 결국에는 사랑 이야기이다. 본능처럼 살인욕구를 품고 살아가는 어떤 이의 절절한 연애담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잇달아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이지만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알아가는 ‘평범한 부모’의 이야기이다. 살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인상적이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려도 무거운 마음이 찌꺼기처럼 남아서 길게 여운을 끈다. 어쩌면 예측할 수 있는 반전일 테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후일담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이야기다. 기리노 나쓰오 여사의 평처럼 공포와 슬픔이 어느새 행복으로 변해간다. 이 책 자체가 참 미스터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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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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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스노우맨]이라는 두꺼운 책을 2권 소장하게 됐네요. 사실은 출간하고 얼마 안 되어 구입해 읽었는데 그때는 별로 서평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책이 별로였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고요. 정말 둔기수준의 몸체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읽히거든요. 이야기의 흡입력만 두고 본다면 별 다섯 개를 날려도 아깝지 않은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서평을 남기기가 꺼려졌던 것은 줄거리를 정리하고 감상을 몇 줄 남기는 것이 외려 이 책을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흔한 스릴러물(혹은 추리물)로 낙인 찍어버릴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강력범죄를 다룬 수사물이나 기괴한 연쇄살인 사건의 미스터리, 형사를 도발하는 교활한 살인마를 추적하는 추리소설들을 너무나도 많이 접했고, 이미 어떤 패턴에 익숙해져 있고, 이 책도 기본적으로는 그 패턴을 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쇄살인은 커녕 강력범죄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마을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실종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단순 가출로 보이는 최초의 실종 사건이 발생한 이후 훼손되거나 절단된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해요. 부녀자 실종 사건이 줄을 잇는 가운데 시니컬하지만 서에서 유일하게 FBI에서 훈련을 받았고 실제로 연쇄 살인범을 추적한 경험이 있는 유능한 형사 헤리 홀레는 뭔가 수상한 낌새를 감지하죠. 잇달아 발생하는 부녀자 실종 사건과 맞물려 발견되는 절단된 시체들. 실종자들의 공통점은 그녀들이 기혼이라는 점과 그녀들이 사라진 곳에서 섬뜩하게 집안을 향해 서 있는 기괴한 눈사람의 존재입니다. 그녀들은 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리는 걸까요? 집안을 향하고 있는 기괴한 눈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많은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시점도 현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요, 좀 왔다 갔다 합니다. 얼핏 보면 상당히 복잡해 보입니다만 사실은 곁가지 다 쳐내고 중심만 보자면 상당히 익숙해지죠. 단순해 보였던 사건이 주인공의 눈에는 심상치 않게 보이고 결국 예감이 적중! 기괴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범인으로 보이는 이의 도발에 주인공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만 결국에는 검거. 해리 홀레 라는 캐릭터가 좀 멋지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 색다르고 독특한 캐릭터라고 하기도 뭣 하고요. 그나마 특색 있다고 할 만한 것은 섬뜩하게 그려지는 눈사람과 눈과 대비되면서 더욱 선명하게 붉어지는 피와 처참한 사체의 이미지 정도겠지요.

 

뭔가 시시해 졌죠? 거봐요, 이렇다니까. 우리는 이미 이런 패턴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죠. 그게 자칫 독이 될 수 있어요. 여러 명 등장하는 수상한 놈들 가운데 정말 나쁜 놈을 조금 일찍 알아채 버릴 수도 있거든요. 동기가 밝혀지고는 조금 허무해 질 수도 있고요. 물론 차마 여기에는 쓰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르적 정형성에서 오는 구태의연함을 상쇄시킬 만큼 읽어 내려가는 동안이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고요. 영화화되기로 했다는데, 이미 소설 자체도 충분히 영상미(?)가 넘치거든요. 그런데다가 전개도 속도감이 있어서 정말 정신없이 몰아칩니다. 때때로 조금 이색적으로 느껴질 만한 요소들도 있고요.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더 이야기하면 네타가 될 것 같고, 그냥 에둘러 이야기 하자니 이 책이 너무 평범해 보일 것 같아서 지금도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고 있어요. 솔직히 엄청난 수작이라고 추켜세울 정도는 아닙니다만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조금 트집을 잡자면, 이 책은 헤리 홀레 시리즈의 7편이랍니다. 별로 상관은 없지만 이전 편에 대해 언급되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머리가 아프죠. 가잖아 인명이나 지명이 상당히 낯설어서 눈에 글이 쏙쏙 들어와 박힐 정도로 익숙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초반에는 눈이 팽팽 도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뭐 금방 익숙해지니까요. 비채에서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낼 때도 시리즈 중간부터 내주더니 헤리 홀레 시리즈도 그러네요. 도조 겐야 시리즈처럼 헤리 홀레 시리즈도 후속편을 계속 내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헤리 홀레, 은근 매력있거든요. 게다가 이런 퀼리티의 이야기가 여러 편 더 있다니 그것이야 말로 가슴 설레는 일이죠. 후속 시리즈고 꼭 꾸준히 출간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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