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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불행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는 하는데,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보건데 행복을 나눈다고 배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고, 불행을 나눈다고 불행이 반절이 되진 않더라. 환절기라 부쩍 코도 맹맹하고 목도 칼칼한 것이 감기가 오는 것 같다고 무심히 한마디 던졌다가 나 아는 누군가는 감긴 줄 알고 약국 약으로 몇 주를 버텼는데 알고 보니 간염이었다더라. 그래서 병원에 며칠을 입원을 했다든가 어쨌다든가.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아부지 아는 친척 누구의 며느리는 감긴 줄 알았는데 급성 백혈병이어서 손도 못써보고 갔다더라. 그런 얘기를 들었다. 생각보다 가까운데서 온갖 불행이 만연하는 것 같다. 물론 그 물건은 나눈다고 반절이 되진 않는다.
명일이라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한 오빠들 언니들이 저녁에 거실에서 거나하게 술판을 벌였는데, 나는 낄 주변머리가 없어서 조용히 방에서 김영하의 단편집을 읽고 있었다. 지난달에 미용실에 머리하러 갔다가 서점에 들러 아무생각 없이 집어 들고 나온 책이라 단편집인줄도 몰랐는데,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그날 머리하며 재밌게 읽고는 한동안 던져놓은 책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미국으로 날아간 남자의 이야기가 끝나고 잔망스런 여직원의 덫에 걸린 사장의 푸념을 읽다가 문득 바깥에 귀를 기울이니, 아기를 못 낳는 그 언니는 결국 이혼을 했다더라 는 소리가 들린다. 미혼모 얘기를 읽다가 그런 소리가 들려와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이쪽은 소설이고 저쪽은 현실인데 소설 같지도 현실 같지도 않은 이야기가 나를 잠시 헷갈리게 해서 현실에서 붕 떠버리게 만들었는지 ‘에구, 결국 그렇게 됐구먼’ 해버렸다. 뻔한 통속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무덤덤하다가 이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뒤표지에 문구. “우리는 모두 잃으며 살아간다. 여기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이 있다.”
김영하의 소설은 몇 권 읽어본 것이 다이지만,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한다. 어느 날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만나는 얘기나 바닷가를 거니는데 모래에 묻혀 목만 내밀고 있는 남자를 만나는 얘기 같은 것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데 묘하게 현실인 것 같은 상황과 그 상황에서 예상 밖의 행위로 대처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유쾌했다. 어쩌면 내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친 어떤 상황들, 황당하거나 신기하거나 조금 무서울지도 모르는 일들이 지나쳐 흘러가는데, 작가가 그 일들을 붙잡아 여봐란 듯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신의 장난」은 어떠한 희망도 갖질 못하고 미래조차도 거세된 청년들을 이야기 하고, 「아이를 찾습니다」는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사는 소시민을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무자비한 전개는 읽는 사람마저도 힘이 빠지게 할 정도로 잔인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침표가 마침표가 아닌 말줄임표 같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수렁 속에 내몰렸습니다. 가 아닌 그들은 그렇게 수렁 속에 내몰리는데…….이런 느낌 이었다는 것.
하필이면 「신의 장난」이 마지막 이야기여서 다 읽고는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작가의 말을 읽었다. 나는 왠지 수십 년을 벽만 보다가 득도한 노승처럼 해탈한 듯 개운한 기분이 됐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때는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 그 말이 위로가 됐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면 마치 인생이 고민덩어리인게, 삶이 고달픈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 그럭저럭 불평 없이 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다 누군가 어떤 성취를 이루거나 말 그래도 행운을 얻게 됐다는 소리를 들으면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하나같이 고달픈 게 아니었나, 싶어서 누군지도 모를 존재에게 화를 내고 싶어졌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불행을 들으면 그나마 나는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이기적인 마음을 품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남이 힘들다고 내가 힘든 게 덜해지는 게 아니고, 쟤가 잘됐다고 내가 기쁠 일은 딱히 아니라는 것. 행복이든 특히 불행이든, 함께 할 수도 없고 나눌 수도 없다는 걸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우연히 행복하고 우연히 불행한데, 그건 오롯이 본인의 몫이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우리는 그걸 그저 담담하고 고독하게 견뎌내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것이다.
‘쟤들은 저렇게 좋은데 어째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보다는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구나’가 사실은 더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아는 것 말이다. 삶은 덜 억울해 하고, 덜 괴로워하고 다만 견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뜻밖에 위로가 됐다. 하지만 너무도 무참한 이야기들이 있어 두 번은 읽지 않을 것 같아 책은 언니에게 선물했다.
접어놓은 문장들.
다들 충고들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미친놈도 언젠가 또 다른 미친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39. 오직 두 사람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매일 전단지를 돌린 것처럼, 남들이 보기엔 아무 희망도 업는 부부관계에서 그는 삶을 지탱할 최소한의 에너지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에게 미라는 카라반의 낙타와도 같은 존재였다. 목표와 희망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못해도 돼. 웃지 않아도 좋아.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이 사막을 건널 때까지.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끔찍한 모래지옥을 함께 지나가겠는가.
71. 아이를 찾습니다
차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줄줄이 다가왔다 뒤로 사라지는 가로등 불빛들의 흐름을 보았다. 가로등들은 그가 하마터면 살 수도 있었을 인생처럼 보였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인아와 결혼해 살아가는 인생이 지나갔고, 사체 유기에 가담해 인아의 공범이 되어 길에서 경찰만 마주쳐도 벌벌 떠는 인생도 지나갔고, 겨우 의식을 회복한 남편을 인아를 대신해 죽인 뒤 살인범이 되어 살아가는 인생도 지나갔다. ‘불륜 주부, 내연남과 공모, 남편 살해 후 실종 신고’같은 신문 기사의 제목도 떠올랐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이 지나갔다고 생각하자 비로소 인아의 삶이 떠올랐다. .... 그러나 이제 와서 인아에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104. 인생의 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