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기타 사건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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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륙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부르마블 같은 게임이다. 말판 위에 무언가가 적혀있고,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숫자대로 판에 말을 옮겨 나가 먼저 종점에 닿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사는 형편은 제각각이지만 돈독한 우정을 쌓고 있는 세 아이가 낡은 보드게임을 발견한다. 셋이 사이좋게 쌍륙을 하며 놀았다는데, 다음날 한 아이가 행방불명된다. 동네 어른들은 아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아이는 증발이라도 된 것처럼 흔적도 없다. 같이 놀았던 나머지 아이들이 증언하길 그들이 갖고 놀았다는 낡은 보드게임이 아주 묘했다는 것이다. 종이판위에 부스럼’, ‘금화 1’, ‘고열’, ‘눈병같은 좋지 않은 말들이 적혀있었고, 사라진 아이가 주사위를 굴려 말을 놓은 자리에는 행방불명이라고 적혀있었다고. 나머지 아이들은 각각 금화 3’, ‘염라대왕 앞에 말을 놓았다고 한다. 행방불명 됐던 아이는 사라질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나타났지만 그간의 일을 기억을 못하고, 금화 3냥 자리에 말을 놓은 아이의 집에는 누군가 두고 간 금화 3냥이 발견된다. 그리고 염라대왕 앞자리에 말을 둔 아이가 사라지는데! 사라진 아이의 부모는 염라대왕이 아이를 데려간 것이라며 체념하고 아이를 찾을 생각도 않는다. 이런 기묘한 사건이 발생하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햇병아리 오캇피키의 성장기

 

에도시대에는 민간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직접 발로 뛰며 정보를 모으고 범인 색출이나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오캇피키라는 직업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공권력은 아니지만 공인된 민간 조사원 같은 것이랄까.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에서도 탐정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시리즈에서도 그렇다. 다만 유능하지도, 능숙하지 못한 오캇피키라는 점이 신선하다.

 

첫 장이 시작하자마자 관록 있고 덕망 있는 오캇피키 대장 센키치가 복어 독에 급살을 맞는다. 어려서 그에게 거둬졌던 기타이치는 문고(책을 보관하는 종이상자) 행상을 하며 센키치를 도와 오캇피키 일을 하고 있었는데, 대장의 죽음으로 생활에 많은 변화를 겪는다. 기거하던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게 됐고, 생계로 해오던 문고 행상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어려운 와중에 센키치 대장의 미망인 마쓰바 부인과 셋집 관리인 도미칸, 느티나무집 요닌 신베에, 목욕탕 가마담당 기타지 등 인연이 닿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문고상으로서도 오캇피키로서도 조금씩 성장해간다.

 

주인공 기타이치는 겨우 16살로 마냥 어린아이 같은데, 에도 시대의 16세면 관례를 올릴 나이였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갓 성인이 된 사회 초년생 정도로 보면 되겠다. 척보면 다 아는 천재형도 아니고, 몸을 잘 쓰는 행동파도 아니고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성숙한 부분이 있지만 조력자들의 도움과 훌륭한 대장 밑에서 갈고 닦아온 실력으로 훌륭하게 사건을 해결해 가는 모습이 퍽 대견스럽다. 저주가 깃든 가면을 함부로 다룬 죄로 재앙을 겪게 되는 일가의 이야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방불명된 아이들을 찾는 이야기, 죽은 부인의 환생이라며 나타나 재혼 행사를 파토낸 여자의 이야기 같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건들의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도 흥미롭다.

 

작가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을 여러 편 쓰면서 참 많은 사연과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스터리와 추리요소가 섞인 장·단편의 이야기들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이렇게나 길고 길게 이어질 수 있는 힘은 그 다양한 캐릭터에서 나오는 것 같다. 미시마야 시리즈 에서도 청자가 바뀌자 다뤄지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재미있는 변화를 줬는데, 이번 책도 그렇다. 오캇피키를 주역으로 한 다른 책도 있지만 이번 시리즈는 아직은 미숙한 주인공을 앞세우고 있다. 그런 만큼이나 조력자 역할의 캐릭터들도 다수 등장하는데,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개되는 정도의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다음 책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어리숙한 문고상이 유능한 오캇피키로 거듭나기까지 아직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출판사가 힘을 좀 내 줬으면.

 

편집자의 덧붙임을 보니 기타기타 사건부가 미야베 월드 맏물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겹친다고 한다. 맏물 이야기는 아직 읽어보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하니 미야베 월드는 정말 거를 책이 없는 것 같다. 그야말로 개미지옥 같은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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