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살이 쪘다. 속옷이 끼기 시작한 지는 꽤 됐는데, 그냥 속옷 살 때가 됐나보다 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카운터펀치는 2주 만에 집에 온 언니가 날렸다. 엄마, 쟤 살 찐 거 아냐? 동글동글해졌네. 나한테 직접 말했다면 그런가? 허허 하고 가볍게 넘겼을 것을, 나 안 듣는 줄 알고 은밀히 얘기하는 것을 보니 진짜 내가 딱 보기에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있구나 싶었다. 침대 밑에서 먼지 먹던 체중계를 꺼내고 옷걸이로 쓰던 실내자전거를 내놨다. 기계는 내 기분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고 소수점 아래 한 자릿수까지 솔직했다. 어느새 이렇게 듬직해졌나, 나잇살, 나잇살 노래를 부르며 플랭크라도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던 언니의 저주인가, 실내자전거 페달을 이를 악물며 밟았다. 유산소 운동의 지루함과 괴로움은 몸에 맡기고, 운동 지옥에서 내 정신만이라도 구원해줄 아주 재미있는 책을 찾아다녔다. 그때 봐둔 몇 권중에 하나가 바로 『대불호텔의 유령』이다. 도서 카테고리가 호러, 공포소설에 ‘악령의 저주에 빠진 소설가가 귀신의 씐 채 쓴 작품’이라는 소개 문구를 보니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딱이다 싶었던 것이다.
책을 완독한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 책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거리가 있었다. 분명 공포소설로 분류가 되어 있지만 무서웠느냐고 하면은 솔직히, 밥도 반공기씩 먹고 간식도 안 먹는데다가 실내자전거도 빡시게 돌리는데 오히려 300그램이나 불어나 있는 내 몸뚱이가 더 무섭다. 이 책은 좀 애매하다. 좀 찾아보니 「니꼴라 유치원」도 발표된 작품이고, 대불호텔도 실재했고, 대불호텔이 있던 자리에 중구생활사전시관이 생긴 것도 진짜네. 시작은 ‘이것은 소설이다. 소설에 불과하다’라고 하는데 소설속의 ‘나’는 작가 본인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듯 보인다.
문자로 된 이야기로 공포를 느끼려면 캐릭터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설가지만 소설을 한 줄도 쓸 수 없는 작가의 공포를 공감하기에는 나는 관련 경험치가 전무하다보니 기대했던 어떤 것은 느낄 수는 없었다. 책의 메인 호러스토리를 담당하는 2장의 이야기꾼 박지운에 대해서도 그렇다. 앞 장에서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전개가 있기 때문에 화자에 대한 호감도나 신뢰도를 아주 깔아뭉개고 이야기가 시작되어 몰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저 가볍고 적당히 전형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기대했던지라, 공포 카테고리에 놓이기에는 이래저래 애매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나는 아주 기묘한 연애소설로 읽혔다. 조금 많이 무미건조하고 어둡지만 어쨌든, 인간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르 말이다.
악의는 전염되는가?
‘나’는 어릴 적 아주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쳐서 ‘나’의 내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모두가 외면하며 돌을 던졌던 그 곳, 가지 말아야 하는 곳에 발을 들인 대가치고는 너무도 과했다. 성인이 되어 소설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나’는 한 줄도 써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비난과 자학의 말들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대불호텔의 유령』을 호러 소설로 읽는다면 1부는 금기를 범하고 원귀에 씌어 오랜 시간 고통 받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영화 주온이나 장화홍련이 떠오르는데, 그저 우연히 그 집에 있었다는 이유로 평생을 발목 잡는 지독한 저주에 걸렸다는 것은 좀 뜬금없는 급전개가 아닌가 싶었다. 원한이 무슨 복불복도 아니고.
좀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나’가 그곳에서 만난 것이 정말 악의에 가득 찬 귀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존재를 부정당하고 모두에게 비난당하며 철저하게 고립된 삶을 살아간 사람의 집에서 어린 ‘나’는 지독한 고독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것이 울분과 악의에 찬 귀신의 형상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어린 ‘나’는 사기꾼 이문용의 빈 집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척당하는 것의 두려움을 알게 된 것이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은 관계에 대한 공포로, 타인에 대한 이유모를 울분과 자기 비하로 이어졌겠지. 그것이 ‘나’를 괴롭힌 악의와 원한의 정체이지 않을까. 악의가 전염된 것이 아니라 ‘나’는 지독한 외로움에 공감해 버린 것이다. 너무 공감해 버린 나머지 그에게 동화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지 못할 때 들려오는 환청은 ‘나’가 얼마나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하여 주위의 실망과 비난을 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붙잡혀 있는 듯 몸을 굳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재앙 같은 악의라기보다는 좀 더 개인적이고,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위축된 성향을 갖게 됐고, 호감을 품고 있는 상대에게 조차 관계의 발전이 아닌 현상유지만을 원하고 그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남사친 ‘진’과는 나름 오래 만나왔지만, ‘나’가 진을 만나서 건네는 이야기는 소설에 대한 것뿐이다.
그녀에게 대불호텔은?
써지지 않는 소설의 영감을 얻고자 진과 함께 대불호텔을 찾은 ‘나’는 터만 남은 그곳에서 어느 여성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진의 외할머니 박지운을 찾아가 대불호텔에 얽힌 불길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2장의 내용이다. 2장은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대불호텔의 유령』인지 드러내는 장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작가 셜리 잭슨마저 등장시키며 작가는 아주 제대로 『힐 하우스의 유령』을 오마주한다. 1950년대 한국의 시어도라와 엘레노어가 등장해서 귀신들린 대불호텔에서 갈등하고 비극을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치매노인인 박지운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박지운의 이야기는 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섞여있어서 『힐 하우스의 유령』처럼 모호하고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지만 ‘나’는 그 이야기에 매혹된다. 3장에서 바로 박지운이 들려준 이야기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그녀가 구지 『힐 하우스의 유령』을 빌려 대불호텔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한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박지운에게 대불호텔은 어떤 곳인가. 그녀의 전남편이고 청인인 뢰이한의 근무처 중화루가 있던 곳이 대불호텔이다. 박지운의 이야기에서 대불호텔은 방문자를 집어삼켜버리는 괴물 같은 그 곳, 힐 하우스와 겹쳐진다. 대불호텔의 관계자가 아닌 박지운이 어째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3장에서 그 의문점이 풀린다. 뢰이한은 중화루에 근무할 당시, 대불호텔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평생 고초를 겪는다. 한국인들에게는 청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청인들 사이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의 관련자로 오해받아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박지운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그렇게 만든 모든 일의 시작점인 대불호텔이 아주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방문자를 고립시키고 극한으로 몰아붙여서 미쳐버리게 만드는 힐 하우스처럼.
대불호텔의 이야기는 사실은 『힐 하우스의 유령』의 옷을 뒤어쓰고 있는 진의 불행한 가족사다. 먼저 떠난 그리운 이에 대한 원망이고, 다시 홀로 남은 한사람의 청승맞은 회상이고, 관계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밀쳐진 사람들의 희망 없는 세드엔딩이다. 그 이야기에 매혹된 나는 박지운의 한마디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너는 남 이야기가 그렇게 좋냐? 어디서 요사스러운 것을 데려와서는…”
이 부분에서 나도 멈칫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끄러운 세상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 얼굴도 몰랐던 누구 씨가 오늘은 뭘 먹었고, 뭘 입었고, 뭘 했는지 tmi가 넘쳐난다. 모두가 자기를 들어내며 자기 이야기를 한다. 들어달라고. 그러면 다른 얼굴 없는 이들이 반응한다. 응원하고,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빈정댄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이고, 보고 싶은 모습만을 보고 있지 않던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시선은 항상 서로에게서 빗겨나 있지 않던가.
평소에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런 말도 하지 않고, 이런 감상도 떠들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어서 초조해 지니까 말이다. 만약 관심 없어 한다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뱅뱅 도는 말들을 뱉어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좌절한다. 어쩌면 이런 것도 일종의 고립이겠지. 제대로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밖에서만 빙빙 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다른 사람들의 러브 스토리가 아니야. 너와 나의 이야기야. 그래야만 해. 아니야?” 진은 멋있는 남자고 ‘나’는 진의 용기에 힘을 얻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나’는 여전히 그 목소리들을 듣지만 그저 흘려보내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악의? 그까짓 것들 하며. 「대불호텔의 유령」은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나’의 이야기는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낚였네, 낚였어 하면서 읽었는데 산뜻하게 끝나버리니까 후련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요사스러운 것’이어서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너를 이해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